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반기문카드 놓고 유사시 대비 시나리오 마련

보수단체 등 통해 황교안 바람 준비작업 ‘친박계의 꼼수’

‘대권후보 부재’가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여권의 위기감이 상승하고 있다. 여권은 시간이 지날수록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입만 바라보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야권이 문재인 안희정 등 굵직한 후보로 바람몰이를 하고 있는 반면 여권은 이렇다 할 대표주자가 없어 야권의 흥행돌풍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여권에는 지난날 대망론에 거론되지도 않던 군소후보들이 난립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유승민 이인제 등 여러 여권후보들이 보수층의 결집을 주도하다 황 권한대행 출마선언 시 힘을 몰아주려는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황 권한대행의 출마와 관련해 여러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탄핵이 확정될 경우 황 권한대행이 보수진영의 촉구로 출마를 결심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또 황 권한대행이 침묵을 지키는 이유를 두고 박 대통령의 탄핵이 불발될 경우 예정대로 12월 대선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전에 출마선언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을 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 섣불리 출마선언을 했다가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울 경우 여러 면에서 엇박자가 날 수 있다고 본다는 이야기다.

황 권한대행의 출마와 관련해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청와대 주변과 정치권 등에서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대선출마 놓고 신경전 치열

대선 출마 여부와 관련해 황 권한대행은 아직 입을 굳게 닫고 있다. 계속되는 질문에 그는 “권한대행으로서 국내외 어려움을 극복하고 또 국정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면서 거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지금은 오직 그 생각뿐이다”말만 반복하고 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황 권한대행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권한대행의 입지가 더 공고해지기 때문에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본다.

조기대선이 가시화 되고 박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상황에서 황 권한대행이 출마를 선언할 경우 행정부 전체가 혼돈에 빠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출마를 하더라도 야권으로부터 책임론을 피할 수 없다.

총리실 안팎에서는 장ㆍ차관을 비롯한 공직사회가 황 권한대행 체제 이후 급속하게 안정을 되찾은 것을 두고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런 평가를 유지하다 탄핵 여부가 결정된 후 출마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게 황 권한대행의 판단일 것이라는 분석에 상당한 무게가 실린다.

야권의 질주에 여권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도 황 권한대행 입장에서는 급할 게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공통된 견해다.

야권은 당장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김정남 피살 등 외교ㆍ안보 상황이 엄중하고, 조류독감(AI)과 구제역 확산, 실업자 100만명 돌파 등 심각한 경제 문제 등 긴급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는 황 권한대행에 큰 호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황 권한대행이 이 같은 현안을 안정되게 처리할 경우 그의 정무능력검증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황 권한대행이 대권에 도전할 경우 그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보수가 결집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황 권한대행이 직무처리 능력을 보여줄 경우 이는 보수진영에 대한 실망감을 만회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는 보수의 결집 효과를 보는 것은 물론 둘로 쪼개진 보수정당 군소후보들이 그를 중심으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구실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 권한대행의 지지율은 최근 주춤하지만 여전히 보수 진영에서는 독보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등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잠재하고 있다. 야권이 경계감을 낮추지 않는 것도 만약의 경우 대선판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대선이 연합세력 출현이나 다자 대결이 될 경우 황 권한대행이 출마 여부에 따라 대선 판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청와대의 대통령 만들기 전략

황 권한대행이 대선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힐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가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매우 높을 것으로 보인다. 출마선언과 관련 일각에서는 가장 유력한 시기가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이 내려진 직후라고 전망한다. 대선 한달 전까지 공직자 신분을 벗으면 되기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의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치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황 권한대행의 대권도전과 관련, 청와대와 여권 주변에서는 최근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나오고 있다. 황 권한대행의 출마 시나리오는 이미 지난해 중순경부터 거의 확정됐으며 이를 청와대와 친박계가 황 권한대행의 대권도전을 치밀하게 추진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의 한 소식통은 “청와대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출마를 다방면으로 타진해 왔다”며 “하지만 반 전 총장의 뜻이 강하지 않아 변수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 황 권한대행의 대권 출격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이 출마를 하든 안 하든 황 권한대행 출격준비를 해 대비를 해야 한다는 판단이 내부적으로 있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황 권한대행의 대권 준비작업은 박 대통령의 동의 아래 추진된 것이며, 친박계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황 권한대행의 대권 출마 시나리오는 거의 확정적이었다고 한다.

또 “이는 여권에 이렇다 할 대권 후보가 없는 점을 극복하고 친이계의 대권주자 배출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청와대는 판단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반면 황 권한대행의 출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있다. 황 권한대행은 ‘권한대행으로서 두 달 남은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우회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할 수 있다.

황 권한대행은 올해 신년기자회견에서 “제가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지지율에 관한 보도는 저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총리가 사퇴할 경우, 그 직무를 부총리가 이어받아야 하는데 이럴 경우 유일호 부총리가 총리 직무대행을 맡게 된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탄생하는 것이다. 경제학자 출신의 유 부총리가 외교 ·안보 문제 결정까지 해야 한다. 그 책임은 황 권한대행에게로 넘어간다.

황 권한대행의 측근은 “황 권한대행이 여전히 대선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여당에서 출마를 권유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점이 마지막 변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황 권한대행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불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에도 조금씩 무게가 실리고 있다. 황 권한대행은 특검연장안에 부정적인 모습을 모이면서 2월 넷째 주 모든 여론조사에서 ‘하락세’를 보였다. 이대로라면 황 권한대행의 ‘등판’은 이뤄지기 힘들 거라는 관측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2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황 권한대행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3.2%포인트(p) 떨어진 11.6%를 기록했다. 1위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32.4%)와는 20.8%p 차, 2위인 안희정 충남도지사와는 7.6%p 차다.

황교안 대선 출마 멀어지나

황 권한대행은 해당 조사에서 대부분의 지역과 계층에서 하락했는데, 주로 PK(부산ㆍ울산ㆍ경남)와 호남, 충청권, 50대 이상, 자유한국당·바른정당 지지층, 보수층에서 하락했다. 리얼미터는 다수의 여권 성향 지지층이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비롯한 타 주자로 이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황 권한대행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그는 전주(13.2%)보다 2.1%p 내린 11.1%를 기록하며 3주 연속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황 권한대행이 지지율은 위 조사와 마찬가지로 전통적 보수층인 60세 이상과 TK(대구·경북)에서 대폭 하락했다.

같은날 조원씨앤아이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13.2%만이 황 권한대행의 당선을 예측했으며, 머니투데이 더 리더와 조원씨앤아이의 21일 조사에서도 황 권한대행은 3.2%p 하락한 14.2%를 얻었다. 문 전 대표가 35.6%, 안 지사가 21.6%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낮은 수치다.

앞서 지난 20일 발표된 국민일보·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황 권한대행은 12.8%를 얻으며 전주 조사보다 3.2%p 하락하며 3위에 머물렀다.

이를 두고 황 권한대행이 국정 농단 사태의 중심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특검 수사 기간 연장 여부를 두고 특검팀ㆍ야권과 보이지 않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반감정서거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24일 오전 발표할 조사에서 황 권한대행의 지지율 하락세는 더 뚜렷하다.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대다수의 조사와는 달리 한국갤럽의 조사는 한 자릿수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지지율은 지난 17일 발표된 조사에서 전주보다 2%p 하락한 9%로 나타나며, 10%대 벽이 깨진 바 있다.

황 권한대행이 주춤하자 여권 곳곳에서 출마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21일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안 의원은 이날 오전 지역구인 인천시당 당원연수회에서 참석해 대선출마를 선언한다. 자유한국당의 대선후보는 안 의원, 원유철 의원, 이인제 전 최고의원,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 4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밖에도 아직 출마를 선언하고 있지 않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을 포함하면 앞으로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도 자유한국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는 방안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 관련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홍준표 경남지사와 김 전 지사가 한국당 경선에서 맞붙을 경우 ‘PK(부산·경남) 혈투’가 예상된다. 현역 의원 10여명과 원외 당협위원장 20여명이 김 전 지사를 도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의원들이 김 전 지사에게 출마를 강권하는 데는 ‘PK 지키기’ 포석이 깔려 있다. 보수 텃밭이었던 PK가 부산 출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쏠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홍준표 경남지사도 대선 경선 후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홍 지사는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선 출마를 시사한 데 이어 전날에는 부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큰 선거를 하려면 참모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 대권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날도 대구에서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특강을 갖고 24일에는 울산에서 강연을 하는 등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정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자당 소속 대권후보들의 지지율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홍 지사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이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홍 지사는 당초 2심 선고 직후 자신과 가까운 자유한국당 의원을 비롯해 경남도 내 시ㆍ도의원 등과 함께 동반 탈당, 바른정당에 입당하는 방안을 유력 검토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바른정당의 지지율이 좀처럼 뜨지 않자 당분간 자유한국당에 잔류 하며 대선 출마 여부 등을 고심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홍 지사가 자유한국당 소속 대선 후보로 출마를 결심할 경우 당내 다른 대선주자들에 비해 인지도가 높고, 경남은 물론 여권 텃밭인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어느정도 지지세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서 김 전 지사와 홍 지사 간 맞대결 여부는 관심거리다. 인지도 높은 전·현직 경남지사가 레이스를 펼칠 경우 한국당 경선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