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출사표 최원병 전 회장 퇴임 직전까지 인사권 행사
농협 내부 핵심 요직에 ‘최원병 사람’심기 작업 진행
“퇴임 후에도 측근 통해 농협 간접경영의도 아니냐” 비판
총선 도전에 ‘새누리당 친이계-최원병 밀약설’ 의혹도

약 8년간 농협중앙회를 이끈 최원병 전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11일 퇴임했다. 최 전 회장은 서울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열린 이날 퇴임식에서 “농업인의 꿈을 심고 거두겠다는 농부의 마음으로 그동안 회장직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그의 퇴임과 동시에 신임 회장 취임 이후 농협 개혁에 대한 여러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농협 내부에서는 신임 회장의 강도 높은 농협 개혁이 시작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해 회의적인 분석도 만만치 않다. 최 전 회장이 퇴임 직전까지 내부 인사를 단행, 측근들을 핵심요직에 포진시켜 놓았다는 게 그 이유다. 신임 회장이 개혁을 추진하려 해도 최 전 회장의 측근들이 개혁의 방해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말에 상당한 무게가 실리고 있다.

또 최 전 회장의 총선 출사표를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농협 일각에서는 “최 전 회장은 퇴임 1년 전부터 핵심 측근들에 총선출마 의사를 표시해왔다. 이는 핵심 요직에 있는 측근들과 함께 농협을 간접적으로 계속 경영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최 전 회장의 총선 진출을 비판한다.

최 전 회장 이끌어주는 인물 있나

최 전 회장은 김병원 신임 농협중앙회장이 취임식을 갖기 하루 전날인 지난 13일 총선을 향한 야심을 실행해 옮겼다. 최 전 회장은 이날 비례대표로 20대 국회 입성에 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13일 마감된 새누리당 20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자 공천신청을 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최 전 회장은 검찰의 수사대상이었다. 검찰의 수사로 농협의 총체적인 비리가 드러났고 최 전 회장의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거나 구속되면서 국민적 비판 대상이었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서자 그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동시에 한동안 잠시 누그러지는 듯 했던 최 전 회장에 대한 비난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농협 안팎에서는 “새누리당 친박계 좌장격인 서청원 의원과 최 전 회장이 막역한 사이”라거나 “최경환 의원이 최 전 회장과 가까워 교감을 해왔다”는 등의 소문이 무성하다. 심지어 서슬 퍼런 검찰의 농협수사에서 칼날을 비켜 갔던 것도 전ㆍ현 정권 실세들이 최 전 회장을 배후에서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최 전 회장은 정권이 바뀌자 농협으로 고위 검찰 출신인사 친박계 핵심과 연결된 인사 등을 영입해 향후 검찰 수사를 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회장이 영입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친박계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들이다.

예컨대 농협이 한 계열사를 통해 고문으로 영입한 뒤 수천 만 원의 고문료를 지급한 A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친박계 핵심 인물들과 가깝고 총선에 여러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사로, 그를 통해 현 정권과 교감계를 연결했다는 말은 거의 정설로 굳어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의 지난 농협 수사를 통해 일부 사실로 드러난 내용이기도 하다. 최 전 회장이 세간의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총선 진출의 꿈을 접지 않은 것은 이처럼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라고 농협 주변인들은 입을 모은다.

농협 관계자들은 최 전 회장과 관련해 “모든 준비를 치밀하고 철저하게 했고 직접 일을 맡아 처리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검찰이 그를 수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에 공통적으로 공감한다.

총선 준비와 퇴임 준비를 봐도 최 전 회장이 상당히 계획적으로 일을 추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최 전 회장은 대외적으로는 “나는 비상근직이며 농협 업무에 대해 권한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피해왔다. 이는 지난 국정감사에서나 검찰 수사와 관련해 언론 등에 최 전 회장이 발언한 것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올 초부터 퇴임을 앞둔 시점임에도 농협 내부 인사를 단행했다. 통상 관례적으로 퇴임을 앞둔 시점에는 후임자를 위해 인사를 하지 않는데도 핵심 요직에 대한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당시 농협은 시기에 따라 진행되는 정기인사일 뿐 최 전 회장의 지시 사항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심지어 농협 측은 최 전 회장은 인사권이 없다는 말도 했다. 농협 관계자들은 이 말에 대해 스스로도 어처구니 없어한다. 농협중앙회장이 전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계약직 말단 직원이나 농협마트 아르바이트 직원들도 아는 사항이라는 것이다. 다만 정관상의 절차에 따라 직접 전결이 아니라 자신이 임명한 인사 담당 핵심부에 지시를 하는 식으로 위장하는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최 전 회장의 이 같은 행위를 두고 김병원 신임 회장 측근들은 “전임 회장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파렴치하고 황당한 행동”이라고 비난한다. 이렇게 전임자가 막판 인사를 해버릴 경우 후임인 신임회장이 조직개편을 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조직개편이 어려워지면 농협의 개혁도 그만큼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농협 주변에서는 “최 전 회장이 측근들 인사를 통해 자신의 체제 수명을 늘리고, 자신은 총선 진출을 통해 농협의 영향력을 계속 살려가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라고 말한다.

농협중앙회장 선거 때 이미 농협 안팎에서 “최 회장이 곧 인사를 단행하고 총선에 출마해 조직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말이 파다했다. 이 같은 소문 내용이 현실화되자 일부에서는 “최 전 회장의 이 같은 계획은 현 정권에서 누군가 돕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 핵심부와 최 전 회장의 밀약설은 이런 것이 바탕이 돼 점점 확대되고 있다.

농협개혁 현 상태로는 사실상 불가능

새 수장으로 취임한 김병원 신임 회장은 대대적인 개혁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농협52년 만에 호남 출신 인사가 회장에 선출되면서 ‘김병원표(標)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작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부정선거 논란 등 선거 후유증과 인사개편불가라는 암초에 주변의 기대를 당장 실행에 옮기기에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 신임 회장이 이대로 추진력을 얻지 못할 경우 조직 장악에 실패해 조기레임덕 현상을 겪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 신임 회장은 농협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회장의 권한을 줄이는 농협 개혁을 단행할 것이라고 포부를 내세우고 있으나 회장의 권한을 줄이는 부분 외에 나머지 부분에 대한 성공여부는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김 신임 회장을 지지한 이들은 대부분 최 전 회장 시기에 드러난 여러 문제점을 바로 잡고 검찰의 표적이 되는 등 농협 내부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어 줄 것을 김 차기 회장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개혁을 원하는 이들의 요구를 전폭 수용해 그들의 지지를 끌어낸 김 신임 회장이 향후 이들의 요구를 모른척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각종 핵심 사업부문과 인사부 등 중앙회 운영 핵심영역을 당장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영역을 장악하기 위해선 적어도 4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최 전 회장이 퇴임 직전 ‘막판 선심인사’를 통해 핵심 요직에 이미 신임 책임자가 자리에 앉은 탓이다. 이들에 대해 다시 인사를 하려면 인사규정 상 수 개월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농협 구조 개혁에 대한 문제는 민감한 현안이 많아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당장 눈에 드러난 부분에 대해서는 먼저 조치하겠다는 게 신임 회장의 계획이다. 복수의 농협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농협은 내부적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조직을 다시 자체 조사 중이다. 문제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찰 수사 내용 외에 다른 비리 등에 연루된 인사나 감춰졌던 문제가 불거질 경우 관련 인물들을 인사조치 한다는 것이다.

이에 문제되는 인사에 대한 물갈이가 우선 진행 될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김 신임 회장이 영남의 지원을 업고 당선된 최초의 호남 출신 회장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지역안배를 지향하고 보복성 인사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은 일단 조치를 뒤로 미룰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편 김 신임 회장이 내놓을 농협 개혁안에 농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신임 회장은 선거운동 당시 농협법 개정을 전면에 내걸었다. 농협 내 상호금융을 독립 법인화해 상호금융중앙은행으로 개편하겠다고 공약했다. 비리 근절을 위해 조직을 투명하게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원조직인 중앙회가 사실상 회원조합 위에 군림하는 시스템부터 뜯어고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개혁안을 놓고 중앙회 내부는 물론 지역조합장들 사이에서도 김 신임 회장에 대한 기대가 높다. 지역농협의 역할과 위상도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