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편향 수사, 감정협회 이중 태도, 작가 감정권한 위임 드러나

이우환 작품에 대한 위작 시비가 불거진 2012년 중순부터 최근까지 다수의 관계자들을 만나 그 실체를 추적해온 <주간한국>은 최근 ‘위작 논란’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문건(文件)’을 입수했다.

문건은 이우환 화백의 ‘감정 위임서’,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감정 결과’, 위작품 판매책으로 알려진 이모씨의 재판기록과 민원신청서 등이다.

현재 ‘이우환 위작’ 시비는 미술계(문화계) 논란을 넘어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이다. 본지가 입수한 문건은 ‘이우환 위작’ 사건의 실체를 밝혀주며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위작품 판매책으로 지목된 이씨의 문건

2013년부터 미술계를 중심으로 본격 거론된 ‘이우환 위작’ 사건은 위조 기술자 현모(65)씨가 100억대의 이우환 작품을 위작했고 판매책 이모(66)씨가 위작품을 유통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우환 위작’ 사건의 '키(key)'는 위작범과 판매책으로 지목된 현씨와 이씨에게 달린 셈이다.

그런데 경찰은 현씨와 이씨에 대해 전혀 다른 수사를 하고 있다. 일본으로 도피한 현씨에 대해선 국제 공조 수사를 거론하면서 이씨에 대해서는 스스로 진술하겠다고 해도 외면하고 있다.

이씨는 ‘이우환 위작’ 사건에 자신이 연루됐다는 얘기(소문)와 언론 보도를 접하고 여러차례 경찰에 출두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경찰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씨를 출국금지 시켜 놓고도 조사를 하지 않고 그의 자진 진술도 거부하고 있다.

급기야 이씨는 10월 15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경찰의 불합리한 출입국규제로 인한 재산상 손해 발생’ 이라는 제목의 민원을 신청했다.

이씨는 민원에서 “10년 전부터 일본에 고미술 관련 회사를 설립하고 고미술 거래를 하고 있는데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3개월째 출국금지를 시켜 놓아 막대한 재산상 손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누군가의 신고로 위작(그림)을 거래했다고 하는데 실제 그림을 그린 작가(이우환)는 현재도 활동중이기 때문에 바로 물어보면 될 것이고, 혐의가 있다면 빨리 소환해 조사 진행하면 될 것인데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출국금지를 시키려면 도망하거나 출석요구에 불응할 만한 사유가 있어야 함에도 한번의 출석요구도 없고 담당 경찰관에게 부르면 언제든지 출석하겠다 하고 있는데도 기다리라고만 하며 3개월째 출국금지만 시켜 놓은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씨는 “이우환 위작‘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씨가 ’위작설‘의 진원지라는 얘기에 ”고소하겠다“며 격분했다.

현씨와 이씨는 1980년대부터 서울 장안평을 활동 근거지로 현씨는 민화를 그리고, 이씨는 골동을 판매하며 지냈지만 서로 왕래는 없었다. 그러다 2011년 초 현씨와 막역한 고미술상 김모씨를 통해 두 사람은 인사를 하게됐고, 현씨의 민화를 이씨가 일본에 판매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이씨는 "현씨의 민화를 일본에 판매하면서 금전 문제가 생겼는데 그가 불만을 갖고 ‘위작‘ 소문을 낸 것 같다. 고소를 하든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한편, 현씨는 이씨가 자신의 민화 등을 팔아 80억원대의 수입을 올렸다며 절반인 40억원을 청구하는 내용증명(2013년 5월21일)을 보냈고, 요구 금액을 지급하지 않자 이씨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그러나 서울 북부지검은 올 초인 1월 30일 이씨에 대한 사기 혐의를 각하했다. (사건번호 5201호)

검찰의 각하 처분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씨가 80억원대의 거래 사실이 없고 거래 대상이 민화 등 고미술로 이우환 위작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현씨와 이씨 역시 2013년 11월 미술계 유력인사에게 “고미술만 거래했고 이우환 작품은 관련 없다”고 실토했다. 그럼에도 경찰이 현씨와 이씨를 ‘이우환 위작’ 사건의 주범으로 보고 수사조차 편향되게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국미술품감정협회 문건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감정 접수된 작품들에 대해 ‘진품’으로 감정하고도 이에 반하는 태도를 보여 문제가 되고 있다.

감정협회는 현대화랑을 통해 이우환 화백에게 확인한 후 감정서를 발급해주었음에도 아무런 근거도 없고, 감정권을 위임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우환을 믿지 못하겠다”면서 근거없는 설을 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감정협회 자료를 보면 2012년 3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이우환 작품을 감정한 결과 모두 ‘진품’으로 확인했다.

예컨대 접수번호 01211067 이우환 작품에 대해 “작가에게 확인한 작품들과 동일한 유형의 작품으로 판단하여 2012.11.30 진품으로 감정함”이라고 했다.

또한 접수번호 01212010 이우환 작품에 대해서는 “2013.1.31 갤러리현대에 작가 감정을 위해 작품 7점을 보냄. 작가로부터 진품이라는 작가확인서를 받음. 2013. 2. 8 작가확인서를 근거로 진품으로 감정함”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감정협회는 ‘이우환 위작’ 논란 이후 자신들이 ‘진품’으로 감정한 작품에 대해서도 ‘가짜’ 의혹을 제기한다는 얘기가 전해져 ‘위작설’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들리고 있다.

이우환 화백의 감정 위임서

이우환 화백은 ‘위작’ 논란이 한창이던 2013년 10월 1일 자신의 작품을 감정할 수 있는 권한을 서울 현대화랑 박명자 회장과 부산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에게 부여했다.

‘이우환 작품 감정 업무 위임서’ 문건은 “2013년 10월 1일 이우환 작품에 대한 감정을 ‘이우환 파운데이션’(가칭)에 위임함. 모든 감정 업무는 작가를 떠나 서울 현대화랑 박명자 회장과 부산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 2인에게 운영을 일임함”으로 돼 있다.

작품 확인권은 작가에게 있다. 작가가 작품을 창작(서명 등)하고 이를 확인(보증)하는 것은 세계각국 공통법이다. 타인이 감정하려면 권리(위임장, 대리권)를 양도(승인)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이우환 작품에 대한 감정권한은 박명자 회장과 신옥진 대표가 할 수 있게 됐다. 감정협회 입장에선 국내 최고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감정을 하기 어렵게 된 상황이다. 이는 김정협회가 집요하게 작가에게 감정권한을 요구한 배경이기도 하다.

미술계에서는 ‘이우환 위작’ 논란에 작품 감정권한을 둘러싼 감정협회의 불만이 작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말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현재 경찰이 무리하게 추진하려는 이우환 작품 국과수 감정 시도에 감정협회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의혹과 풍문 등에 대해 감정협회 측은 조심스럽게 부인하거나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