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검은 커넥션’수사 큰 성과없어…靑 ‘허탕’땐 조기 레임덕 못 막아

검찰, 부정부패 수사 정ㆍ재계 전ㆍ현직 인사 정면 겨냥

이명박 정부 유착 의혹 급성장 기업들 사정기관 총 동원

제자리 빙빙 도는 검찰, 새로운 사건 없어 재탕수사 지적도

검찰이 총선 직후부터 본격적인 사정작업에 돌입해 정ㆍ관ㆍ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선 검찰은 대기업 비리 수사에 착수해 고강도 전방위 사정 수사를 예고하고 있다. 총선 전 본격사정을 자제해 온 검찰은 총선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치 경제 사회 전 영역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수사를 시작하는 분위기다.

검찰은 총선 이후 불과 며칠 사이 여러 건의 압수수색에 나섰다. 기업과 정치권 인사들을 내사해온 서울고검 반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아직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점을 감안할 때 향후 수사 대상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섣불리 짐작이 어렵다.

검찰이 총선 이후 사정정국의 막을 올렸지만 정작 청와대와 검찰 주변에서는 그 실적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관측이 주를 이룬다. 검찰 안팎에서도 “검찰이 새로운 사건이나 의혹만 남긴 미완의 사건을 조사하려 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고민 중”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검찰이 굵직한 인물이 연루된 큰 사건을 찾고 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성과가 없어 검찰 지휘부에서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진땀 나기는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검찰조직을 개편하고 반부패부를 통해 사실상 중수부의 부활을 알리며 사정정국에 에너지를 쏟았다. 하지만 검찰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어 총선 참패로 인한 ‘청와대 조기레임덕’이라는 위기탈출도 쉽지 않을 조짐이다.

이에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에 검찰이 제대로 실적을 내지 못할 경우 박근혜 정부가 현 총장을 경질하거나 검찰조직 개편을 강하게 주문할 수도 있다”고 관측한다.

검찰 행보에 불안한 재계

김수남 검찰총장은 지난해 취임 당시 취임사를 통해 성역 없는 사정 의지를 천명했다. 검찰 수사와 관련 재계는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지만 검찰은 위법행위가 발견되면 어떠한 경우라도 자비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검찰의 칼날은 일단 재계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1일 수십억원대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국세청이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과 부영주택 법인 등을 고발한 사건을 특수1부(이원석 부장검사)에 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통상 조세 관련 사건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이준식 부장검사)에 배당돼 수사가 진행된다. 검찰은 이날 특수1부 배당 이유에 대해 ‘공조부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건이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수부 폐지 이후 검찰 내 최고의 수사력을 갖춘 특수1부가 사건을 맡았다는 점에서 고강도의 수사가 예고되고 있다.

부영의 검찰 수사는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비롯됐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부영주택이 법인세 수십억원을 포탈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국세청은 지난 18일 이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국세청 고발 자료 등을 분석한 뒤 부영그룹과 부영주택 측 관계자를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부영그룹이 조세를 회피하는 과정에 해외법인을 동원했는지, 또 사업 과정에서 비자금이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들여다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울국세청 조사4국은 2015년 12월부터 부영그룹에 대한 특별 세무 조사를 진행해 이 회장과 법인이 세금을 탈루한 정황을 포착해 세금포탈과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말 세무조사에서 부영주택이 2007년에서 2014년 사이 캄보디아 현지 법인 2곳에 2750여억원을 송금하는 등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찰청은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보냈다. 서울중앙지검은 특수수사를 전담하는 3차장 산하에 사건을 배당할 예정이다. 이동열(50ㆍ사법연수원 22기)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고발장 내용을 확인 후 배당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올해 초 전직 부영그룹 직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2~3차례 불러 조사하는 등 자체적으로 수사를 해왔다. 검찰은 국세청 조사내용 외에 차명계좌를 통한 해외 비자금 조성의혹과 국민주택 사업과정에서 부당하게 세금을 감면 받았다는 의혹 등도 살펴볼 계획이다. 검찰은 사건을 배당한 뒤 부영그룹과 부영주택 임직원 등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27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2004년 구속 기소돼 2008년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현직에서 물러났다가 2011년 복귀했다.

부영그룹은 1983년 설립돼 임대주택 사업을 발판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순위 12위에 올랐으며 지난해 4월 기준으로 부영, 동과주택산업, 광영토건, 대화도시가스 등 15개 계열사를 갖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삼성생명 본관 사옥을 5800억원대에 샀다.

또 검찰은 평창동계올림픽 기반시설 구축 사업인 ‘원주~강릉 고속철도 공사’에서 대형 건설사가 담합한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총선 직후 곧바로 시작한 대형사건이라는 점에서 재계는 수사를 주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 이준식)는 지난 19일 사업에 참여한 현대건설, 두산중공업, 한진중공업, KCC건설 등 건설사 4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다. 검찰은 검사와 수사관 등 60여명을 보내 4개 회사의 담당 부서에서 회계장부와 입찰 관련 서류,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내년 개통을 목표로 2013년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이 공사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수도권과 강원권을 고속철도망으로 잇는 사업이다. 전 구간 길이가 58.8㎞에 이르고 사업비만 1조원이 투입됐다.

검찰은 현대건설 등 4개 건설업체가 입찰 당시 전체 4개 공사 구간 중 1개 구간씩 수주하는 방식으로 입찰 가격을 사전에 합의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배당된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은 탈락할 수밖에 없는 금액을 써내는 수법으로 담합을 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각 기업에서 해당 사업을 담당한 실무진과 임원을 조만간 차례로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특히 이번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선조사, 행정처분 및 검찰 고발, 검찰 수사 착수 등으로 이어지는 통상의 경우와 달리 검찰이 자체 인지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2013년 4월 철도시설공단은 4개 건설사가 담합 행위를 한 단서를 잡고 공정위에 신고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21개월이 지난 지난해 1월에야 조사에 착수했다. 이 사건은 현재 공정위에 계류돼 있다.

정치권도 기업수사에 긴장

일각에서는 검찰, 국세청 등 사정기관이 전 정권 유착 기업을 집중 조사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롯데그룹 현대기아차그룹 코오롱 등 이명박 정권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일부 기업에 대해 검찰과 국세청이 대대적으로 수사할 것이라는 관측은 박근혜 정부 초부터 제기됐다.

최근 공교롭게도 사정기관의 움직임은 이 관측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주 코오롱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특별세무조사는 대부분 하명사건이라는 점을 들어 일부에서는 정권차원의 코오롱 압박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요원 수십 명은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 코오롱 인더스트리 사무실에 불시에 들어 닥쳐 회계장부와 컴퓨터 등 관련 자료 일체를 압수했다.

국세청의 집중 조사 대상 기업은 코오롱그룹 지주사인 (주)코오롱과 핵심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 2곳으로 알려졌다. 원래 한 회사였던 두 회사는 2009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순수 지주회사인 (주)코오롱과 화학ㆍ산업 자재를 다루는 코오롱인더스트리로 분할됐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이웅열 회장의 장남 규호씨가 상무보를 맡아 4세 경영자로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곳이다.

국세청의 핵심 전력인 서울청 조사4국 요원들이 대거 투입된 것과 관련, 재계에서는 이번 세무조사가 검찰 고발, 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업계에선 코오롱이 듀폰과의 소송을 지난해 합의로 마무리하면서 부담하게 된 합의금과 벌금이 회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조사가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이 2014년 11월 별세한 후, 이 명예회장의 보유지분이 이웅열 코오롱 회장 등 자녀들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상속세 포탈 혐의가 주요 조사 대상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칼날은 이웅렬 회장과 자녀들, 친인척들을 겨눌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가 어디로 튈지는 모른다. 코오롱은 2013년에도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았다. 수백억원의 추징금을 냈다.

효성 등 검찰이 진행 중인 수사에도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조석래(81)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문(47) 전 효성 부사장이 형인 조현준(48) 효성 사장 등을 횡령, 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 조재빈)가 수사 중이다.

2014년 10월 고발 직후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에 배당됐다가 작년 5월 특수4부로 재배당됐다. 재배당 후 1년 가까이 진척이 없던 수사는 최근 관계자를 소환하는 등 재가동에 들어갔다.

방탄복과 장갑차 부품 납품 비리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되고 있어 방산비리수사 2라운드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무성하다. 검찰은 방탄복 등 군수물품에 대한 비리 정황을 포착해 납품업체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는 지난 21일 오전 경남 창원에 있는 장갑차 부품 납품 업체인 E사 등 6곳을 압수수색했다. E사는 K-21(차기보병전투 장갑차)과 K-10(탄약운반차) 등에 들어가는 부품을 납품하는 곳이다.

또 방탄복 납품업체인 S사 관계자 등의 서울 주거지 등도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방탄복 납품사인 S사는 이미 압수수색이 진행됐었다. 이번 두 건의 압수수색에는 검사와 수사관 50여 명이 동원돼 관련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됐다.

검찰은 압수물을 분석하는 대로 관련자들을 소환할 방침이며 군 관계자들이 연루됐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다. 장갑차와 방탄복 납품 비리는 최근 여러 차례 군과 수사당국에 적발됐다.

장갑차 부품 납품 사업은 중소 납품사들이 대거 시험성적서를 조작하고 불량 부품을 납품한 사실이 2014년 군 당국에 의해 밝혀졌다. 검찰은 지난 11일 K77 사격 지휘용 장갑차 등에 들어가는 엔진 부품의 수입가격을 실제보다 부풀려 정비대금 약 6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A업체 대표와 직원을 기소하기도 했다.

군에 납품되는 대부분의 방탄복을 제작해온 것으로 알려진 S사는 지난해 북한군의 소총에도 뚫리는 불량품을 납품해 온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이후 S사 대표 김모(62)씨 등은 불량방탄복 2000여 벌을 특전사에 납품해 13억 원을 챙긴 혐의로 지난해 6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수사에서 업체 관계자들은 군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벌인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은 이미 지난달 S사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2009년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일할 때 군용 실탄 수백발을 빼돌려 S사로 건넨 혐의로 예비역 대령 김모(66)씨를 체포한 후 구속기소한 바 있다. 당시 김씨는 S사로 이직이 예정돼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수사와 함께 공정거래조세조사부는 조세범처벌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STC라이프 이계호 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부장판사는 21일 10시 30분 이 회장에 대한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다.

이 회장은 회삿돈 10억여원을 횡령해 유용하고 허위 세금 계산서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세금 수십억원을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1000억대 다단계 사기,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거래 등 혐의로 기소돼 2009년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대표는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난치병을 정복하겠다며 1989년 회사를 설립해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일부에서는 검찰 수사와 관련해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미 과거에 수사한 사건을 다시 재수사하거나 기존에 해오던 사건에 내용을 더 추가한 것일 뿐 새로운 사건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검찰 주변에서도 “검찰이 새로운 사건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는 말이 적지 않다. 이에 청와대 안팎에서 “총선으로 청와대 위기설이 나오고 있는 현 시점에 검찰에 확실한 구원투수 역할을 해주지 못할 경우 대대적인 조직개편의 쓴맛을 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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