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성역없는 수사' 준비… '정치 검찰' 오명 벗는다

김수남 검찰총장
성완종리스트, 정윤회 문건, 포스코·농협 수사 등 윗선 규명 흐지부지
김수남 총장 '부패와의 전쟁' TF팀 추진… "권력형 비리 뿌리 뽑겠다"
2016년 본격적인 반부패 사정… 수사력 강화로 '검찰 자존심 회복'

검찰이 2016년 대대적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수사력을 강화해 검찰수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용두사미형 수사'라는 수식어를 지워버리겠다는 각오를 세워 눈길을 끈다.

최근 검찰 수사와 관련해 농협 수사 결과 발표를 놓고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4개월에 걸친 검찰수사를 통해 최원병 회장의 측근 비리를 캐내는데는 성공했으나 비리의 핵심이 되는 윗선 규명에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농협중앙회 비리 사건 수사결과를 통해 이기수(61) 전 농협축산경제대표 등 축산경제부문 관련 비리 인사 15명을 기소했다고 지난 12월 30일 밝혔다.

검찰은 농협 자회사인 NH개발의 비리와 관련해 류모 전 NH개발 사장 등 3명을 기소했으며, 최 회장의 측근인 손동우(53) 전 안강농협 이사 등 6명도 재판에 넘겼다.

농협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 관계자들이 지난해 8월 19일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된 서울 강동구 NH개발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뒤 압수품들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말부터 이달까지 진행된 이번 검찰수사는 ▦축산경제 부문 ▦NH개발비리 ▦농협중앙회장 측근비리 ▦농협대출 비리 등 4개 분야에 대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그동안 농협의 병폐로 지적돼왔던 중앙회 간부와 협력업체간 유착관계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이 이번 수사의 성과라면 성과다.

그러나 농협중앙회 회장의 측근이 개입된 비리를 적발하고도 정작 최 회장까지 수사가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란 지적이 나온다.

최 회장이 안강농협 조합장으로 재직시절 곁에서 함께 했던 손 전이사는 농협 협력업체에 고문으로 취업한 뒤 2년6개월동안 2억원이 넘는 급여를 받았다. 손 전이사는 그 대가로 협력업체 납품단가를 대폭 인상시켜줬다.

안강농협 김모(69) 전 이사도 안강농협 하나로마트에 식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465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뿌리 깊은 농협의 비리를 적발했다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하명수사 의혹과 윗선 규명이 흐지부지된 것이다.

검찰 수사 한계 넘나

이와 관련 정치권과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검찰이 포스코 수사를 비롯해 성완종 정윤회 문건 등 굵직한 사건과 관련해서는 마무리가 항상 흐지부지됐다. 결정적인 부분에서 권력자들의 개입이 있었을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는 그야말로 '용두사미'였다. 지난 정권들을 뒤돌아 보면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기도 했지만 당시에 비해 검찰 수사의 '성역'은 지금 오히려 더 커지고 강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검찰은 2016년 환골탈태하겠다는 각오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지난 12월 31일 "특별수사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수사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검찰 수사가 현재 너무 약하다는 여론을 반영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김 장관은 이날 2016년 신년사에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부정부패 척결에도 검찰의 역량을 더 집중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는 김 장관이 대검 산하에 신설될 것으로 알려진 '반부패 태스크포스팀'에 대한 기대감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올해 4월 실시되는 총선에서 불법선거가 발붙일 수 없도록 다 함께 노력해달라"며 "선거 사건은 확립된 기준에 따라 신속, 정확하게 처리해 공정성에 관한 시비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치수사의 폭을 더 넓히고 수사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어서 검찰 수사의 방향이 주목되고 있다. 현재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레고랜드 비리 연루의혹을 조사 중이어서 야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어 김 장관은 "합법적 집회나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되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불법을 동원하는 사람은 끝까지 추적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어떠한 시도나 세력에도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 새해를 맞아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특별수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반부패 수사 태스크포스(TF)에 대한 의중을 드러냈다.

김 총장은 같은 날 신년사를 통해 "사회 곳곳의 부정부패를 단호히 척결해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는 2016년 새롭게 설치될 것으로 알려졌던 반부패 수사 TF 설치를 사실상 공식화한 것이다.

TF는 대검 산하에 설치돼 총장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 대형 비리수사를 전담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 총장은 "부패사범 수사에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되고, 수사는 늘 적시에 효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지휘·보고체계를 더욱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수사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도 보다 신속하게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정부패 없는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가 되도록 올 한해 검찰의 특별수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는 당부도 포함했다. 주목할 점은 김 총장은 2016년 제20대 총선이 예정된 만큼 공안수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4월 선거는 정치권의 재편, 선거구 조정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며 "선거 초기부터 금품수수·흑색선전 등 주요 범죄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활하는 중수부의 새이름

검찰이 전국 단위의 부패사건을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검 반부패부(부장 박정식 검사장)는 다음 달 초 태스크포스(TF) 형식의 총장 직속 기구를 발족하는 것을 목표로 법무부와 세부 사항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조직 개편 추진은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 검찰의 특수 수사 역량강화에 목적을 두고 있다.

검찰청 특수부의 경우 차장검사와 지검장, 반부패부장을 거쳐 총장에게 보고가 되고, 개별 사안에서 의견이 맞지 않을 경우 수사 집중력이 떨어지는 구조다. 지휘 총책임자가 지검장인 만큼 다른 지역의 인력을 끌어오기도 여의치 않다. 올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맡았던 포스코 비리 수사의 경우 화력을 집중하지 못해 수사가 장기화되고, 성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에 반해 2013년 검찰 개혁안에 따라 폐지된 대검 중수부는 검찰총장 직속 부서였기 때문에 지휘체계가 단순해 직제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인력을 신속하게 끌어올 수 있었다. 단시간에 수사력을 집중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훨씬 효율적이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새로 생기는 조직은 과거 대검 중수부처럼 곧바로 주요 수사 내용을 대검 반부패부를 거쳐 검찰총장에게 보고하게 된다. 인력 배치도 유동적으로 해 평소에는 검사장이나 차장검사급 팀장 1명과 부장검사 1∼2명 정도로 유지하지만, 특정 사안에 대한 부패수사가 진행될 경우 전국 단위로 인력을 끌어올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검찰은 검사장 인사에서 유임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장을 맡았던 김기동 검사장을 필두로 서울고검에 팀을 꾸리는 안을 검토 중이다.

새로 생기는 수사부서가 보고체계나 인력운용 면에서 과거 대검 중수부와 유사한 만큼 조직 개편이 이뤄지면 검찰총장의 조직 장악력이 올라가는 한편 검찰의 중립성 유지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직 개혁을 바탕으로 2016년 본격적인 반부패 사정에 돌입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풀지 못한 과제도 남아 있다.

용두사미 뒤엔 권력 실세가?

거대 수사의 첫 단추격인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차질을 빚었고 성 전 회장의 사망으로 '리스트' 파문이 커졌지만 일부만 재판에 넘겨졌을 뿐 아직 들추지 못한 부분이 많다.

성 전 회장의 상의에서 발견된 메모지 한 장에는 8명의 정치인이 등장했다. 그러나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만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리스트 속 나머지 등장인물인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서는 무혐의 혹은 공소권 없음 처분했다.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된 리스트 외 인물인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에 대해선 아직까지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비리로 지목된 자원외교에 대한 수사는 에너지공기업 사장 2명 등 총 3명을 재판에 넘기는 선에서 마무리돼 깃털조차 건드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과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그리고 배임수재 혐의로 대한광물 전 대표 황모씨가 기소된 것이 전부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윗선의 지시 여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권력형 비리 수사로는 포스코 수사도 거론된다. 검찰은 수사가 지나치게 길다는 비판에 시달리면서도 8개월에 걸쳐 포스코그룹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 이 수사로 총 32명을 재판에 넘겼지만 '비리 핵심'으로 지목된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정준양 전 포스코그룹 회장이 불구속 기소돼 검찰이 당권을 장악한 친이계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다. 수사 도중 주요 인물에 대한 구속영장이 번번이 기각된 것은 이런 의혹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검찰은 포스코 비리 의혹에 연루된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서는 "확인할 혐의점이 아직 남아있다"며 계속 수사하고 있다.

최근 '4조원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씨의 최측근 강태용씨가 국내로 송환되면서 조희팔 수사도 탄력을 받고 있다. 이 수사를 통해 김수남호가 검찰의 자존심을 회복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검찰은 강씨에 대한 조사를 계기로 조씨의 생사여부와 행적, 은닉자금의 규모 및 행방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또 수사 무마를 대가로 로비를 받은 검찰과 경찰 관계자가 더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한편 야권에서는 춘천 레고랜드 불법·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사건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강원도가 시행사 등에 수천억원대의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2월 30일 강원도 등에 따르면 레고랜드 조성사업은 도가 90억2200만원(40.67%)을 출자해 국내외 기업과 함께 엘엘(LL)개발주식회사를 만들어 추진하는 민관 합동 개발사업으로 2017년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1년여 만에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관련 공직자들이 잇따라 검찰에 소환되는 등 비위로 얼룩지고 있다.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레고랜드 아웃렛, 워터파크 등 2차 사업부지 49만5,307㎡의 예상 감정가격은 진입교량 건설과 개발 인허가 완료 이후 3177억 5900만원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강원도는 1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인 약 300억원에 매각해 시행사인 엘엘개발에 땅을 넘겨 도가 시행사와 참여사들에게 수천억원대의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여기에 매각대금도 50%만 받은 상태에서 등기를 넘겨주고, 잔금은 모든 사업이 끝난 후 5년이 지난 시점에 갚도록 2중, 3중의 특혜를 제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강원도는 1,000억원 이상을 추가로 투입해 교량 건설, 상·하수도, 전기 시설, 건설사업 인허가 등의 엄청난 특혜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강원도는 채권 규모 등을 변경할 때 지방재정법 13조에 따라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2,050억원의 채무보증을 승인하는 등 각종 특혜의혹이 눈덩이처럼 불거지고 있다.

이에 대해 춘천 시민단체 네트워크 등은 레고랜드 부정부패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어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