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 때 핵심 실세의 수상한 해외 자금 첩보보고 있었다”

MB 최측근 A씨 일본 등 롯데 해외 페이퍼컴퍼니 연결 정황

검찰, 롯데비자금 복잡한 경로 거쳐 세탁됐을 가능성 주목

검찰의 롯데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이를 두고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점점 늘고 있다.

검찰은 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 인력을 투입해 롯데 잡기에 총력전을 벌였다. 검찰은 롯데 수사를 위해 롯데 계열사를 차례로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줄줄이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오너 일가 중 처음으로 기소한데 이어 신격호(95) 총괄회장의 6000억원대 탈세 지시 정황을 포착,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반면 롯데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검찰 수사에 대응하고 있다. 재계와 검찰 주변에서는 롯데가 사전에 검찰 수사에 철저히 대비해 온 것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검찰이 롯데 오너가 비리를 잡기 위해 먼지털기식 수사를 해도 아직 이렇다하게 나온 게 없어서다.

롯데와 관련된 여러 비리 의혹은 이명박 정부 동안 끊임없이 제기됐다. 또 롯데가의 신동빈 신동주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 때도 롯데 오너일가의 비자금 의혹과 상속을 둘러싼 불법 정황 등이 우수수 쏟아지다시피했다.

이 의혹들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사실관계가 드러난 것은 거의 없다. 일본에 적을 둔 롯데 오너일가는 그동안 국내에서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누가 어떻게 했다더라 식의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이처럼 대중에 공개된 내용은 거의 없지만 롯데가에 대한 사정기관 첩보보고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걸쳐 활발하게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한국>이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검찰 경찰 국세청 등 주요 사정기관은 롯데 오너일가의 정경유착에 대해 여러 차례 보고서를 작성했다. 특히 검찰은 이명박 정부 인수위시절부터 롯데가와 MB라인의 은밀한 접촉과 빅딜에 대한 여러 첩보보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려한 출발 뒤 찾아온 위기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는 성과도 있었지만 비자금 등 핵심 의혹 수사는 여전히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수사를 마무리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수사를 해외 페이퍼컴퍼니로 확대하고 있다. 이를 두고 검찰 주변과 재계 일부에서는 “검찰이 뭔가를 손에 쥐고 있는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최근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 등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의 탈세 혐의와 관련 핵심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서미경(56) 씨와 딸 신유미(33) 롯데호텔 고문에 대해 검찰이 소환조사를 추진하는 등 롯데가의 비밀을 아는 이들을 차례로 부르고 있다.

재계에서는 검찰이 이들을 상대로 구체적인 진술을 받아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이들 모녀 등에게 넘겨주는 과정에서 수천억원대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 중이다. 편법적인 상속과 조세 포탈이 신 총괄회장의 직접적인 지시에 따라 그룹 정책본부의 주도로 이뤄졌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서 씨 모녀와 신 이사장에게 각각 3.1%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증여했다.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1.6%)이나 신동빈(61) 회장(1.4%)보다 높아 주목을 끈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미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 개설한 해외 특수목적법인(SPC) 등 이른바 페이퍼컴퍼니가 동원된 것으로 파악돼 검찰 수사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윤곽이 파악된 탈세 규모는 약 6000억원대다. 그동안 사법당국에 적발된 재벌가의 증여ㆍ양도세 탈루 의혹 중 최대 규모로 추정된다.

검찰 수사가 순탄하게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에 체류 중인 서씨 모녀가 검찰 소환에 계속 불응할 수 있고 신 총괄회장 역시 고령인 탓에 치매 증상까지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조사가 깊이 있게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검찰은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신동빈 회장 등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및 금품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가 현재로서는 활로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탓이다. 검찰이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을 깨기 위한 결정적 단서를 찾기 위해서는 직접 관계자들의 자백 등을 얻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또 수사 초반 롯데케미칼이 연간 수조원대 원료를 수입하면서 일본 계열사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포착한 검찰은 롯데케미칼 거래업체를 압수수색하고 대표를 소환했다. 하지만 롯데 측이 일본 계열사의 거래내역 등 자료제출을 거부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롯데그룹 수사팀의 주요 수사대상은 계열사간 부당 내부거래, 소송사기 및 오너 일가의 탈세 등 6가지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후 가장 먼저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등에 보관돼 있던 신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부자(父子)의 비밀금고였다.

신 총괄회장의 자금관리인으로부터 금고에 보관됐던 현금 30억원과 서류 등을 압수한 검찰은 이들 부자가 계열사들로부터 연간 300억원 상당을 받아 운영했다는 직원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 자금과 관련, 횡령으로 마련된 비자금일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 검찰은 정확한 자금조성 경위 및 사용처를 파악하고 있다.

또 롯데홈쇼핑 채널 재승인 과정에서 9억원 상당 비자금을 조성하고 금품로비를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현구(56) 사장에 대한 수사도 관심사안이다. 정ㆍ관계 인사들로 수사가 확대되면서 파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 사냥 이제부터 시작

검찰 수사의 6가지 핵심을 정리해 보면 먼저 호텔롯데와 롯데쇼핑 내 사업부 간 불투명한 자금 거래에서 비롯된 비자금 조성이다.

호텔롯데는 호텔·면세점·테마파크(롯데월드 등) 등으로, 롯데쇼핑은 백화점·마트·슈퍼·시네마 등 각각 3∼4개 사업부로 구성돼 있다. 이들 사업부는 사실상 개별 회사로 역할을 하고 있고 각각의 대표도 따로 임명되지만, 공식적으로는 단일 법인이어서 사업부 간 자금 거래 내용을 규명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롯데 측도 이에 대해 “사실상 단일 회사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관리하고 있는 사업이 다른 것이고 각개의 부서 개념이다. 부서간 간 자금거래가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로 검찰 수사에 대응하고 있다.

차명주식을 통해 비자금 조성도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차명주식을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는 일본 L투자회사 12곳(지분율 72.65%)과 일본 롯데홀딩스(19.07%) 등 일본 계열사가 지분의 99%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규모 배당금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가고 차명주식 등을 통해 오너 일가의 비상금으로 조성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제2롯데월드 인허가 특혜 의혹이다. 검찰은 이명박 정권 당시 국내 최고층(123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의 건축 허가가 나온 배경과 관련해 특혜 의혹이 있는지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추진된 제2롯데월드 사업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 군 당국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군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이명박 정권 당시 제2롯데월드 인허가 과정에서 정치권 금품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이 무성히 나돌았다.

검찰은 롯데가 매출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기업내부 시스템 구축·운영회사인 롯데정보통신과 광고계열사인 대홍기획, 롯데피에스넷 등이 내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매출 부풀리기를 했고 이를 통해 비자금 조성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적지 않다.

지난해 롯데정보통신 매출의 86.7%, 대홍기획 매출의 58.8%가 내부거래를 통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난 10∼11일 검찰 압수수색 대상에는 압수수색 대상 계열사에는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을 비롯해 롯데정보통신, 롯데피에스넷, 대홍기획, 롯데홈쇼핑 등도 포함됐다.

이외에 롯데홈쇼핑 인허가 연장 의혹과 국내외 대형 인수합병(M&A) 과정에서의 비리 의혹 등을 검찰은 조사하고 있다.

특히 대형 M&A에 대해서는 롯데가 이명박 정권(2008년~2012년) 아래서 중요한 인수·합병 건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짧은 기간 크게 몸집을 불렸는데, 그 배경에 정권 차원의 배려가 있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핵심은 사라진 비자금 행방 추적

검찰은 롯데의 비자금 중 이명박 정권 당시 움직였던 자금을 집중 추적하고 있다. 검찰 수사 방향이 기업 비자금 수사에서 오너 일가 탈세 수사로 집중되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검찰은 지난 6월부터 두 달 동안 비자금 조성 의혹을 중심으로 롯데그룹 정책본부와 계열사들에 대해 수사를 벌였지만 신동빈 회장까지 연결된 자금 흐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사 초기 검찰은 롯데그룹 계열사와 오너 일가 자택을 압수 수색해 신 총괄회장 자금관리인이 금고에 보관했던 현금 30억 원과 서류 등을 확보했으며 매년 300억 원 상당의 자금이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에게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했다. 롯데 측은 300억 원의 출처와 관련해 “배당금과 급여 성격의 자금이며 비자금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자금의 정체를 뚜렷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지만 이 자금이 정치권 로비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비자금 수사는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수사팀은 롯데케미칼이 연간 5조 원대 원료를 수입하면서 일본 롯데물산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은 포착했지만 일본 롯데 측이 자료 제출을 거부해 난관에 봉착했다.

검찰은 롯데건설 수사에서도 하도급 업체와 연결된 출처가 불분명한 수십억 원대 자금을 포착해 임직원들을 소환조사했지만 이들은 관련 혐의를 부인하거나 지난 4월 사망한 박창규 전 대표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롯데 오너가 또는 가신그룹에서 구체적인 진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검찰이 지난 정권 때부터 수집한 롯데 파일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롯데 비리 의혹에 대한 첩보보고 중 롯데 관계자의 구체적 진술도 포함돼 있다. 또 박영준, 최시중, 천신일, 이상득 등 전 정권 핵심 인물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롯데 비리와 관련된 내용을 상당부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검찰 주변에서 “검찰이 롯데 관계자들을 불러 구체적 진술을 확보하면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라며 “이미 일부 비자금 용처에 대한 내용은 일부 인사들에 의해 진술이 이뤄졌다”는 말이 파다하다.

검찰은 이명박 정부 때 조성된 비자금이 일본 등 해외로 흘러나간 정황을 포착하고 이 자금과 연결된 전 정권 실세들의 행적도 같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일단 탈세를 통해 조성한 자금의 행방과 현재까지 사라진 자금의 규모가 확보되는 대로 관련자들을 집중 신문할 계획이다.

한편 롯데의 탈세는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지난 5일 신 총괄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증여 과정에 관여한 롯데그룹정책본부와 법률 자문을 맡은 A법무법인으로부터 압수한 자료를 분석 중이다.

롯데그룹 정책본부는 오너가에 대한 과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 개설한 해외 특수목적법인(SPC) 4곳 이상을 지분 거래 과정에 동원했다. 신 총괄회장의 지분 6.2%가 해외에서 여러 단계에 걸쳐 매매된 뒤 결국 서씨와 신영자씨 측이 차명보유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으로, 세무당국의 추적을 피하려고 목적으로 보인다.

이런 탈법 거래는 롯데그룹 정책본부가 설계하고 A법무법인이 구체화했다.

주식을 팔고 사는 외관을 갖추고 있지만 사실상 허위거래로 볼 만한 정황도 드러났다. 최소 수천억원짜리 지분인데도, 액면가대로 수억원에 사고 판 단서가 검찰에 확보됐다. 지분 이전은 신 총괄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조사됐다.

롯데그룹 정책본부 실무자들은 검찰 조사에서 “신 총괄회장이 ‘드러나지 않게 세금을 안 내고 지분을 넘길 방법을 알아보라’고 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롯데그룹과 연관이 의심되는 페이퍼 컴퍼니가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적인 조세회피처인 버진아일랜드에 최근 비자금 조성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버진아일랜드는 스위스, 케이맨제도와 함께 세계적인 조세회피처로 유명하다.

최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역외기업 명단 자료에 따르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Lotte Group ltd(롯데그룹)’, ‘Lotte Farm Group ltd(롯데팜그룹)’이란 역외법인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기업은 롯데쇼핑에서 100% 출자한 ‘롯데쇼핑 홀딩스’란 법인이 있는 홍콩에 주소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이들 회사가 롯데쇼핑홀딩스와 관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같은 자료에는 이들 두 회사 외에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연결된 ‘Lotte Impex Inc’라는 관할 미상의 회사도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