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변화 '한몫' 챙기나?… 총선·대선 '변수' 작용할 수 있어2차 남북정상회담 실무자 김대중-김정일 '밀약' 잘 알아총선 전후 여권 인사되면 '친노'에 충격대선에서 문재인 '사초' 논란 재점화될 수도

김만복 전 국정원장(왼쪽 둘째)이 10월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동아시아와 유럽, 평화를 향한 동맹'을 주제로 열린 '10·4남북정상선언 8주년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팩스 입당'으로 구설수에 오른 김만복(69) 전 국정원장이 결국 새누리당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입당이 무산됐다. 김 전 원장이 입당 후 10·28 부산해운대기장을 재·보궐선거에서 상대 당 후보를 지지하는 언동으로 해당행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0일 새누리당 서울시당 윤리위원회로부터 '탈당 권유' 조치를 받은 김 전 원장은 10일 이내에 자진 탈당하지 않으면 자동 제명된다. 이에 김 전 원장은 당원 자격을 잃는다면 내년 총선에서 부산 기장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입당을 둘러싼 '김만복 파동'은 일견 총선과 관련된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 있으나 여러 함의가 내포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원장이 새누리당 입당을 타진한 실제 목적은 다른데 있으며 총선과 대선은 부차적인 것이라는 설명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 전 원장의 새누리당 입당 사건의 전말을 추적했다.

남북관계 변화 '한몫'노리나?

지난 2007년당시 평양 4.25 문화회관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안내로 사열을 한 뒤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새누리당 입당 시도와 관련 대부분의 시각은 내년 총선에 맞춰졌다. 김 전 원장이 부산 해운대기장을에 출마하는데 지역 정서상 새누리당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해 입당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미 달아오른 총선 국면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김 전 원장 또한 총선출마를 위해 새누리당에 입당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에 정통한 소식통과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 국제금융관계자 등은 김 전 원장의 집권 여당 입당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분석했다. 즉 박근혜 정부 후반기 남북관계 변화와 박 대통령의 남북교류 움직임이 본격화 하는 시점에 김 전 원장이 모종의 '카드(승부수)'를 꺼낸 것으로 해석한다. 다시말해 김 전 원장이 남북관계 변화에 편승해 무언가 '한몫' 챙기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지원 과정에 전직 국정원장으로서 알고 있는 '파일'을 갖고 '거래'를 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은 김 전 원장이 지닌 '카드(파일)'가 역대 정부에서 이뤄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한다.

김 전 원장은 국정원장 시절 최고의 성과이자 보람으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꼽았다. 김 전 원장은 최근 출간됐가가 국가 기밀 공개 문제로 판매금지 처분을 받은 회고록 <노무현의 한반도 평화구상 - 10·4 남북정상선언>에서도 국정원장 취임 후 2차 남북정상회담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고 이를 성사시키는데 전력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차 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10월 성사됐다. 그러나 당시 정상회담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를 2개월가량 남겨둔 시점에 이뤄진 것이어서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때문에 2차 정상회담을 놓고 여러 해석이 제기됐다. 대부분 6·15공동선언의 적극 구현과 한반도 핵(核) 문제 해결을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2차 정상회담 내용은 그러한 해석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2차 정상회담에 대해 국내와는 전혀 다른 소식을전해왔다. 소식통은 2차 남북정상회담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에는 '북한판 마셜플랜'이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 대북지원에 관한 비밀 약속(밀약)이 있었고, 이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정부 내내 '밀약'은 이행되지 않았고 북한은 계획경제 차질에 따른 극심한 고난을 떠안아야 했다. 노무현정부 들어 2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던 청와대는 지지부진하던 차에 임기말 '밀약' 카드를 내밀었고 북한은 이를 수용해 대화가 이뤄지면서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북한이 뒤늦게 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은 노 전 대통령에게서 '밀약'의 이행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을 만나자마자 '밀약'에 대해 물었고, 노 전 대통령은 '이행하기 어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크게 실망해 대화를 끝내려고 했으나 노 전 대통령이 NLL 등을 거론하면서 대화가 이어졌다고 한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2차 남북정상회담을 최전선에서 추진한 핵심 실무자로 '김대중-김정일' 밀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밀약은 김대중 정부 때는 물론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행되지 않았다.

김 전 정 원장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정원장 신분임에도 곧바로 MB를 찾아갔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원장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MB정부 당시 주요 인사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김 전 원장은 '김대중-김정일' 밀약('북한판 마셜플랜')을 전하고 자신을 '중용'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김 전 원장의 요청을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MB정부 인사들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도 무시할 수 없는 국제적인 파워그룹의 언질이 크게 작용했다는 전언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김대중-김정일' 밀약은 이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에 변화가 왔다. 새 정부 초기 남북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후반 들어 남북관계는 해빙기를 맞아 훈풍이 돌고 있는 양상이다,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박근혜 정부에 우호적이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해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이러한 분위기라면 '김대중-김정일' 밀약도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판 마셜플랜'이 이행되면 어마어마한 재원이 동원될 것이 예상된다. 일부에선 역대 정권의 통치자금이 활용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김 전 원장이 최근 새누리당 입당을 추진한 것은 그러한 국면을 간파한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즉 김 전 원장이 알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이면의 '비밀'을 갖고 박근혜 정부와 '게임'을 하려 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관계자는 "김 전 원장이 남북관계 변화를 꿰뚫고 무언가 챙기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반도 사정에 정통한 미국의 정보 관계자는 "만일 김 전 원장이 남북관계를 활용해 한몫 챙기려 했다면 위험한 게임을 하는 것"이라며 "김 전 원장에게 불행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 국내외 정보 관계자들은 김 전 원장의 새누리당 입당이 무산된 것을 두고도 정치 전문가들과 달리 해석한다. 즉 김 전 원장이 해당 행위를 해서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니라 전술한 바와 같이 대북 지원과 관련해 '한몫'챙기려는 불순한 생각 때문에 '퇴짜'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김 전 원장에게 엄중한 경고를 한 셈이다.

총선 출마, 당선 여부 초미의 관심사

김만복 전 원장이 입당했을 때 새누리당은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새누리당은 '팩스 입당'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당에서도 김 전 원장의 입당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5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새누리당에 입당한다는 것은 우리 당에 희망이 있다는 의미"라며 "김 전 원장의 입당을 우리가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황진하 사무총장도 "과거 정부에서 국정원장이라는 핵심 직책에 있던 사람이 새누리당을 선택한 것은 그래도 새누리당이 신뢰할만한 정당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평당원으로 활동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새누리당으로 전향한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김 전 원장의 입당을 반긴 것은 총선과 대선에서 '김만복 카드'가 활용가치가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 전 원장은 노무현 정부의 핵심인사로 '입당' 자체만으로도 야당에 충격을 줄만한 '사건'이다. 또한 새누리당 지지기반인 보수층을 결집하는데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김 전 원장의 새누리당 입당을 격렬하게 비판한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김 전 원장 입당 당시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는 "김 전 원장 입당은 총선 1개 지역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원장은 당원 자격을 상실해 새누리당 후보로는 총선에 나올 수 없게 됐다. 김 전 원장은 무소속 출마 뜻을 내비쳤다. 내년 총선 결과는 알 수 없으나 만일 당선된다면 그의 향후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 있다. 김 전 원장이 새누리당 입당을 시도했던 만큼 여권행이 유력하다. 그럴 경우 김 전 원장의 당선은 총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선이 본격화되는 국면에서 여야 모두 주목해야 할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선 '역할론' 주목

여권에서는 김 전 원장이 총선보다는 대선에 더 활용가치가 높다고 말한다. 야권에서 문재인 새정지연합 대표가 유력한 대선 후보인 가운데 김 전 원장은 문 대표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인사라는 것이다.

특히 문재인 대표가 제기했던 '사초' 논란과 관련해 김 전 원장은 그 내막을 잘 알고있어 문 대표에게 '한방'을 먹일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대선 직전인 2012년 10월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말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야당은 즉각 반발했고 문재인 대표는 "정 의원 발언이 사실이라면 내가 책임질 것"이라고 말하며 강수를 뒀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이른바 '사초(史草)' 논란은 대선이 끝난 뒤인 2013년 6월 국가정보원에 보관된 회의록 발췌록을 열람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NLL 포기 취지 발언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하자 문 대표가 회의록 공개를 제의하면서 재점화됐다.

국회는 결국 대통령기록관에 보관 중인 회의록 원본을 열람하기로 결정했으나 수차례 시도에도 회의록 원본은 찾을 수 없었다. 회의록 유출에서 시작된 논란이 '사초 실종'으로 비화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사초가 폐기나 은닉됐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그해 7월 참여정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대통령기록관을 비롯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마쳤지만 회의록은 찾지 못했다. 대신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전 복사해간 '봉하 이지원'에서 회의록 초본이 삭제된 흔적과 완성본에 가까운 수정본을 발견했다.

검찰은 결국 노 전 대통령 지시에 의한 '사초의 삭제'로 최종 결론 내리고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 전 비서관을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및 공용전자기록등손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4개월에 걸친 논란 끝에 법원은 지난 6일 이들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된 것은 삭제된 회의록 초본이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는데 법원은 부인했다. 대통령기록물이 생산되려면 '결재권자의 결재'가 있어야 하는데 노 전 대통령은 결재가 아닌 재검토 지시를 내렸고, 따라서 백 전 실장 등이 이를 삭제했더라도 이는 '정당한 권한에 의한 폐기'라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다.

이번 재판부의 판결로 '사초' 논란은 '노무현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결론났다. 문대표도 항간의 혐의ㆍ소문에서 자유롭게 됐다.

그러나 김 전 원장은 당시 남북정상회담의 실무자로 사초 논란의 실체를 잘 알고 있다. 특히 삭제된 회의록 초본에 대해 누구보다 정통하다. 만일 사초에 문제가 있고 김 전 원장이 이를 증언한다면 문 대표는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차기 대선 구도가 현재와 같은 양강(김무성-문재인) 체제로 이어지거나 문 대표가 야당 대선 후보가 될 경우 김 전 원장은 노무현 정부의 핵심으로 중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