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박 대통령 정면 충돌… ‘박근혜 운명’은

특검 앞둔 검사 사생결단… 검찰 내 김수남 역할론 부상

거대한 비리 드러나자 “더 이상 권력편에 설 수 없다”

검찰이 현 정권을 심판할 수 있을지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찰이 직면한 상황을 살펴보면 더 이상 현 정권 편에 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4%대로 추락한 것을 필두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범국민적 시위, 부패한 검찰에 대한 개혁요구, 정치권의 특검도입과 박 대통령 탄핵 움직임 등은 모두 검찰의 결단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검찰 안팎에서는 지금까지 저울질을 해오던 “김수남 검찰총장이 결단을 내린 것 같다”며 향후 검찰의 강도 높은 청와대 압박을 예상한다.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와 관련해 여러 비판을 받아왔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 초기 ‘봐주기 논란’에서부터 ‘청와대 눈치 보기 논란’에 이르기까지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김기춘ㆍ황교안ㆍ우병우ㆍ김현웅 등 검찰 출신 사정라인이 조직적으로 청와대를 비호하며 검찰 수사를 막고 있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검찰의 움직임은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적 퇴진 운동이 확산되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에 이르러 검찰은 청와대를 향해 정면으로 칼을 겨누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검찰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낼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치 않다. 추측컨대 여야 정치권이 탄핵절차에 본격 착수하면서 현 정권의 퇴진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이 ‘저무는 태양’을 위한 ‘은밀한 배려’를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검찰 내부 관계자들과 검찰 주변 소식통들에 따르면 검찰은 국민적 비난과 정치권의 검찰개혁 추진을 의식해 ‘소신수사’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에 최근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서 “검찰이 버티기에 들어간 청와대를 향해 날릴 결정적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무성히 나오고 있다.

비선실세 검찰 수사 어디로

최순실(60ㆍ최서원으로 개명)씨를 구속기소한 검찰은 다음 타킷으로 박 대통령을 정면에서 지목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 입증이 ‘최순실 게이트’ 수사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관련 혐의를 밝혀내는 데 총력을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혐의 입증과 관련,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청와대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밝히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말하자면 박 대통령의 퇴진수순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내달 초로 예상되는 특검 발족 전까지 검찰 수사결과를 끌어낸다는 계획이다. 박 대통령을 직권남용ㆍ강요 혐의의 공범이자 피의자로 입건한 검찰 내 분위기는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분위기다.

검찰의 이 같은 결정 동기는 정치권발 특검추진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 야권을 중심으로 적극 추진되던 특검이 급기야 여권의 동의를 상당부분 얻는데 이르자 검찰 수뇌부도 ‘더 이상 청와대와 한 배를 타고 가기 힘들게 됐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사법부의 정점인 법원이 국민적 시위운동을 ‘정당한 국민행동’으로 규정하면서 검찰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검찰 내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미온적 수사태도는 검찰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중앙지검장 등 검찰의 핵심인사들이 일선 검사들의 ‘소신수사’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결국 수뇌부가 김수남 총장에 결단을 촉구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일단 칼을 뽑은 검찰은 박 대통령에 대해 뇌물죄 적용 여부를 포함한 포괄적 혐의입증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특검 때 청와대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검찰로 번지지 않도록 수사에 충실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특검이 실시되고 검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점화될 경우 청와대 퇴진과 더불어 검찰 개혁 요구가 들불 번지듯 할 게 분명하다. 이에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검찰 역할론’이 확산되고 있다. 제대로 수사해 국민에 필요한 검찰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에 검찰의 명운을 걸고 검찰 전체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검찰이 게이트의 핵심 사안과 그에 대한 책임을 박 대통령에 모두 몰아붙인 뒤 ‘비선실세’로 지목된 김기춘 우병우 등 검찰 출신 인사를 보호하는 이른바 ‘두 마리 토끼 사냥’ 전략을 세운 것 아니냐고 분석한다. 검찰의 수사 내용을 살펴보면 이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25일 검찰에 따르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최씨 기소 이후 삼성그룹과 국민연금, 롯데ㆍSK그룹을 동시다발 압수수색하면서 청와대를 압박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미르ㆍK스포츠재단의 강제 모금 경위, 청와대 문건 유출ㆍ인사 개입 등 최씨의 ‘국정 농단’ 의혹에 수사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김기춘 우병우 등이 최씨외 또 다른 비선실세로 지목되고 이들이 최씨와 연결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찰 수사는 주춤하는 분위기였다. 더욱이 우병우 전 수석이 키운 이들이 검찰 수뇌부의 일명 ‘우병우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자 검찰 수사는 차라리 박 대통령을 겨냥하는 뉘앙스로 바뀌었다.

이에 일각에서 “검찰의 수사 초점이 이제는 박 대통령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또 “김기춘이 직접 인사에 개입해 구축한 황교안-김수남-우병우 라인은 더 이상 청와대를 살릴 수 없는 시국이라 판단하고 결국 청와대를 버리기로 한 것”이라는 관측도 무성하다.

판도라 상자 속 든 내용

검찰의 수사방향은 철저히 박 대통령과 최씨에 맞춰진 듯 보인다. 검찰은 지난 24일 면세점 특혜 의혹과 관련해 롯데와 SK를 압수수색했다. 영장에는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적시했다. 제3자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된 피의자는 안 전 수석과 최씨 2명이다.

박 대통령도 두 기업의 추가 기금 출연과 관련해 직권남용ㆍ강요 혐의의 공범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말하자면 대통령과 관련해서도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삼성그룹과 국민연금공단 압수수색의 최종 목표 역시 박 대통령 아니냐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이를 통한 박 대통령의 혐의를 직접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다.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공단이 있고 그 산하에 다시 형식적으로 독립된 기금운용본부가 500조원의 기금 운용을 책임지고 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면세점 정책을 직접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는 재량권이라는 이름으로 피해갈 수 있다. 따라서 검찰이 이를 통해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검찰이 공단과 삼성을 압박해 박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를 캐기 위한 수단으로 이 압수수색작전을 펼쳤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최근 박 대통령에 적용이 유력한 ‘제3자 뇌물' 혐의는 공무원이 그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약속했을 때 성립된다. 이 혐의가 성립하려면 ‘부정 청탁’ 존재 입증이 가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직무를 처리하는 권한을 쥔 공직자가 부정한 청탁에 연루된 점이 명확히 확인돼야 한다.

이에 따라 검찰은 부정한 청탁의 존재와 만약 청탁이 있었다면 그로 인한 직무 왜곡에 관여한 공직자의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 검찰은 조사를 통해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직ㆍ간접적인 지시나 관여했는지에 대해서도 추가로 규명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연결고리를 모두 찾아내 혐의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면세점 추가 인가 등 정책은 청와대 결정이 장관을 거쳐 곧바로 정책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경우 다단계에 걸쳐 부당한 지시가 영향을 끼친 점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방어논리를 뚫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검찰은 당시 홍완선 전 이사가 이끌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온갖 뒷말을 감수하면서까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전문위원회를 경유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한 점 등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23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과 국민연금을 압수수색할 때 영장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 등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유라ㆍ장시호 등 최씨 일가에 대한 특혜성 지원과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지원 연결 고리가 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특가법상 알선수재는 일반인이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해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한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규정이다.

아직 남아 있는 폭탄 더 있다

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상당한 양의 약물 청와대 반입도 상당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향정신성 의약품을 비롯해 남성발기부전치료제 등이 무더기로 청와대로 반입됐고 이렇게 약물이 청와대로 들어가는 과정에 최씨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각종 추측과 루머도 확산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문제가 됐던 사라진 7시간이 이 약물들 때문 아니냐는 추측도 쏟아지듯 제기되고 있다. 이에 검찰 수사와 특검 등을 통해 이 약물들의 반입 이유와 경로 그리고 용처 등이 드러날 경우 국민적 충격파가 대한민국을 덮칠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도 있다.

검찰 주변에서 “검찰이 이 약물들에 대한 여러 첩보와 각종 자료를 이미 입수했으며, 일부 약물의 사용 내역은 대통령의 사생활 부분과 관련돼 있어 공개를 주저하고 있다”는 말도 무성하다.

이와 함께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검찰이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들의 비리를 적나라하게 공개할 수도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총수일가에 대한 사면, 면세점 재승인 등 현안을 빌미로 재벌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거나 “비선실세들이 기업을 통한 자금 모금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박 대통령이 비선실세들의 활동을 지원한 정황과 증거가 이미 넘칠 정도로 많다”고 주장하는 소리도 나온다.

현재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일부 내용을 뒷받침할 증거를 더 확보한 뒤 수사결과 공개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문고리 3인방과 최씨의 진술과 검찰 수사를 통해 확보된 증거만 털어놔도 이미 게임은 끝난 셈”이라며 “다만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이들이 대가성은 없었다거나 몰랐다고 주장하는 반박논리를 깨기 위한 자료만 더 보강하면 검찰이 할 수 있는 바는 다 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대기업 관계자들은 시종 “우리도 피해자. 억울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들에 스스로 뇌물을 줬다고 털어놓을 가능성이 낮다보고 혐의를 확정지을 물적 증거 확보에 총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 2월과 3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롯데 등 기업총수들을 독대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이들 기업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상당한 자금을 출연했다. 검찰은 이 자리에서 면세점 재승인 관련 청탁이 오고 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이 기업총수들과 면담을 가진 뒤인 지난 3월 기재부는 면세점 승인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발표했고 이에 발 맞춰 관세청은 서울 시내 면세점 4곳을 추가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조치로 지난해 11월 면세점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한 기업은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