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총구 MB정권 정조준… 4대강, 논두렁 시계 등 전방위 사정

4대강 사업, 감사원 감사 돌입… 김은경 장관, 복원 시사

국정원, 유례없는 셀프조사 초읽기… MB 최측근 원세훈 벼랑 끝?

윤석열에 이은 문무일 지명… MB 관련 사건 재조사 염두?

문재인 정부가 MB 정권에 대한 칼날을 본격적으로 겨누기 시작한 모습이다. 국정원, 검찰 등 사정기관을 비롯해 정부부처에서 MB 정부 시절 발생했던 일들에 대해 검토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움직인 쪽은 감사원이다. 감사원은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4대강 정책감사’에 지시에 따른 감사에 지난 3일 돌입했다. 새로 임명된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4대강 사업 관련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릴 계획을 인사 청문회에서 밝혔다. 김 장관은 또 “장기적으로 4대강 재자연화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22조원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이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도 생겼다.

문 대통령은 MB 정부 시절 논란이 됐던 사건들에 대해서도 분명히 짚고 넘어갈 뜻을 밝혔다. 지금까지 임명 내지 내정된 사정기관의 인사 배치를 보면 이는 명확해진다. 인사 청문회 당시부터 국정원 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던 서훈 국정원장은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를 통해 과거 국정원에서 불거졌던 정치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특히 ‘적폐청산 TF’에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논란이 됐던 ‘논두렁 시계’ 문제와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불거졌던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사건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MB 정부 시절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던 일들이다.

검찰 쪽도 상황이 비슷하다. 문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사건’ 외압을 폭로했던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을 임명한 데 이어 검찰총장 후보로 ‘특수통’ 문무일(56ㆍ사법연수원 18기) 고등검찰청장을 지명했다. 문 후보자는 김경준 전 BBK 대표 기획입국설과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맡은 바 있다. 모두 MB 측과 관련 있는 사건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7월 중순경 종료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활동과 함께 내각 구성도 늦어도 7월 말까지는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사정정국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쌍끌이 사정’이다. 이때까지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함께 할 인사들을 각 기관 및 부처에 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인사 배치로 봤을 때 적폐청산의 총구는 MB정권으로 향해 있다. 전(前) 정권인 박근혜 정부 관련 인사들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4대강 사업, 감사원 감사 돌입… 김은경 장관, 복원 시사

MB 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과시하는 4대강 사업은 풍전등화 신세다.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인 ‘4대강 사업 재조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정책감사’를 지시한 데 따른 조치로 지난 3일부터 1단계 실지 감사를 진행 중이다. 실지 감사는 약 3주간 이뤄질 예정이다. 4번째 실시되는 이번 감사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정책결정 과정부터 계획수립, 건설공사, 수질 등 사후관리 점검과 성과분석까지 전 과정에 걸쳐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 대상 기관은 국토교통부, 환경부, 기획재정부, 수자원공사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감사원에 ‘문 대통령 사람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일,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을 지낸 김진국 변호사는 황찬현 감사원장에 의해 감사위원으로 임명 제청됐다. 김 변호사는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문 대통령과 함께 노 전 대통령 변호를 맡았으며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당시 후보 캠프에서 법률지원업무를 맡았다. 신임 사무총장에는 문 대통령의 고교 6년 후배인 왕정홍 현 감사위원이 임명 제청됐다. 대통령과 관계가 있는 인사들이 감사원 요직에 들어서면서 4대강 감사가 여느 때보다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움직임도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 감사와 별개로 환경부 차원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민관합동조사단이 꾸려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지난 3일 인사 청문회에서 ‘4대강 재자연화가 어떤 방향인지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달라’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정책 질의에 “4대강 재자연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앞서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운영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김 후보자는 또 “그간 4대강에 대한 대응은 이쪽도 저쪽도 만족하게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강(江)은 강다워야 한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4대강 재자연화는 많은 분의 의견을 듣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최적의 기술을 적용해 장기간에 걸쳐 추진해야 한다”며 “모든 국민의 지혜를 모으고, 수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4대강 재자연화를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4대강 사업을 위해 건설된 보와 수문의 철거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이다.

김 후보자는 또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겨냥한 답변도 내놓았다. 그는 강병원 민주당 의원이 “2010년 1월 감사원이 4대강 1차 감사를 발표할 때 보고서에는 없던 4대강 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을 포함했다”고 지적하자 “환경부 비리가 밝혀지면 적법하게 처리하는 것이 맞다. 법에 성역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직 대통령도 포함해서 성역이 있을 수 있느냐’는 재차 질문에 “당연히 법에는 성역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4대강 사업 의혹 재조사 방침을 밝히며 “정책 판단의 잘못인지 부정부패가 있었는지 명확하게 규명하고, 불법이 드러나면 법적 책임과 손해배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또한 공약집을 통해 '대형보 상시 수문 개방·4대강 재자연화 추진'을 약속하기도 했다.

국정원, 유례없는 셀프조사 초읽기

서훈 국정원장은 지난달 19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를 발족시키면서 “개혁위 출범은 제2기 국정원을 여는 역사적인 과정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국정원은) 상처 없이 다시 설 수 없는 상황으로, 팔이 잘려 나갈 수 있다”며 고강도 개혁 의지를 밝혔다.

최근 보도된 개혁위 산하 ‘적폐청산 TF’에서 다룰 내용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지금까지 밝혀진 조사 대상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논두렁 시계' 문제 ▦18대 대선 당시 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채동욱 전 검찰총장 뒷조사 의혹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이다. 모두 MB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사안이다.

특히 ‘논두렁 시계’ 사건과 ‘NLL 회의록 공개’는 논란 이후 파급력이 상당했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논두렁 시계’ 사건은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조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박 전 회장으로부터 금품 등을 받은 혐의로 대검 중수부에 소환됐다. 그로부터 얼마 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권양숙 여사가 1억 원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나왔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그런 진술을 하지 않았다며 강력 부인했지만 보도의 파장은 일파만파 커졌다. 이후 검찰의 ‘언론을 통한 망신주기’가 계속 이어졌고,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세상과 등졌다.

나중에 오보로 드러난 이 내용을 언론에 흘린 당사자로 지목된 인물은 현재 ‘법조 비리’로 재판을 받고 있는 홍만표(구속) 변호사다. 홍 변호사는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이었다. 당시 중수1과장으로 주임검사를 맡았던 인물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수사를 지휘한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2015년 2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명품시계 논두렁 보도는 국가정보원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며 “국정원이 말을 만들어 언론에 흘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국정원 개입 근거에 대해선 때가 되면 밝힐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당시 국정원장은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MB 측근 원세훈 전 원장이다.

이 전 중수부장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은 엇갈린다. 검찰에서 흘렸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은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거의 매일 하루 두 차례 공식 비공식 브리핑을 통해 수사내용을 상세하게 중계방송을 하다시피 했다. 이런 이유로 수사팀이 아닌 이상 ‘시계’와 같은 작은 내용이 외부로 흘러나갈 일이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때문에 1차적으로 국정원에서 진상 파악을 한 이후, 검찰과의 공조를 통해 사실관계를 따질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적폐청산 TF에는 현직검사 3명이 투입된 상태다.

원세훈 전 원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에도 연루돼 있다. 이 사건은 2012년 18대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상부 지시에 따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에 대한 비방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이다. 이로 인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원 전 원장은 2015년 대법원에서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 된 뒤 최근까지도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계류 중이다. 현재 적폐청산 TF는 2012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주재한 회의의 녹음 파일과 녹취록을 우선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녹음파일과 녹취록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에 나섰던 검찰에서 확보하려 했지만 국정원의 비협조로 이뤄지지 않았다. 국정원 적폐청산 TF에서는 2012년 6월부터 대선 직전까지의 국정원 데이터베이스에는 보다 수위가 높고 법적 논란이 있을만한 발언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만약 국정원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질 경우 파장은 가늠하기 힘들다. 원세훈 전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국정원장 재직 당시 수많은 정치개입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이 밖에 18대 대선 당시 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사건 역시 MB 정부 시절 발생한 일이다. NLL 기밀유출 사건은 지난 18대 대선 전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주장을 갑자기 내놓았다. 당시 새누리당은 이를 선거전에서 크게 활용했다. 정문헌 의원은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이 문건 내용을 언급했고, 김무성 전 대표는 박근혜 후보 유세장에서 문건 내용을 읊었던 일도 벌어졌다.

대선 이후에는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과 발췌본을 전면 공개했지만 국가기록원에 회의록 초본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청와대까지 나섰고 참여정부 인사들은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회의록 폐기 혐의로 기소된 참여정부 인사 두 명은 모두 무죄를 받았다. 적폐청산 TF는 필요하면 원세훈, 남재준 전 국정원장들을 조사한다는 방침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에 이은 문무일 지명…다목적 포석

지난 4일 낙점된 문무일 부산고등검찰청장은 대검찰청 특별수사지원과장, 중수1과장 등을 역임한 '특수통'이다. 문 후보자와 참여정부 핵심이었던 문 대통령은 좋지 않은 인연을 갖고 있다. 문 후보자는 2004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비리 특별검사팀에 파견돼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조사했고,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씨 관련 의혹 수사에도 참여했다.

파격인사로 평가받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역시 참여정부와 악연이다. 윤 지검장은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안희정 현 충남지사와 '후원자' 고(故)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수사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의 미국 고급 아파트 매입 의혹을 수사하면서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기소한 바도 있다. 윤 지검장과 문 후보자는 2007년 대검찰청 중수1과장 시절 ‘변양균ㆍ신정아 게이트’ 수사를 지휘하면서 파견검사였던 윤 지검장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처럼 참여정부와 그리 달갑지 않은 인사들을 임명한 문 대통령의 속셈은 무엇일까. 두 인물은 검찰 내 대표 ‘특수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적폐청산 과정의 중간 기착지는 검찰이다.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검찰로 사건이 넘어올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두루 경험했던 두 사람들이 향후 예상될 사안들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평가다.

두 사람은 MB 관련 수사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윤 지검장은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BBK 주가조작' 사건을 맡은 정호영 특검팀에 파견돼 수사했다. 문 후보자는 김경준 전 BBK 대표 기획입국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수사를 맡은 바 있다. 그는 2015년엔 ‘성완종 리스트’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당시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를 기소하기도 했다.

MB 관련 수사를 했던 두 인물이 검찰의 투톱으로 나선다는 점은 이 전 대통령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BBK 사건의 경우 김경준 씨가 새로운 사실을 폭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성완종 리스트’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홍 대표로서는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문 후보자가 검찰총장이 된다면 여간 부담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홍 대표 역시 이 전 대통령과는 가까운 사이다.

문 후보자 지명은 향후 이 전 대통령 자원외교 수사를 염두에 둔 인사라는 평가도 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비리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받던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기 직전 금품을 건넨 정치인 8명의 명단을 남기면서 시작됐다. 자원외교 비리 의혹 연장선상에서 수사를 재개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BBK 사건과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국민들에게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청문회 과정에서 진통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야당인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포함된 수사를 펼친 문 후보자를 상대로 공세에 나서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허인회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