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ㆍ차기 대선 겨냥한 ‘총성없는 전쟁’… ‘정치구도’가 승자 가려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오른쪽)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제3차 공천관리위원회 회의에서 김무성 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싸움… ‘공천 룰’ 놓고 정면충돌
김무성 “전략공천 없다” 친박 넘어 청와대 향해 소신 강조
친박ㆍ청와대 “김무성 독주 막을 카드 여럿 있다”압박
친박 장관 복귀, 비대위체제 총선 등 김무성 측 강하게 위협
김무성 ‘벼랑끝 전술’ 통할까…친박ㆍ비박 공멸 막을 타협설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묵언정치’가 청와대를 향한 침묵시위라는 해석이 제기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간 오랜 힘겨루기가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22∼25일 자신이 주재하는 최고위원회의, 중진연석회의에서 세 번 연속 입을 굳게 닫았다. 앞서 18일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의 월권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일갈한 뒤 이어진 김 대표의 ‘침묵’이어서 당 안팎에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 이를 지지하는 친박(친박근혜)계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나아가 김 대표의 묵언정치가 친박계를 넘어 청와대를 향한 ‘소리없는 아우성’이란 분석도 있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간에 차기 대선의 예비전 성격을 띤 4ㆍ13 총선을 앞두고 ‘물밑 전쟁’이 한창이라는 것이다.

사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는 2014년 7월 김 대표가 새누리당 대표로 취임하면서 갈등 전선을 이어왔다. 특히 지난해 9월 말 김 대표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안심번호제)를 꺼내면서 박 대통령과 김 대표 사이는 결정적으로 멀어졌다. 안심번호제가 4월 총선과 2017년 대선을 겨냥한 김 대표의 ‘승부수’로 박 대통령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공천을 둘러싼 친박-비박 간 갈등 이면에는 ‘현재권력’(박근혜 대통령)과 ‘미래권력’(김무선 대표) 간 힘겨루기가 작용하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김 대표의 위상과 거취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4월 총선과 차기 대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과 김 대표 사이에 전개되고 있는 ‘총성없는 전쟁’의 면면을 살펴봤다.

‘박근혜-김무성’ 충돌 배경과 파장

김무성 대표가 4월 총선을 겨냥해 노골적으로 청와대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것은 지난해 9월 말 추석 연휴 기간이었다. 김 대표는 추석 다음날인 9월 28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안심번호제)를 공동제의했다.

안심번호제는 총선 공천에서 청와대 입김을 차단하겠다는 것으로 김 대표는 공천룰에 대한 논란을 떠나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했고 대권 행보에도 힘이 실리는 듯했다. 당 안팎에선 "무대(무성 대장) 답다"는 얘기가 회자됐고, '9ㆍ28 무대의 반란'이란 말까지 나왔다. ‘미래권력’인 김 대표가 ‘현재권력’인 박근혜 대통령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에서였다.

사실 김 대표가 꺼낸 안심번호제는 4월 총선과 동시에 대권을 향한 ‘승부수’와 다름없었다. 총선 공천에서 박 대통령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총선에서 승리하면 ‘김무성 대세론’이 형성돼 대권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김 대표의 승부수는 통하는 듯했다. 친박(친 박근혜)의 반발과 청와대의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당 주류인 비박(비박근혜)의 옹호와 지지 여론에 힘입어 김 대표는 뚝심있게 나아갔다.

그러나 안심공천제에 박 대통령의 뜻(朴心)이 실린 경고음이 커지고 친박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변화 조짐이 일었다. 친박과 청와대는 김 대표의 뜻대로 안심공천제가 관철되면 4월 총선을 김 대표가 주도하고, 총선에서 승리해 ‘김무성 대세론’이 확산되면 박 대통령의 레임덕(권력 누수)이 현실화되고 친박계가 몰락할 것을 우려했다.

이에 친박과 청와대는 김 대표를 정면 공격했다. 지난해 9월 29일 김 대표가 소집한 긴급 최고위원회의에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해 범 친박계인 김태호ㆍ이인제 최고위원 등이 사실상 ‘보이콧’했다. 다음날 30일엔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안심번호제의 5가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김 대표도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김 대표는 “당 대표 모욕은 오늘까지만 참겠다”며 청와대에 경고를 보냈는가 하면, “전략공천은 없다”며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김 대표는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100% 오픈프라이머리에서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로, 다시 우선 추천제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김 대표가 사실상 전략공천을 일부 수용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구도 따라 ‘박-김 전쟁’승자 가려져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간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파워게임은 박 대통령 ‘우세’ 쪽으로 기우는 양상이다. 김 대표가 소신있게 공천룰을 밀어붙이지 못하고 오히려 친박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다 김 대표의 불투명한 공천룰 방식에 비박 현역과 원외 총선 후보들도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친박계 장관들이 당에 복귀해 세 확장에 나서고, 북한의 핵 도발과 개성공단 폐쇄 등 안보정국 속에서 박 대통령에 힘이 실리는 것도 김 대표 측에 불리하다.

게다가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년 넘게 ‘1위’를 유지하던 흐름이 지난해 말부터 무너진 뒤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김 대표에게 치명적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25일 발표한 주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김 대표는 15.8% 지지율로 문재인 더 민주 전 대표(19.9%)에 뒤졌다. 3위인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11.0%)와는 불과 4.8%의 격차를 보였다. 김 대표를 제외한 차기 유력 주자들이 대부분 야권 인사라는 점도 ‘김무성 대세론’에 의문부호를 달게 한다.

당 일각에서는 친박이 김무성 체제를 무너뜨리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선거를 치르려 한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 8명 최고위원 가운데 김 대표와 황진하 사무총장을 제외한 서청원ㆍ이정현ㆍ김을동ㆍ김태호ㆍ이인제 최고위원과 원유철 원내대표는 친박 또는 범친박으로 분류된다. (범)친박 최고위원들이 당무를 거부하거나 동반 사퇴를 선언할 경우 김 대표 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17일 발언한 내용이 주목받고 있다. “당 대표나 나나 둘 중 하나가 물러나야 하지 않겠냐” “과거엔 당 대표도 공천 안 준 적 있다”는 말에는 김 대표가 물러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자는 뜻이 담겼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대표를 둘러싼 당 안팎 상황이 녹록치 않다. 그러나 김 대표는 친박이나 청와대에 끌려다니지 않고 ‘소신’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대표는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에서 지는 한이 있어도 전략공천은 안 된다”고 강조한데 이어 다음날 회의에서는 친박을 겨냥해 작심한 듯 “공천관리위가 당헌당규에 벗어나는 행위를 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김 대표가 향후 4월 총선 공천과 관련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김 대표가 상향식 공천을 고수하기 위해 대표직을 걸고 친박과 전쟁을 할 것인지, 아니면 과거 수차례 그랬던 것처럼 뜻을 접고 물러설 것인지 아직 오리무중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총선과 관련해 양보할 경우 대권도 멀어진다고 보고 ‘벼랑끝 전술’로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즉, 총선을 50여일 앞두고 김 대표가 물러나고 당이 친박과 비박으로 쪼개지면 공멸하므로 물러서지 않는 숭부수를 띄울 것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가 상향식 공천 사수를 위해 대표직을 거는 모양새를 취하면 친박 측도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고, 그 때 일정선에서 최대한의 것을 얻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반면, 결국 김 대표가 물러설 것이란 관측도 있다. 실제로 김 대표는 2014년 10월 ‘상하이 개헌 발언’ 이후 “대통령께 죄송하다”며 물러섰고, 지난해 7월 유승민 원내대표 국회법 파동 때도 결과적으로 청와대에 협조했다. 그해 9월에는 안심번호제 도입을 추진하다 청와대의 지적을 받고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 포기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는 자신의 얼굴로 총선을 이끌고 이를 바탕으로 대선으로 가는 것이 절체절명의 목표”라면서 “이 때문에 청와대와 친박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친박 최고위원들이 결심하면 김무성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점도 김 대표가 독자 행보를 취하기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 측과 친박, 청와대가 ‘공멸’을 막기 위해 일정선에서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 전문가는 “친박이 원하는 것을 김 대표가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김 대표가 뜻을 관철하는 선에서 충돌이 수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타협의 선’, 양측이 인정하는 범위다. 현재 친박과 청와대는 상승세이고, 김 대표 측은 당 안팎 난제와 김 대표 개인적으로 불리한 사항들 때문에 위축되는 모양새다.

이러한 정치구도의 변화에 따라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간 ‘총성없는 전쟁’의 승자도 서서히 가려질 전망이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