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계 손에 달린 차기 민주당 잠룡 운명

안희정, 충남지사 3선·중앙정치무대 진출 고심

이재명, 서울시장·경기지사 저울질

박원순은 국회진출, 김부겸 당권, 최성 경기지사에 무게 실려

당내 지지기반 모두 부실…친문계는 누구와 손을 잡나

제19대 대통령의 주인공은 ‘문재인 대세론’을 끝까지 유지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압승으로 마무리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종 득표율 41.1%로 수도권과 충북, 호남은 물론 보수색이 강한 강원과 부산·울산 지역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경남에서 1위를 놓치긴 했지만 부‧울‧경(부산‧울산‧경남)으로 하면 홍 후보를 눌렀다. 홍 후보를 TK지역에 고립시킨 셈이다.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과 세종, 대전, 제주 지역에선 득표율 2위의 홍 후보보다 2배 이상의 득표했다.

대선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처음 실시된 대선 사전투표율은 26.06%로 유권자 4명 중 1명이 미리 투표했으며, 최종투표율(77.2%)도 덩달아 올라 1997년 대선 투표율 80.7%에 육박했다. 본선만큼 뜨거웠던 예선도 있었다. 완전국민경선으로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도 참여할 수 있었던 민주당 경선은 214만 명의 선거인단을 모집해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민주당은 또한 본선보다 많은 9번의 토론회를 개최하며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최성 후보들의 면면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경선 종료 후 떨어진 후보들은 문재인 후보의 지지를 선언했고 결과에 승복하고 협력하는 모습은 문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도 도움을 줬다. 민주당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출구조사가 발표되고 문재인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 되던 9일 밤, 지지자들 앞에 문재인 당선인뿐 아니라 경선에서 경쟁했던 안희정, 이재명, 최성 후보를 비롯해 대선 출마를 검토했던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까지 동원해 차기 주자들의 얼굴을 국민들 앞에 각인시켰다. 대선이 마무리된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았지만 이들의 행보에 대해 관심이 모아진다.

안희정, 충남지사 3선이냐 중앙정치무대 진출이냐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의 덕을 톡톡히 봤다. 야당 주자이면서도 보수 지지층까지 폭넓은 외연 확장을 보여준 안 지사의 추격은 본선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 급상승과 유사했다. 당시 문 후보는 안 지사의 급등세를 통해 중도층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안풍을 차단하는 방법도 터득할 수 있었다. 안 지사 역시 “많이 배운 선거였다”며 값진 경험이었음을 밝혔다.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50대의 안 지사로서는 실보다는 득이 많은 선거였다. 진보, 중도, 보수를 아우를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전국적으로 과시했기 때문이다. 어떤 진보 진영 주자보다 확장성이 크다는 점에서 안 지사를 가장 유력한 차기 정치인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안 지사는 일단 문재인 정부 입각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지난 11일 도청 브리핑룸에서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그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에 현직인 충남도지사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 바가 있다”며 “그것이 제가 임기 초기에 도민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충남지사 3선 도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멀지 않은 시간에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는 내년 6월에 예정돼있다. 안 지사는 3선 도전에 대해 늦어도 올 연말에는 공식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1년 정도 시간이 남아있지만 내년 초가 되면 선거 국면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충남지사 3선 도전을 포기할 경우 안 지사의 선택지는 당권 도전, 국회 입성으로 좁혀진다. 안 지사에게는 모두 매력적인 선택지다. 지난 경선에서 안 지사는 문 대통령의 압도적인 조직력에 무릎을 꿇었다. 차기 대권을 도전하기 위해 거쳐야 할 당내 경선을 통과하려면 민주당에서 지지 세력과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정치 무대에 진출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안 지사는 오랜 정당 생활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중앙정치 경험이 없다. 참여정부 때는 2002년 대선 관련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아 청와대 근처에 가지 못했다. 이후 2006년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다시 복권되었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의 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선거법 위반 전력이 발목을 잡아 낙천했다.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지만 2010년 충남도지사에 도전하면서 중앙정치 무대와 멀어지게 됐다.

당권보다 국회 입성을 먼저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 국회 입성을 통해 당내 지지 세력을 차근히 확보해 차기 대선을 노리는 것이다. 출마 예상지역구는 충남 천안갑과 서울 노원병 등이 거론된다. 천안갑의 경우 자유한국당 박찬우 의원 지역구로, 박 의원은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이다. 박 의원은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한 상태다. 노원병은 국민의당 안철수 전 의원의 지역구였는데, 안 전 의원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의원직을 사퇴하자 보궐선거가 확정됐다. 지역구 2곳 모두 안 지사에게는 득이 되는 지역이다. 천안갑의 경우, 충청 기반의 여의도 정치인으로 충청의 맹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노원병은 안철수라는 정치적 상징성과 함께 수도권 표심 공략에도 용이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재명, 서울시장? 경기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은 당 경선에서 선명성 부각을 통해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탄핵정국에서 촛불 아이콘으로 부상한 이 시장은 사이다 발언으로 낮은 인지도를 단숨에 뒤집었다. 기초자치단체장 신분으로서 한 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턱밑까지 추격한 저력은 기존 여의도 정치에서는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탁월한 정무·행정 능력은 이 시장의 또 다른 강점 중 하나다.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던 도시가 전국에서 주목하는 1등 복지 도시로 거듭나게 한 일은 복지 수요가 늘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알맞은 업적이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 시장이 차기 서울시장직에 도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대선주자급 정치인 반열에 오른 이 시장이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지는 경기도지사보다 대권으로 가는 지름길인 서울시장을 노리고 있다는 얘기다. 몸집이 커진 이 시장으로서는 고려할 수 있는 카드다. 하지만 당내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다. 현재 민주당에는 추미애 대표, 박영선 의원 등 잠재적 서울시장 도전자들이 즐비하다. 대선 전에는 임종석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이 서울시장 후보로 내정됐다는 찌라시가 돌기도 했다. 임 비서실장의 경우 정치적 재기를 위해 문재인 정부의 기틀을 닦고 서울시장 출마에 나설 수도 있다. 당 일부에서는 “경기도지사가 현실적”이라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이 시장은 안 지사와 당내 세력이 없다는 똑같은 고민을 갖고 있다. 이재명계를 수년안에 구축하지 못할 경우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만 당내 비주류로 남아 경선 통과는 또다시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로 들어가 당내 세력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정치적 입지뿐 아니라 지지 세력을 확장시키는 전략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진보층에는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지만 보수층은 강한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차기 대권주자라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박원순·김부겸·최성은 어디로?

대선 출마를 포기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박 시장은 내년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대신 차기 대선 준비를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추미애 대표가 서울시장에 도전할 경우 '재보선 구원등판'을 명분으로 국회로 진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 역시 비문계인 박 시장이 당내 역학 관계를 어떻게 푸느냐에 달려있다. 정계개편 상황에 따라 박 시장이 비문계의 구심점에 서게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부겸 의원은 당권 도전 후 대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작년 8·27 전당대회 당시 출마를 고심하다 대권 도전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친문계의 벽을 실감하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김 의원의 당권 도전은 상당한 경쟁력이 있다는 당 관계자의 분석이다. 이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전국에서 지지받는 정당이 됐지만 그래도 전통적 지지기반은 호남인 것이 민주당이다. 이 곳에서 영남 출신 당 대표라는 것은 민주당으로서도 상징성이 크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우선적으로 당권 장악을 통해 ‘김부겸계’ 구축에 힘쓸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전망이다.

경선에 참여해 토론회에서 능력을 보여준 최성 고양시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직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계는 누구의 손을 잡을까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의 공통점은 당내 세력이 작거나 전무하다는 것이다. 지지 세력 확보가 절실한 대권주자들은 우선적으로 친문계에 러브콜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주목할 점은 친노에서 친문으로 옮겨온 것처럼 고스란히 특정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 친문계의 분화가 일어날 것인지에 달려있다. 친문계가 어떠한 형태로 바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현재 친문은 과거 친노보다 각각의 배경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분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허인회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