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선에선 ‘대망론’ㆍ‘대세론’ 없어”… ‘반기문 대권행’ 넘어야 할 산 많아

반 총장 방한 기간 대권 출마 시사…국민 65% 반 총장 출마 예상

‘반기문 현상’이 반드시 ‘반기문 대망론’으로 연결되진 않아

‘반기문 대세론’ 야권결집 가져올 수도, 반 총장 승리 장담 못해

여권의 ‘3자필승론’, ‘충청ㆍTK 연대 승리론’한계 있어

현재 지지도 언제든 바뀌어…대망론ㆍ대세론 없다고 봐야

반 총장 대권행 ‘박근혜ㆍ지역주의ㆍ해외 언론ㆍ조직’ 4개 산 넘어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화려한 5박 6일(5월 25~30일)간의 방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반 총장은 이번 방한을 통해 대권 주자로써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다. 치밀하게 준비된 반 총장의 발언과 행적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반 총장은 방한 첫날 제주도에서 있었던 관훈 클럽 토론회에서 “한국 시민으로 돌아온 후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하고 결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발언은 반 총장이 대권 출마를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 총장이 방한 기간 동안 보여준 고도의 정치 행보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꽉 짜여진 일정 속에서 충청권의 맹주인 김종필 전 총리를 만났고, 대구ㆍ경북(TK)의 정신적 본산인 안동 하회마을의 유성룡 생가를 찾았다. 서울에서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를 포함한 13명의 원로들과 만났다.

반 총장은 출국하면서 자신의 발언에 대해 “내용이 과대 확대 증폭된 면이 없지 않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이제 반 총장의 대권 참여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 국민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실제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5월27일-28일)에서 64.6%가 반 총장이 2017년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다’(22%)라는 응답보다 세 배 많은 수치였다. 지역ㆍ연령ㆍ지지 정당과 무관하게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보는 응답자가 훨씬 많았다.

‘반기문 대망론’의 가능성과 한계

그렇다면 ‘반기문 현상’은 ‘반기문 대망론’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2017년 대선을 관통하는 질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10년 정권 교체 주기설’(10 year’s pendulum)이 이번에도 통용되는가? 1988년부터 1998년 10년간 보수(노태우-김영삼),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진보(김대중-노무현),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보수(이명박-박근혜)가 정권을 차지했다. 최근 미국에서도 정권 교체 8년 주기설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스윙 주(swing state)인 오하이오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피로감(fatigue)이 쌓이면 지지를 바꾼다’는 것이 확인됐다. ‘피로감 가설’이 2017년 대한민국 대선에서 통용될지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이 가설이 맞는다면 새누리당이 반기문을 영입해 대권 후보로 옹립해도 정권 교체가 이뤄질지 모른다.

둘째, 2017년 대선에서도 야권연대가 이뤄질 것인가? 대한민국 대선의 역사는 연대와 단일화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소야대 3당 체제’ 상황에서 대선을 맞아 정계 개편 또는 야권연대가 이뤄질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향후 대선 가도는 총 8개의 시나리오가 존재한다(아래 표 참조).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새누리-더민주-국민의당이 3자 대결구도로 치러지는 것이다. 이럴 경우 만약 반 총장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되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1987년 대선에서 야권이 분열돼 ‘1노(盧)3김(金)’이 경쟁하면서 집권당인 민정당의 노태후 후보가 36.6%의 득표로 통민당의 김영삼 후보(28%)와 평민당의 김대중 후보(27%), 공화당의 김종필 후보(8.1%)를 제치고 승리했던 것과 유사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최근에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 조사(5월 27일∼28일)가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다음 대통령으로 누구를 가장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반기문 총장은 45.7%의 지지를 얻어 문재인 전 대표(24.6%)와 안철수 대표(20.1%)에 크게 앞섰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실제 국민의당 지지층 19.6%가 반 총장을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 총장의 지지층과 안 대표 지지층이 중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와 4ㆍ13 총선에서의 정당 득표율을 비교해 보면 선명해진다. 새누리당 정당 득표율은 33.5%, 더 민주 25.5%, 국민의당 26.7%였다. 그런데 반 총장이 45.7%를 얻었다는 것은 지난 총선에서 안철수의 국민의당을 찍었던 개혁 중도 성향의 새누리당 지자자들의 상당수가 다시 회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 공동 대표의 지지도가 총선과 비교해 6% 포인트 정도 추락했다.

만약 야권분열의 3자 구도에서 야당 필패론이 확산되면 더민주-국민의당 두 야당은 단일화(제2 시나리오) 또는 통합(제3시나리오)을 할 수 밖에 없다. 반기문 대세론이 오히려 야권 결집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양자 대결 구도가 만들어 지면 ‘대선 결과는 승자는 52%, 패자는 48%를 득표할 것이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총결집을 하고, 세대는 2030 대 5060으로 양극화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표-<2017년 대선 시나리오 분석>

셋째,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을 만들 수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TK)은 반기문 총장을 여당 대선후보를 만들고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 이런 박 대통령과 친박의 구상은 ‘3자 필승론’에 기초한다. 야권이 분열되면 TK(대구ㆍ경북)와 충청의 지역 연대를 통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대선에선 4개의 모델이 존재했다. 첫 번째는 1992년 모델로 3당 합당을 통해 영남과 충청이 연대를 해서 정권을 창출한 것이다. 두 번째 모델은 1997년 모델로 DJP 연대를 통해 호남과 충청이 결합해 정권을 교체한 것이다. 세 번째는 2002년 모델로 호남이 영남 출신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선정해 승리한 모델이다. 당시 충청과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노 후보는 인물과의 연대가 아니라 수도 이전이라는 정책을 통해 충청과 연대했다. 다시 말해, 호남+영남+충청이 결합한 모델이다. 여기에 노무현ㆍ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큰 힘을 발휘했다. 네 번째는 2012년 모델인데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가 이뤄?봐嗤?실패했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로 형식은 단일화였지만 본질은 단일화 실패였기 때문이다. 50대 연령층에서 안철수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문 후보보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면서 야당은 패배했다.

대한민국 대선에서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을 만들려는 시도는 수 차례 존재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따라서, 반기문 총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후광(coat-tail effect)에 기대어 대선에 나선다면 승리를 보장받기 어렵다. 특히, 충청과 TK만의 연대로는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 PK(부산ㆍ경남)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뜻이다.

‘대망론’ㆍ‘대세론’ 언제든 바뀌어

반 총장의 일거수일투족에 ‘국내 정치적 관심’이 쏠리고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분명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반기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여권에서 총선 직후 대권 후보가 사라지고, 야권에서는 반대로 대권 후보가 차고 넘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크고 현재 여야 유력 대권 후보들이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것도 큰 이유다.

도표-<한국 대선 모델 분석>

단언컨대, 대한민국 대선에서 ‘대망론’도 ‘대세론’도 없다. 현재의 대선 지지도는 언제 뒤바뀔지 모른다. 지난 2001년 11월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는 4%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2년 3월 광주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노풍(盧風)이 점화됐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불어 닥친 ‘고건 현상’은 고 전 총리의 대선 출마 포기로 소리없이 사라졌다.

한국 대선판에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바람이 불지 아무도 모른다.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비리 의혹과 같은 예기치 않은 돌발 변수로 대선 판도가 요동칠 수 있다. 박지원 국민의 당 원내대표는 반기문 총장에 대해 “검증을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시사 발언으로 이미지가 ‘이전보다 좋아졌다’(19.2%)는 응답보다 ‘이전보다 나빠졌다’(26.8%)는 응답이 다소 높았다. ‘이전과 같다”는 50.9%였다. 특히, 20대(30.4%)와 30대(37.9%)에서 나빠졌다는 비율이 높았다. 이런 조사 결과가 ‘반기문 현상이 생각보다 허약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 유권자들은 열광과 환멸의 주기가 지극히 짧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 총장이 대선 출마 의지를 굳혔다면 많은 산을 넘어야 한다. 최소한 4개의 산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첫 번째는 박근혜의 산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이 내미는 꽃가마를 타고 대권을 얻으려면 그것은 실패로 가는 길이다. 둘째, 지역주의의 산이다. 대통합을 거론하면서 충청 대망론에 기대는 것은 하책이다. 셋째, 해외 언론의 산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반 청장에 대해 ‘실패한 총장이자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 ‘강대국들에 맞서는 것을 싫어한 활기 없는 총장’이라며 혹평을 퍼부었다. 뉴욕타임스는 ‘힘없는 관측자’ ‘어디에도 없는 남자’라고 폄훼하기도 했다. 유종의 미를 잘 거둬 이런 부정적 평가를 잠재워야 한다. 넷째, 조직의 산이다. 반 총장은 국내 정치 경험이 적고 정치 조직이 취약한 약점을 갖고 있다. 이를 극복할 수 유일한 길은 시대정신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역 연대라는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고 친박 패권주의를 과감히 청산해 통함과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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