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정권재창출 위한 ‘당권 장악’ 사활 … 계파갈등 재점화

비대위에 당의 힘 제대로 실리지 않아 유명무실한 조직 전락

‘청와대가 올해 초부터 당권 장악 밑그림’ 소문 무성

고강도 쇄신안 비대위 출발부터 곳곳에서 성토목소리 왜?

당대표 등 당권 장악 둘러싼 친박-친이 등 계파 갈등 재점화

새누리당의 쇄신작업을 놓고 계파간 충돌이 수습될 조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여당이 바로 서지 않아 제대로 된 국정운영을 하기 어렵다”며 새누리당에 신속한 쇄신을 촉구하고 있다.

여야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새누리당의 쇄신작업을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친박 중심의 당권장악을 위해 당 쇄신 작업에 적극 개입하고 있어 쇄신작업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청와대가 총선 이후 당권 장악을 위해 그린 시나리오대로 판이 그려지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총선 전부터 의미심장한 소문이 무성했다. “청와대가 올해 초부터 당권 장악 밑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총선 이후부터 시나리오대로 플랜이 치밀하게 실행될 것”이라는 게 그 내용이다.

아울러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난파 위기에 처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비대위에 당의 힘의 제대로 실리지 않아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비대위가 설정한 운영 기조는 ‘혁신, 민생, 통합’ 3가지다.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은 지난 3일 첫 회의를 열고 ‘환골탈태 수준의 고강도 쇄신’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민생 챙기기’ 뿐만 아니라 계파청산과 탈당파 복당 문제의 조속한 매듭을 통한 통합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김희옥 비대위 체제 역시 정진석 원내대표 등 당연직 외에 친박계와 비박계를 대표하는 인사가 포진하는 등 계파색이라는 한계를 벗지 못해 혁신 의지가 초반부터 퇴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당권 장악 지원 의혹 제기

최근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당권 장악을 위한 시나리오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에 야권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청와대의 개입을 경계하고 나서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3일 여야 간 원구성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과 관련, 청와대 배후설을 주장하며 여당을 향해 협상에 복귀하라고 압박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청와대가 배후에 있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며 “이 시점부터 청와대는 빠지라. 여야 원내대표가 자율적으로 협상할 수 있도록 여당의 자율성을 보장해달라”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여야) 수석 회담이 이틀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집권당이 몽니를 부리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며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도읍 원내 수석부대표의 인격과 성품을 믿는다. 청와대가 국회 상임위 배분까지 관여하는 게 사실이라면 의회민주주의 부정 문제를 넘어서 오히려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을 향해 “법사위원장을 양보하면 당연히 여당의 수정제안이 올 것으로 알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꼼수니 야합이니 하면서 오히려 더민주의 뺨을 때렸다”며 “이런 협상이 어디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기동민 원내대변인 역시 국회 브리핑에서 “청와대는 원 구성 협상에서 손을 떼고, 새누리당은 당장 협상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 원내대변인은 “어제 새누리당 김 원내수석부대표는 ‘집권여당으로서 청와대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면서 청와대와의 상시 접촉을 자인했다”며 “청와대와 여당이 일방적 지시와 복종의 관계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의회 고유의 권한인 원 구성까지 청와대의 지침을 받아야 하나”라고 청와대의 개입을 꼬집었다.

이에 앞서 총선 직후부터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새누리당 당권 장악을 위해 친박계 중진들을 움직인다는 말이 무성하게 돌았다. 이에 정진석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당이 무조건 따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가 매끄럽지 못한 건 제 부덕의 소치였다. 의원들의 총의를 받들어서 책임감 있게 자율성 있게 일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지난 전국위원회에 (비대위 인선안을) 올렸으나 성원 미달로 무산됐다”며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는 말이 있다. 큰 의를 위해서 사사로운 친분을 끊는다는 말”이라며 “이제 계파 이야기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 새누리가 계파 때문에 한 발짝도 못 나간다는 얘기를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상임위 간사 선택부터 원칙적으로 재량권 갖고 하겠다. 눈치 보지 않겠다”며 “우리 앞에는 여소야대라는 황량한 풍경이 있다. 무엇보다 단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심상치 않은 이야기도 들린다. 청와대가 이미 새누리당 대표 자리와 그 이외 다른 당내 중요보직에 대해서도 시나리오를 짜놨다는 것이다. 여권 내부에서 “당 대표는 최경환 그 다음 보직 순서에 따라 원유철 정운천 정병국 박인숙 이정현 등에 자리가 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정현 의원의 경우 청와대가 지원을 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자리에 올릴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일단 친이계 의원은 정병국 의원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친박계 인사들이다.

비대위 내부 적과의 싸움

정진석 원내대표 취임 한 달을 넘기고 있는 시점이지만 새누리당은 여전히 혼란 그 자체다.

그간 당내 유일한 지도부로서 계파주의를 타파할 리더십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원내대표 선거 과정에서 탈계파와 대통합을 주장한 정 원내대표는 지난달 9일 당선인총회에서도 “특정 계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며 “청와대와 긴밀하게 협의하겠지만 청와대의 주문을 여과 없이 집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당 내부에서는 그런 약속은 흔적도 없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 원내대표는 당 혁신위원회를 세울 때 강경파인 김용태 의원을 위원장에 앉히는 등 비박계 인사를 대거 중용했다. 하지만 이는 친박계의 공세에 밀려 스스로 입지만 좁히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결국에는 친박계의 파상공격에 몰리다 비대위원장 직을 반납했다. 위기에 몰린 그는 각각 친박과 비박계 대주주 격인 최경환, 김무성 의원과 3자회동 끝에 겨우 탈출구를 찾았다.

정 원내대표는 결정적으로 당혁신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아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당초 독립기구로 상정했던 혁신위는 출항도 하기 전에 좌초해 비대위에 흡수됐다. 그의 당 쇄신 방안은 사실상 청와대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달 27일 국회법 개정안(상시 청문회법)에 대한 거부권 파동때도 그의 움직임은 주목을 끈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야당의 거센 반발이 이는 상황에 청와대에 기대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다. 19대 국회 임기 만료 직전 이뤄진 ‘꼼수’ 거부권 행사에 비판여론이 들끓었지만 정 원내대표는 청와대를 두둔했다. 원내 1당인 더민주에 양보하는 듯하던 국회의장 직에 갑자기 집착하는 배경과 관련해서도 청와대의 개입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결국 정 원내대표는 친박ㆍ비박 사이에 있다는 의미로 ‘낀박’이라는 별명까지 얻는 신세가 됐다. 향후 정 원내대표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의 혁신작업이 결코 순탄치 않을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처럼 지도부 불신이 누적된 탓이다.

그러나 최근 새누리당이 50여일만에 당지도부 공백상태를 벗어나면서 새로운 활로가 보이는 듯하다. 지난 3일 김희옥 전 동국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는 인선을 완료하고 공식적인 출범을 알렸다. 향후 비대위는 최고위를 대신하고 김희옥 비대위원장은 사실상 당대표의 역할을 맡게 된다. 전당대회전까지 ‘김희옥-정진석’호가 2개월여간 새누리당을 이끌 게 됐다.

당대표 등 당권 놓고 갈등 재점화

이로써 일단 바닥을 쳤던 당내 갈등은 봉합되는 분위기다. 김희옥 비대위원장이 친박계의 추천을 받았다는 얘기가 많았고, 당초 비대위원으로 내정됐던 비박계 당쇄신파 혹은 친유승민계로 꼽히는 의원들이 결국 인선에서 제외됐지만, 비박계에서도 “무난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당권 장악 작업을 멈추지 않는 이상 과연 비대위가 당쇄신의 전권을 갖고 당내 현안에 근본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비대위원이 중립성향의 정 원내대표를 제외하고는 친박 2명, 비박 2명으로 ‘계파균형’에 초점이 맞추긴 했지만 전체 비대위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외부인사 5인은 당 사정에 밝지 못한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혁신이 산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비대위원들은 우선 쇄신에 대한 비장한 결기를 보이며 고강도 혁신 추진을 시사했다.

비대위는 4ㆍ13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지목된 당 내홍과 계파 갈등, 민심과 괴리된 당 운영 등을 송두리째 바꾸는 데 주력하는 만큼 모두가 고강도 쇄신 추진에 따른 고통분담에 동참할 것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새누리당이 다시 태어나기 위한 반성과 혁신의 길이 쉽진 않을 것”이라며 비대위의 가장 중요한 활동목표로 ‘혁신, 민생, 통합’을 제시했다. ‘당명만 빼고 다 바꾸겠다’며 강도 높은 쇄신을 추진하겠다는 각오이지만 이반된 민심을 되돌리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집권여당의 오만한 독선과 편견을 버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비대위는 해묵은 과제인 계파 청산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 수립 외에도 당 화합과 결속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소식통은 “일단 새누리당은 혁신작업으로 진정성 제시를 통해 지지율을 회복,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이어간다는 복안”이라며 “하지만 청와대와 혁신지도부가 교감하고 있는 것은 일부 사실이기 때문에 당대표 선출 등 중요결정을 앞두고 내부 반발이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승민ㆍ윤상현 의원 등 무소속 탈당파 의원들에 대한 복당 문제도 뇌관 중 하나다. 혁신비대위가 이날 유ㆍ윤 의원을 비롯한 탈당파 의원들의 복당 문제를 조속히 논의해 결정키로 했다고 밝혔지만 당내 주류인 친박계 내부에선 전대를 통해 선출되는 새 지도부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가 여전히 존재한다.



윤지환기자 musasi @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