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사장 잇단 사의 ‘물갈이’… 공기업계 ‘사정 태풍’ 몰아칠 듯

철도ㆍ도로ㆍ가스ㆍ항공우주공사 사장 줄줄이 사퇴 ‘사정 바람’

방산비리 등 지난 정부 공기업 수장 비리 수사 맞물려

적폐 청산ㆍ대대적 사정 드라이브 예고… 떨고 있는 공기업 수장들

공기업 수장들이 하나둘씩 잇따라 사의를 표명하면서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공공기관장의 대규모 물갈이가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과거 정부의 적폐 청산과 대대적인 사정 드라이브를 예고한 상황이다. 방산비리 등 과거 정부에 대한 수사와 공기업 수장의 비리 수사가 맞물리면서 향후 공기업계에 사정 태풍이 몰아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직원 채용비리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는 박기동 가스안전공사 사장이 지난 23일 사의를 표명하고 다음날인 24일 정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박 사장은 12월 임기 만료를 5개월 앞두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앞서 경제학자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지난 20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 사장은 2015년 7월 취임해 임기가 내년 6월30일까지다.

이 사장과 박 사장은 각각 새 정부출범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의 사장 가운데 첫 번째, 두 번째로 자진사퇴한 사례가 됐다.

방산비리 수사를 받아온 하성용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전 사장은 지난 20일 이사회에서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박근혜 정부 초창기인 2013년 5월 KAI의 첫 내부 출신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된 하 전 사장은 박근혜 정부와의 유착 의혹을 남긴 채 회사를 떠났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중에서도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지난 7일 전격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자유한국당 3선 정치인 출신의 김 전 사장은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새로운 국정철학에 맞게 도로 정책을 펼 수 있게 하기 위해 물러난다”는 뜻을 밝혔다.

이 같은 최근 공기업 수장들의 잇따른 사퇴두고 일부에서 지난 정권 때 임명된 공기업 사장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가 시작됐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떨고 있는 공기업 수장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부처 장ㆍ차관이 일제히 교체되듯 새로운 사장이 임명되는 것이 관행이다. 문재인 정부 인선 조각이 마무리단계에 들어선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공기업 사장들에 대한 ‘물갈이 인사’가 시작될 전망이다.

박기동 가스공사 사장의 경우 형식은 ‘자진사퇴’이지만 실상은 직원 채용비리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을 계기로 물러났다. 하성용 KAI 전 사장도 방산비리 수사로 자리에서 사실상 쫓겨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새 정부가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에 대해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등을 대대적으로 착수할 것이란 말이 정치권과 사정기관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또 이를 통해 우회적으로 잔류해 있는 전 정권 인사들에 사퇴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은 도로공사 외에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코레일 등 14개사에 달한다. 이번에 공석이 된 한국가스공사와 가스안전공사 이외에 한국감정원의 경우 작년 말 서종대 원장이 물러난 이후 아직 공석이다.

그 외에는 국토부 산하 공기업 사장 중에 정치인 출신은 없다. 다만 작년 3월 임명된 성일환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공군 참모총장(대장)을 지낸 군인 출신이다.

정일영(인천국제공항공사), 박상우(한국토지주택공사). 홍순만(코레일), 강영일(한국철도시설공단), 김병수(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박명식(한국국토정보공사) 사장 등은 국토부 관료 출신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하 공기업이 한국전력공사와 가스공사, 석유공사 등 41곳에 달할 정도로 많다.

2014년 11월 취임한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의 경우 검찰을 나와 새천년민주당과 민주당, 친박연대를 거쳐 간 정치인 출신이고, 나머지는 출신 이력이 관료, 교수, 업계 출신으로 다양하다.

국토부 내에서는 조만간 있을 실ㆍ국장급 인사와 연계해 산하 공기업 사장 인사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산업부도 새 장관이 취임한 만큼 공기업 사장 인사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제 새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공기업 사장들을 필두로 조만간 대규모 물갈이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공기업 수장 뒷덜미 잡나

홍순만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지난 28일 정부에 사표를 제출하면서 청와대 주변에서는 새정부 내각 구성이 마무리되면서 공기업 수장 물갈이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고 관측한다.

이날 정부에 사표를 제출한 홍 사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인천시 경제부시장을 역임하다가 지난해 5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으로 취임한 홍 사장의 임기는 오는 2019년 5월이었다.

홍 사장은 코레일 혁신에 힘써왔으나 그 과정에서 노조와의 충돌이 잦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하면서 최장기 철도파업을 맞기도 했다. 지난 18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은 ‘적폐 공공기관장’ 10인 명단을 발표하고 홍 사장 등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최근 공공기관장 물갈이는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박기동 사장은 임기를 5개월 남긴 상황에서 정부에 사표를 제출했는데 그 배경을 두고 ‘채용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부담을 느껴 자진 사퇴를 결심한 것이라는 말이 파다하다.

앞으로 양대 노총 적폐기관장에 이름을 올린 다른 사장들의 사퇴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명단에 포함된 인사는 이미 사표를 낸 홍순만 사장과 이승훈 사장 외에도 유제복 코레일유통 대표이사,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 김옥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서창석 서울대병원 원장,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박희성 한국동서발전 사장 직무대행, 정영훈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이사장, 이헌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등이 있다.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이들에 대한 사정당국의 조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적지 않다. 박근혜 정권 때 낙하산 인사에 대한 논란이 많았고 이 공기업들 중 일부는 여러 비리 의혹이 제기되기도 해 사정당국이 조사할 경우 전방위 사정광풍이 몰아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금융 공기업의 친박계 수장과 임원들의 교체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공공기관 인사를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정부 성향의 인사들을 대폭 물갈이하고 새로운 후보군을 물색하는 절차로 풀이된다.

가장 첫 손에 꼽히는 친박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는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해 금융 관련 공약을 개발하고 전현직 금융인의 후보 지지선언을 이끌어내는 등 선거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정 이사장은 최순실 게이트의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최순실 측근 인사의 승진을 위해 KEB하나은행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임기가 1년, 정 이사장은 2년 이상 남았지만 워낙 ‘친박’ 색채가 뚜렷해 새 정권과 함께 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금융공기업 임원들 중에서도 ‘친박 낙하산’이 적지 않다. 특히 올해 초 탄핵 국면 기간에 정국 혼란을 틈타 막판 밀어내기식 금융권 낙하산이 많아 이들이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실상 이들은 친박 성향이 너무 강해서 알아서 나가주길 바라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낙하산 척결대상 어디

대표적인 곳이 주택금융공사다. 올해 1월 금융위원회는 주택금융공사 신임 비상이사를 3명을 임명했다. 이 가운데 2명이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출신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표적인 ‘친박 폴리페서’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노사정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서울 강동갑 한나라당 당협위원장,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 선대위 정책메시지 단장을 했다.

김동주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부 검사 출신으로 금융위원회 법률자문관 등을 거쳐 2015년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금융권 경력조차 없는 인물들도 상당수 임원급 자리를 차지했다.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을 지낸 조인근 한국증권금융 감사가 우선 꼽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펜’으로 불리던 조 감사는 2004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부터 메시지 담당으로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측근으로 꼽혀온 인물이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작년 9월 기준으로 금융공기업 임원 255명 중 97명(38%)이 낙하산이며, 이 가운데 53명은 여당이나 18대 대선 캠프 출신의 ‘정피아(정치권+마피아)’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금융권 곳곳에 포진돼있는 지난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금융 관련 기관의 수장 및 임원들의 임명 및 교체 태풍이 불 전망이다.

또 검찰 등 사정 당국이 공기업 수사를 통해 반(反)부패 사정 드라이브의 신호탄이 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방산비리 수사와 가스안전공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그것이다.

검찰은 충북 음성의 가스안전공사 본사에 수사관을 급파해 회계 장부 등을 확보했다. 이는 박기동 가스안전공사 사장의 채용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 차원으로 풀이 된다. 앞서 감사원은 가스안전공사의 직원 채용 과정에서 면접자 순위를 조작했다는 제보를 받고 감사에 착수, 비리 사실을 적발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일단 검찰은 박 사장의 개인 비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앞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지난 14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18일 KAI 협력업체 5곳을 압수수색하며 방산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본격 착수했다.

KAI는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등 항공사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원가를 부풀려 방위사업청으로부터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2015년 직원 선물용으로 구입한 상품권 중 17억원의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아 비자금 및 로비설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또 최근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자리에서 물러난 하성용 전 대표가 박근혜 정부 문고리 3인방의 측근 인물인 점에 주목하고 있어 이번 수사가 과거 정권의 비리를 캐는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향후 검찰 수사가 문고리 3인방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으로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된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선거개입 지시 등 내용을 담은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이명박 정부의 각종 의혹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 4대강 사업 등 국정원·감사원이 이미 조사ㆍ감사에 착수한 이명박 정부 의혹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의혹은 특검·검찰 수사를 통해 상당 부분 밝혀진 만큼 적폐청산 칼 끝이 자연스레 이명박 정부의 ‘청산되지 않은 의혹’을 겨누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여권에선 정부가 공기업 개혁을 고리로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정부의 4대강ㆍ방산ㆍ자원외교 비리도 다시 조사해 부정축재 재산이 있으면 환수하겠다”고 했다.

검찰의 방산비리 수사도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 때로 확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4대강 사업, 자원외교 의혹에 대한 수사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 때 4대강 사업 등을 수사했지만 의혹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전방위로 수사할 경우 그 칼날은 재계와 정치권을 패닉에 빠뜨릴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