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야권 잠룡들의 움직임에 여권 긴장

문재인 안철 수 등 광폭행보… ‘통합대권 물밑조율’ 소문에 촉각

박지원 김부겸 등 야권 간판급 대권 플랜 그림 구상 중

야권 주요인사들 움직임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권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두고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문재인 안철수 김종인 등 야권의 핵심인사들은 지난 18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 서거 7주기 추도식을 맞아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주목을 끈 부분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호남을 텃밭으로 하는 예비 대선주자 등 야권 핵심인사들의 참석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거행된 추도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와 추모위원장을 맡은 정세균 국회의장의 추모사 낭독으로 시작됐다.

정 의장은 “당신께서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 가셨다”며 민주화 운동과 햇볕정책, 정권교체, 외환위기 극복 등에 평생을 바친 DJ의 업적을 기렸다.

그는 DJ의 유지가 철학적으로는 ‘행동하는 양심’, 정치적으로는 ‘통합의 정신’, 정책적으로는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평화의 3대 위기를 극복하라’는 것이라며 이를 계승하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진행된 환담에는 DJ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정 의장,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참석했다. 이외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국민의당 상임고문,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등도 참석했다.

이날 차기 대권을 노리는 야권 유력 대선주자들의 표정에 시선이 집중됐다. 특히 라이벌인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 공동대표가 어떤 대화를 나눌지 참석자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이날 조우는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만난 이후 석 달 만이다.

야권 잠룡들 상호 신경전

최근 친노(친노무현)ㆍ친문(친문재인)계와의 불편한 관계를 대변하듯 김종인 대표의 표정은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안부를 묻는 문 전 대표의 인사에 김 대표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화환을 보냈으며,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역 행사 일정 탓에 이날 먼저 홀로 DJ 묘소를 참배했다. 지난 7일 DJ 생가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석했던 손학규 더민주 전 고문은 이날 불참했다.

‘야권 통합을 통한 정권 교체’와 관련해 문 전 대표는 “지난 총선 과정에서 야권이 서로 경쟁했지만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다들 뜻을 함께 하게 되리라고 믿는다”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당과의 야권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안 전 대표와 향후 이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겠냐는 질문에 문 전 대표는 “저희가 어떤 방식이든 함께 힘을 모아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낼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안 전 대표는 야권 연대와 관련한 질문에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 궁금증을 자아냈다.

안 전 대표는 “많은 어려움이 우리 앞에 직면해 있지만 (김 대통령이) 남긴 말씀과 그 원칙들을 명심해서 이런 위기를 꼭 극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와 야권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 참석자들의 질문에는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아직은 고민 중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야권의 지도부와 대권주자들은 제71주년 광복절 때도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들은 ‘애국’과 ‘안보’와 관련해 중도와 보수진영을 아우르는 행보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행보에는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려는 전략적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야권 안팎에서는 8·27 전당대회 직후부터 대권경쟁이 조기에 점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대권 잠룡들은 지난 15일 광복절 메시지를 내놓으며 애국ㆍ안보 의제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 김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정부 공식행사인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나란히 참석했다.

문 전 대표는 천안함 폭침사건의 현장 부근인 백령도 1박2일 방문 일정을 마친 직후인 지난 13일 경남 양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천 자유공원을 방문했다. 지난달에는 2박3일 일정으로 독도ㆍ울릉도를 찾아 영토주권의 중요성을 강조한데 이어 안보행보를 이어갔다.

특히 인천 자유공원(옛 만국공원) 인천상륙작전을 이끈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근간을 이루는 한성임시정부의 조직이 정비되고 조각(組閣)이 확정된 역사적 상징성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8월 이후 야권 경쟁 본격화

문 전 대표, 안 전 대표와 더불어 야권의 잠룡인 손학규 더민주 전 상임고문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비공개 단독 회동을 가진 것으로 최근 알려져 대권을 위한 야권 연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더민주는 오는 26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에 손 전 대표의 정계복귀가 추석쯤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 두 사람의 만남 소식이 전해지자 야권뿐만 아니라 여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 전 대표가 차기 대권 간판으로 꼽히고 있는 가운데 박 시장과 손 전 고문이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두고 여러 추측과 관측이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박 시장이 지난 16일 전남 강진 백련사 인근 토담집에 칩거 중인 손 전 고문을 방문하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난 2월 손 전 고문의 사위 빈소에서 만난 이후 처음이다.

손 전 고문은 토담집에서 박 시장에게 차를 대접한 뒤 강진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했다.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눴으며, 청년실업문제와 경제난 등 현 정국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후 정국에서 서로 협력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8ㆍ27전당대회와 이후 야당 내 정치지형 변화 등에 대해 긴밀한 논의를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두 사람이 야권의 대권주자와 관련해 야권 연대 방안을 놓고 시나리오를 논의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손 전 고문과 박 시장은 경기고 동문으로, 박 시장이 시민사회 활동을 하고 손 전 고문이 경기도지사를 지낼 당시에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 시장이 야권통합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손 전 고문이 박 시장을 지원사격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시장 측은 “강진을 지나다가 들른 것으로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손 전 고문 측도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에 국민당 박 비대위원장의 행보도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박 비대위원장은 직접 나서서 손 전 고문과 정운찬 전 총리 영입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박 비대위원장은 광복절 이후 손 전 고문을 만날 것이라는 입장도 밝힌 상태다.

야권의 한 소식통은 “손 전 고문 지난 5.18 행사 참석차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새판 짜기’에 대해 언급한 적 있다. 이를 감안할 때 향후 독자 행보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 중 야권의 대권 후보 구도가 굳어지기 전에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대권 잠룡으로 꼽히는 현역 광역단체장들의 대권 플랜 행보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의 선택 대권 변수되나

국민의당 내부는 물론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안철수ㆍ천정배 전 공동대표가 차기 대권에 핵심키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최근 2012년 대선 당시부터 이어온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진 등 조직을 개편하며 활동을 본격화고 있다. 천 전 대표도 자신의 지지모임과 싱크탱크 역할을 겸할 가칭 ‘자구구국(自救救國)’ 포럼 준비를 통해 대권을 준비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각자의 싱크탱크를 통해 내년 대선공약의 뼈대를 만들고 필요한 정책개발을 하기 위한 움직임 아니냐”고 분석한다.

정책네트워크 '내일'은 2012년 대선 당시 안 전 대표를 돕는 외각 자문기구로 출범해 안 전 대표의 정치적인 기반 역할을 해왔다. 2013년 새정치민주연합 시절과 올해 국민의당 창당 작업에도 기여를 했다.

‘내일’은 최근 열린 사원총회를 통해 조직을 재정비했다. 안 전 대표의 뒤를 이을 새 이사장으로 안 전 대표의 후원회장을 지낸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가 선임됐다. 8명의 이사진에는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성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이옥 덕성여대 명예교수, 정연호 변호사,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학과 교수 등이 포함됐다.

구국 포럼은 천 전 대표의 ‘호남개혁 정치 복원’을 위해 사회ㆍ경제ㆍ외교ㆍ안보 등 이슈에 대해 공부하고 이를 정책 및 대선공약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구국 포럼은 천 전 대표가 ‘김수민 사태'의 책임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주변 인사들이 싱크탱크의 필요성을 주장, 본격적인 출범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포럼에는 박주현ㆍ장정숙 의원과 부좌현 당 수석사무부총장, 이행자 당 부대변인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국민회의 창당추진위에 이름을 올렸던 신광영 중앙대 교수도 함께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안ㆍ천 전 대표 진영의 이 같은 움직임 배후에 박 위원장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박 위원장은 최근 안 전 대표에게 ‘이제는 움직일 때가 됐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근 더민주 당권에 도전하는 주자들이 ‘야권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8ㆍ27 더민주 당권 경쟁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은 ‘정권교체’와 더불어 ‘야권연합전선구축’이다. 더민주는 내년 대선에서 국민의당, 정의당과 연대해야만 승리를 내다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선의 특성상 총선과 달리 3당 구조로 가서는 대선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

송영길 의원은 최근 “호남민심을 회복하고 야권통합을 이뤄나가겠다. 야권분열 상태로 대선에서 승리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국민의당, 정의당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송 의원은 “우선 전대가 끝나면 사드 배치 문제나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 등 현안 위주로 폭넓은 야권에서의 신뢰를 쌓겠다”면서 “이후 자연스럽게 정계개편 등 논의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당권을 놓고 송 의원과 경쟁 중인 추미애 의원 역시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대당 통합과 세력간 지지자의 통합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뒤늦게 당권 레이스에 뛰어든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 역시 마찬가지 의견이다. 그는 최근 “총선에서 야권이 공동 제시한 공약 시행을 위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당대표가 되면 야권연대와 통합까지 포함한 방식을 논의하려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이를 일축하고 오히려 각을 세우고 있다. 내년 대선정국에서의 야권 주도권을 놓고 더민주당과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박 비대위원장도 일단은 반대 입장이다. 그는 “(4ㆍ13 총선에서) 야권이 이렇게 분열된 상태에서 승리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3당 체제를 결정한 것이 총선 민의”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사안별 공조는 가능하지만 당대당 통합 논의는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