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바라보는 친박 당권 향배 놓고 치열한 물밑 작전

계파 간 갈등 부상 조짐에 핵심 실세 당권장악 시나리오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6일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통해 전당대회 불출마를 전격 선언한 이후 당 대표 선출을 놓고 여권이 분열하고 있다.

전당 대회를 앞두고 당 안팎에서는 4ㆍ13 총선 패배의 책임론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친박계와 비박계 양 진영의 핵심인사들은 갈등이 다시 불거지자 당권 도전에 심적 부담을 적지 않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당권을 거머쥔다고 해도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는 최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제가 죽어야 정권 재창출이 이뤄진다면 골백번이라도 고쳐 죽겠다”며 “8월9일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 저의 불출마를 계기로 앞으로는 계파라는 이름으로 서로 손가락질하고 반목하는 일이 제발 없도록 해달라”고 호소한데서도 여권의 심란한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최 의원이 사퇴를 선언하면서 친박을 대표해 누가 당대표에 도전할지를 놓고 여러 추측과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청와대와 친박 핵심들이 논의를 통해 당대표 주자를 낙점해 놓은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표시하기도 한다.

친박의 복잡한 계산

새누리당 8ㆍ9 전당대회를 앞두고 최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친박계의 맏형으로 통하는 서청원 의원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일부서에서는 그가 전대에 출마해 집권 말기 여권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친박계에서는 벌써 그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현재 새누리당에서 당권 도전을 공식 선언한 인물은 김용태ㆍ이주영ㆍ한선교ㆍ정병국ㆍ이정현 의원 등이다. 이처럼 여러 주자가 출사표를 던지고 나서자 친박계 주변에서는 “친박계 안에서도 분열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소리가 나온다. 당권을 놓고 친박계가 좀처럼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계파 와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친박의 결속력이 약화하면서 저마다 살 길을 찾아 각자도생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친박계 후보 간 교통정리는 계속 어려워지고 있고, 후보들은 저마다 완주 의사를 밝히고 있어 이를 두고 여권 내부에서는 ‘친박계의 분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관측에 무게를 싣고 있다.

친박계의 분화 조짐과 관련,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정권에 서운함을 느낀 친박 인사들이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충성을 다했지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난 친박계 인사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총선 전인 올해 초부터다. 이에 총선 전 정가에서는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게 나왔다.

지난 5월 경부터는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의 분화 조짐이 아예 수면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친박 핵심 유기준 의원은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바로 오늘부터 당장 친박 후보라는 지칭을 하지 말아 달라”고 친박 후보 꼬리표를 떼겠다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유승민 의원 등 무소속 의원의 복당 문제가 비대위에서 결정되면서 친박분화는 더 구체화됐다. 탈당인사들의 복당결정을 놓고 핵심친박 인사들은 이를 무효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비핵심 친박인사들 사이에서는 비대위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반대론을 폈다. 핵심과 비핵심 친박계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이때 드러나면서 ‘친박계의 분화’는 공식화되는 분위기다.

친박의 분화조짐은 여기서만 드러난 게 아니다. 전당대회 룰을 과거처럼 대표와 최고위원을 함께 뽑는 방식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핵심 친박계는 주장했지만 내부에서부터 이미 결정된 일이라고 비핵심 친박계가 반대 의견을 들고 나와 부딪혔다.

경선 출마 의사를 밝힌 친박계 당권주자들이 주도계파인 친박꼬리표를 내세우지 않고 ‘계파청산’을 제1과제로 내세우는 것은 그런 면에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표면적인 이유에서 ‘당의 화합’을 표방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면적인 이유에서 핵심친박의 독단과 독선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유력 당대표 후보로 이주영 의원이 거론되는 것은 범박으로 분류돼 온 이유에서다.

이 의원은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하며 “대혁신의 첫 관문은 책임 있는 인사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데 있다. 무엇보다 자숙해야 한다”고 ‘친박 2선후퇴’를 주장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비박뿐만 아니라 비핵심 친박에서도 환영받고 있다.

그러나 이정현 의원 등 핵심 친박계 인사들은 내부의 자진 사퇴 요구에도 완주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어 친박의 분화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한선교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친박 최고 핵심실세인 서 의원과 최 의원을 겨냥, “사실 벌써 물러났어야 한다”고 ‘2선 후퇴론’에 힘을 실어 핵심 친박과 미묘한 대립각을 세웠다.

당대표 놓고 갈등 ‘朴心’ 어디로?

최근에는 4선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이 다음 달 9일 열릴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후보로 나서겠다고 밝혀 여권 당대표 후보들의 속내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주 의원은 계파를 따지면 비박계로 분류되지만, 박 대통령의 정무특보를 지내고 공무원연금 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에 대해선 친박계에서도 거부감이 덜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 역시 핵심이 아닌 비핵심 친박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친박 핵심 인사들의 지지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주 의원은 “비박의 정체성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비박 중에도 ‘서클화’된 비박이 있고, 나는 서클의 밖에 있다”며 “당의 진로에 대한 진심 어린 고민을 국민과 당원께 호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박계와 비핵심 친박계 인사들이 잇따라 당권에 도전하면서 정치권의 관심은 친박계 대표 서 의원에게 쏠리고 있다. 이에 서 의원의 당대표 경선 출마 여부가 새누리당 전대의 최대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친박 진영 내부에서는 후보 난립으로 당권을 비박(비박근혜)에 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면서 다급해진 친박 의원들은 서 의원에게 출마를 강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컷오프(예비경선)를 통해 후보들이 어느정도 정리되고 여기에 서 의원이 출마를 한다면 자연스럽게 친박 단일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서 의원은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국회 후반기 의장을 노리고 있는 서 의원의 입장으로서는 이번 전대 출마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서 의원이 출마해 패배하게 된다면 박근혜 대통령 임기 후반기와 맞물려 친박은 당내 영향력을 상실할 수 있다.

친박의 거듭된 출마요청에 서 의원은 지난 8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오찬 참석 후 곧바로 지역구인 경기 화성에 내려가 숙고에 들어갔다. 전대 출마까지 물리적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서 의원은 이달 중순을 넘기지 않고 입장정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출마와 관련해 ‘대항마’를 자처하고 있는 나경원 의원도 서 의원으로서는 고민되는 대목이다.

나 의원은 최근 한 언론을 통해 “서청원 의원이 나온다면 전대 후 당의 모습이 국민께 가까이 가기는 어렵고, 그때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비박계 주변에서는 “김용태, 정병국 의원이 출마를 밝힌 만큼 전대 막바지에 나 의원이 합류한 뒤 단일화를 이루면 그 세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나 의원은 지난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배한 바 있어 이전 전대에서 서 의원이 출마하지 않을 경우 출마의 명분이 약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는 반박도 있다. 서 의원과 나 의원의 출마 여부는 친박-비박 후보들의 단일화 움직임 등에 다양한 변수가 될 전망이어서 두 의원의 결정에 전대 판세도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에서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리도 들린다. 청와대와 여권 동향에 밝은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새누리당 전대와 관련해 깜짝 이벤트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울러 서 의원이 출전 여부와 관련, 이미 청와대가 서 의원 측에 그 뜻을 전달했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이 소식통은 “친박이 지금은 분화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그동안 비핵심으로 차별대우를 받았던 이들에 대해 청와대가 끌어안기를 제안했다는 말이 들린다”며 “핵심친박 내부에서 비주류 친박 끌어안기를 청와대에 끊임없이 요청했고 최근까지 그 방법과 시기 등을 놓고 박 대통령이 여러 가지를 고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소식통은 “전대를 앞두고 청와대가 비주류에 끌어안기와 관련된 제안을 할 것”이라며 “이미 A의원이 비주류 협상대표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주류와 비주류로 나뉜 두 친박은 결국 협력과 단결에 합의하고 비박으로부터 당권 쟁취전에 돌입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 의원 출전에 대해 이 소식통은 “서 의원이 나설지는 미지수다. 나서지 않을 가능서도 없지 않다”며 “청와대는 서 의원이 당 대표로 나서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하지만 최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박 핵심부가 서 의원을 계속 부추기고 있고 특히 최 의원이 서 의원에게 당 대표로 나서야 한다고 설득 중인 것으로 들었다”고 설명했다.

서 의원 출마 땐 내분 심화

청와대는 서 의원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친박계 의원들은 여전히 서 의원의 출마를 촉구하고 있다. 친박계 핵심 이장우 의원은 “지금 새누리당의 많은 분들이 당이 사분오열돼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당을 하나로 통합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분으로 그나마 경륜이 풍부하고 최다선으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서 의원이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서청원 추대론’을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서 의원의 출마가 유력하는 관측도 나온다. 서 의원이 고심 끝에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에 새누리당 내 계파간 당권주자 후보의 교통정리가 이뤄질지를 놓고 여러 관측이 돌고 있다.

서 의원 측은 최근 “현재 당 대표에 출마를 하는 것이 당의 화합을 도모하고 정국의 안정과 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만들 수 있는가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거듭된 친박 의원들의 설득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는 분석이다. 서 의원의 출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온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당권 경쟁도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서 의원이 당권에 도전할 경우 자연스럽게 친박계 후보의 교통정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비박계는 설령 서 의원이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다고 하더라도 내심 해볼 만한다는 분위기다.

더욱이 김무성 대표 체제에서, 서열 2위 최고위원으로 공천 파동과 총선 참패 책임자가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자체가 민심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비박계는 주장하고 있다.

친박계는 서 의원의 풍부한 경험을 감안하면 현재의 계파 갈등을 해소할 적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비박계는 70대 중반인 서 의원이 총선 참패 후 혁신을 이끌고 내년 대선을 진두지휘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비박계는 서 의원이 친박 난립 주자들을 전부 제압하고 친박계를 하나로 모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비박계 정병국ㆍ김용태 의원은 물론 친박계 이주영 의원까지 계파청산 여론에 힘을 싣고 있어 서 의원에 대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친박계가 서 의원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비박계도 힘을 모으고 있다.

비박계 좌장 격인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나 “(당 대표에) 당선되기 위해선 당연히 단일화가 돼야 한다. 단일화 안 하면 당선이 안 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당분간 ‘중립’ 입장을 피력하겠지만, 정병국(5선), 김용태(3선) 의원 중 한 명으로 단일화가 성사될 경우 적극 지지할 것으로 전해졌다. 8ㆍ9전당대회의 구도가 계파 간 맞대결로 흘러가는 그림이다.

원유철(5선)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데 이어 홍문종(4선) 의원도 서 의원이 출마할 경우 불출마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친박계의 결집 움직임이 감지된다.

홍 의원은 “서 의원께서 결정하고 나서 그 다음에 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서 의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시게 되면 아마 저희와 상의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서 의원이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힐 경우 화합을 위해 기꺼이 양보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비박계는 서 의원이 출마하지 않을 경우에도 이주영, 이정현 의원 등 다른 친박계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한 단일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 의원과 김 의원은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에 여론조사를 통해 최종 출마자를 정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새누리당이 지난 14일 전국위원회와 상임전국위원회를 잇달아 열어 ‘단일성 집단지도체제’ 변경을 확정지었다. 이로서 다가올 8ㆍ9 전당대회에서의 대표·최고위원 분리 선출도 확정됐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뽑히는 새 당대표는 이전보다 권한과 책임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이를 명시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당헌을 개정, 기존 ‘대표 최고위원’ 명칭을 ‘당대표’로 변경했다.

또 당대표는 당직자 인사에서 ‘임면권과 추천권’을 모두 갖게 됐다. 지금까지는 당직자를 임명할 때 ‘추천권’만 행사했으며 최고위 의결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최고위원회와 협의한 후 사무총장 이하 당직자를 직접 임명할 수 있다.

단, 일각에서 우려를 제기해온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 위원장(공천관리위원장)과 부위원장은 기존대로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임명이 가능하도록 했다. 시ㆍ도당 공천관리위원장과 부위원장도 시ㆍ도당 운영위 의결을 거쳐 대표가 임명토록 했다.

새 당대표는 대외적인 위상도 달라지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최고위원 분리 선출 자체가 이를 의미한다. 기존 집단지도체제는 대표 최고위원과 최고위원을 단 한번 경선을 통해 뽑아 이중 1위가 당대표, 2~5위가 최고위원이 되는 방식이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