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조치 후 남북관계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 폐쇄로 맞서고 군사적 도발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남북은 최악의 ‘강(强) 대 강’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 이래 남북관계의 기본 패러다임인 ‘햇볕정책’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어 국제사회와 공조해 대북 압박에 나서는 등 남북관계 새판짜기를 시도하면서 대북정책에 전면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따라 장차 남북관계는 ‘햇볕정책’ 패러다임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전망이다. 즉,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대북 핵심 정책과 남북 간 중대 합의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하다.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에서 ‘햇볕정책’ 지우기와 새판짜기에 나서면서 남북의 긴장은 물론, 국내 정치 사회 세력 간 대립이 고조되고 있다. 이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4.13 총선 등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돼 그 추이가 주목된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국내외 ‘이유’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를 발표하면서 그 이유를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용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 관련 정부 성명'을 통해 "우리 정부는 더 이상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용되는 것을 막고, 우리 기업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홍 장관은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총 6160억 원의 현금이 유입됐고, 작년에만도 1320억원이 유입됐으며, 정부와 민간에서 총 1조190억원의 투자가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결국 국제사회가 원하는 평화의 길이 아니라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고도화하는데 쓰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임금으로 받은 돈의 70%가 북한 당 서기실 등으로 전해졌다고 밝혔지만, 이 돈이 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쓰였다는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16일 박 대통령이 국회연설에서 홍 장관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면서 ‘근거(자료)’ 공방은 일단락됐다.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통해) 지급한 달러 대부분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북한으로의 현금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제재수단을 강구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모든 수단을 당사자인 우리가 취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등 유럽 국가는 북한으로 유입되는 현금 중 일부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전용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으로 유입되는 현금 중에는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받는 달러도 포함됐다는 게 국제 정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개성공단 임금에 미국, 영국이 특히 불만이 많았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중 ‘국제사회가 북한으로의 현금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제재수단을 강구하는 상황’과 역행해 한국이 개성공단 임금을 지불해 북한에 현금이 유입되는 것을 방치 내지 도와주었다는 지적이다.

그는 “그간 전 세계는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개성공단이 남북 평화에 기여한다는 이유에서 북측 근로자 임금을 묵인해 왔으나 북한이 수소탄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세계평화를 극도로 위협하는 행위를 보임에 따라 개성공단 임금이 핵과 미사일에 전용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그러한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햇볕정책’ 폐기, 새판짜기 선언

박 대통령이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시킨 것은 비단 개성공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 있다. 즉,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폐기와 박 대통령식 남북관계 새판짜기 선언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16일 국회연설에서 기존의 (대북)방식과 퍼주기식 지원을 지적하면서 그같은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우리정부의 노력과 지원에 대해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대답해 왔고, 이제 수소폭탄 실험까지 공언하며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다”며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북한 정권의 핵개발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고, 핵 능력만 고도화시켜서 한반도에 파국을 초래하게 될 것이 명백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북한의 기만과 위협에 끌려 다닐 수는 없으며, 과거처럼 북한의 도발에 굴복하여 퍼주기식 지원을 하는 일도 더 이상 해서는 안될 일”이라며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근본적 해답을 찾아야 하며 이를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주지시켰다.

박 대통령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 차원의 대북지원만도 총 22억 달러가 넘고 민간 차원의 지원까지 더하면 총 30억 달러를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인도적 지원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박 대통령은 냉정히 평가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은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관계에 따라 부침은 있었지만, 대북정책의 기본 패러다임인 ‘햇볕정책’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남북 교류 협력을 통해 북한체제를 변화시키고 평화통일까지 이룬다는 햇볕정책은 노무현 정부를 거쳐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이명박 정부에도 이어졌다. MB정부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끊지 않고 개성공단을 유지했던 이유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남북교류의 상징이자 교두보인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와 함께 북한 ‘완전고립’ 방침을 추진하면서 햇볕정책은 사실상 막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은 16일 국회연설에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앞으로 우리가 국제사회와 함께 취해 나갈 제반 조치의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북한이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들을 취해나갈 것”이라며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이에 따라 햇볕정책의 산물인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더 이상 설 곳을 잃었고,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재개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

DJ정부 대북송금 전모 세상에 드러나나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조치를 취한 이유를 북한 근로자 임금의 핵.미사일 개발 전용 때문이라고 밝힌 데 대해 야권은 “증거를 대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통해 정부와 민간에서 총 1조190억원의 투자가 이뤄졌고, 개성공단 임금의 70%가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홍 장관은 지난 12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을 통해 유입된 자금이 북한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사용됐다는 의혹에 대해 "여러 관련 자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가 곤혹을 치렀다. 야권이 “관련 증거 자료를 제시하라”고 반박하자 “더 공개할 자료는 없다”고 했다가 다시 말을 바꿔 “정황은 있지만 설명이 충분치 못해 오해가 생겼다”며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여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16일 박 대통령이 국회연설에서 “개성공단 임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힌 뒤 홍 장관은 18일 국회 본회장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개성공단 임금으로 지급한 달러의 70%가 당 서기실, 39호실로 상납되고 있다"며 "그 돈은 다른 외화와 마찬가지로 핵과 미사일, 치적사업 등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과 홍 장관이 개성공단 임금의 용처를 밝혔음에도 야권 일각에서 계속 문제를 삼자 정부와 여권에서는 이번 기회에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송금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지 제기되고 있다.

여권의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대통령이 DJ정부 ‘햇볕정책’의 문제를 제기한 만큼 아직 밝혀지지 않은 대북송금 실체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도 “ ‘햇볕정책=선(善)’이라는 잘못된 인식에도 여론(눈치) 때문에 손을 못댔는데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DJ정부 시절 퍼주기식 대북송금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실제 그러한 조치를 취할지는 알 수 없으나 ‘햇볕정책’ 폐기와 남북관계 새판짜기를 선언한 만큼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과 가까운 한 원로는 “박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그러한 문제에 고민을 해왔다”며 “이번 기회에 DJ정부 시절 대북송금 실체를 밝힐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