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압수수색 실패 후 ‘선택과 집중’결판…확보된 진술ㆍ증거로 혐의 입증

박근혜 대통령 탄핵-최순실 비리 규명 결정적 물증 나오나

친박 핵심 실세들 연루 진술 나와 대선판 친박 필패론까지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3일 청와대 압수수색에 실패한 이후 청와대를 향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검팀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위 의혹과 관련해 혐의 입증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확보된 진술과 각종 증거만으로도 충분히 입증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청와대 압수수색 실패도 애초 크게 기대한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에 지장은 없다는 것이 특검팀의 설명이다.

청와대 측은 군사 보안시설이라는 점과 공무상 비밀이 보관된 장소라는 점을 들어 압수수색을 허용할 수 없다며 경내 진입을 막았고 오후 2시께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를 근거로 한 불승인 사유서를 제출했다.

특검팀은 청와대 압수수색이 수사 목적상 필요하고 법리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청와대 측은 진입을 허용할 수 없고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면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청와대의 비협조에 특검팀은 고삐를 더 바짝 조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특검팀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와 더불어 삼성 등 대기업과 연결된 각종 비리 의혹 규명에 화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특검 다각도 압박 구사

청와대가 군사상ㆍ공무상 비밀을 들어 압수수색을 완강하게 거부하자 특검팀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황교안 권한대행이 특별검사팀과 야당에서 요구하는 청와대 압수수색 협조 문제와 관련해 어떤 입장을 밝힐지 주목된다.

특검 대변인 이규철 특별검사보는 지난 3일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오늘 만일 현장에서 (특검팀이) 철수한다면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이 제출한 불승인 사유서에 대해 상급 기관으로 판단되는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 불승인 사유의 부적절함을 제시하면서 그에 대한 협조 요청을 정식 공문으로 요청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야당에서도 대통령 직무를 대신 수행 중인 황 권한대행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승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청와대 압수수색 승인 권한은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 권한대행에게 있다”며 “황 권한대행은 친박(親박근혜)의 예쁜 늦둥이라는 낯 뜨거운 칭송에 들뜰 게 아니라 청와대 압수수색을 즉각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무너진 국가 기강을 세우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황 권한대행이 특검의 압수수색에 협조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만약 황 권한대행이 청와대의 불법적 작태를 계속해서 방조하거나 지시했다면 탄핵소추 사유에 해당된다는 점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중대한 법률적, 행정적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 황 권한대행은 자신의 정치적 진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선택을 놓고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팀은 박근혜 대통령 대면 조사는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특검에서 판단하기로는 압수수색을 통한 (청와대) 자료 제출 여부와 상관없이 (박 대통령) 대면 조사는 일정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특검보는 “청와대 압수수색과 상관없이 대면 조사 일정은 그대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대면 조사는 청와대 압수수색과 함께 이번 수사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9∼10일 등 다음주 후반께 이뤄질 전망이다.

이 특검보는 “압수수색 (영장의) 유효 기간은 보통 7일 정도이지만, 이 사건의 경우 집행에 있어서 상당한 논란으로 시일이 지연될 수 있어 그런 부분 소명하고 유효 기간을 2월 28일로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특검이 다음주 후반께 대면 조사를 한 다음에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무차별적 전격전 형태 수사

특검팀은 청와대가 협조의사가 없음을 다시한번 확인한 이상 더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특정 사안규명에 전력을 쏟아 붓고 또 그 다음 타깃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히트앤드런 방식의 수사에서 전방위를 무차별적으로 수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특검팀의 활동종료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수사로 다각도의 증거수집이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삼성 수사의 경우 이미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영장이 기각돼 힘이 빠진 상태인데다 추가 증거나 진술을 받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어 한부분 집중된 형태 보다 다양성 추구로 전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특검팀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먼저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독일 현지 재산관리 등을 도운 한 시중은행 해외 지점장의 임원 승진 과정에 관여한 부분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최씨 모녀의 독일 현지 대출 특혜 논란과 외환거래법 위반 의혹에 이어 금융권 인사 개입설까지 확전된 양상이다.

지난 2일 특검은 구속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안 전 수석에게 이상화 KEB하나은행 삼성타운지점장(현 글로벌영업2본부장)을 승진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KEB하나은행 독일 현지 법인장을 지낸 이 본부장은 최씨 모녀의 독일 재산을 관리해 준 조력자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 본부장은 2015년 말 독일 법인장 시절 만 19세였던 최씨의 딸 정유라씨(21)에게 38만유로(약 4억8000만원)를 대출해 줬다.

당시 이화여대 1학년이던 정씨는 최씨가 독일에 세운 비덱스포츠 ‘재직증명서’를 근거로 하나은행 압구정지점에서 외환지급보증서(스탠바이 신용장)를 발급받은 후 이를 근거로 대출을 받아 특혜 논란이 제기됐었다.

이 본부장은 법인장을 마치고 귀국을 앞둔 지난해 초 1월 7일자로 삼성타운지점장으로 발령받았다. 이후 한 달도 채 안돼 글로벌영업2본부를 담당하는 임원(본부장)으로 승진했다. 국내 지점장 발령 후에도 실제 지점에 근무한 기간은 일주일 미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선 당시 이 본부장이 최씨를 도와준 대가로 임원 승진을 약속받고 귀국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이 본부장은 그러나 최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후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의 하나은행 종합검사 과정에서 특혜대출과 인사 청탁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나은행도 글로벌 사업 강화를 위한 인사였을 뿐, 정권 차원의 외압이나 청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근 특검의 수사 과정에서 이 본부장의 승진이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이 안 전 수석의 진술로 확인됐다. 특검은 최씨가 미얀마 ‘K타운 프로젝트’를 통해 공적개발원조(ODA)를 빼돌리려고 청와대에 추천한 유재경 미얀마 대사도 삼성전기 유럽 법인장 시절 독일에서 친분을 쌓은 이 본부장이 최씨에게 소개해 준 것으로 확인했다.

최씨의 국정농단 사태을 통해 금융권 인사 개입 의혹이 제기된 이후 이번에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에 금융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씨의 추천과 박 대통령의 지시, 청와대 핵심 실세와 장ㆍ차관의 실행으로 이어진 문화체육계 인사 농단과 비슷한 그림이어서 수사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업계에서도 문화체육계와 같이 금융권도 현 정권의 광범위한 인사 개입 의혹이 번질 것이라며 잔뜩 움츠러든 모습니다.

기업수사 밑그림 실행

특검팀은 지난 3일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를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금융권 수사 본격화를 시사했다.

특검팀은 이날 서울 금융위원회 사무실과 정부 세종청사 내에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에 특별수사관 등을 파견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공정위는 부위원장실ㆍ사무처장실ㆍ경쟁정책국 기업집단과 등이, 금융위는 자본시장국 산하 자본시장과ㆍ자산운용과ㆍ공정시장과 등이 압수수색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 측은 “삼성의 뇌물 및 미얀마 공적개발원조(ODA) 수사 등에 관해 필요한 자료를 제출받기 위해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 대상자의 개인 정보나 금융 정보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이라고 특검 측은 덧붙였다.

특검은 삼성과 관련된 특혜 입법을 공정위가 지원하려 했다는 의혹을 확인하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박 대통령과 최씨가 공모한 것으로 지목된 삼성 뇌물 의혹 수사와 연결된 것이다.

금융위 압수수색은 박 대통령-삼성 간의 뇌물 의혹, 최씨의 ODA 이권 개입 등 양쪽과 모두 관련이 있어 보인다.

금융위의 자본시장과는 삼성물산 합병 및 삼성바이올로직스 상장 등 관련 업무를 감독하는 부서이며 자산운용과는 펀드 감독을 담당한다. 특검은 최씨가 미얀마 ODA를 이용해 이권에 개입한 의혹을 수사 중이며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 외환거래 자료 등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최씨 모녀가 독일에서 대출을 받을 때 협력하고 유재경 주미얀마 한국대사가 임명되는 과정에서 중개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산 이상화 KEB하나은행 본부장의 승진과정을 특검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특검은 안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으로부터 박 대통령이 이 본부장의 승진을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수석이 금융위를 통해 은행 측에 박 대통령의 뜻을 전했는지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이 집중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CJ그룹을 제재하도록 청와대가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관한 자료를 특검이 확보 중이라는 분석도 있다.

금융권을 비롯한 기업수사와 관련해 재계에서 “특검이 현 정권 친박 실세들에 대한 진술도 확보했으며 이들의 비리 의혹에 대한 증거도 확보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김기춘, 우병우뿐만 아니라 다른 실세들에 대한 비리를 뒷받침하는 진술과 증거를 확보했으나 이는 당장 탄핵사안과 별개로 검찰에 넘겨 수사를 이어갈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특검팀은 또 ‘최순실 국정농단'을 묵인ㆍ방조했다는 등의 의혹을 받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조만간 본격 조사할 계획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지난 2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우 전 수석을 금명간 소환하나’라는 질문에 “특검 수사 기간을 고려할 때 조만간 소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달 28일로 종료되는 특검 수사 기한을 고려해 서둘러 소환해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특검 안팎에서는 우 전 수석의 출석 시점으로 다음 주 초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검 관계자는 “우 전 수석을 다음 주중 소환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세부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검은 우 전 수석이 최씨의 비리 행위를 제대로 감찰ㆍ예방하지 못했거나 비리를 방조ㆍ묵인하는 등 직무유기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최씨가 배후에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의 대기업 출연금 강제 모금 등에 대한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의 내사를 방해하고 이 전 감찰관의 해임을 주도하는 등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도 수사 대상이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공무원들을 불법 감찰한 뒤 이들을 한직으로 좌천시키는 데 관여한 의혹도 제기됐다.

특검은 이런 의혹들에서 파생된 개인비리 등도 수사하고 있다. 이날 우 전 수석 아들의 ‘의경 보직 특혜’ 의혹에 연루된 백승석 대전지방경찰청 경위 소환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 특검보는 “특검법에 따라 기존에 제기된 의혹 사건을 수사하다 추가로 다른 비리가 인지된다면 이 역시 수사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특검팀은 윤갑근 고검장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진행했던 ‘우병우ㆍ이석수 수사’를 사실상 재검증하면서 실타래를 풀고있다.

윤갑근 수사팀이 벌렸던 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에 대해 추적하는 한편,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수사과정에서 우 전 수석의 입김이 작용한 흔적이 발견되면 이 전 감찰관이 사퇴 배경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국정농단 사건외 우 전 수석의 개인 비리에 수사력을 쏟아붓고 있다. 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와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유출 혐의를 수사지휘 했던 윤갑근 대구고검장과 우 전 수석의 ‘유착관계’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당시 이 전 감찰관은 우 전 수석의 아들 보직 특혜 개입 의혹을 비롯해 가족회사 '정강'을 통한 세금 회피 및 재산축소 의혹 등 직권남용과 횡령 등 혐의로 우 전 수석을 검찰에 수사의뢰 했다.

하지만 윤갑근 특별수사팀(수사팀)은 우 전 수석에 대해서는 ‘황제 소환’ 논란에 휩싸이며, 별다른 소득 없이 기소 여부도 결정하지 못한 채 특검팀에 수사 기록을 넘겼다. 반면 이 전 감찰관의 경우 수사 범위를 넘어서는 대대적인 압수수색으로 이 전 감찰관의 사퇴에 결정적 역할을 하며, 과잉 수사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가운데, 특검팀이 수사팀에서 진행했던 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 관련 수사 기록들을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수사팀의 수사가 특검의 수사선상에 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