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여야 넘나드는 광폭행보… 킹 나설지, 킹메이커 머물지 미지수

“더 이상 킹메이커는 안할 것”…3지대 빅텐트 성공 여부가 1차 관문

여야 대선후보 동상이몽…金 대권 도전 의사에 거리감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가 여야 정치권을 넘나드는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른바 ‘제3지대 빅텐트’ 구축을 위해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는 김 전 대표가 제3지대에 빅텐트를 칠 구심점이 될 ‘킹메이커’가 될지, 아니면 본인이 직접 ‘킹’이 되고자 대선판에 뛰어들지 여부다.

김 전 대표는 지난 1월 말 “순교(殉敎)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탈당 당시에는 “일전에 말한 ‘순교’의 의미를 파악하면 내가 뭘 하려고 하는 건지 대략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출마를 강하게 시사하기도 했다.

현재 판세는 호의적이지 않다. 각 정당이 본격적으로 경선에 돌입하면서 ‘제3지대’ 등 당 외적인 측면의 이슈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 전 대표의 지지율 역시 1~2%대에 그치고 있다. 김 전 대표의 그간의 행보를 살펴보며 앞으로 그가 주장하는 ‘제3지대 빅텐트’론의 실체를 살펴봤다.

1년 전부터 “더 이상 킹메이커는 안할 것”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토사구팽당한 김 전 대표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중앙정치 무대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러다 2016년 1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비대위원장직 러브콜에 다시 정치판에 복귀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참여를 시작으로 30년 넘게 권력의 중심부에서 활동한 김 전 대표는 주로 ‘킹메이커’로서 일컬어졌다.

2012년 이후 정치판에 다시 돌아온 김 전 대표는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킹메이커’가 아닌 ‘킹’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표의 대권 욕심은 작년부터 조금씩 표출됐다. 그는 4ㆍ13 총선을 앞둔 작년 3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총선 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 "나중에 판단할 문제고, 킹메이커는 더 이상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작년 5월에 출연한 한 시사프로에서도 같은 얘기를 하며 대선출마 의향에 대해서든 “그건 두고 봐야 알 것이다. 미리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김 전 대표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지난 1월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의견을 교환하며 흐름을 파악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표는 대권 도전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고 한다. 김 전 대표의 예상치 못한 강한 권력 의지에 반 전 총장이 적잖이 당황했다는 것이 반 전 총장 측근의 전언이다.

반 전 총장 낙마 이후 잠시 숨을 고르던 김 전 대표는 2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행보에 가속도를 붙였다. 지난 2월 14일 민주당 비주류 의원 20여 명과의 만찬 회동으로 시작해 15일 김무성 바른정당 고문ㆍ정의화 전 국회의장과의 조찬 회동, 민주당 3선 이상 중진 의원들과의 만찬 회동을 가지며 탈당 및 제3지대 빅텐트 구성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김 전 대표는 김 고문과 정 전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는 ‘분권형 이원집정부제 개헌 추진’에 공감했다고 전해졌다.

2월 16일 뮌헨 안보회의 참석차 독일 방문길에 올라 21일 귀국한 김 전 대표는 이튿날인 22일 정 전 의장과 일주일 만에 다시 회동을 가졌다. 애초 김 전 대표와 정 전 의장은 김무성 바른정당 고문과도 함께 만나는 것을 추진했지만, 김 의원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월 23일에는 자유한국당 원내외 인사 모임인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의 조찬포럼강연에서 대선 출마에 대한 질문을 받은 김 전 대표는 “대답하기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나라가 어려운 사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을 해보겠다는 말로 갈음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김 전 대표는 개헌 관련 민주당 워크숍에서 당 지도부를 향해 “하면 한다, 안하면 안한다’고 해야지 개헌을 가지고 질질 끌고 가는 것은 공당으로써 온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이번 개헌 문제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사로 잡혀 집권이 거의 가능해졌는데 개헌을 왜 하느냐, 지금대로 가면 우리가 편하지 않냐는 것 때문”이라며 “이게 우리 정치의 폐단이다. 야당으로서 여당을 비판하다, 자기가 여당이 되면 그걸 그대로 답습한다. 이번에 개헌을 하느냐, 안 하느냐 입장에서 우리가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당 안팎의 모습이 큰 차이를 보이며 탈당이 임박했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28일에는 '한국경제 길을 묻다-김종인이 묻고, 정운찬 유승민이 답하다' 토론회를 열어 ‘제3지대’ 세력 규합이 아니냐는 해석도 낳았다. 유승민 의원은 토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김 전 대표의 제3지대 빅텐트와 관련 "김종인 전 대표께서 민주당을 나와서 그런 결단을 할 생각이 있으면 저 뿐 아니라 당 차원에서 검토해볼 문제"라면서 "저는 개헌보다 오늘같이 중요 정책이나 가치 중심으로 (연대를) 하는게 맞다"고 말하며 연대 가능성을 열어 놨다.

탄핵 정국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인 지난 7일에는 구체적인 계획이 공개됐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만난 김 대표는 비문(비문재인)계 등 개혁세력을 결집하는 것과 경제민주화 등을 화두로 조찬과 함께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 손학규 전 대표는 같은 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전 대표와 회동에서 논의된 현안에 대한 질문에 “대선 승리를 위해서 개혁(세력)의 연대, 연합을 만들어야 된다, 그리고 같이 협조하자, 이런 얘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이어 손 전 대표는 “민주당의 패권적인 구조로 봐서 문재인 후보가 될 것이다, 그러면 문재인 후보의 패권적인 정치구도는 안 되지 않느냐, 박근혜 패권이 문재인 패권으로 넘어가는 것”이라며 “국민주권의 시대로 새로 개혁하기 위해 문재인 대 개혁세력연대로 얘기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전 대표는 또 “김종인 대표와 손학규 이렇게 같이, 저는 국민의당 당원이니까 국민의당이 중심이 돼서 개혁세력을 연합해서 연대해서 문재인 후보를 이기도록 하자, 이런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표의 의중이 수면 위로 떠오른 날이었다.

7일, 탈당을 선언하며 김 전 대표는 "(20대 총선이) 1년이 다 돼 가는데, 모든 당이 개혁법을 외치면서도 실질적으로 개혁법이 하나도 진척 안 됐다.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게 된 기본 배경이 뭔지 다 안다. 그러면 제도적 장치를 당연히 마련해주는 게 국회 본분인데, 별 뜻이 없다"며 "그래서 의원직 자체가 아무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라며 탈당이유를 밝혔다. “내가 이 당에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떠날 때가 돼서 떠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민주화 법안 등 개혁입법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의지 결여를 탈당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같은 날 열린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초청 강연 행사에서 김 전 대표는 “솔직히 정당 떠나는 이유는 탄핵 이후 여러 상황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킹의 역할? 킹메이커의 역할?

김 전 대표 측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정당들의 경선 상황을 지켜보면서 빅텐트를 펼칠 시점을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권에서는 늦어도 3월 말이면 그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대표가 킹메이커로 나설 경우, 두 가지 안이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후보 연대가 선행된 후 국민의당 후보와의 2차 단일화 과정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안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을 중심으로 후보 단일화를 거친 후, 친박을 제외한 자유한국당 개혁 세력 및 민주당 일부와 결합하는 형태다. 두 가지 안 모두 ‘개헌’을 매개로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김 전 대표가 ‘킹’으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각 당의 후보와 단일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 전 대표가 연대가 거론되는 국민의당, 바른정당의 지지율 1위 후보와 맞붙었을 때 승리할 가능성은 미지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매일경제 MBN의 의뢰로 10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대선후보 지지율 2.5%로 집계돼 심상정 상임대표(3.3%)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2.6%)보다도 낮았다.

더구나 대선 레이스에 선수로 나설 경우 제3지대 다른 후보들을 잘 설득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는 의견들도 많다. 때문에 일단 선수로 나서서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대승적 차원’에서 2선으로 후퇴해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 경우 개헌이후 김 전 대표가 국정에 큰 역할을 맡는 것을 염두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제3지대 빅텐트’의 가장 큰 난관은 시간이다. 제3지대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자유한국당ㆍ국민의당·바른정당 가운데 가장 늦게 경선이 끝나는 곳은 국민의당이다. 국민의당은 4월 4일 대선 후보를 결정할 예정이다. 물밑에서 단일화 작업이 진행되더라도 적어도 4월 5일이 돼야 제3지대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대선의 투표용지 인쇄 시기는 4월 30일이다. 김 전 대표가 구상하는 이상적인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4월 5일~29일 안에 후보들 간의 단일화가 진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념ㆍ지지기반ㆍ구성원 등 차이점이 뚜렷한 정당 사이에서 단일화 성사 여부는 어둡다는 것이 여의도 정가의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표의 세 규합이 제동이 걸렸다. 16일 시국회의 성격의 대규모 조찬회동을 계획했지만 참석 대상자들이 하나둘 빠지면서 모임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당초 참석자 명단에는 손학규 전 대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ㆍ남경필 경기지사, 정운찬 전 국무총리, 정의화 전 의장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손 전 의장과 유 의원 등이 일정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고 회동은 다음주로 잠정 연기됐다. 대선 일정 확정으로 조기 대선판의 불확실성이 걷히자, 주자들이 코앞에 닥쳐온 당내 경선부터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 전 대표가 직접 링 위에 오를 가능성이 커지면서 견제 분위기도 감지된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당 지도부 일원에게) 김 전 대표의 조찬회동에 가지 말라고 했다”며 “나설 때 나서야지 (회동한다고) 아무 거나 되느냐”라고 말한 것이다.

유승민 의원은 김 전 대표와 당분간 거리를 두겠다고 밝혔다. 한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한 유 의원은 16일 회동 불참에 대해 “원칙이 있는 그런 모임 같으면 가겠는데, 그런 거 없이 만나기만 하는 그런 모임 같으면 저는 모르겠다”면서 “좀 거리를 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 의원은 빅텐트 논의에 대해 “지금부터 바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각 당의 후보를 뽑고 나서 국민의당이든 자유한국당이든 큰 원칙에 따라서 연대ㆍ후보단일화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마지막에 남아 있다”며 “김 전 대표님도 그런 측면에서 역할을 하시겠다는 뜻이 분명하면 협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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