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검찰개혁 본격 시동… ‘우병우 라인’ 솎아내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 ‘검찰 적폐청산’ 신호탄

‘돈봉투 만찬’ 파문으로 스스로 개혁 명분 제공한 검찰

이영렬ㆍ안태근 좌천…다음은 누구?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개혁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문 대통령은 조국 서울대 교수를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하자마자 ‘정윤회 문건’ 재조사를 지시하며 검찰을 긴장케 했다. 이어 ‘돈봉투 만찬’ 파문이 일어나자 직접 감찰지시를 내리고 파문의 당사자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59·사법연수원 18기)을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51·20기)은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좌천시켰다. 문 대통령은 또한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57·23기)를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의 기수를 전직보다 5기수나 낮추면서 검찰의 보수적 기수문화에 균열을 낸 것이다. 통상 후임자는 1~2기 아래라는 점을 고려하면 두 단계 이상 파격 인사다.

서울중앙지검장은 2005년 이후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고검장급이 임명되는 게 관례였다. 이 때문에 주요 수사를 지휘하며 인사권을 틀어쥔 청와대나 검찰총장의 눈치를 보거나 외압에 쉽게 노출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올해 검사장 승진 대상인 차장검사급인 윤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 것도 이런 폐단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개선책으로 풀이된다.

스스로 개혁 명분 제공한 검찰

문재인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 재조사를 지시했지만 조국 민정수석은 내정 첫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검찰에 수사를 지휘할 생각 없다”며 과거와 같은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 다만 “수사 과정과 관련 미진한 점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민정수석의 당연한 권리”라며 민정수석실 차원에서 움직일 뜻을 밝혔다. 하지만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이 공석인 상황에서 의도한 만큼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검찰 안팎의 전망이었다.

검찰 개혁을 위한 접근법을 놓고 고심하던 가운데 ‘돈봉투 만찬’ 파문이 발생했다. 검찰·법무부 등에 따르면 이영렬 지검장과 노승권 1차장 등 특수본 소속 간부 7명은 지난 4월21일 서울 서초동의 한 음식점에서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 이선욱 검찰과장(1과장), 박세현 형사기획과장(2과장) 등 법무부 검찰국 간부 3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안 국장은 수사팀 간부들에게 70만~100만원이 든 돈봉투를 건넸다. 이 지검장도 법무부 검찰국 1, 2과장에게 100만원씩의 격려금을 지급했다. 이에 법무부 과장들은 격려금을 다음날 서울중앙지검에 반납했다. 이 지검장과 안 국장의 격려금 출처와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 특수활동비의 부적절한 사용 논란에서 검찰 ‘빅2’는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조심스런 반응이다.

청와대로서는 좋은 명분이 생긴 셈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법무부 10명, 대검 12명 규모의 감찰팀을 구성해 감찰에 돌입했고 이 지검장과 안 국장의 사표도 수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검찰 조직을 흔들 수 있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검찰로서는 허를 찔린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 내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사로 인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며 “아직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파격 인사가 또 단행될 경우 검찰 조직에 미칠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석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임명이 검찰 개혁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검찰로서도 검사 조직의 나쁜 행태가 드러난 상황에서 대통령의 인적 쇄신에 저항하거나 반발할 명분이 없다는 분석이다.

우병우 라인 솎아내기 시작…다음은 누가?

이 지검장과 안 국장의 감찰과 좌천은 ‘우병우 라인 솎아내기’라는 명분도 있다. 두 사람은 검찰 안팎에서 ‘우병우 라인’이라는 얘기가 끊임없이 돌았다. 안 국장의 경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2년 가까이 호흡을 맞춘 바 있다. 특히 국정 농단 수사가 본격화될 무렵 1000차례 넘게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 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는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우 전 수석을 검찰에 수사 의뢰한 때이기도 하다. 이 지검장은 작년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장으로서 우 전 수석의 황제수사 논란과 부실수사 의혹을 받았다. ‘돈봉투 만찬’이 부적절하다고 지적받는 이유도 검찰이 우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한 지 나흘 만에 안 국장과 특수본 간부들이 만난 탓이 크다. 우 전 수석에 대한 ‘봐주기 수사’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상황에서 조사 대상으로 꼽히던 안 국장이 수사팀에 격려금을 줬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일단 ‘정윤회 문건’ 수사팀 조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 실무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던 유상범 창원지검장(51)이 총괄했다. 문건 내용의 진위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던 정수봉 대검 범죄정보기획관(51)이, 문건 유출 과정은 특수2부장이던 임관혁 부산지검 특수부장(51)이 각각 수사했다. 당시 대검에서는 윤갑근 대구고검장(53)이 반부패부장 직무대행, 최윤수 국가정보원 2차장(50)이 반부패부 선임연구관으로서 수사팀의 보고를 받았다.

이 사건 이후 윤갑근 강력부장은 대검의 핵심 부서인 반부패부장에 정식 임명됐고, 유상범 중앙지검 3차장은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공판송무부장이 됐다. 최윤수 연구관은 우병우 전 수석의 대학 동기로 유상범 3차장이 자리를 옮긴 뒤 1년 만에 검사장으로 승진한다. 이후 임관혁 특수2부장은 검찰 관례를 벗어나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직을 한 번 더 맡았다.

윤갑근 대구고검장은 작년 8월 우 전 수석과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을 특별수사한 바 있다. 윤 고검장은 우 전 수석과 1990년 사법연수원을 19기로 함께 수료한 연수원 동기다. 2008년 서울중앙지검에서 나란히 부장검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정윤회 문건’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수장을 눈여겨볼 필요도 있다. 수사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65)과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58)이 검찰의 컨트롤타워였다. 김수남 지검장은 정윤회 문건 수사를 마친 뒤 대검 차장을 거쳐 검찰총장이 됐다. 사표가 수리된 김 전 총장은 사의를 밝히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도 마무리됐고 대선도 무사히 종료된 만큼, 소임을 어느 정도 마쳤다고 생각돼 사의를 표명했다. 새 정부의 퇴임 압력은 없었으며, 조국 민정수석의 임명과도 무관하다”고 밝혔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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