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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가야사 언급 ‘숨은 뜻’은?

DJㆍ盧 정부 추진, 예산 문제로 연기…영호남 화합 계기, 홀대받은 역사 복원

文 대통령 “가야사, 국정과제 포함시켜 달라” 이유는?

학계, “감개무량” “놀랍다” vs “부적절” 반응 엇갈려

전문가들 “영호남의 화합 계기 가능성 크다”

예산확보 과열 움직임에는 경계의 목소리 높아져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 사업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켜 줄 것을 당부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지금 국면하고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고대사 중에서 삼국사 이전의 역사가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특히 가야사는 신라사에 덮여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 국정기획자문휘원회가 국정과제를 정리하면서 가야사 부분을 꼭 포함시켜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가야사를 경남 중심으로 경북까지만 미친 역사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더 넓고, 섬진강 주변 광양만과 순천만, 심지어 남원 일대까지 맞물리고 금강 상류 유역까지도 유적들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게 넓었던 역사이기 때문에 가야사 연구 복원은 영호남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라며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인데 국정기획위가 놓치면 다시 과제로 삼기 어려울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충분히 반영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 스스로 “뜬금없다”고 했을 만큼 가야사 언급은 갑작스러웠지만 준비된 발언으로 보여 진다. 문 대통령은 역사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2011년)에서 “나는 원래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다. 학교 다니는 내내 역사과목이 가장 재미있었고, 성적도 제일 좋았다. 지금도 나는 역사책 읽는 걸 좋아한다. 처음 변호사 할 때 ‘나중에 돈 버는 일에서 해방되면 아마추어 역사학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밝힐 정도다.

여기에 김해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김경수(김해을)ㆍ민홍철(김해갑) 의원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두 의원은 지난 총선 때 가야사 복원을 김해 지역 공약으로 내세웠다. 기자와 통화한 민홍철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공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문 대통령에게 그간의 경험과 가야문화권의 중요도를 자세히 얘기한 바 있다. 당시 문 후보는 ‘아 좋은 생각이다’라며 굉장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공약으로 해야겠다고 말했다. 가야사 2단계 복원 사업이 김대중 정부부터 시작됐는데 노무현 정부 말기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점을 문 대통령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 의원은 또 “지난 4월 말, 문 대통령이 가야 문화권이었던 하동의 화개장터에서 가야사 관련 공약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정상 취소됐고 국민들에게 알려드리지 못해 아쉬웠는데 문 대통령이 회의에서 언급하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중들에게는 불쑥 언급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가야사 문제는 차근차근 준비해왔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가야사 복원 사업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시작돼 노무현 정부 때 2단계 사업에 착수했으나 예산 문제에 부딪혀 진척을 보지 못한 사업이다. 애초 가야사 복원 2단계 사업의 기간은 2006~2012년이었지만, 예산 문제로 2012~2018년으로 미뤄졌다. 지난해엔 다시 2018~2022년으로 연기됐다. 사업이 늦춰진 이유는 사업부지 매입비용과 부지에 있는 공공단체와 초·중·고등학교 등의 이전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부지 매입에만 460억 원의 예산이 들어 총 2900억 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가야사 발언으로 학계는 다소 놀란 분위기로 알려졌다. 가야사를 전공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번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의견과 앞으로 진행될 가야사 복원 사업에 대한 방향성에 대해 살펴봤다.

학계, “감개무량” “놀랍다” vs “부적절”

기자와 통화한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이영식 교수는 “대통령이 가야사를 언급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40년 이상 가야사를 연구하며 항상 고구려, 백제, 신라에 밀려 홀대 당하는 입장이었는데 감개무량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현재 한국사가 삼국에 치우친 불균형 상태인 상황에서 가야사 연구가 필요하다는 선언적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의 가야사 언급으로 인해 가야사 연구 필요성이 공적인 토론의 장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호남에서 가야사를 연구하는 군산대 사학과 곽창근 교수도 비슷한 반응이다. 곽 교수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가야사 연구 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시기 적절한 발언으로 생각된다. 발언의 내용도 상당히 정리된 듯 해 보였다. 천착한 견해를 보여줘 놀랍기도 했다”는 반응이었다.

  • 옛 금관가야 김해 대성동고분군 (사진=연합뉴스)
홍익대 사학과 김태식 교수는 “우리 고대사가 고구려ㆍ백제ㆍ신라 등 삼국사 중심으로 연구되다 보니 다른 역사들에 대한 연구가 안 됐고, 특히 가야사가 신라사에 가려서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그 동안 가야사가 우리 역사에서 역사적 실상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해 온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반면 문 대통령의 발언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연세대 하일식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역사의 특정 시기나 분야 연구나 복원을 지시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하 교수는 “대통령이라는 위치에서 학문 문제에 대해 지시에 가까운 언급을 했으니 그렇다. 많은 연구자는 김대중 정부 때 금관가야(지금의 김해 일대)를 중심으로 가야사를 복원한다고 국가 예산을 엄청나게 많이(1290억원) 쓴 것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또 이런 얘기가 나오니 적절하지 못하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 대통령이 학계에 '특정 시기 연구에 집중하라'고 하는 것은 외국에도 예가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이영식 교수는 “당연한 지적”이라면서도 “다만 지금까지 가야사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야사를 좀 더 연구하도록 지원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역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교조주의적인 지침은 아니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근거로 가야사의 교과서 분량을 언급했다. 이 교수는 “현재 가야사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5줄 밖에 나와 있지 않다. 가야사는 삼국의 성립, 발전, 쇠퇴, 문화를 설명하는 부분 중 성립 부분에 잠깐 나와 멸망하는 식으로 기술돼 있다. 가야사 전개 600년을 학생들이 인식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결손 부분을 메꾸고 채워야 균형 있는 역사가 잡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곽창근 교수는 “가야사는 문헌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유물과 유적으로 쓰는 역사다. 학자들이 아무리 유적을 찾아도 정부에서 관심을 두지 않으면 역사의 흔적은 지킬 수 없다. 지금 유물과 유적을 찾지 않으면 가야사는 영원히 포기하게 된다”고 반박했다.

19대에 이어 20대에 ‘가야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던 민홍철 의원은 “정치권에서 역사를 새롭게 규정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는데 전혀 그런 차원이 아니다”라며 “역사를 해석하고 규정하는 것은 학계의 몫이다. 다만 가야사를 조사·복원하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아니겠나. 흩어져 있고 발굴이 안 된 부분을 국가가 연구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의미”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가야사는 왜 복원돼야 하는가

이영식 교수가 언급한 가야사 복원 사업 당위성은 두가지다. 이 교수는 “삼국시대라는 이름과 역사관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 여타의 다른 왕국의 역사를 전혀 되돌아보지 않았다. 가야가 문제가 아니라 부여의 경우 B.C 5세기에 등장해 A.D 5세기까지 전개됐던 우리 민족이 만든 천년 왕국이었다. 부여는 만주 벌판까지 진출한 국가였다. 삼국시대라는 역사관 때문에 다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대사 지평에서 전개됐던 여러 왕국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야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고 가야사 연구와 복원은 구멍 난 고대사의 한 공백을 채우는 일이 되는 것이다. 고대사의 공백을 메꾸고 채우는 일은 올바른 고대사의 역사상을 정립하는 것이고 이는 곧 올바른 역사교육으로 이어진다. 크게 보면 올바른 역사 바로세우기에 의한 역사 교육, 고대사 지평에서 구멍 난 곳을 되살려야 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또 “현실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경주는 신라를 통해 충남 공주ㆍ부여는 백제를 통해 먹고 산다고 한다고 하면 가야 문화권 지역인 부산·경남·전라 등의 지역은 차별화된 문화 관광자원으로서의 카드는 가야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고성 내산리 고분군에서 나온 유적. (사진=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가야고고학을 연구한 동아대 박광춘 교수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학자들이 가야를 왜곡해 연구했고, 우리나라 고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전기가야는 금관가야가, 후기가야는 대가야 연맹체가 주도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맹체설에 의해 가야 각국의 정치체 문화가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김해 대성동 고분군을 보면 가야문화가 3,4세기에는 신라문화보다 더 앞서기도 했다. 교과서에는 이런 부분들이 전혀 부각되지 않고 있다. 삼국 중심의 역사로 복원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며 가야사가 재조명될 필요성을 역설했다.

영ㆍ호남 화합의 계기 마련될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은 가야사를 언급하면서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며 발언의 의도를 내비치기도 했다. 주보돈 교수는 “참여정부 이후의 문 대통령이 가졌던 생각을 비롯해 그리고 선거과정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동서화합이 절실하다는 고민 끝에 가야사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가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가야사 전공 교수들도 한 목소리로 가야사 연구가 영·호남 화합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곽창근 교수는 “가야의 영역과 문화권은 영호남을 아우르고 있다. 호남 동부 상당부분은 가야 영역이다. 현재 유물과 유적을 통해 가야 문화권이 백두대간을 넘나들며 서로 교류하고 존중했던 부분들이 확인되고 있다. 그 지역들이 상생하면서 가야 역사를 써 내려갔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 이 사실을 알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호남 화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이영식 교수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가야 문화권 5개 시ㆍ도 17개 시·군 협의체에 강의를 가면 지금은 얼마나 분위기가 편해졌는지 모른다. 전북 장수에 가서 김해, 함안 얘기를 해도 진행하기가 편하다. 전북 장수의 가야 유적이 알려지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가야의 역사 문화에 대한 연구와 복원을 통해서 동서의 교류와 소통이 이뤄지고 있는 현장의 단면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영ㆍ호남 통합과 상생발전을 위한 다양한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시장·군수협의회는 지난 2005년 영·호남 10개 시군으로 출발해 현재 5개 시·도 17개 시·군 협의체로 성장했다. 고령군을 비롯해 달성, 성주, 합천, 거창, 함양, 함안, 고성, 하동, 남원, 임실, 장수, 구례, 광양, 순천 등 영·호남의 가야지역이 거의 모두 포함돼 있다.)

가야사 복원사업 방향은?

문 대통령 가야사 복원 사업 발언이 나오자 해당 지자체들은 예산 확보 경쟁에 들썩이는 모습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이영식 교수는 “예산을 놓고 싸우기 시작하면 가야 역사의 재판”이라며 “가야가 사분오열돼서 신라에 통합됐는데 벌써부터 예산 쟁탈전에 뛰어드는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동북아역사재단과 같은 재단 혹은 연구센터 설립을 언급했다. 이 교수는 “연구자들이 유적 발굴 및 조사, 복원의 키를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공적인 기능과 전문가들이 연구 방향을 조언하고 운용할 수 있는 중심체가 만들어졌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곽창근 교수는 균형적인 사업 지원을 주문했다. 곽 교수는 “현재 가야사 관련 행정 지원은 영남 중심이다. 호남은 지원이 전무하다. 호남에서는 젊은 고고학자들이 열정을 갖고 유적을 발굴해 학계에 알리는 수준”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영남에서 가야계 고총, 즉 대형 고분에서 철기 유물이 대량 발견돼 가야를 철의 제국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제철유적이 발견된 곳은 전북 동부지역이 현재까지 유일하다. 전북 장수에서 현재 확인된 제철 유적지만 150개소다. 제대로 된 지원 없이 찾아낸 성과”라며 “가야사 복원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이 호남”이라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전북 동부 지역은 가야사 복원 사업에 걸음마도 시작 못한 상태”라며 “균형 있는 지원으로 자료를 수집한다면 가야사는 충분히 복원될 수 있다. 유적과 유물로는 삼국에 견줬을 때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박광춘 교수는 이번 사업이 가야사 재조명에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기원했다. 박 교수는 “이번 가야사 복원 사업을 계기로 가야 문화와 신라 문화를 나누는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임나일본부설을 비롯한 과거 일본이 만들어놓은 가야에 대한 식민사관도 탈피해야 한다. 여전히 고대사 관련 식민사관에 젖어 있는 학자들이 존재한다”며 “발굴과 조사를 통해 다양한 학설이 나와 논쟁을 펼치면서 가야사를 복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젊은 연구자들의 새로운 시각으로 가야사를 새롭게 복원하는 방향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자체들의 예산 확보 과열 움직임에 대해 민홍철 의원은 “가야사 복원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문화재청 등 여러 부처가 관계돼있다. 이 기관들이 구성한 추진단에서 심층적으로 검토해야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 의원은 “개발 위주로 가면 안 된다”며 “제대로 연구가 진행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복원과 보존으로 이어져야 후세에 남겨줄 유산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 인력도 확충하고 심층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종합적인 대책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면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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