정치 左편향ㆍ右편향 드러내… 중립적 내용, 민주적 절차 중요여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정치적 충돌고교 90% 진보적 교과서 채택… 편중된 사고 우려새 교과서 집필진 구성 난항… 친정부 인사 거론돼

애국국민운동대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역사교과서 단일화 지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 논쟁이 정치, 사회 전반에 '편가르기식'분열과 대립으로 확산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박근혜정부 출범 후인 2013년 6월 박 대통령이 "올바른 역사 교육"을 강조해 공론화된 이래 정치권은 물론,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가 돼왔다.

지난해 8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회 교문위 인사청문회에서 "(역사를) 국가가 책임지고 한가지로 가르쳐야 국론 분열의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당시 여당은 '통일된 역사'를 강조하며 찬성했지만, 야당은 '국정화=전쟁'이라고 선언하며 맞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불거진 '국정화' 논란은 12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브리핑을 통해 국정교과서 발행을 공식 발표하면서 우리 사회 전반이 '전면전'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가져온 파장을 짚어봤다.

與 "국가·국민 위한 길" vs 野 "독재적 발상"

지난 15일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단일역사교과서 반대 서명운동에서 근처를 지나던 학생들이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열린 제19대 국회 교문위 국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으로 싸움만하다 막을내렸다. 이날 국감은 도를 넘은 반말과 고성이 오가며 파행으로 치달았으며, 교육부는 국감이 끝난 뒤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답변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국감장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비판했다. 유기홍 의원은 '다카기 마사오', '가네다 류슈'라고 적힌 사진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과 김무성 대표의 부친"이라며 "정부·여당의 큰 권력자가 친일의 내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설훈 의원은 "히틀러의 나치가, 일본 제국주의가, 북한이, 유신독재가 국정교과서를 했고 민주화가 되면서 검인정 체제로 바꿨다"며 "대통령이 대단히 잘못하고 있는데 이럴 때 잘못하고 있다고 얘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선아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미 서울대 역사 교수들을 비롯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얼마나 위험하고 독재적 발상인지를 밝혔다"며 "OECD 선진국 어디서도 국정교과서란 이름의 정권교과서는 없다"고 전했다.

덧붙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친일 행적 미화와 독재경험 부정을 위해 친일교과서, 유신교과서를 도입해 가르치려는 청와대와 여당의 시도는 무모하다"며 "청와대는 또다시 굴욕의 역사, 부끄러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려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교육부가 수정명령을 내렸던 한국사교과서 6종. 연합뉴스
새누리당 의원들은 현행 검정교과서의 좌(左)편향성을 지적했다. 강은희 의원은 '검정 고교 역사 교과서 집필진 현황 분석 결과'를 공개하며 "20종의 한국사 고교 교과서 집필진 128명 중 83명(64.8%)이 진보·좌파 성향으로 분류됐다"고 지적했다.

윤재옥 의원은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 회복을 위해 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의 발언은 삼가라"며 야당이 국정화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일침을 날렸다.

국감에 앞서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현행 검정체제에서 다양성과 창의성이 더 큰 위협을 받고 있다"며 "8종 중 6종의 교과서는 48년에 남한은 정부수립으로, 북한은 국가수립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현행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현안 관련 브리핑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역사교과서가 여덟 가지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은 거의 한 가지로 획일화됐다는 것에 있다"며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바로잡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새누리당은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한국사교과서를 준비하고, 역사교과서의 중심을 바로잡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야당도 역사교과서 정상화에 적극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고 새누리당 측 입장을 전했다.

정작 황우여 장관의 구체적인 답변은 듣지 못한 채 국감은 끝났다. 황 장관은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이 확정됐으며 작업 준비를 마쳤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 "국정감사에서 나온 의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정하겠다"고 해명했다.

나흘 뒤인 12일 황우여 장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황 장관은 "청소년이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하기 위해 중ㆍ고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를 발행하겠다고 밝혀 '역사전쟁'이 본격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논란이 된 좌편향 7종 교과서 고교 채택 90%

현재 8종의 역사교과서 중 진보성향으로 지적받는 7개의 검정교과서가 논란의 핵심에 있다. 미래엔, 비상교육, 천재교육, 금성출판사, 두산동아, 지학사, 리베르스쿨의 교과서는 근현대사를 좌편향적으로 해석했다는 게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측의 주장이다.

지난해 17개 시ㆍ도교육청에서 공개한 '고교 한국사 선정 현황'에 따르면 전국 고등학교의 90%가 진보성향으로 분리된 교과서를 채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래엔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759곳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고, 비상교육 교과서가 672곳으로 2위에 올랐다.

이어 ▦천재교육 366곳 ▦금성출판사 172곳 ▦지학사 139곳 ▦리베르스쿨 93곳 ▦두산동아 81곳 순이었다. 이 중 미래엔, 비상교육, 천재교육, 금성출판사, 지학사, 두산동아 교과서의 일부 내용이 편향성과 오류로 지적돼 2012년 교육부의 수정 명령을 받았다.

국내 고등학교 점유율 1위인 미래엔 교과서는 교육부의 수정 지시로 부정확한 표현을 변경한 바 있다. 일례로 교과서 본문 중 '선거가 가능했던 한반도 내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교과서 집필 기준에 어긋난 문구가 논란이 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수정했다.

366개교에서 채택하고 있는 천재교육 또한 유사한 오류를 낳았다. 교육부는 유엔총회가 승인한 대한민국 정부의 범위를 한반도로 보고 있으나 천재교육은 "유엔총회는 대한민국 정부를 선거가 가능하였던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였다"고 서술해 지적을 받았다.

비상교육은 미군과 소련군에 대한 편향적인 해석을 유도해 문제시됐다. 미군과 관련해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 권한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 하에서 시행한다"는 포고문을 실어 부정적인 인상을 남길 가능성을 드러냈다.

반면 소련 사령관의 "붉은 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 노력에 착수할 만한 모든 조건을 지어주었다"는 포고문은 긍정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이로 인해 교육부는 수정을 지시했으나 비상교육 측은 추가적인 설명만 곁들였을 뿐 그대로 출판해 문제시됐다.

두산동아는 북한 정부의 정통성을 합리화하는 표현으로 지적을 받았다. 북한 정권 수립과 관련해 "북한과 남한에서 선거로 뽑힌 대의원들은 (중략)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중략) 김일성을 수상으로 선출하였다"고 설명해 오해의 소지를 낳았다.

한편 보수성향을 띤 것으로 해석되는 교학사 교과서는 지난해 전국 고등학교 중 부산 부성고와 파주 한민고에서 채택됐으며, 서울 디지텍고는 비상교육 교과서와 함께 교학사 교과서를 복수 채택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친일과 독재를 옹호 및 미화해 교육부로부터 2013년 수정 권고를 받았다. 1930년대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식민 도시들은 일제 지배가 지속되면서 교통과 유통의 중심지가 됐다"고 설명하며 식민지근대화론의 입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교학사 교과서의 집필자인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대표적인 뉴라이트 계열 학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 교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등 역사 왜곡으로 이목을 끈 일본의 쓰쿠바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2013년에는 공주대 동문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교학사 교과서 채택 반대운동을 펼쳤다. 결국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기로 한 전국 20여개의 고등학교들이 채택을 철회하면서 이를 두고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교과서 집필진 '친정부' 우려 목소리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확정된 가운데 이에 참여할 집필진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황우여 장관은 지난 12일 "어느 정도 내락을 받은 분들이 많이 있다"고 밝혀 이미 집필진이 구성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국정교과서 개발을 맡은 국사편찬위원회는 조만간 집필진의 자격요건을 구체화해 공모를 할 예정이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지난 12일 "집필진은 명망 있고 실력 있는 명예교수부터 노ㆍ장ㆍ청을 전부 아우르는 팀으로 구성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덧붙여 "이번 근현대사에는 역사가만이 아니고 정치사ㆍ사회사ㆍ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분들을 초빙해 구성할 것"이라며 "바깥에서 공모로 하는 방법, 국편이 관련 분야 사람들을 면밀히 접촉해서 초빙하는 방법, 이 두 가지를 결합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달 15일 김재춘 교육부 차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역사학자 7명을 만났다는 게 역사학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이들 7명이 이미 집필진에 포함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이날 참석한 인물로는 강규형 명지대 교수, 강종훈 대구가톨릭대 교수,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손승철 강원대 교수,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이기동 동국대 명예교수, 양호환 서울대 교수가 거론됐다. 7명 중 강규형 교수, 권희영 교수, 손승철 교수, 신형식 명예교수, 이기동 명예교수는 평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 권 교수는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 손 교수·신 명예교수·이 명예교수는 보수학자라는 게 앞선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외에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 이명희 공주대 교수, 허동현 경희대 교수도 참여 가능성이 높은 학자로 언급되고 있다. 보수 성향인 심지연 명예교수는 지난 제7차 교육과정 당시 국정 중학교 국사 교과서를 집필한 바 있다.

이명희 교수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진으로 2013년 '교학사 교과서 채택 반발' 당시 유명세를 떨쳤다. 허동현 교수는 현재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민족긍지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친정부 성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의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주간한국>과의 통화에서 "학생들의 역사 교육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적 이해는 학자마다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학문적인 양심을 지녀야 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사명"이라며 "사명감을 잃은 일부 인물들이 아직도 정권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현 정권에서의 국정 역사교과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수도권 소재 대학의 한 역사학자는 "물론 국민들이 동의하는 보편적으로 균형 잡힌 교과서가 중요하다. 다시말해 좌편향도 안 되고 우편향도 안 된다. 국정화가 되면 무조건 친일독재를 미화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민주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국가가 나서 여론수렴 과정 없이 일을 해결하려는 방식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정화냐 검인정이냐가 본질이 아니라 좌ㆍ우 편향 없는 교과서 내용이 중요하고 그런 합의에 이르는 민주적 절차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