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역린(逆鱗)을 건드린 이들에 보복성 사정기획설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 대한 추가 의혹제기 임박 소문도

검찰이 4ㆍ13총선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를 통해 야권 의원들이 대거 기소되면서 정치권에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야권에서는 야당의원들에 대한 검찰의 무더기 기소가 ‘야권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함과 동시에 청와대에 대한 전면전 선포와 야권연합전선구축 그리고 검찰개혁을 발 빠르게 추진하고 있어 이번 무더기 기소 파장은 상당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추미애 대표 윤호중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 포함 대거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편파적’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야당의원 무더기 기소를 둘러싼 새누리당 내부의 미묘한 분위기다. 친박을 중심으로 한 여권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강조, ‘추 대표 사퇴’를 촉구하며 강하게 맞서고 있지만 비박계 내부에서는 이에 적극 힘을 싣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는 청와대가 입김을 불어넣지 않고는 이런 일이 발생하기 어렵다며 야권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이에 비박계가 친박 몰이를 위해 야권연합전선에 힘을 보태는 것 아니냐는 다소 억지스러운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청와대-검찰 심판론 확산

미르ㆍK스포츠 재단 의혹, 우병우 등을 둘러싸고 대치 중인 가운데 여-야 관계, 청와대-야권 관계는 한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미 박근혜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데다 친박 실세들에 대한 여러 의혹이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어 악화일로는 차기 대선까지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검찰은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일인 지난 13일 새누리당 11명, 더불어민주당 16명, 국민의당 4명, 무소속 2명까지 총 33명을 재판에 넘긴 상태다.

새누리당에서는 강길부(울산 울주)·권석창(충북 제천·단양)·김종태(경북 상주·의성·군위·청송)·박성중(서울 서초을)·박찬우(충남 천안갑)·장석춘(대구 구미을)·장제원(부산 사상)·황영철(강원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김한표(경남 거제)·이철규(강원 동해·삼척)·함진규 의원(경기 시흥갑) 등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 외에 강석진 의원(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은 부인이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됐다. 이군현 의원(경남 통영·고성)은 총선과 무관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강훈식(충남 아산을)·김진표(경기 수원무)·김한정(경기 남양주을)·박재호(부산 남구을)·송기헌(강원 원주을)·오영훈(제주을)·유동수(인천 계양갑)·윤호중(경기 구리)·이원욱(경기 화성을)·진선미(서울 강동갑)·추미애(서울 광진을)·송영길(인천 계양갑)·최명길(서울 송파을)·김철민(경기 안산상록을)·박영선(서울 구로을)·이재정 의원(비례대표) 등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국민의당은 김수민·박선숙 의원(비례대표)과 박준영(전남 영암·무안·신안)·이용주 의원(전남 여수갑) 등이, 무소속으로는 서영교(서울 중랑갑)·윤종오 의원(울산 북구)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국회의원 당선인은 징역형 또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을 경우 의원직을 상실한다. 선거사무장·회계책임자나 배우자 등 직계존비속이 징역형 또는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을 경우에도 당선이 취소된다. 19대 국회 땐 기소된 30명 가운데 10명이 의원직을 잃었다.

이에 대해 추미애 대표 등이 기소된 더민주는 물론 국민의당, 정의당은 검찰의 기소가 ‘정치공작’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청와대와 전면전을 벌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민주는 추 대표가 기소된 만큼 전해철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선실세·국정농단·편파기소 대책위원회’ 설치를 의결하는 등 대응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민주는 기소자가 결정된 지난 13일 긴급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검찰의 기소를 규탄하는 한편, 오후엔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검찰의 불공정 수사를 성토했다.

더민주는 결의문을 통해 “지도부 무더기 기소는 최순실 등 비선실세 국정농단을 덮고, 진실을 규명하는 야당에 재갈을 물리는 보복기소이자 야당 탄압으로 정국을 돌파하겠다는 선전포고”라면서 “박근혜 정부의 표적기소에 대해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금태섭 대변인은 “총선민심을 6개월 만에 외면하는 청와대와 개혁을 피하려는 검찰의 합작품이 ‘친박무죄, 야당유죄’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비난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지역을 옮기지 않으면 뒤를 캐겠다’며 대놓고 공갈 협박을 자행한 최경환, 윤상현, 현기환이 무혐의인데, 제1야당 대표의 말 한마디를 꼬투리 잡아 기소한 것은 난센스 그 자체”라며 전면적인 검찰개혁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여권이 강하게 반발하는데 반해 새누리당은 검찰의 선거법 위반 기소와 관련 야권을 압박했다.

김명연 원내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추미애 대표는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위해 야당 대표직을 내려놔야 한다”며 “야당은 검찰의 수사를 정치적 탄압으로 비화하지 말고 검찰의 공정한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당 내 비주류인 비박계 인사들은 여권의 이같은 대응을 냉랭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비박계 안팎에서는 “이번 검찰 기소 결정은 납득이 어렵다”며 “이런 시국에 이 같은 일이 발생하면 누가 공교롭다고 보아 넘기겠나. 청와대와 검찰이 자신들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에 더 큰 위기를 초래한 꼴”이라고 한탄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박계의 한 인사는 “새누리당의 위기는 향후 보궐선거에서 명확히 드러날 것”이라며 “지금 정국을 보는 국민의 시각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어 “국민은 지금 검찰을 불신하고 있다. 그런 검찰이 하필이면 지금 이런 결과를 내놓으면 ‘야권탄압’이 아니더라도 ‘야권탄압’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비박계 인사는 “이번 검찰 기소 내용을 보면 그 의도가 너무 분명하다”며 “정확한 진위를 가려내기 애매하고 사실관계를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보여지면 무조건 기소처리 했다. 교묘하게 법을 이용한 장난”이라고 검찰을 비판했다.

여러 의혹으로 팽팽한 대치

야권이 이같이 반발하자 청와대는 지난 14일 “(총선사범 기소는) 검찰의 판단이고 검찰에서 한 일”이라고 밝혔다.

또 청와대는 21일로 예정된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우 민정수석은 관례에 따라 불출석하고,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출석할 것임을 시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 수석 국감 출석 여부에 대해 ‘관례대로’라고 거듭 밝힌 뒤 안 수석에 대해선 “본래 운영위에 나갔다”고 답했다.

새누리당은 청와대와 움직임을 같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4ㆍ13 총선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일인 13일까지 여야 정치인들이 대거 기소된 데 대해 “법은 만인에 평등하다”며 엄정한 재판을 촉구하면서 야권을 압박했다. 추 대표의 기소를 두고 야권이 ‘야당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것을 두고는 “야당 대표는 성역도, 치외법권 대상도 아니다”고 일축했다.

김성원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야당 탄압이라거나 보복성 기소라며 반발하는 것은 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초법적 자세”라며 “이야말로 법질서 탄압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다”며 “툭하면 검찰의 엄정중립을 강조했던 야당 아닌가”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지금 여권이 검찰수사를 조작하고 좌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여권이라고 해서 검찰을 조종해 의원의 기소를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야권이 여권을 겨냥해 검찰합작이니 정치공작이니 하는 말을 쏟아내는 것은 위기를 교묘히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더민주는 청와대와 더불어 검찰과의 전면전도 추진 중이다. 추 대표 등 당 지도부를 포함한 소속 의원들에 대한 무더기 기소와 관련, 검찰개혁에 사활을 걸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더민주는 이번 검찰기소를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등 비리의혹 관련 공세에 대한 청와대 측의 사정공작으로 규정하고 칼을 갈고 있다.

비선실세·국정농단·편파기소 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킨 더민주 등 야권은 검찰개혁을 무기 삼아 검찰의 ‘야당탄압’에 맞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추 대표는 “제1야당 대표조차 기소한 걸 보면 검찰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정치검찰로 막가기로 한 모양”이라며 “검찰이 야당 당대표를 포함해 정책위의장, 대변인을 한꺼번에 기소한 것은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최순실 게이트와 우병우 비리 사건을 덮기 위한 치졸한 정치공작이자 보복성 야당탄압”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향한 전 방위 공격

더민주는 이번 기소를 사실상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작품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여러 군데 탐문한 결과 (이번 기소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작품이라는 것이 확인됐다”며 “민정수석이 개인감정을 갖고 야당과 전면전을 선언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더민주는 지난 8월 박범계 의원이 대표발의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처리를 조속히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공수처설치 법안을 당론으로 공동발의한 국민의당과의 공조 가능성도 관측된다. 공수처 법안이 마련되면 검찰이 그동안 독점적으로 행사해 온 기소권은 분산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검찰의 힘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내외부적으로 견제에 시달리게 된다.

우 수석은 운영위에서 이미 의결한 기관증인에 포함됐지만 청와대에선 “민정수석의 국감 불출석은 관례”라며 불출석 방침을 천명한 상태다. 하지만 더민주는 내주 예정된 국회 운영위원회 국감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의 증인출석을 강하게 요구할 전망이다.

야권과 더불어 비박계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이번에 기소된 새누리당 의원 10명과 배우자·사무국장·선거사무장 등 3명 중 친박계는 강석진·장석춘·박찬우 의원 등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서다. 반면 공천 과정에 개입한 녹취록이 공개돼 고발된 최경환·윤상현 새누리당 의원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모두 무혐이 처리되자 “친박만 봐주는 것이냐”는 불만이 제기됐다.

여당 내 비주류인 비박계가 친박계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검찰 기소를 우려했던 비박계 의원들이 친박 중심의 당 지도부나 현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키울 것이라는 말이 정가에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기소 위기를 넘긴 비박계가 친박계에 대한 야권의 공세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심지어 이미 비박의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말과 함께 “비박계가 청와대 X파일을 문제삼기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게 나온다.

청와대 X파일은 정윤회 최순실을 비롯해 문고리 권력으로 꼽힌 친박 실세 그리고 우병우 수석에 대한 여러 의혹을 가리킨다. 최근 미르재단과 최순실씨의 뒤를 이어 최씨의 딸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데, 머지않은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 측근과 친박 실세들에 대한 여러 의혹제기가 수면위로 부상할 것이라는 말이 파다하다.

이에 청와대 주변에선 이번 무더기 기소로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와 여권이 상당한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분석한다. 무엇보다 청와대 안팎에서 우 수석이 국감 이후 사퇴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해 우 수석이라는 병풍이 사라질 경우 청와대가 야권의 협공을 어떻게 버틸지 관심이 모아진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