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재판 이후 MB 겨냥수사 급물살 국정원 다음 타깃

보수진영 ‘정치탄압’ 반발 확산 속 불안한 이들 누구?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여론조작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으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 전 원장이 유죄판결을 받음에 따라 검찰의 칼날이 이명박 정권의 핵심부를 겨냥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가능성이 언급되는 등 여·야 간의 첨예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진보진영은 이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원 전 원장 윗선에 대한 추가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두고 정치보복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정원 인사처장 출신인 김병기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불가피하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까지 가게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면서 “불법적이고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는데 대통령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이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

또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도 이날 당 회의에서 "국정원 댓글사건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야권의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김성태 한국당 의원은 이에 대해 “전 정권 일들은 모두 적폐로 규정하면서 공권력을 동원하고 뭐 하나 발견하면 한 건 했다는 식으로 떠벌리는 것은 정치보복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 정권은 분명히 유념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국정원 댓글이 무슨 대선의 영향을 줬다고, 5년이 지난 사건을 대통령 되고 난 뒤에도 그렇게 집요하게 보복을 하고 있는지”라며 “참 무서운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원세훈 유죄 판단 근거

법원이 지난달 30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임 기간에 국정원 직원들이 벌인 정치 관련 ‘댓글 활동’을 선거 개입으로 인정하며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실형을 선고했다.

원 전 원장에 대한 1심과 대법원 파기환송 전 2심, 직접 결론을 선고하지 않고 고법으로 돌려보낸 대법원의 선고(파기환송), 파기환송 후 2심(파기환송심)의 판단에는 다소 간의 차이점이 있다.

우선 이번 판결은 파기환송 전 2심인 2015년 2월 판결과 ‘모두 유죄’ 결론은 같다. 다만, 구체적인 혐의 사실 가운데 인정된 범위는 큰 차이를 보인다. 더 무거운 혐의인 선거법 위반을 무죄로 보고 ‘국정원법 위반만 무죄’로 판단 1심과 비교하면 결론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2심이 유죄 판단의 핵심 증거로 삼은 국정원 직원의 이메일 첨부 파일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무더기 증거가 나온 '425지논' 파일과 '씨큐리티' 파일은 증거로 쓸 수 있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를 판단 증거로 사용하려면 사실관계를 다시 따져보라는 취지였다. 다만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직접적인 유·무죄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대법원이 문제 삼은 직원 김모씨의 이메일 첨부 파일 ‘425지논’과 ‘씨큐리티’ 파일에는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이버 활동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계정 269개와 비밀번호, 심리전단 직원들의 이름 앞 두 글자를 적은 명단과 활동 내용 등이 담겼다.

대법원은 이 파일이 형사소송법상 ‘전문(傳聞)증거’라는 이유로 어떤 사실에 관한 내용이 위·변조나 오염 없이 진실하게 작성됐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전문증거란 체험자의 직접 진술이 아닌 간접 증거를 말하며, 증거로서 가치인 증거능력이 제한적으로 인정된다.

형소법은 전문증거의 경우 작성자가 직접 법정에 나와 자신이 작성한 것임을 인정해야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국정원 직원 김씨는 1심 법정에서 이 파일이 자신이 작성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대법원이 부인한 해당 파일의 증거능력은 부인했다. 혐의 인정과 법적 판단은 엄격한 증거법칙과 철저한 증명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형사재판 원칙에 따른 것이다.

대신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트윗 계정을 1심(175개)보다 많은 391개로 인정하며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 범위를 폭넓게 인정했다.

재판부는 직원들이 이들 계정을 이용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글을 올린 건 국정원법이 금지하는 정치관여 행위라고 봤다. 이때의 글들은 당시 여당인 박근혜 후보를 노골적으로 옹호·지지하거나 야당 후보였던 문재인, 이정희, 안철수 후보를 반대·비방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고 지적했다. 여당 후보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본 것이다.

원 전 원장 측은 선고 직후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혀 이어지는 공방이 관심을 끌 전망이다.

원 전 원장에 대한 유죄 선고 배경에는 검찰이 파기환송심에서 추가로 제출한 국정원 회의 녹취록과 보고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번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판례 취지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파일들의 증거능력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과 검찰이 추가로 낸 각종 문건을 유죄 인정의 중요 판단 근거로 삼았다. 기존 2심은 ‘대규모 파일’과 ‘트위터 계정’을 통해 선거법 위반을 인정했지만, 파기환송심은 ‘트위터 계정’과 ‘각종 국정원 문건’을 중심으로 유죄를 인정했다.

국정원 적폐청산 어디로

검찰이 현재 진행 중인 국정원 재수사 방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원 전 국정원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검찰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사정기관과 정치권 안팎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칼날이 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달 30일 국정원 퇴직자 친목단체 양지회 회원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댓글부대 관련한 압수수색은 이번이 네번째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는 이날 양지회 회원 10여명의 자택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이들의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같은 달 23일 외곽팀장 김모씨 등 관계자 주거지와 양지회 사무실 등 30여곳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이날 확보한 양지회 압수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양지회 사이버 동호회 회원들이 2009년부터 2012년 겨울 댓글활동을 벌인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같은 달 25일에는 서울과 수도권 모처에 있는 외곽팀장 주거지 2곳을 2차 압수수색했고 28일 사이버외곽팀장 주거지 2~3곳과 사무실 1곳에 대해서도 3차 압수수색을 했다.

검찰은 동시에 외곽팀 활동과 연관있는 정황이 발견된 단체 관계자들에 대해 연일 소환조사해왔다. 늘푸른희망연대 대표 차미숙씨와 변철환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 선진미래연대 조직국장 차모씨, 육해공군해병대예비역대령연합회(대령연합회) 회장 양모씨 등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양지회 전 기획실장 노모씨를 소환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는 양지회의 연간 예산 집행을 관리해왔으며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 심리전단의 요청과 금전적 지원이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달 30일 청와대 전 행정관 오모씨를 소환조사했다. 오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진홍 목사가 창립을 주도한 민생경제정책연구소에 재직 중으로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친인척 등 주변인물 10여명을 동원해 온라인 댓글을 달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이날 “적폐청산 TF 조사사건 중 국정원 댓글사건과 관련해 21일 수사의뢰된 사이버 외곽팀장 30명 외에도 18명이 중간에 교체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들 18명에 대해서도 검찰에 추가 수사 의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는 사이버 외곽팀장을 중심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벼랑 끝 이명박의 남자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운영한 30개 ‘사이버 외곽팀’ 의혹을 중심으로 재수사를 진행하고 나서 원 전 원장에게 새로운 범죄 혐의를 적용해 추가 기소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검찰은 서울고법의 판결로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원 전 원장을 국정원법 위반이나 선거법 위반으로 추가 기소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검찰이 이후 국정원 사이버 외곽팀원들의 불법 정치개입 활동을 구체적으로 규명해도 한 번 처벌한 사안으로는 동일인을 다시 처벌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에 검찰은 원 전 원장 주도로 국정원이 최소 수십억원, 많게는 1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자금을 정권 옹호 차원의 불법 정치 활동에 들인 것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앞서 국정원 TF는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국정원이 민간인으로 구성된 30개의 사이버 여론조작용 외곽팀을 운영했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2012년 한 해만 외곽팀에 들어간 자금이 30억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국정원 내부 조사 결과와 광범위한 관련자 계좌추적 결과 등을 바탕으로 국정원이 외곽팀에 투입한 금액의 규모를 구체화해 원 전 원장에게 횡령·배임 또는 직권남용 등 새로운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원 전 원장 시절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등 조직적 일탈 행위가 법원에서 인정된 만큼 향후 검찰의 수사 칼날이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로 향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의 조직적인 위법 행위가 인정된 만큼 이 전 대통령도 수사를 피할 수 없다”고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청와대 관계자 등 ‘윗선’의 개입 여부가 향후 수사의 쟁점이 될 수도 있다.

국정원 내부 조사를 통해 당시 청와대가 국정원의 광범위한 사이버 여론조작 움직임을 보고받고 인지한 정황이 이미 구체적으로 드러나 이러한 그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 문건이 국정원이 광범위한 SNS 활동을 통해 사이버 공간의 불법 정치활동에 개입하는 중요 계기가 됐을 수 있다. 이에 원 전 원장을 정점으로 한 ‘댓글 사건’ 수사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국정원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전방위로 확대될 조짐이다. 검찰은 박영수 특별검사에게 특정검사를 수사팀에 포함하도록 요구하고 압력을 행사했다며 시민단체가 고발한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손준성)는 지난달 31일 오후 최 전 2차장을 고발한 윤영대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를 불러 조사하고 있다.

윤 대표는 조사에 앞서 “국가 안위를 담당하는 기관을 사유화해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행위를 했다”며 “이는 국기를 문란시킨 중대 범죄라 이번을 계기로 우병우 사단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 6월 1일 최 전 차장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와 협박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최 전 차장은 특별검사에 자신을 잘 아는 박영수 변호사가 임명되자 특검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수사팀 파견검사에 특정인을 포함하도록 요구하고 특검이 이를 거절하자 문자로 협박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 전 차장은 자신을 승진시켜 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의 부패수사를 막기 위해 국정원 제2차장이라는 위력을 악용해 협박하는 등 특검업무를 방해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 전 차장이 특검 수사를 방해한 것은 우 전 수석과 함께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한 것임으로 철저히 수사해 달라”고 말했다.

지난 4월 한 언론은 우 전 수석의 최측근 최 전 차장이 박 특검에게 특정검사 명단을 전달하며 파견검사로 받으라고 요구했고 특검이 이를 거부하자 문자로 항의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한편 여야는 원 전 원장이 공직선거법·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재수감된 것을 계기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국정원 등의 불법 정치 개입에 당시 청와대가 관여한 정황이 다수 드러난 만큼 이 전 대통령 수사도 불가피해지는 분위기다.

검찰의 칼끝이 원 전 원장, 국정원·청와대 간 연결고리로 의심받는 청와대 정무수석실 관계자 등을 거쳐 최윗선인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하게 되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진영에 대혼란이 올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때 군 사이버방위사령부가 댓글공작 실적을 보고서로 만들어 매일 오전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에 보고했다는 503 심리전단 전 간부의 증언도 나온 상태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국정원과 군의 불법 정치활동을 정무수석실·국방비서관실을 통해 보고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 수사의 핵심은 해당 문건의 최종 보고 라인을 밝히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문건들을 보고받았다면 국가기관의 불법적 정치활동을 지시했거나, 적어도 묵인·방조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국정원·군과 청와대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한 정무수석실·국방비서관실을 타고 윗선을 찾는 형태로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어 보수진영에 긴장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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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국정원법ㆍ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8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구치소로 향하기 위해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윤지환기자 mus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