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수사 후폭풍, 정재계로 불똥 튀나?

전임 사장 비리 의혹 때마다 ‘봐주기 수사’

檢, 대우조선-산은 ‘비리 커넥션’ 수면 위로

벌벌 떠는 친박ㆍ조선업체들, 다음 타깃은?

대형 비리수사를 전담하는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의 칼끝이 대우조선해양을 향하고 있다. 특수단은 지난 8일 대우조선 본사와 옥포조선소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을 통해 대우조선이 수년간 분식회계를 저지른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단은 확보한 자료 분석이 끝나면 본격적인 관련자를 소환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특수단이 첫 타깃으로 대우조선을 정조준한 배경은 조선과 해운업 부실경영이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것과 맞물린다. 대우조선은 대우그룹의 해체와 맞물려 2000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이후 수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혈세가 투입됐지만 방만 경영과 분식회계, 경영진의 성과 부풀리기 등 논란까지 일었다. 급기야 부채비율은 지난 3월 기준 4천351%에 이르렀고 2013~2015년 누적 적자만 5조원에 달한다.

이를 더 미룰 수 없다는 조선업 구조조정 정책 추진과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되는 부실기업을 수술하겠다는 검찰의 의지가 맞물린 것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지난 2월 전국 특별수사 부장검사 회의 당시 “수사역량을 총동원해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부정부패 척결을 하고, 특히 공공분야 비리, 재정·경제 분야 비리에 집중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들의 비리 의혹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감춰진 환부 드러날까

과거 대우조선을 둘러싼 비자금 조성, 사장 연임 관련 비리 의혹 등은 몇 차례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수사 탓에 환부를 도려내지 못하자 대우조선은 더 깊은 비리의 늪에 빠져들었다.

특수단이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키운 당사자로 지목한 남상태(66) 전 사장은 2009년(납품비리 의혹)과 2010년(비자금 조성, 연임 로비 의혹) 두 번이나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 끝에 검찰은 남 전 사장의 혐의점을 밝혀내지 못했다.

분식회계의 핵심 당사자로 불리는 남 전 사장의 후임 고재호(61) 전 사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2년 3월부터 2015년 5월까지 대우해양조선 사장을 지낸 그는 자신의 연임 여부가 결정되기 전인 지난해 4월 영업손실이 없다고 공시했었다. 그러나 고 전 사장의 연임이 무산되자 2조5천억원의 손실이 났다고 정정했다. 이를 두고 연임을 위해 회계장부에 부실 반영을 늦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 안팎에서는 당시 검찰이 두 전임 사장에 대한 수사를 강도 높게 진행했더라면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가 최소화됐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현재 검찰은 공소시효 범위 안에 있는 이들의 비리 의혹을 집중 수색할 방침이다. 이들은 현재 출국금지된 상태이며, 자택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조선해양 측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면서도 “전임 사장들과 관련된 사건이라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주인 없는 회사의 한계

검찰은 대우조선이 대규모 부실을 은폐한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대우조선의 재무제표를 보면 지난 3월 2013년과 2014년 재무제표를 정정하기 전까지는 8년 연속 흑자였다. 수치상으로만 봤을 때 2013년과 2014년 각각 4천409억원과 4천711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초유량기업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정정공시에 따르면 이 기간 각각 7784억원과 742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심지어 선박이나 해양플랜트를 만들어서 벌어온 현금(영업활동현금흐름)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안 거르고 적자였다. 배를 수주해 번 돈보다 만드는 데 돈이 더 들어간 것이다. 이처럼 8년간 재무제표 상으로 흑자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대우조선만의 편법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배·플랜트를 만들다 예상과 달리 추가 건조비용이 들면 손실로 잡는다. 대우조선은 이런 손실 일부를 앞으로 받을 돈(미청구공사)으로 잡았다. 이 경우 손실은 일단 매출과 이익으로 잡힌다.

실제로 대우조선은 지난해 1분기에 9조4150억원까지 쌓였던 미청구공사 금액을 2분기에 3조2276억원이나 삭감했다. 이에 지난해 2분기에 3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보유자산 가치 재평가 시점도 미심쩍다. 대우조선은 자금 위기가 닥칠 때마다 보유하던 토지자산 가치를 올렸다. 5127억원으로 봤던 토지를 9835억원으로 재평가하는 등 2009년 총 7985억원의 재평가 차익을 거뒀다. 이게 아니었다면 그해 영업이익(6845억원)은 적자였다. 지난해에도 대우조선은 2014년 1조5830억원으로 봤던 토지 가치를 2조1426억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순식간에 5596억원이라는 목돈이 생긴 덕분에 지난해 자본총계(2328억원)를 기록, 간신히 자본잠식을 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한 데는 ‘주인 없는 회사’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우조선은 2000년부터 오너가 없다. 업계 전문가는 “대우조선해양은 주인 없는 기업에서 벌어질 수 있는 복합적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대표적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주인이 없자 회사는 방만하게 운영됐다. 대우조선 근로자는 지난해 평균 7500만원을 수령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04년부터 60명의 정ㆍ관계 인사가 대우조선해양에서 고문·자문·상담역으로 근무하며 평균 8천8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심지어 이를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도 대부분 조선업과 관련 없는 정치권과 연루된 낙하산이었다.

경영진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자 구조조정에 앞서 오너 찾기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와 같이 ‘선 자금 지원, 후 구조조정’을 할 경우 대우조선해양 문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급한 불은 끈 뒤 주인을 찾는 게 (대우조선해양을 살리는)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특수단은 대우조선의 49.7% 지분을 가진 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개입 여부를 확인하는 데도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8일 압수수색에서 산은 기업구조조정실 산하 조선업경영정상화지원단 외에도 2012년부터 기업금융부문장을 지냈던 류희경 수석부행장과 정용석 기업구조조정 담당 부행장의 집무실도 포함시켰다. 검찰 수사가 대우조선해양을 넘어 산은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의미다.

검찰은 대우조선이 2014년 흑자를 냈다고 공시했다가 지난해 새로운 사장이 취임하며 그간 5조5000억원대의 손실이 발생했고 이 중 2조원은 2013∼2014년 발생한 것이라고 정정 공시한 경위를 놓고 수사 중이다. 검찰은 산은이 이 같은 대우조선 측의 행태를 사실상 묵인·방조했다는 정황도 어느 정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 특수단은 산은이 대규모 부실에도 지난해 10월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의 추가 지원 방안을 발표한 점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떨고 있는 정재계

올해 1월 출범한 특수단은 서울중앙지검과 창원지검에서 진행하던 사건을 넘겨받아 기존에 축적한 대우해양 관련 정보를 더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수사를 과거 대검 중수부 격인 특수단이 맡게 된 것을 미뤄 봤을 때 수사 강도는 물론 그 범위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처럼 대우조선이 특수단의 첫 타깃이 되자 다른 조선업체들도 향후 자신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에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다른 조선업체들까지 부실경영 수사선상에 놓일 것이라는 예상도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다른 조선업체들과 대우조선해양과는 본질적인 상황이 다르다”며 "삼성중공업은 모회사가 있고, 현대중공업도 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고 자구안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대우조선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경쟁사들이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흑자를 내는 등 부실 은폐 의혹을 가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공적자금 투입 과정을 비롯해 대우조선 경영진 인사, 국내외 사업 결정, 일감 몰아주기 등에 부당하게 관여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한 인사에 대한 수사로까지 확대될지도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대표적 친박 인사로 알려진 홍기택 전 KDB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대우조선, STX 구조조정 실패가 친박 실세들의 관치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대우조선을 향한 검찰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 주목된다.

서정민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