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2인자’ 이인원 자살로 수사 차질 불가피…오너 일가 소환 난항

해외 은닉자금 추적 비자금 결정적 단서 캘 방법 없어 고민

롯데그룹 2인자이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원(69)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지난 26일 검찰 출석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검찰의 롯데 수사가 최대 고비를 맞은 분위기다.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 수사의 핵심키로 꼽혔다. 그런 그가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검찰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이번 사건으로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과정에 정책본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확인하는데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 신동빈(61) 회장 등 롯데그룹 오너 일가에 대한 수사 일정 자체도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일단 검찰은 표정관리에 신경 쓰는 모습이다. 이 부회장의 장례 일정 등을 고려해 예정됐던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소환 일정을 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수사 일정을 잠시 뒤로 미루게 됐지만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이 부회장 이후 3~4명을 추가로 소환한 뒤 9월 초 신 회장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었다.

소진세(66)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총괄사장),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격호(94)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인 서미경(57)씨 등이 소환 대상자로 거론됐다. 검찰은 장례식이 끝나고 분위기가 진정되는 대로 다시 수사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유감이고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고인에게 애도를 표하며 명복을 빈다. 주말에 수사팀과 함께 소환 일정과 향후 수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재검토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당혹감에도 여론 의식

검찰은 20시간 넘게 검찰 조사를 받은 황각규(61)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에 대한 재소환도 고려했지만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 부회장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에서는 검찰의 수사관행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검찰의 롯데 수사가 탄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주를 이룬다. 이에 검찰은 소환 일정 등에 대한 조정만 있을 뿐 기존에 진행되던 수사 방향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 부회장 조사 없이도 그동안 진행한 수사를 통해 포착한 혐의가 상당해 계획됐던 소환 대상자들을 불러들이는 데는 무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신 회장 등 오너 일가에 대한 혐의 입증 역시 큰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다. 이 부회장의 진술 없이도 혐의를 입증할만한 물적 증거가 다수 확보돼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이러한 자신감에도 법조계 일부에서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정책본부가 각 계열사의 비자금 조성 과정에 어떤 식으로 관여했는지, 각 계열사에서 조성한 비자금이 정책본부로 어떤 방식으로 흘러들어갔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해 구속영장 기각 등 변수를 만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검찰 입장에서 뼈아플 수밖에 없다. 비자금 조성 과정에 정책본부의 관여나 지시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의 진술이 중요하다. 이 부회장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소환조사만으로도 다음 단계로 수사를 몰고 갈 동력이 될 수 있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자살로 수사가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지금까지 롯데 수사에서 이렇다하게 나온 게 없는 상황에 이런 일이 생겨 윗선에서 수사 마무리를 지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6일 오전 7시11분께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한 호텔 뒤편 야산 산책로에서 주민에 의해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 부회장이 숨진 현장 30~4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차량에서는 A4 용지 4장 분량의 유서가 확인됐다. 유족과 롯데 임직원 앞으로 남긴 유서에는 “먼저 가서 미안하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 “롯데그룹 비자금은 없었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검찰 수사와 관련된 언급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소환을 앞두고 경기 양평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롯데그룹 이 부회장은 그룹 경영과 관련해 배임·횡령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 2인자이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경북사대부고를 나와 한국외대 일본어학과를 졸업한 뒤 1973년 호텔롯데에 입사해 롯데쇼핑 대표이사를 맡는 등 43년간 재직해왔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이 부회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정책본부 수장으로, 총수 일가와 그룹 대소사는 물론 계열사 경영까지 총괄하는 위치였다. 20년 넘게 그룹 핵심부에서 일해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로도 손꼽혔다. 2007년 운영본부장 자리에 오른 그는 신 회장을 가까이서 보좌하며 믿음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비자금은 없다” 빗나간 충심

검찰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신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 친인척 관련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 간 부당지원 등 그룹 내 경영비리 전반을 조사할 방침이었다.

그룹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롯데제주ㆍ부여리조트 헐값 인수ㆍ합병 의혹,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 과정에서의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 롯데시네마 등 주요 계열사의 신 회장 친인척 기업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등이 주요 조사 대상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6천억원대 탈세 의혹, 롯데건설의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롯데케미칼이 원료 수입 과정에서 일본 롯데물산을 끼워 넣어 200억원대 통행세를 지급했다는 의혹 등도 검찰이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검찰은 롯데 비자금과 관련해 해외 조세피난처에 묻혀있는 자금을 살피고 있다. 조세당국에 따르면 롯데는 해외에 수십 개의 비자금 관리를 위한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검찰은 해외 비자금 조성 정황을 포착하고 해외 지사 자금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 자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해외 자금은 그 특성상 연결고리를 규명하기 매우 힘들다. 따라서 관련자들의 진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부회장의 자살로 검찰은 큰 단서 하나를 잃은 셈이다.

검찰은 롯데에서 자금관리 업무를 맡아 일했던 전직 롯데 관계자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입수한 롯데의 해외 비자금 조성 정황을 살펴보면 롯데는 세금탈루의 목적으로 법인과 사업장을 따로 두는 방법을 취했는데, 법인 소재지는 조세피난처에 두고 실제 사업장은 딴 곳에 두고 운영하는 수법으로 거액의 세금을 포탈했다는 것이다.

이를 진두지휘한 인물은 대부분 일본계 롯데 관계자들인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 비자금 관리 영역 안에는 롯데그룹의 핵심 인물들이 포함돼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이 부회장인 것으로 지목됐다.

이 부회장이 “비자금은 없다”고 유서에 적어 놓긴 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행위는 유서와 상반된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비자금이 없고 문제 될 내용이 없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세무당국 등 사정기관의 조사에서 드러난 롯데의 행적을 보면 이 부회장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 힘들다.

조세 당국에 따르면 롯데그룹이 조세피난처(tax haven)로 지정된 각 나라에 잇따라 법인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조세피난처의 조세법을 교묘히 이용해 세금을 탈루해온 것으로 조세당국은 보고 있다.

롯데는 이명박 정부 당시 한해에만 조세피난처 3곳에 연달아 법인을 설립했다. 롯데그룹이 각 나라에 법인 계열사를 잇달아 설립하자 재계를 비롯해 사정기관에서는 여러 첩보가 돌았지만 당시 정권의 힘을 등에 업은 롯데는 국세청의 탈세 조사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다.

롯데의 탈세 꼼수 몰랐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던 때인 2008년 네덜란드에 부동산개발법인을 설립했다. 당시 이 회사 자본금은 모두 4990만 유로, 법인설립 때를 기준으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523억3013만원이다. 이 때 든 비용은 100% 롯데건설이 부담한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롯데쇼핑은 네덜란드 현지 계열사를 관리ㆍ감독할 수 있는 지주회사부터 세웠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부동산개발회사를 설립하기 약 4개월 전인 지난 1월 14일 네덜란드홀딩스컴퍼니를 먼저 설립했다. 이 회사의 자본금은 1만8000유로로 설립 당시 환율로 이를 환산하면 2432만5740원으로 이 돈은 호텔롯데가 100% 출자했다.

네덜란드는 다른 조세피난처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은 조세피난처의 가려진 명소다. 네덜란드는 지난 1997년 조세법 개정을 통해 지주회사에서 거래되는 로열티에 대해 면세 혜택을 부여하는 조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또 네덜란드에 있는 금융지주회사는 이윤의 80%를 유보금으로 인정받고 세율도 7%에 불과하다. 주주 배당금 또는 자본 소득에 대해서도 면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롯데건설을 앞세워 홍콩에 시공종합도급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명박 정권 때 급한 듯이 설립된 롯데그룹의 해외법인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모두 조세피난처에 설립됐다는 점이다.

롯데가 법인을 설립한 홍콩도 세금을 피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홍콩은 외국 자본에 대해 전혀 과세를 부과하지 않거나 극히 낮은 세율을 적용해 부과한다.

조세 당국의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해외사업장이 있는 곳에 해당법인을 세우지 않고 근처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하는 꼼수를 부렸다”며 “롯데그룹은 러시아에 백화점과 호텔, 비즈니스센터 등을 운영하면서도 러시아가 아닌 네덜란드에 해당 법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 10억달러 규모의 주상복합단지를 개발할 때도 법인은 홍콩에 세워 세금을 피했다.

한편 검찰 수사는 신동빈 회장 등 총수 일가의 횡령ㆍ배임ㆍ탈세 비리에 초점이 맞춰진 상태다.

검찰은 신격호(94)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계열사에서 매년 300억원대 자금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자금 성격을 파악하면서 자금을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금 추적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에 따른 장례 일정 등을 고려하면 검찰이 애초 계획한 것보다는 수사가 다소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추석 전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당초 복안도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룹 비리의 정점에 있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인 서미경(57)씨 등에 대한 소환 방침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이 밖에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에 43년간 몸 담으면서 신격호 총괄회장에 이어 신동빈 회장의 총애를 받은 정통 ‘롯데맨’이다. 자금관리를 비롯해 그룹 주요 경영사항은 이 부회장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상북도 경산시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 한국외대 일본어학과를 졸업했다. 이 부회장은 2011년 롯데에서 전문경영인 최초로 부회장에 올랐을 만큼 신씨 일가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 1987년 롯데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긴 이 부회장은 관리ㆍ상품 구매ㆍ영업 등 백화점 주요 요직을 거친 후 1997년 롯데백화점 대표로 고속 승진했다. 이 부회장은 롯데쇼핑 대표이사 시절 우려스러운 부분은 끝까지 직접 관리하는 철두철미함과 갑작스럽게 주요 백화점 매장을 방문해 벌이는 불시 현장점검으로 유명했다.

소공동 1번지 일대 ‘롯데타운’을 총지휘한 인물도 이 부회장이다. 그는 ‘거화취실(去華就實ㆍ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이라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론을 바탕으로 대규모 공사들을 순조롭게 마무리해냈다.

이 부회장은 신씨 일가의 신뢰를 바탕으로 2007년 2월에는 ‘롯데그룹의 관제탑’ 정책본부 부본부장에 올랐다. 이 자리는 롯데그룹 계열사 전반에 걸쳐 자금을 관리하고 경영 상황을 검토하는 요직이다.

신격호 총괄회장 대신 신동빈 회장 옆에서 경영 활동을 직접 돕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로 예측된다. 정책본부에서 그는 ‘롯데그룹의 핵심사업을 관장하며 그룹 경영 체질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 내에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는 인물로 자리를 굳혔다. 두 사람 모두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해 본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40년간 거의 모든 그룹 내 핵심 요직을 다 거쳤기 때문에 이 부회장은 롯데에 대해 속살까지 훤히 다 알고 있는 집사로 알려졌다. 신동빈 회장에게 올라가는 모든 보고는 이인원 부회장을 거친다.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이 곤란한 일을 겪을 때마다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을 맡기도 했다. 최근에는 롯데그룹 숙원 사업이었던 서울 잠실 제2 롯데월드 사업장이 안전문제로 어려움을 겪자 ‘안전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