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비박 갈등에서 친박-진박 갈등까지 본격화
총선 전 친박내 ‘진박’ 등 친박 족보 분열 불씨 가능성
경북 유력 후보들 자기검증 위해 친박인사 동원 백태
친박 내 진박 물갈이론 증폭에 비박계 주변 반발 움직임

내년부터 총선정국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야권과 더불어 여권 내부에서도 분열조짐이 조금씩 감지돼 연초에 정치권이 크게 술렁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권의 갈등은 그동안 잠재된 요소가 폭발할 가능성이 짙어 내홍이 수면위로 부상할 경우 당청이 충돌하는 등 적지 않은 파장이 일 전망이다. 최근 결선투표제 도입을 놓고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중진들이 충돌하고 있는데다 중앙뿐만 아니라 지역 정가에서조차 친박외 진박(진짜 친박) 가박(가짜 친박) 복박(돌아온 친박) 등 연줄 인맥을 따지는 이른바 ‘친박 족보’ 논란이 일고 있다.

총선 출마 예정자들 사이에서 같은 친박계 인사라도 친박이냐 가박이냐 등을 놓고 서로 비방전을 벌이는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어 여권내부에서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총선 공천룰=판도라 상자 되나

내년 총선 공천룰을 둘러싼 새누리당 친박, 비박계의 줄다리기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있다. 일단 양측은 한 발짝씩 물러서 공천룰 논의에 착수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실은 세부룰을 놓고 물밑 대립이 치열하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날 최고위원단 만찬회동에서 공천방식 논의를 위한 특별기구를 곧 출범시키고 위원장에 황진하 사무총장을 임명키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또 현행 당원 50%, 국민 50%를 반영해 선출하는 경선룰에 대해 “현행 당헌ㆍ당규에 따르되 상황에 따라 조율하기로 했다”며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되 구체적 방안은 특위에서 논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서 일단 김 대표와 친박계가 서로 양보해 최고위의 결정에서 화합무드를 그려낸 것으로 비치고 있다. 김 대표는 결선투표에 미온적이던 입장에서 선회했고 친박계는 반대하던 ‘황진하 카드’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신경전은 본론으로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결선투표제를 둘러싼 해석차가 표면화되고 있다. 비박계는 여론조사에서 경선 후보들의 격차가 오차범위 내 등 미미한 경우에만 결선투표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에 무게를 싣고 있다. 현역 의원의 교체가 그렇게 많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친박계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를 통한 의견종합에 결선의 결과를 반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와 청와대를 내세운 친박계 간의 물밑 힘겨루기가 시작됐다”는 말이 여권 주변에 퍼지고 있는 이유다.

비박계 일각에서는 결선투표제를 수용한 김 대표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결선투표 제안을 수용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결선에서 친박-진박, 또는 비박-진박이 만날 경우 복잡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 대표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하는 컷오프ㆍ전략공천제와 관련해서도 여러 분석과 전망이 나온다. 일단 이 문제로 진박-친박-비박이 삼각충돌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서로 물고 뜯는 내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새누리당 중진들도 결선투표제의 적절성을 놓고 부딪쳤다. 대표적인 비박 중진인 이재오 의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결선투표제는 본선경쟁력을 현저히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기존) 경선에서 떨어진 사람도 (경선) 당선자를 안 돕는데 (결선투표로) 뒤집어진 후보들이 당선자를 지원하겠느냐”면서 “야합에 의해서 떨어졌다, 돈 선거로 떨어졌다 등 온갖 불건전한 예를 들고 문제 제기해서 당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친박계 이인제 최고위원은 “(결선투표제 없는 경선을 한다면) 그게 공정한 경선이 되겠느냐”며 이 의원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최고위원은 “결선투표 없이 (경선을) 하면 기득권자가 거의 다 된다. 신인들이 (표를) 분열해 나눠 먹지 않느냐”면서 이 의원의 주장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친박계 족보는 '금단의 열매'

이처럼 공개적인 계파 충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공천룰 관련 특별기구에서 경선규칙을 논의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공천룰 관련 특별기구 위원장에 위촉된 황진하 사무총장은 지난 11일 중립적인 입장에서 기구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황 총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공천은 총선 승리의 출발점이자 마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현행 당헌ㆍ당규를 기반으로 현역과 신인 모두에게 공정한 기준을 마련해 깨끗하게 승복할 공천룰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공천룰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결선투표제의 경우 전체 지역구에서 실시할지, 일부에서만 실시할지를 놓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황 총장의 발언은 결선투표제 시행 기준을 ‘현역과 신인 모두에게 공정한’ 형태로 절충, 공천 결과가 뒷말을 낳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계파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별기구 논의도 계파 간 ‘대리전’ 형태로 흐를 경우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천룰을 둘러싼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이 위험 수위에 다가서고 있는 상황임에도 한 발 더 나아가 친박 내부에서도 족보갈등이 연출되고 있다.

친박 진박 논란은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를 계기로 촉발된 ‘TK(대구ㆍ경북) 물갈이론’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이미 TK지역에서는 총선 정국에 돌입하기 전부터 이와 관련된 말이 적지 않았다. 진박(眞朴)ㆍ가박(假朴) 논란은 단지 TK 지역 공천경쟁이 혼탁ㆍ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있을 뿐 실은 전부터 인사검증 기준으로 작용해 왔다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특정 후보의 과거 이력을 들추어 친박인 듯 보이는 가박(假朴-가짜 친박계)이라고 비난하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친박 가박 진박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다른 아닌 박 대통령이다.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박 대통령의 지난 10일 국무회의 발언 이후 TK 지역에서는 진박ㆍ가박 논란이 아예 지역언론에서 조차 인사검증 수단으로 공론화 되고 있다.

진박ㆍ가박 논란을 적극적으로 띄우는 쪽은 내년 20대 총선에서 TK 지역 도전자들이다. 이들은 유 전 원내대표와 친분이 두터운 의원들, 또는 원내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지 않은 의원들을 ‘가박’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물론이고 그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류성걸, 권은희, 김희국 의원, 그리고 박 대통령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이종진 의원 등이 가박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반면 현 정권에서 청와대, 혹은 정부에 몸담은 경험이 있거나, 박 대통령과 오래전부터 교류해온 자신들이 ‘진박’이라는 주장이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을 필두로,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 등이 진박이라고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처럼 진박ㆍ가박 논란으로 인해 TK 지역 공천경쟁이 벌써부터 과열ㆍ혼탁 양상을 띠면서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경선이 치르지더라도 박심(朴心) 논란이 가중되면서 네거티브 선거전이 치열해지고 경선이 끝나도 본인이나 지지층의 반복과 대립을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아울러 새누리당의 텃밭인 TK지역에서 박 대통령 진영의 친박-진박 후보들의 경쟁과 더불어 친박계 대 유 전 원내대표, 또는 비박 진영의 대결은 총선 이후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낳을 것이고 그 결과 박근혜 정부 후반기 심각한 국정운영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