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전쟁' 여야 총선, 김무성-문재인 대권, 박 대통령 국정 가른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앞줄 가운데)와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지난 15일 의원총회를 마친 뒤 본회의장 입구 로텐더홀에서 '이념편향 역사 교과서'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역사 전쟁' '교과서 전쟁'이 여야 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삼키다시피하고 있다.

'교과서 정국'이라 할 만큼 정치ㆍ사회적으로 대립하는 양 진영은 '역사 전쟁'에 올인(all in)하는 양상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역사 전쟁'의 승패가 총선은 물론, 차기 대선도 좌우할 수 있다고 보고 모든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역사 전쟁'에 깊이 관여한 만큼 결과에 따라 후반기 국정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치의 향배를 좌우할 '역사 전쟁'을 다층적으로 짚어봤다.

사실 '역사 전쟁'은 예고된 전쟁이었다.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6월 박 대통령은 "교육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해 교과서 개편을 암시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9월 김무성 의원은 '근현대사 연구교실' 첫 회의에서 "역사교실에서 역사를 바로잡을 방안을 잘 모색해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켜야 한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박 대통령과 여당은 꾸준하게 새 역사교과서 개발과 국정화를 주장했고, 야당과 시민단체는 일관되게 국정화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앞줄 오른쪽 두번째)를 비롯한 당 소속 의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친일교과서 국정화 반대' 규탄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역사전쟁' '교과서 전쟁'은 4ㆍ29 재보선 등의 외부 요인과 여야 모두 내부 갈등과 분열로 관심밖에 밀려나 있었다. 새누리당은 당 주도권을 놓고 김무성 대표를 위시한 주류 비박(비박근혜)과 친박(친박근혜) 간 대결이 계속됐고, 야권은 분열된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친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 간 대결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탈당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내부 수습이 급선무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이 교과서 국정화를 내세우며 이념 전쟁을 선포하자 야권은 일체의 내부 정쟁을 중단하고 전력을 '역사 전쟁'에 모았다.

'교과서 국정화'진퇴에 여야가 모든 걸 걸면서 '역사 전쟁'은 당장의 정치 지형은 물론 내년 총선, 대선까지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핵폭탄'으로 급부상했다. 이에 따라 '역사전쟁'은 여야 내부 구도와 차기 대선주자들의 행보, 박 대통령의 국정에도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여야 계파 구도 변화 오나

'교과서 전쟁'은 여야 모두 내부 갈등이 심화된 시점에 갑자기 불거졌다. 그렇다보니 여야는 내부 수습을 하기도 전에 상대 진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눠야 했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가 '교과서 전쟁'을 선제적으로 주도하고 친박ㆍ 비박 구분없이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을 강하게 뒷받침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대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국론 통일을 위한 국민 통합 역사교과서를 만들자는 취지"라며 '좌편향 논란'이 일고 있는 현행 중ㆍ고교 역사교과서에 대해 "악마의 발톱을 감춘 형태로 만들어져 아주 교묘하게 표현돼 있다"고 비판했다.

친박 좌장격인 서청원 최고위원도 "역사교과서는 세대를 관통하는 국민 통합 교과서가 돼야 한다"며 "특정 사상에 경도된 일부 학자들이 국민 역사를 사유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눈앞의 전쟁에 친박ㆍ비박은 잠시 휴전하고 손을 잡았지만 오랜 갈등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언제든 계기가 주어지면 당 주도권 싸움은 재연될 수 있다.

'교과서 전쟁' 전만 해도 김무성 대표 주류체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파동으로 흔들렸다. 친박의 공세가 이어지고 청와대까지 나서면서 김 대표가 종래 입장을 바꿔 '우선 추천제'를 수용하는 등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자 중도 의원은 물론, 비박에서도 일방적 지지를 유보하는 입장을 보였다. 친박 내에서는 공천제 문제를 계기로 김 대표를 몰아붙이자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러나 '교과서 전쟁'이 터지면서 당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김 대표 측과 비박은 함숨 돌렸다는 입장이고, 친박은 기회를 잃게 될까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대표는 '역사전쟁'을 반전의 기회로 삼아 리더십 회복에 전력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계파 갈등도 '교과서 전쟁'으로 일견 자취를 감췄다. 공천룰 문제로 위기에 몰렸던 문재인 대표 등 친노는 교과서 국면을 내부 결집의 계기로 삼고 있다. 그동안 엇박자를 보여온 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한목소리로 반대하면서 단일 대오의 대여투쟁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주류를 압박하던 비주류들도 '적전 분열'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공격을 자제하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문 대표는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신당 창당을 추진중인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정부가 추진중인 중ㆍ고교 단일 역사교과서 저지를 위한 '야권 정치지도자 연석회의'를 출범하기로 하는 등 모처럼 실추된 리더십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교과서 전쟁'으로 친노는 일단 위기를 넘기고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갖게 됐고 비노는 교과서 국면이 지속되는 둥안 친노에 대한 공세를 펴기 어려울 전망이다. 비노의 신당 추진 또한 동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념 전쟁' 총선 영향은

'교과서 전쟁'은 속성상 '이념 전쟁'을 내포하고 있다. 전쟁을 선포한 여권이 문제삼은 것은 현행 교과서의 '좌(左) 편향'이다. 야권이 "친일ㆍ독재 미화"라고 맞불을 놨지만 이 또한 '이념적'이다.

'교과서 전쟁'이 갑자기 불거진 것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여권이 내년 총선을 겨냥해 보수층을 결집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철근 동국대 겸임 교수는 "국정교과서는 북한과의 연계성을 염두에 두고 새누리당이 드라이브를 거는 것으로, 이념 논쟁을 통해 보수층의 결집을 유도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전병헌 새정치연합 최고위원은 8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총선을 앞두고 (국정화 문제를) 이념 논쟁으로 끌고 가 보수층과 새누리당 지지층을 강화ㆍ단결시키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선거 전략용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이 일관성 있게 갖고 있는 본인의 신념과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역사교과서에 대해 균형 잡힌 교과서를 만들라고 해왔는데 임기 후반기에 권력누수가 생기면 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실현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 절박함 속에 밀어붙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교과서 전쟁'은 이미 '이념 전쟁'이 되고 말았다. 여야 정치권과 차기 대선주자, 심지어 박 대통령까지 '이념 프레임'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념 프레임'은 누구에게 유리할까?

새누리당은 역사교과서 문제가 이념논쟁으로 가는 것에 부담을 가지면서도 내년 총선 국면에서 보수진영이 결집할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최근 선거 결과 결집력이 강한 보수진영의 승률이 더 높았다는 점에서 여당에 유리한 싸움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 보수층이 결집하는 양상을 보였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14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전환에 대한 찬성 의견은 47.6%(매우 찬성 27.4% 찬성하는 편 20.2%), 반대 의견은 44.7%(매우 반대 31.8%, 반대하는 편 12.9%)로 나타났다. '잘 모른다'는 의견은 7.7%를 차지했다.

지역별로는 여권 성향의 대구ㆍ경북 지역에선 찬성 69.2%, 반대 18.3%였으나 야권 성향의 광주ㆍ전라 지역에선 찬성 36.3%, 반대 55%였다.

이에 대해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보수층이 결집해 찬성 의견이 지난 조사 대비 4.8%포인트 상승했고, 반대 의견도 진보층 결집으로 1.6%포인트 상승했다"면서 "(찬반에서 3% 포인트 차이가 나는 게) 지난 대선 득표율인 51:48 구도로 수렴돼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지 정당별로 보면 새누리당 지지자의 84.2%가 찬성, 8.4%가 반대 의견을 밝혔다. 새정치연합 지지자 중에서는 찬성이 17.8%, 반대가 75.8%이었다. 무당층은 찬성 27.4%, 반대 62.1%였다. 이념 성향이 중도층인 응답자의 경우 찬성 41%, 반대 55.5%로 반대 의견이 다소 우세했다.

한국갤럽이 10월13~15일 전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최근 정부는 중ㆍ고등학교 한국사 교육에 정부가 제작한 하나의 교과서를 사용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찬반이 각각 42%로 팽팽히 갈렸고 16%는 입장을 유보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찬성은 고연령일수록(20대 20%; 60세 이상 61%), 새누리당 지지층(68%)에서 많았고, 반대는 저연령일수록(20대 66%; 60세 이상 11%), 새정치연합 지지층(65%)에서 우세했다. 무당층은 찬성 26%, 반대 49%였다.

강운식 동국대 겸임교수는 " '이념 프레임'이 여당에게만 유리하다고만 볼 수 없다"며 "결국 중간층을 누가 더 확보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이념 프레임'이 궁극적으로는 여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이미 보수층은 결집한 상황이기 때문에 야권에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 여당에 유리한 소재로 보기 어려운 이유"라며 "국정화 이슈가 2017년까지 갈 경우 (체제논쟁의) 이슈가 재부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야당 성향층은 '이념'에 민감하기 때문에 나중에 선거에 가서 표심을 드러낼 것이고 그 때는 여권이 '민생'을 내세워도 냉정하게 바라볼 것이다"고 윤 센터장은 전망했다.

'역사 전쟁' 향배에 에 잠룡들 촉각

'역사전쟁'의 향배는 내년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이는 차기 대선에도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때문에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김무성 대표, 문재인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대표는 국정화 논란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15일 정부가 발표한 '국민통합을 위한 올바른 역사교과서'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날 김무성 대표는 현행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역사 전쟁'의 선봉에 설 것을 천명했다.

하지만 김 대표 부친의 친일 논란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배경에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씨의 친일행적 지우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김 대표의 부친 김용주씨는 창씨개명을 했는데 가네다 류슈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항공기를 헌납하자고 신문광고를 냈다고 밝혔다.

김 대표 측은 유 의원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지만 부친의 '친일 시비'는 대권 행보에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 대표 또한 교과서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야당에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야당으로선 특별한 성과를 보기 힘든데다 장외투쟁으로 민생을 팽개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전쟁'이 '이념전쟁'인 점도 문 대표에게 부담이다. 지난 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문 대표를 향해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며 이념적 편향성을 거론해 논란이 됐다.

문 대표는 2013년 '사초 논란'을 촉발해 이념 논쟁으로 번져 정치적 불이익을 당한 적이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선거에서'이념 프레임'이 문 대표에게 불리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교과서 전쟁'이 '이념전쟁'으로 확산될 경우 문 대표의 대권 행보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또 다른 잠룡인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 전 대표 등 '교과서 전쟁'에 한발 물러나 있다.자칫 개입했다가 예상치 못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역사전쟁'이 어느 방향으로 귀결되느냐에 따라 박 시장과 안 전 대표에게 유ㆍ불리하게 작용할 여지는 분명히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실상 '역사전쟁'에 불을 지폈다는 점에서 그 결과에 따라 후반기 국정에 적잖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역사전쟁' 이후 박 대통령 지지율은 4%포인트 하락한 43%를 기록해 지난 8월25일 남북고위급 합의 후 처음으로 부정평가에 역전 당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긍정 평가 이유로 1% 포함됐으나, 부정 평가 이유에서는 14%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역사전쟁'이 아직 진행중이고 박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오히려 내년 총선에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어떻게 반영되느냐에 따라 박 대통령의 후반기 국정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