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정권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로 헌정 중단 사태가 발생하거나 거국 중립내각이 출범해소 조기에 대선이 치러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심각한 문제

전대미문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역대 정부에서 발생한 비서실세 개입 논란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대통령의 친ㆍ인척이 아닌 아무 권한이 없는 일개 개인에 의해 저질러졌다. 지난 10월 24일 최순실이 쓰던 태블릿 PC를 확보해 분석했던 JTBC는 박 대통령 연설문 44개 등 200여개의 파일을 확인했다. 아무런 권한도 없는 최씨가 연설문을 미리 받아보고 수정까지 했다니 어이가 없다.

둘째, 대통령의 묵인 또는 자발적 동의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 25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과거 자신이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최씨로부터 “일정 기간 도움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대통령의 비호아래 비선실세의 국정 개입이 이뤄졌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경악했다.

셋째, 연설문만이 아니라 인사, 예산, 정책에 이르기까지 국정 전반에 대한 광범위 개입이 있었다. 최씨는 연설문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의전 활동에도 깊이 개입했고, 독도 문제와 같은 극비 외교 문서도 받아보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근혜 = 낮의 대통령, 최순실 =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국민들이 분노하고 경악한 것은 아무 권한이 없는 최씨가 국정을 농단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국민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사과문에서 최씨의 도움을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했다. 하지만 JTBC 분석에 따르면. 최씨의 PC에는 2014년 3월 27일 저장된 파일까지 남아 있었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 후 1년 여 이상 최씨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뜻이다. 더구나, 최근까지 청와대 부속 비서관이 매일 밤 최씨에게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 자료를 직접 들고 왔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20일 청와대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모금에 참여했다고 했다. 두 재단의 설립 과정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핵심 참모였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 등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한 일”이라는 밝혔다. 또 안 전 수석은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 ‘직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론 최악…박 대통령 최대 위기

한국 갤럽이 지난 2012년 대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로 가장 많은 22%가 “원칙대로 할 것 같아서”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졌고 광범위한 비리와 의혹에 국민의 실망은 분노와 경악으로 이어졌다. 매일 저녁 이번 사태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 지지도는 그야말로 급락했다. 한국갤럽의 10월 넷째 주(25~27일) 조사결과, 박근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17%를 기록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사과 이후인 26~27일에 대통령 직무 지지율은 14%까지 떨어졌다. 박 대통령 지지 버팀목이던 60대 이상 연령층에서조차 긍정(36%)보다 부정(52%)이 많이 나올 정도로 박 대통령 기반 붕괴 현상이 발생했다.

지난 10월 31일 내일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더 참담하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9.2%로 대폭락하는 동시에 친박이 밀어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지지율과 새누리당 지지율도 10%대로 동반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대통령 지지율이 10% 아래로 떨어진 사례는 IMF 구제금융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6%)이후 처음이다. 반 총장은 내일신문의 지난 7월 조사에서 23.5%로 1위를 달렸지만 넉달 뒤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는 14.8%로 8.7%p나 급락하면서 2위로 밀려났다. 반면에 문재인 전 대표는 20.0%로 7월 조사(16.1%)에 비해 3.9%p 상승하면서 1위로 올라섰다. 반 총장의 지지도 급락은 보수층(39.6%→25.5%)과 새누리당 지지층(48.0%→34.1%)이 주도했다. 최순실 의혹에 분노한 박 대통령 핵심지지층이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고, 이 여파가 반 총장에까지 미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리얼미터의 일일 조사 결과도 흡사했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11월 28일 15.8%까지 추락했다. 내각책임제를 채택하는 나라에서 국정 운영 책임자의 지지도가 이 정도면 총리 또는 수상이 벌써 물러났다.

내일신문-디오피니언 11월 정례여론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도는 한 달 전 24.9%에서 15.4%로 9.5%p 급락하면서 2위로 밀렸다. 반면에 민주당은 14.7%에서 22.3%로 7.6%p 급등하면서 1위로 올라섰다.

상황이 이렇게 절박한데도 박 대통령은 ‘최순실 비선실세 국정 농단 사태’ 해결책으로 참으로 어리석은 최악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회와 사전 협의 없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로 내정했다.

여당의 친박 지도부는 “국정 정상화를 위한 강력한 의지 표현”이라고 긍정 평가를 했지만 야당은 “국민과 국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추미애 더 민주 대표는 “대통령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국무총리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국회의 총리 인사 청문회 자체를 거부하기로 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정치적 해법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저도 중대한 결심을 할 수 밖에 없다”며 향후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고 했다. 그동안 정치적 역풍을 고려해 극도로 말을 아꼈던 대통령 퇴진을 야당이 공개적으로 요구하게 이르렀다.

12일에 예정된 민중궐기대회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표의 표현대로 이 집회에 야당이 참여하는 중대 결심이 이뤄지고 수십만명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투쟁에 나서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최순실 사태가 내년 대선에 미칠 영향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국정 대혼란이 내년 대선에 미칠 영향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하야가 가져올 파장이다. 내일신문 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스스로 하야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67.3%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68조 2항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돼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하야할 경우, 하야 시점이 대선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

반기문 총장이 임기를 다 마치고 귀국하는 직후에 하야하면 대선 구도는 복잡해진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르게 되면 야권은 분열될 수밖에 없다. 1987년 1노3김 구도와 마찬가지로 야권은 문재인, 안철수, 손학규 등이 각자 출마하면서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가 만들어 질지 모른다. 반기문 총장에 대한 검증 없이 바로 대선이 치러질지도 모른다. 고도의 정치적 상상력을 동원하면 박 대통령과 친박이 최악의 상황에서 준비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둘째, 반기문 총장의 향후 정치 행보이다. 지금까지 반 총장은 내년 1월 귀국해서 정치적 행보를 시작하다가 적당한 시점에 새누리당에 입당해 경선을 통해 여권의 대권 후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는 이런 전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 같다. 반 총장은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새누리당을 선택하기 보다는 무소속 독자 행보를 할 수도 있다. 무소속 보수 후보로의 행보를 펼치다가 대선 막판에 새누리당을 흡수 통합할 수 도 있다. 내년 대선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여권 후보 단일화라는 초유의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셋째, 향후 새누리당의 행보다. 벌써부터 새누리당 비박 진영에서는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김무성, 오세훈, 남경필, 원희룡, 김무수 등 새누리당 비박계 잠룡 5명이 모여 “새누리당은 재창당의 길을 가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부득이할 경우 새누리당에서 집단 탈당해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보인다. 현재 새누리당 상황은 지난 2007년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붕괴되는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 이정현 대표가 사퇴를 거부할 경우 비박계는 새누리당을 탈당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반기문 총장을 영입하거나 제3지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도 개혁 세력과 연대할 수도 있다.

여하튼 최순실 사태가 대권가도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지금은 예측하기 참으로 힘들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르고, 열광과 환멸의 주기가 지극히 짧은 유권자의 행태로 봐선 정국 상황은 예측불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권력이 미래권력을 창출한다는 것은 물 건너갔다. 더불어 ‘반기문 대세론’도 ‘문재인 대망론’도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향후 여야 합의로 거국 총리가 탄생하고, 총리가 개헌을 주도해 조기에 대선이 치러지면 그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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