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에도 불구 회장선거 미루는 내막 따로 있나

향군회 내부 밥그릇 싸움 뒤 아른거리는 ‘친박ㆍ육사’ 그림자

박근혜 정권 숨은 실세 향군회 이권 사업 노린다 소문도 무성

보훈처와 재향군인회(향군회) 회장선거 집행부가 회장후보들에 대해 검찰고발조치를 취하는 등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며 선거를 지연시키고 있어 특정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향군회는 조남풍 전 향군회장 구속 이후 1년 넘게 회장을 뽑지 못하고 선거추진 과정에서 파행을 거듭하며 직무대행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향군회 정관에 따르면 회장의 신변에 이상이 발생해 공석이 될 경우 60일 내로 회장선거를 치르도록 돼 있다.

그러나 후보들이 무더기로 검찰조사를 받는가 하면 이 과정에서 후보들이 모두 출마포기를 선언하는 등 혼란이 끊이지 않아 향군회 보궐선거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이런 가운데 향군회 내부에서는 온갖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박승춘 보훈처장이 낙점한 인사를 향군회장으로 앉히기 위해 향군회에 부당한 입김을 행사하고 있다”며 보훈처를 비판하고 있다. 또 “재향군인회 집행부가 특정인물을 향군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해 다른 후보들의 입후보 자체를 막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최근에는 사법부의 판결에도 보훈처가 이를 무시하고 막무가내식으로 향군회 측에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정치권 일부에서는 최순실 파일에 박승춘 보훈처장의 이름이 거론된 점과 박 처장이 집요하게 향군회 선거에 개입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최씨가 향군회 이권사업까지 노렸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특히 최씨가 수면위로 드러난 초반 최씨가 군납업체와 커넥션이 있었고 방산업체 비리에도 연루가 됐다는 말이 무성했다. 이에 보훈처장에 대해 향군회 선거개입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향군회 간섭 보훈처 속내

서울동부지법은 지난 1월 16일 향군 대의원 234명이 신청한 ‘회장 선임을 위한 임시총회 소집’을 허가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향군은 이르면 2월 대의원 임시총회를 열어 새 회장을 뽑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선거가 제날짜에 치러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보훈처가 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보훈처는 최근 “향군회장 후보에 출마하려는 이들에 대해 후보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취지로 향군회에 공문을 내려보냈다. 향군회는 기다렸다는 듯 이 공문을 바탕으로 일부 입후자들에 대해 후보자격을 박탈했다.

앞서 향군회는 지난해 6월 30일 입후보자들에 대해 출마자격정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 자격정지조치를 당한 일부 후보는 입후보자등록무효처분효력정지 소송을 냈고 법원은 같은해 8월 이를 받아들여 무효 처분에 대해 효력을 정지했다.

향군회는 이에 대해 항고했지만 기각됐다. 그럼에도 보훈처는 향군회에 특정후보들에 대해 후보자격박탈조치를 하달했고 향군회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같은 후보에 대해 또 후보자격박탈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에 대해 향군회 회원들은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 향군회 정상화를 위해 조속히 회장선거를 실시해야 함에도 보훈처와 향군회 집행부의 장난은 끝이 없다”고 성토한다.

향군회의 한 관계자는 “보훈처는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공공기관임에도 이를 무시하는 초법적 행위를 하고 있다. 이는 박승춘 보훈처장의 직권남용임과 동시에 보훈처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향군은 2015년 말 조남풍 당시 회장이 비리 혐의로 구속기소 되자 작년 1월 대의원 임시총회를 열어 그를 해임하고 그해 4월 새 회장을 뽑는 선거를 추진했다. 하지만 향군 관리감독기관인 보훈처는 선거를 이틀 앞두고 선거 중단 지시를 내렸다.

조남풍 회장을 선출했던 2015년 4월 제35대 회장 선거 당시 조 회장과 마찬가지로 금품 살포 주장이 제기됐던 일부 입후보자들이 다시 출마하자 이에 제동을 건 것이다.

대의원들은 작년 6월에도 임시총회 소집을 요구했지만 박성국 향군 회장 직무대행이 응하지 않자 임시총회 소집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번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새 회장 선임을 위한 임시총회가 조만간 소집될 것으로 보이지만 향군 정상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향군정상화모임’ 등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회장 선거에서는 출마한 후보 5명이 자격 박탈이나 자진 사퇴로 모두 물러나 선거가 무산됐다.

지난해 4월 15일로 예정됐던 회장 선거에는 5명이 출마했으나 일부 입후보자들이 조 전 회장의 비리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향군 관리감독기관인 보훈처는 선거를 이틀 앞두고 선거 중단 지시를 내렸다.

향군은 선거관리위원회를 해산하고 새로 선관위를 구성해 다시 선거 일정을 시작해 향군 창설 기념일인 10월 8일까지는 새 집행부가 들어서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이 마저도 실행되지 못하는 그야말로 파행의 연속이었다.

최순실 입김 향군회에도 미쳤나?

보훈처와 향군회의 후보자격박탈 조치로 선거는 또다시 무기한 연기될 조짐이다. 이를 두고 향군회 내부에서는 보훈처와 향군회 집행부가 육군사관학교 출신자를 향군회장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국정농단의 주인공 최순실씨의 입김이 향군회장 선거에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구심도 증폭되고 있다.

그 근거는 박승춘 보훈처장이 골수 친박계 인사일 뿐만 아니라 최씨 태블릿PC에도 등장한 인물이라는데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유력후보인 김진호(합참의장ㆍ예비역육군대장)씨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군부실세였기 때문에 그의 당선을 막기 위해 친박계 육사출신 인사를 보훈처와 향군회 집행부가 밀고 있는 것이라는 추측도 무성하다.

실제로 박승춘 처장은 노무현 정부를 공공연하게 비판해온 인사다. 박승춘 처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 노 전 대통령 비판에 앞장섰다.

그는 2009년 7월 13일 공석에서 “그 대통령이 서해교전 전사한 우리 해군 장병 추도식도 못하게 했고 한 번도 거기 가지 않았습니다. 침범한 북한은 놔두고 작전한 우리 군을 책임을 씌워서 장관을 경질하고 우리 군을 처벌하려고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보훈처가 향군회 선거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두고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비판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국가가 어수선한 이때에 보훈처가 자기사람 앉히기를 고집해 보수진영의 큰 축인 향군회의 정상화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현 정부 최장수 기관장인 박승춘 처장의 자리 보전에 최씨가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JTBC에 공개된 바에 따르면 최씨의 컴퓨터 파일에는 지난 2013년 1월3일 작성된 ‘역대 경호처장 현황’이란 제목의 문서가 있었다. 이 파일을 살펴보면 출신별 평가와 후보군이 거론됐는데 이 중에는 박승춘 처장의 이름도 발견됐다. 심지어 그동안 문제됐던 그의 여러 언행이 최씨 문건에 드러난 여러 행동방침과 일치해 그가 비선실세인 최씨의 의중을 따라 행동한 것 아니냐는 말이 무성하다.

2014년에는 예산 삭감에 항의하며 국회 운영을 방해하기도 했다. 박 처장은 당시 야당 때문에 ‘나라사랑 교육’ 예산이 삭감됐다고 주장해 정무위 전체회의가 파행된 바 있다. 탁자를 내리치고 고함을 지르는 등 그의 안하무인 행동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여당 의원들도 박승춘 처장의 장기집권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여권 안에서도 박 처장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5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정부 최장수 기관장이다. 정치권에서는 박승춘 처장의 배경에 실세의 힘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제기됐다. 최씨 태블릿PC에서 드러난 내용을 감안할 때 그가 최씨와 모종의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탄핵 이후까지 선거 미뤄질 수도

향군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3일 조 전 회장이 해임된 이후 신임회장 선출에 대한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 향군회는 선거일을 같은해 4월 중순으로 잡아놓았지만 다시 연기됐다.

당시 향군회 관계자는 선거 지연의 배경에 대해 “향군회 개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출범과 함께 보궐선거를 위한 임시총회 소집이 지연됐기 때문에 선거날짜 확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내부적으로 최대한 빨리 의견을 일치시켜 차질 없이 선거를 치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선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향군회 내부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향군회장직무대행직을 남용한다”는 지적과 함께 ‘청와대 낙점설’을 문제삼으며 특정후보에게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일정을 늦추는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향 군회 일부에서는 “조 전 회장이 해임돼 정관이 발효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정안으로 정관을 멋대로 변경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라며 정상적인 선거는 이미 물 건너갔다고 비판하고 있다.

재향군인회 대의원연합회 회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훈처를 규탄하며 박승춘 처장을 해임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보훈처는 향군회에 대한 간섭강도를 더 높이고 있다. 향군회 내부에서는 보훈처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훈처가 특정 후보를 향군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해 여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정황 때문이다.

향군회원들은 향군사태와 관련해 “국가보훈처가 불법 선거개입을 했다”고 비난하면서 최근의 회장후보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도 보훈처와 연관있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향군회의 한 관계자는 “현 정권의 특정 세력과 연결된 특정 후보를 재향군인 회장으로 앉히기 위해 검찰에 다른 후보들을 고발조치하도록 배후조종하고 있는 것이 바로 보훈처”라며 “정관에 따라 빨리 공정한 선거를 해 조직안정화를 도모하도록 하는 게 보훈처의 역할인데 오히려 그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훈처를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훈처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다른 후보 2명이 사퇴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향군회는 보훈처가 검찰 수사 이후로 선거를 미뤄놓았기 때문에 아직 회장 선거 일정 조차도 잡지 못한 상태로 표류 중이다.

검찰이 향군 회장후보자 3명에 대해 동시 수사를 벌였으나 아직 마무리하지 않고 있다. 향군회 집행부는 이를 내세워 검찰수사와 관련된 후보자들의 출마를 막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분위기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향군회 집행부가 특정세력과 손잡고 보훈처와 함께 선거 뒷작업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적지 않다. 또 ‘청와대 낙점설’을 문제 삼으며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일정을 늦추는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승춘 처장은 육군사관학교(27기)를 졸업한 3성 장군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부터 지금까지 5년 넘게 정부 최장수 기관장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그는 2004년 7월 군 정보 최고책임자인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근무하면서 남북 경비정의 교신 내용을 보수언론 기자 3명에게 전달했다가 기무사 조사를 받고 자진 전역했다. 이후 2007년 박근혜 캠프에 몸을 담았다가 2011년 보훈처장에 임명됐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