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 바진 새누리당 전당대회 ‘당권 놓고 친박 합의점 찾기 나선 내막’

“그동안 해 준 게 뭐 있나” 불만폭발 친박에 등 돌리는 세력 청와대 압박 본격화

당대표 후보 놓고 계파 간 치열한 신경전 “이러다 진짜 큰일” 공감대 형성

친박계 핵심 인사들의 4ㆍ13 총선 공천개입 녹취록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의 내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전당대회를 코앞에 둔 시점에 공천개입이 드러나면서 당권 경쟁을 둘러싼 계파 싸움이 격화되고 있다. 심지어 지도부끼리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향후 전대 향배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최근 여권 주변에서는 녹취록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소리가 적지 않게 나돌고 있다. 특히 당대표 선출을 놓고 친박계와 비박계가 합의점을 찾기 위해 다각도로 논의를 진행 중이라거나 녹취록, 우병우 수석 논란 등을 해결하기 위해 시선돌리기용 사건을 기획하고 있다는 등의 말이 무성하다.

이 중에서 “여권의 각 계파 핵심부에서 주요 인사에 대한 X파일을 확보하고 있다”는 소리가 이목을 끈다. 녹취록, 동영상, 사진파일, 문서자료 등 여러 형태의 파일이 정치권 핵심부에 은밀히 전달되고 있다는 말이 여권 깊숙한 곳에서 들리고 있다.

최경환ㆍ서청원 의원 등 여권 친박 실세가 차례로 당 대표 출전을 포기한 것도 비박계가 쥐고 있는 X파일 때문이라는 소문이 정치권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 일각에서는 권력다툼을 위한 폭로가 결국 여권의 파멸을 부를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전당대회 앞두고 난무하는 음모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여권 안팎에서는 최경환 의원이 이 녹취록의 존재를 사전에 인지하고 당 대표 출전 포기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공교롭게도 최 의원 서 의원이 잇따라 당대표 출전포기 선언을 한 직후 녹취록 사건이 터졌다.

녹취록에는 최 의원을 비롯해 윤상현 의원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4ㆍ13 총선 당시 서 의원 지역구인 경기 화성갑에 출마를 희망하던 김성회 전 의원에게 출마 지역 변경을 요구, 회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녹취록이 공개된 이후 현재 비박계가 주도권을 쥐고 친박계를 향한 전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비박계가 여권 자체 진상조사 외에도 검찰 고발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수사 의뢰까지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권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친박계는 즉각 반발하며 녹취록 사건 배후에 비박계가 있다는 ‘배후 음모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배후설이 제기되자 비박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하게 부인하면서 친박계를 압박하고 있다.

사태가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되자 서 의원은 지난 20일 “과거에 군사정권 시절엔 그런 일들이 간혹 있었지만, 당내 중요한 시점에 ‘음습한 공작정치’ 냄새가 나는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자괴감을 느끼고 오래 정치하면서 별꼴을 다 본다”고 비박계에 정면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친박계 재선인 이장우 의원은 이에 앞선 지난 19일 “나는 어느 세력에 의해서 주도가 됐다고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폭로가 되었는지 참 궁금하다”며 비박계 배후설에 무게를 실었다.

비박계는 친박계의 배후설 제기에 발끈하는 분위기다. 비박계 이종구 의원은 서 의원의 공작정치 발언 직후인 지난 20일 이에 즉각 반박했다.

이 의원은 “녹취록 사건이 어떻게 공작이겠느냐. 전혀 맞지 않는 말”이라며 “서청원 의원도 책임자 중에 한 사람 아니냐”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는 녹취록과 관련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한편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모양새다.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원칙에 따라 대처하겠다고 강조한 반면 정진석 원내대표는 진상조사에 유보적인 입장을 드러내면서 지도부 간의 미묘한 갈등을 노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이유와 배경을 떠나 집권 여당 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원칙에 따라 대처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 원내대표는 “총선 참패의 책임에서 지도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지금은 당을 재건해야 할 때이지 또다시 계파 투쟁으로 책임 공방을 벌일 때가 아니다”고 발을 뺐다.

정 원내대표는 이외에도 “뒤늦은 책임 공방이 뭐에 도움 되겠나. 총선에서 유례없는 참패를 당하며 이미 회초리를 맞았다”고 말하기도 해 비박계와 입장차이를 분명히 했다.

배후설에 계파갈등 증폭 조짐

새누리당 중앙윤리위원회는 20대 국회 첫 회의에서 공천 개입 의혹을 다룰 예정이다. 다만 비박계에서 요구하는 검찰수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사 의뢰 문제 등은 여러 면에서 조심스러운 점이 많아 일단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은 장기화될 것으로 추측된다.

이 위원장은 지난 22일 친박 공천 개입 의혹에 대해 “이 문제는 그냥 ‘우리 모르겠어’라며 지나갈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어 여권의 혼란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윤리위는 녹취 당사자들에 대한 처분 결과는 8ㆍ9 전당대회 이후에 내놓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대 이전에 결론이 나기 어렵다는 게 윤리위의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녹취록 파문이 쉽게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한다. 비박계에서 노린 것이 최 의원이나 서 의원의 당권도전 포기인 만큼 목적을 달성한 만큼 더 문제삼지 않고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즉, 비박-친박 간의 정면대결로 비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녹취록 당사자들은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최 의원과 윤 의원 등 녹취록 주인공들은 반박이나 해명조차 하지 않고 사실상 ‘칩거 모드’에 들어간 모습이다.

두 의원은 최근 논란에 휩싸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과 관련한 국회 긴급 현안질문을 앞두고 열린 당 의원총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본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최 의원 측은 “외부 일정 때문에 의총에는 불참했으나 추후 본회의에는 참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 의원 측도 “외부에서 개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전날 자신들의 음성이 담긴 전화통화 녹취가 공개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조직적 음모”라면서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박계는 현재까지 공세 압박을 늦추지 않고 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공천개입 의혹과 관련해 “그 모든 걸 막는 장치가 상향식 국민공천제였다”며 “국민공천제를 잘해서 공천혁명을 일으키자고 했는데 그걸 다 이루지 못한 후회도 있고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지난 4월 총선 당시 국민공천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비롯 친박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도입에 실패했다.

이어 그는 김성회 전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 대해 “그 당시 당사자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 우리 주변에 많이 퍼졌던 이야기”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압력을 받았든, 본인이 결정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없다”고 했다.

친이계 좌장 출신인 이재오 전 의원도 친박 핵심 의원들을 정면 비판했다. 그는 공천 개입 논란과 관련, “개입한 사람들이 당을 자기들 손아귀에 넣고 뒤흔든 것이므로 관련자들은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의원은 지난 20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소위 ‘공천 책임 5인방’이라는 게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의원이 언급한 ‘공천 책임 5인방’은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이번에 공천 개입 정황이 담긴 녹취록에 나오는 최경환·윤상현 의원,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당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다.

이 전 의원은 “이 다섯 사람들은 당을 떠나야 되지 않겠나”며 “당사자들은 정계 은퇴를 해야 할 사안인데 탈당도 많이 봐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전 의원은 “친박 실세라는 사람들이 다 대통령을 팔았다. 대통령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라며 “여소야대 국면에서 대통령 스스로가 이 문제를 매듭짓고 새누리당을 떠나야 한다. (그 이후에) 여야를 초월해서 국정에 전념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으로 출마를 준비하던 서 의원을 비롯한 청와대, 친박핵심 의원들이 공천개입의 ‘몸통’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친박계 인사들의 공천개입 녹취록이 공개되자 지도부는 집안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설득력도 없고 명분도 없어 역부족인 모습이다.

이와 함께 여권 주변에서는 친박과 비박계 핵심 인사들이 이번 공천개입 논란에 대한 타협과 당 대표 선출을 위한 물밑 조율을 시작했다는 소문도 조금씩 나돌고 있다. 비박계 인사들 가운데 4선 또는 5선 의원들과 친박 핵심 인사들이 모처에서 조용히 만나 전대와 관련된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청와대가 전대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친박과 비박의 합의로 당대표 선출을 치루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녹취록에 따르면 윤 의원은 총선 당시 경기 화성 출마를 준비하던 김성회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지역구를 옮기라는 압박을 넣었다. 경기 화성은 서청원 의원이 지역구로 출마를 준비중이었다.

이에 윤 의원은 김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빠져야한다’, ‘경선하라고 하면 다 만들어주지’, ‘친박브랜드로 친박이다', ‘대통령사람이다’(해주지)', '서청원, 최경환, 현기환 의원 막 완전 (친박)핵심들 아냐', '형, 내가 형 별의 별 것 다 갖고 있다니까' 등의 발언으로 압력을 행사했다.

김 전 의원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화를 내며 '최경환이 전화해?'라고 말하면서 최 의원과도 통화를 시켜주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정무수석이었던 현기환 전 의원은 김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내며 명령조로 지역구를 옮길 것을 압박하는 녹취록도 공개됐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