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라야 위기의 한국 구해…대통령 독재 막을 분권형 내각책임제 바람직”

한국 상황은 국내외 쓰나미에 휩쓸린 난파선…국제적 함장이어야 해결

대통령제는 독재 속성 있어…권력 분산ㆍ통제할 수 있는 내각제 개헌 현실적

‘정권교체’는 권력 대체, 정치변화 이끄는데 한계… 또 다른 권력주의

‘정치교체’는 주권재민의 주체인 국민이 정치 제도ㆍ이념, 정치인 등 뜯어고쳐

한 나라의 좌표와 국제적 위상은 그 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해외 거주민들에게 직간접의 영향을 준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한국 상황을 바라보는 해외동포들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한민국 위상이 급락하면서 해외동포들의 당당함과 애국심도 상처를 입었다.

이중 가난한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 자리를 잡고, 조국의 발전에 기여한 동포들의 심정은 더욱 참혹하다. 김홍기 세계한인변호사협회 명예회장은 조국의 현실에 회한과 함께 걱정을 나타내면서 그래도 ‘희망’을 얘기했다. 올해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대한민국이 재도약하고 예전의 모습을 갖출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김홍기(83) 명예회장은 1964년 브라질로 해외 집단이민을 떠난 1세대로 성공산화를 써나갔다.브라질 대학에서 법학ㆍ정치학을 전공(박사)해 그곳서 교수를 겸임했고, 정계에도 진출해 IPU 브라질 의원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한인 변호사들을 결집한 세계한인변호사협회(IAKL)를 창설했으며, 현재 명예회장으로 있다.

175개국 700여 만명 해외동포의 원로로 조국을 방문한 김홍기 명예회장을 19일 만나 한국 현실에 대한 진단과 미래 발전을 위한 고견을 들었다.

-한국 방문은 얼마만입니까?

“매년 한국과 세계 각국에서 세계한인변호사협회 총회가 격년으로 열리는데 그와 관련한 논의와 한국에서 학술행사, 그밖에 여러 일로 만날 사람들이 있어 1년만에 왔어요.”

-최근 한국 상황에 대해 동포들 입장은 어떠한지요.

“걱정을 많이 해요. 화도 내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다 OECD 국가로 그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얼마나 자랑스런 조국입니까. 그런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국가의 품격이 훼손되니 참으로 부끄럽고 화가 나요. 해외동포들이 실감하는 것은 조국 못지 않아요. 오히려 더 분개하고 있어요. 국가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요.”

-국가 시스템 문제라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진 사태는 최순실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통령에 절대 권력이 있는 현행 제도, 즉 한국식 대통령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봐요. 헌법상 견제와 균형을 얘기하지만 사실상 형해화되고 대통령이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현행 법 아래서는 언제든 제2, 제3의 최순실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봐요.”

-최순실 사태가 현행 대통령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셨는데.

“한국 대통령제의 한계이기도 하죠.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문민 정부 시대가 계속됐지만 현재까지 청와궁 정치가 연장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정부(각료)는 ‘시녀’와 다름없어 청와궁의 ‘훈령’을 집행하는 기관에 불과하고, ‘대통령 제왕 왕궁’(Presidential Palace) 통치 아래 인사, 재정, 금융, 구속, 기소, 석방, 그리고 사실상의 입법권까지 3권 통합의 통치가 이뤄지고 있어요.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민주정치는 현재와 같은 대통령제에서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요.”

-현실 사태와 관련해 헌법 운영상의 문제이지 대통령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물론 제도보다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중요하죠. 그러나 현행 헙법상의 대통령제는 속성상 권력독점, 남용의 소지가 항상 잠재돼 있어요. 실제 대통령제에서의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행정부의 수반권마저 독점해 입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자의적으로 행사하는가 하면, 일단 당선되면 헌법상 명기된 임기가 보장되며, 국민은 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현실적으로 물을 수가 없어요.

대통령제에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확정돼 있고 상호간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상호 견제와 균형’(Checks & Balance)을 유지해야 하지만 대통령을 상대로는 제구실을 못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래도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예처럼 대통령제에서도 충분히 권력을 견제, 감시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번 최순실 사태에 따른 박 대통령 탄핵은 사실 헌법의 절차를 거쳤지만 사실상 국민이 한 것과 다름없어요. 한국 정치사가 보여주었듯 대통령을 국회가 탄핵소추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거이 불가능하며, 여대야소에서는 생각조차 못해요.

국회가 여소야대가 되면 정부의 기능이 마비되곤 하며, 그 반대로 여대야소가 되면 국회는 대통령의 시녀로 전락해 그의 독주, 횡포가 가능하게 되요. 이처럼 국회와 정부가 공동연대책임은 고사하고 국가운영의 효율을 위해 절실한 기능상의 협력관계가 대립 항존의 체제로 변해 국정이 마비되거나 아니면 제왕적 독제대통령제가 돼 민주주의는 질식하고 말아요. 이러한 전례는 우리의 역사에서, 또 후진국 대통령제에서 수없이 목도했지요.”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대통령제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개헌논의가 한창입니다. 법학ㆍ정치학 전문가로서 바람직한 개헌 방향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개인적으론 내각책임제를 선호해요. 내각책임제에서는 대통령은 직선이든 간선이든 국가수반이라는 권좌만 가지고 있어 권한 행사의 ‘과잉성(권력전횡)’이 크게 제약됩니다. 내각책임제는 행정부와 입법부(과반수의 여당이나 연립당)가 ‘상호절대협력관계’에 있게 되며 두 부처의 공동책임 협력체제로 돼 있어 제도의 기능과 효율 양면으로 장점을 갖고 있어요. 더욱이 현대사회에 다양한 의견과 요구를 대표하는 군소정당들도 연립의 다수국회나 연립내각에 동참해 소수의 주권도 대변 할 수 있게 됩니다.”

-개헌과 관련 국내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국민 다수는 대통령 연임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봐요. 사실 지난 정권의 절대권력시대, 34년 동안 민주주의 철학 공동(空洞) 시대에 살았어요. 군정 34년 소위 공안, 안보신경이 첨예하게 발달된 그런 정치문화 속에 살다 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국가주의가 제일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국가주의, 전체주의, 전제주의는 국가가 국민 앞에 있는 것으로 국민이 국가 앞에 있는 민주주의 기본 철학에 위배돼요. 촛불집회 때 일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봤는데 그분들의 견해도 존중해야겠지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도 있고, 이런 분들은 국가와 청와대, 대통령을 혼동하는 시각이 있다고 봐요. 국가 제일주의 입장에 있는 거죠, 민주주의 기본은 국민이 국가 위에, 국가 앞에 있다는 개념인데 이것이 정착 안된 것을 반영하는 모양이죠.”

-내각제의 문제는 없나요. 대통령제도 운영하기에 따라 권력 분산을 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대통령제 속성상 권력 분점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대통령제는 사실상 ‘대통령 무책임제’ 고 내각책임제는 국회ㆍ정부 책임제라고 말해요. 한국 현실에 비추면 내각책임제를 하되 프랑스처럼 상황에 따라 대통령과 총리가 합리적으로 권력을 분점하는 방식이 적합하다고 봐요, 이원집정부제도 결국 대통령의 권력 독점을 막자는 것인데 근본적으론 내각책임제의 범주에 든다고 볼 수 있지요.”

-올해 한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있는데 어떤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봅니까?

“해외에서 조국을 바라볼 때 대선이 갖는 의미는 남달라요. 현재 한국은 국내 문제도 크지만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고 영국에선 브렉시트 시대가 열리고, 중국ㆍ러시아ㆍ일본 등 한반도 주변 강국은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고 있어요. 한마디로 한국이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국제적 쓰나미에 난파선과 같은 대한민국을 구해내려면 글로벌 안목이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봐요. 주변 강국을 상대할 줄 알고 북한 문제만 하더라도 내부적으로 남북이 마주앉아 서로 풀어가는 게 원칙이고 순리이지만 북한이 핵ㆍ미사일 위협을 할 경우 한국만으로 상대하기 어렵죠. 이럴때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와 소통하면서 그들의 힘을 동원하려면 글로벌 안목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인물이 필요해요. 더구나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요즘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런 문제도 국제적으로 플려면 세계관을 갖춘 지도자가 요구된다고 봅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는데 해외 일부에서 반 전 총장의 10년 유엔사무총장 역할을 낮게 평가하거나 심지어 ‘무능한 총장’이라는 폄훼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반 전 총장의 유엔 활동을 잘 알고 국제관계 전문가로서 반 전 총장을 평가한다면.

“해외 일부 언론과 사람들이 반 전 총장을 무능하게 평가한 것을 알아요. 그런 평가를 하는 나라와 사람들의 견해도 존중해야겠지만 유엔이나 반 전 총장에 부정적 이해관계나 불만이 있는 경우가 있어요. 또 반 전 총장의 일부만 본 게 아닌가 생각돼요.

20세기 유엔 총장은 역할도 크지 않았을 뿐더러 일이 거의다 해결된 뒤 얼굴을 내미는 경우가 많은데 21세기 유엔 총장은 세계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많죠. 반 전 총장은 전쟁이 벌어지는 아프리카, 중동 현장에 가 그곳 지도자들과 만나 담판을 짓고 문제를 해결한 경우가 많아요. 수단 종족 간 전쟁 해결이 대표적이지요.

또 최대 경제국인 미국의 불참으로 유명무실했던 기후협약에 미국을 가입시켜 지구온난화시대에 획기적인 일을 한 것은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봐요.

물론 한 인간에 대한 평가가 다양할 수 있지만 반 전 총장이 10년간 유엔총장으로서 한 일은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봐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정권교체’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정치교체’를 놓고 논란이 많은데 어떻게 평가하나요.

“정권교체는 ‘파워 로테이션(Power Rotation)’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민주주의에서는 필요하지요. 독재 세습 정치, 독재정권 에서는 정권교체가 맞는 얘기이지만 오늘날 세습도 아니고 왕정도 아닌 민주주의 시대에는 정권교체로는 불충분하지요. 오히려 정치교체(Change of Goverment)가 돼야 정부형태를 뜯어 고치고, 제도를 고치고 정치인들의 행태를 고칠 수 있어요. 정치교체는 정권교체를 포괄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변화를 의미한다고 봐요.”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해 정치권 일부에서는 권력이 바뀌어야 정치도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주장과 생각 이면에는 우리가 지난 70년 동안 대통령 간판 가진 군주주의 체제에 익숙하다보니 정권교체가 맞는 듯하죠. 그러나 권력 주체가 바뀐다고 정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죠. 권력을 가져야 정치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 철학의 기본인 주권재민과도 배치돼요. 권력자가 정치를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국민이 고치는 게 민주주의죠.

정권이 교체돼야 국민의 삶을 바꾼다고 생각하는데 민주주의 철학은 그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 형태, 제도, 정치인까지 바꾸는 거죠. 정권교체가 정치를 바꾼다는 것은 또 다른 권력주의로 국민이 정치를 바꾸는 게 중요하죠.

정권이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는 논리는 일반 대중을 현혹하는 것으로 국민이 정치를 바꾸고 정권도 바꾸는 게 민주주의 기본이요, 주권재민의 참뜻이죠.”

-해외동포 원로로서 한국 정부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현재 법적 미비로 700여만 해외동포들이 대선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봉쇄돼 있어요. 본래 올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법 개정을 통해 해외동포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는데 뜻밖의 대통령 탄핵으로 대선이 앞당겨질 것이 예상돼 공민권 행사가 어렵게 됐어요. 이는 위헌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여 법 ㄱ정에 나서주길 바랍니다.

박종진 기자

● 김홍기 박사 프로필

상파울로 샌프란시스코 법대 졸업 -상파울로 주립대 박사(국가경제법)

법학박사, 변호사.

세계한인변호사협회 명예회장

대한변호사협회 국제자문위원

세계한인정치인 협의회 고문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고문

UN-NGO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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