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책임’이행 못하면 처형 공포…목숨 건 탈북 줄이어

귀순한 태영호 공사 유럽자금 담당 소문…北 요구 못 맞춰 신변 위협에 망명설

김정은 체제 해외 공관에 대북 송금 압박…미이행시 불이익 유려해 탈북 잇따라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55) 공사의 귀순이 큰 파장을 낳고 있다. 태 공사가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인데다 또 다른 엘리트 귀순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북한의 대응과 함께 남북관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태 공사의 귀순과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것은 그 배경이다. 귀순 이유가 무엇이냐에 따라 북한 상황은 물론 향후 남북관계 변화도 가늠할 수 있다.

태 공사의 귀순에 대해 정부 발표와 전문가들 사이에 일치하는 부분이 있지만 상이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다. 때문에 태 공사를 비롯해 북한 엘리트의 잇따른 망명,귀순의 ‘진짜 이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태 공사의 망명 사실이 알려진 것을 전후해 전 세계 공관에 특별 조치를 내려 단속에 나섰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다음 조치는 남한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남북한 국지전이나 서해교전 같은 사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태 공사를 비롯한 북한 엘리트의 잇따른 망명의 ‘진짜 이유’와 후폭풍을 짚어봤다.

최고위급 외교관의 귀순 배경

주영국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국내 입국은 17일 저녁 통일부의 긴급발표를 통해 알려졌다.

태 공사의 귀순 사실을 발표한 시점을 놓고 논란이 있지만 BBC를 비롯한 영국 주요언론이 먼저 태 공사의 신원을 공개하며 그의 제3국 망명 요청을 사실을 보도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태 공사는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파장이 예상된다. 그의 영국에서의 역할에 따라 북한에 미치는 타격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각에선 그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유럽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어 김정은 체제에 직격탄을 날린 결과라는 분석도 한다.

태 공사 정도의 인물이 망명, 한국으로 귀순한다는 것은 김정은 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북한 엘리트의 잇따른 탈북이 점쳐진다. 실제 올 들어 귀순한 북한 고위 외교관이 최소 7명에 이른다는 말도 나온다.

주목되는 것은 태 공사 등 북한 고위층 엘리트들의 잇따른 탈북의 배경이다.

통일부는 태 공사의 귀순 동기에 대해 ‘김정은 체제에 대한 회의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 문제’ 등 세 가지를 들었다. 다른 고위급 인사의 탈북에 대해서도 자녀 문제를 제외하고 대동소이하다고 당국은 설명한다.

태 공사의 귀순 배경에 대해 북한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 소식통은 정부와 다른 시각을 보인다. 북한의 ‘돈 문제’가 핵심이라는 게 그들의 일치된 주장이다.

태 공사의 경우만 해도 김정은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은 포괄적, 광의로 해석할 때 범주에 들지 몰라도 탈북, 귀순의 직접적인 원인은 ‘돈’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태 공사가 북한이 주문한 자금을 준비하지 못했거나 일부 배달사고(착복 등)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북한 사정에 통한 베이징 소식통은 태 공사처럼 상당한 대우를 받는 엘리트가 체제 문제로 탈북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돈 문제’가 직접적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소식통은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해외 공관에 자금 마련을 독촉하는 횟수와 강도가 감당 못할 정도로 심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김정일 시대 때는 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기회’를 줬지만 김정은 체제에선 곧바로 숙청 내지 처형하다 보니 신변에 위협을 느낀 해외 거주자들은 탈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태 공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더욱이 일부 언론에 보도됐듯 북한의 유럽자금 총책이 4000억 원가량의 비자금을 갖고 잠적했다면 태 공사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금 규모로 볼 때 태 공사에 대한 처형도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여기에 태 공사를 둘러싼 ‘배달사고설’도 태 공사를 불안하게 해 탈북을 감행하게 했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오랜 외국 공관 생활에서, 더구나 자금에 관여하는 외교관 치고 일부라도 자금에 손을 안 댄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할 때 태 공사 또한 약점이 있을 수 있다고 소식통은 분석했다.

소식통은 특히 한 장의 사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해왔다. 지난해 5월 김정은 위원장의 친형 김정철 에릭 클랩튼의 런던 공연장을 찾았을 때 옆에서 에스코트하던 태 공사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소식통은 김정철 같은 김씨 일가 권력 패밀리가 단순히 에릭 클랩튼 공연을 보기 위해 런던을 찾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해외 공관원의 자금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단속과 감시가 강화됐다고 한다. 김정철의 런던 방문은 그러한 차원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신뢰할 만한 인물이 유럽을 찾은 것이다. 다시말해 유럽의 북한 자금에 관여하는 태 공사 등의 행태에 무엇인가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그 사진은 태 공사의 탈북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소식통의 분석이다.

북한 자금난 심각, 탈북 행렬 잇따를 듯

태 공사의 귀순을 전후해 북환 고위급, 엘리트들의 탈북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탈북 동기는 관련자들마다 다르겠지만 ‘돈 문제’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실 북한 당ㆍ군 간부들의 탈북과 망명은 2010년 들어서 은밀하게 진행돼 왔다. 그러한 움직임이 북한 내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2013년 12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된 이후다.

신문과 국정원은 북한 간부들의 탈북 러시가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 때문이라고 하지만 본질은 다른데 있다는 게 북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젊은 김정은이 취약한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공포정치를 하기 때문에 북한 간부들이 탈북과 망명을 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책무’를 이행하기 어려운 데 따라 숙청 등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해 탈북을 감행한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는 김정은 체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추궁을 두려워해 탈북을 결행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탈북과 망명에 관계된 북한 인사들이 주로 해외에 파견된 간부이거나 외화벌이 일꾼, 노동당 39호실 관계자 등 '돈'과 관련된 사람들이란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이는 2014년 8월 발생한 북한 조선대성은행 수석대표 윤태영 망명으로 확인됐다. 당시 김정은은 비밀 통치 자금의 근간이 되는 해외 자금 실적이 떨어지자 해외 주재 금융 담당자들을 국내로 불러들였다. 그들에 대한 책임 추궁과 함께 담당자를 교체하기 위한 조치였다. 윤태영 망명 사건은 그러한 배경에서 터진 것이다.

대북 소식통과 국제관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외에 근무하는 공관원이나 무역 관계자 들 중 탈북하는 인사 대다수가 ‘돈’과 관련된 부서에서 일하거나 보조하는 인물이다.

북한의 핵ㆍ 미사일 실험으로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북한으로 송금되는 자금 루투는 감시대상이 되고 세계 각국이 통제하면서 북한의 자금 압박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만큼 해외에 주재하는 북한 외교관이나 무역 일꾼들에 대한 자금 요구는 거세지고 신변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최룡해 리우로, 리수용 아프리카로 간 이유

최룡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올림픽이 열리는 브라질 방문하고 약 1주일 머물다 귀국했다. 이를 두고 국내 대다수 언론은 ‘스포츠 외교 실패’ ‘김정은의 스포츠 활용 선전 실패’등으로 보도했다. 최룡해 부위원장의 브라질 행보를 ‘스포츠’에 맞춰 보도한 것이다.

최 부위원장은 리우에 머무르는 동안 각국 정상급 인사들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등과 접촉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간혹 북한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를 관람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최 부위원장이 브라질을 방문한 ‘진짜 이유’는 올림픽이 관심이 아니라 남미의 북한자금 회수가 주목적이라는 게 북한 소식통의 설명이다. 올림픽과 관련된 부분이 있다면 성적보다 선수들의 ‘탈출’을 더 염려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뢰할 수 있는 최 부위원장을 보낸 것도 ‘자금’ 때문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최 부위원장이 귀국 전 쿠바를 들린 것도 북한 무기 판매와 관련됐을 수 있다고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의심했다.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11일 아프리카 순방에 나선 것도 ‘돈’때문이라는 게 북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특히 태 공사의 망명 사실이 알려진 뒤 북한은 리수용 부위원장을 급하게 아프리카로 보냈다는 것이다. 제2, 제3의 태 공사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였다고 한다.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김정은 체제는 비상이 걸렸다. 가장 신뢰하는 인물들을 전 세계 대륙에 보내 북한으로 들어 올 자금 회수에 나서고 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할 경우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한국행이 이어질 경우 국지전이나 서해교전 같은 도발을 감행해 남한 행렬을 막으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핵ㆍ경제 병진정책을 추구하면서 남한을 압박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속셈이 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태 공사 등의 탈북이 남북관계에 어떠한 방향으로 후폭풍을 몰고올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북한 ‘위폐’ 의혹도 불거져

태 공사의 망명과 관련해 북한이 ‘위폐’를 만든 것과 관련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선 북한의 유럽자금 총책이라는 김영철(가명)이 어떻게 400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마련했는가 하는 점이다. 유럽에서 북한에 송금할 자금을 다 모아도 그런 거금을 확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대북 소식통의 설명이다.

때문에 국제관계 전문가 중 일부는 북한이 영국화폐(파운드)를 위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한 관계자는 세계에서 영국 화폐 가치가 가장 높기 때문에 위조의 유혹이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김영철이 4000억 원가량의 비자금을 갖고 잠적했다는 부분이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북한에 송금할 자금이 100억만 되도 개인이 다룰 수 없는데 그보다 40배나 넘는 자금을 개인이 갖고 잠적했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 공사가 영국에서 한국으로 직행편으로 온 것은 한국 정부와 영국 간에 사전 조율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태 공사의 신변 안전이 중요하고 무언가 큰 비밀을 갖고 있다는 추정도 가능해진다.

만일 태 공사의 귀순이 북한 위폐와 관련 있다면 국제적 문제가 될 수 있고 북한은 위기에처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태 공사의 망명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 예상된다. 그만큼 우리 정부 입장에선 태 공사를 신속하게 입국시킬 필요성이 커진다.

태 공사의 귀순 배경이 더욱 궁금해지는 또 다른 이유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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