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핵심인사 총선용 출사표에 내부 불만 증폭 당-청 충돌 가능성'개각' 앞두고 '개헌' 판도라 상자 급부상 계파갈등 본격화친이-친박 총선 대결구도 속 친박내부 갈등설 수면위 부상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지난 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행정자치부에서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지난 8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정 장관의 사의는 다른 정무부처 인사들의 출마선언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무위원들의 대규모 총선용 탈출 러시가 예고되는 가운데 당청 간에 미묘한 신경전도 본격화되고 있다. 공천룰에 대한 의견조율도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입장차이가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일단은 김 대표가 청와대의 입장을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친이계 등 비박계가 청와대와 대립적인 입장이어서 향후 김 대표가 어떤 행보를 취할지는 미지수다.

공천을 앞두고 청와대가 내놓을 개각안이 미묘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인사문제와 관련해 친이계 등 비박계는 물론이고 친박계 내부에서조차 불만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어 청와대가 대승적인 인사를 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청와대는 그동안 제한된 틀 안에서 인사를 해왔다. 말하자면 친박 중에서도 TK의 진박(眞朴-진짜 친박계) 인사만 핵심 요직에 등용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을 돕고 있는 다른 친박계 인사들의 불만은 나날이 쌓여온 게 사실이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도 경북지역에서 "친박 여권 후보들 중에서도 '진박'만이 공천을 손에 쥘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앞으로 단행될 개각과 관련, 여권-친박-진박의 자격을 갖춘 이들만 골라 뽑는 게 아니냐는 불만 섞인 전망이 나오면서 친박계 내부에 미묘한 파동이 일고 있다.

최근 홍문종 의원의 내각제를 위한 개헌 발언을 놓고 일부에서 "친박계 인사들 사이에 불만이 표출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신임 장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나서 이병기 비서실장 등 참모진과 대화하며 밖으로 나가고 있다.
총선용 깜짝 이벤트 나오나

정 장관은 이날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한 즉답은 피했지만 갑작스런 사의 표명이 사실상 출마 의사인 것으로 해석된다. 정 장관은 경북 경주 출신이지만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점을 감안할 때 대구 동구갑으로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총선 필승' 건배사 논란 직후 출마설이 불거지자 "현재로선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주변인들에 의해 총선출마 소문이 기정사실화되면서 급하게 신변 정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비정치인 출신 국무위원인 정 장관이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한 것에 대해 여권 내에서는 친박계의 2차 'TK(대구·경북)물갈이'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거취 파동 때부터 제기되던 'TK 물갈이론'은 청와대 인사들의 출마가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박종준 전 청와대 경호처 차장·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 등으로 확대되면서 더 힘을 받고 있다. 여기에 TK 출신 국무위원들이 잇따라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물밑 공천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말이 정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친박계 터줏대감들이 TK지역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최근 박 대통령 곁을 지키던 진박 인사가 연달아 도전장을 내면서 기존 '친박' 인사들은 이를 '교체'의 의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동시에 물갈이론에 불만을 품는 이들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새얼굴이 터줏대감을 밀어내는 식의 물갈이를 추진할 경우 친박계 전반의 세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단 친박계 인사들은 각지에 골고루 나뉘어 출사표를 던진 모양새다.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현역인 김회선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서울 서초갑에 나설 예정이다. 인천에선 연수구에 '박 대통령의 입'이었던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출마를 고려중이다. 민 대변인과 함께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던 박 전 경호처 차장은 세종시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각에선 아직 내각에 남아 있는 국무위원들에 대한 개각 단행도 멀지 않았다는 말과 더불어 "청와대가 총선을 앞두고 비박계와 친박계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깜짝인사 카드를 쓸 것"이라는 소리가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 나온다.

정치인 출신인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교체는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특히 청와대는 다자회의 참석 등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을 발표하면서 박 대통령 출국 전에 부분 개각 발표를 매듭짓는 방향으로 후임 인선 작업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부산 지역으로 총선에 나선다는 관측도 나와 2차 개각은 최대 4명까지 각료가 교체될 수도 있다.

다만 박 대통령의 다자회의 해외순방 때 윤 장관이 수행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황 부총리와 김 장관을 먼저 교체하고 윤 장관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다음달 중순 따로 3차 개각을 통해 총선에 임하게 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국정과 총선 사이 청와대 고민

청와대는 다자회의 참석 등을 위한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전에 개각에 대한 밑그림을 대략적으로 그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 출국 전에 부분 개각과 관련된 내부 보고가 일부 올라갔고 발표 시기는 박 대통령 입국 직후로 가닥을 잡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청와대는 일단 국정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후임 인선작업에 속도를 낼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14일부터 23일까지 G20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및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날 "박 대통령이 출국 전에 총선 출마 의사를 가진 장관들과 후임으로 적절한 대상을 부분적으로 검토했다"며 "입국 직후 개각을 단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 결정을 하지 않은 청와대 인사들도 있는 만큼 개각 발표시기가 미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조속한 부분개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지난달 19일 현역의원인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의 후임 인사를 발표하며 출마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1차 부분개각을 단행했다. 당시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도 교체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으나 황 부총리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현안 때문에, 김 장관은 적절한 후임자를 찾지 못하면서 인사가 미뤄졌다.

황 부총리는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의 대표필진 사퇴 등으로 국정교과서 집필진 구성 작업이 출발부터 난항을 겪고 있지만, 후임자가 내정되더라도 청문회 기간을 감안하면 실무적인 준비 절차를 마무리할 시간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6년도 예산안 처리가 마무리된 뒤 연말이나 연초께 여의도로 복귀할 것이라는데 정치권 안팎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예산안의 법정 처리 기한은 12월 2일로, 야당이 장외투쟁을 중단하고 국회를 정상화시키기로 한 상황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법정 처리 기한 내 통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사의를 표명한 정종섭 장관 후임으로는 정재근 행자부 차관, 이승종 지방자치발전위원회 부위원장, 유민봉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정진철 인사수석 등이 거론되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김회선 의원도 후보군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황 부총리 후임자로는 임덕호 전 한양대 총장, 이준식 전 서울대 부총장이 거론되고 있다.

여성부 장관은 여성 정치인의 몫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 중 후보군을 추려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강은희 의원 등이 정치권에서 입길에 오르고 있다.

윤상직 장관도 개각 명단에 포함될 경우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지낸 안현호 전 산자부 차관,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 이관섭 산업부 1차관 등이 후임 장관 후보군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개각 없다" 발표 배경

그러나 개각에 대해 청와대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개각에 여러분이 많은 관심을 가졌고, 기사화된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당분간 개각은 없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시급한 민생 관련 법안들, 노동 관련 개혁 입법들을 정기국회 내에 통과시켜야 한다는 데 초점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동안 사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가기 전 총선 출마 장관들을 대상으로 부분 개각을 할 것이라고 예고해 왔다.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으로 열흘 가까이 국내를 비우는 상황에 '순방 전 개각설'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청와대는 "순방 전 개각은 없다"는 발표를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청와대가 당장 시급한 개각에 대해 '당분간 안 한다'고 시기를 정하지 않은 것은 다소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개각을 연기하며 내세운 이유는 당분간 국정 운영의 최우선 순위를 노동개혁 5개 법안과 경제활성화 4개 법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등의 처리에 두겠다는 것이다.

김 수석은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고, 거기서 많은 민생 현안 법안이 있다"며 "정말 이번 국회에서 처리됐으면 하는 게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이 같은 입장표명은 내부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순방 전 개각이 오히려 총선용이라는 논란을 부추길 수 있는 만큼 이를 차단하자는 판단"이라며 "일부 언론에서 개각 명단을 보도한 것도 내부 보안과 관련해 논란이 됐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브리핑에서 개각 시기와 관련, "국정 현안이 마무리된다든지 그런 것들을 고려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후속 개각은 2차·3차에 걸친 순차 개각 대신 다음달 초 한 차례 개각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여권 관계자는 "개각 폭도 교육부·행자부·여성부에 더해 현안 처리가 끝나면 당으로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온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포함하는 중폭으로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청와대가 총선을 앞두고 개각을 뒤로 미룰 뿐만 아니라 TK물갈이론에 휩싸이면서 정치권에서 개헌이라는 '판도라 상자'의 뚜껑이 조금씩 들썩이고 있다.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원내 과반인 150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폭넓게 거론됐지만 이번에는 새누리당의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에서 개헌론이 나와 여권이 술렁이고 있다. 이에 일부에서는 "총선과 개각을 놓고 친박계 내부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돈다"고 입을 모은다.

홍문종 의원은 지난 12일 KBS 라디오에서 "5년 단임제 대통령제는 이미 죽은 제도가 됐다"면서 "외치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하는 총리로 이원집정부제를 하는 게 훨씬 더 정책의 일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박 대통령이 '개헌론'에 반대 견해를 분명히 밝힘에 따라 여권에서는 개헌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지난해 10월 김 대표가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개헌론을 꺼냈다가 하루 만에 청와대를 향해 사과했던 것도 개헌론이 그만큼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계 핵심으로 통하는 전직 사무총장 출신의 홍 의원이 개헌론을 꺼내들자 이를 놓고 여러 추측과 관측이 난무하고 있다.

한 친박계 인사는 "홍 의원은 그동안 자신을 포함해 몇몇 친박계 인사들이 사석에서 논의했던 개헌론을 꺼낸 배경이 따로 있지 않겠나"라며 "물갈이론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외교를 담당하는 대통령으로 세우고 친박계 총리, 특히 대구·경북(TK)에 근거지를 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면에 나서는 구체적인 그림까지 나왔다.

개헌 논의의 시기에 대해서는 5개월밖에 남지 않은 내년 총선 이후가 유력하다는 구체적인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폐해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많은 데다 뚜렷한 차기 대권주자가 아직 부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이 개헌을 추진했으나 당시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박 대통령의 반대에 부딪혀 성사시키지 못했다. 박 대통령의 개헌반대 입장은 그만큼 확고하다. 통상 집권 후반기에 나오는 개헌론은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떨어뜨린다는 분석이 많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개헌 반대 입장은 더 강해졌다. 이런 가운데 당 주류 인사가 이를 언급한 것을 두고 친박계 내부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서는 분권형 개헌론이 친박계에서 제기된 것은 홍 의원 한 사람의 뜻이 아닐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박 대통령의 퇴임 후를 염두에 둔 친박계의 구상과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박 대통령은 TK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여권이 차기 대선에서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권력을 이어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윤지환 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