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철학과 열정 갖고 혁신해야…서민과 젊은 세대 위한 길 가야

민생과 서민, 친중소 행보 해야…젊은 세대에 다가가야

야당 분열은 자멸… 통합과 연대, 혁신 통해 미래 열어야

대한민국 보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보수는 분명 위기다. 그런데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보수가 몇 가지 치명적인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안보 외에 민생과 서민 중시하는 길 가야

첫째, “시간이 지나면 문재인 정부가 무너질 것이다”는 믿음이다. 안보 위기가 심화되고 경제가 망가지면 내년 지방선거전에 민심 이반이 일어 날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통상 새 정부가 출범한 후 1년 정도 지나면 고공행진을 하던 대통령의 지지도는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 1993년 김영삼 정부는 집권 초기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등으로 80%대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해 12월 “쌀 개방을 대통령직을 걸고 막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지지율이 50%대로 하락했다. 집권 초기 IMF 극복에 매진하면서 70%대 지지를 받았던 김대중 정부도 1년이 지난 시점에 60%대로 떨어졌다.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안보 위기감이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의 9월 첫 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69%로 집계됐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취임 이후 처음으로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가 70%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아래 그림 참조).

한국갤럽의 9월 2주 조사에서도 문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 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지난주에 비해 4% 포인트 하락한 72%를 기록했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20%로 지난주보다 4%포인트 늘었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북핵·안보’(28%), ‘과도한 복지’(12%), ‘독단적·일방적·편파적’(7%), ‘사드 문제’(5%), ‘인사 문제’(5%) 등이 꼽혔다.

하지만 보수는 안보에 지나치게 올인하면 안 된다. 민생 보수의 길을 외면한 채 안보 보수만을 강조하면 “변한 것이 없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수가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결국 과거의 반공적 보수로 회귀하면 백약이 무효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상승, 비정규직 정규직화, 건보 적용확대, 아동수당 인상, 노인 수당 인상 등 선심성 정책들을 연일 발표하고 있다. 국민들은 국가 경제와 같이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실체에 초점을 맞추어 판단하기보다는 가계와 관련한 의식주 충족, 자녀 교육 등 개인적인 자금 사정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소득 주도 성장론을 내세우고 있는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당분간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보수들은 안보 위기를 의식해 문 대통령이 대북 기조를 대화에서 응징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국제 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6차 핵 실험을 단행한 것이 빌미가 됐다.

문 대통령은 동방경제포럼 참석을 위한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차원의 대화도 피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 상황은 북한의 위험천만한 도발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하고 압박해야 할 때이지 대화를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이 핵과 미사일 계획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방법으로 포기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문 대통령은 “우선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추가 도발을 중단하며 대화의 길로 나오도록 강제하기 위해 대북 제재ㆍ압박을 최고의 강도로 부과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사드 임시 배치를 완료하고 대북 기조를 변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가 정부를 향해 “안보 무능”만을 비판한다고 돌아선 보수가 저절로 회귀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가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도록 파격적이고 담대한 ‘안보 협치’를 주도해야 한다.

2001년 9ㆍ11가 테러가 발생했을 때 부시 대통령과 대선에서 맞붙어 석패했던 최대 정적인 엘 고어는 “부시는 나의 최고 사령관이다”면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어떤 경우에도 안보는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안보를 생명으로 삼는 보수 정당이라면 진보 대통령을 향해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보다는 전략적 설득의 기술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을 설득해 전술핵을 재배치하면서 핵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보수의 정체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만약, 현 정부가 전술핵 재배치에 동의하면 국정 전반에 걸쳐 협치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것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실이 정기국회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8.7%로, 신뢰한다는 응답은 20.4%에 불과했다. 국민은 국회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고, 특히 여야 간 소통과 협치가 매우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국민의 57.7%는 ‘국회가 입법과 예산ㆍ결산 심사 등 입법부의 역할을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고, ‘여야 간 소통과 협치를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77.9%에 달했다. ‘잘못하고 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로는 ‘여야가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39.7%), ‘야당의 무조건적인 반대가 여전하다’(19.5%), ‘국회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기 어렵다’(13.8%) 순이었다.

9월 정기국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민생법안 처리(28.3%), 안보문제(27.7%), 일자리문제(23.1%)가 다수를 차지했다. 이런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안보만을 강조해선 보수가 잃어버린 지지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는 안보 이슈만이 아니라, 민생과 서민을 중시하는 길을 가야 한다. 감세가 보수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라면 이제는 부자 감세가 아니라 서민 감세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 친대기업 정책을 펼쳤다면 이제는 친중소 기업 정책을 지향해야 한다. 가령, 현 정부가 과표 2000억원 이상 초대기업 법인세를 22%에서 25%로 늘린다면, 보수 세력은 오히려 과표 200억∼500억 이하 기업의 법인세를 낮춰주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여하튼 보수의 변신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1년 후에 치러질 내년 지방선거에서 평가받을 것이다,

보수 혁신의 시작은 통합… 젊은 세대를 위한 길 걸어야

둘째, 혁신하지 않아도 대여 투쟁을 강도 높게 하면 이탈하고 있는 보수층을 다시 결집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가 벌어지고 기록적인 대선 패배를 겪었지만, 보수 정치 지도자들은 통렬하게 참회하지 않은 채 분열에 앞장섰다.

단언컨대, 보수 혁신의 시작은 통합이다. 정치권에선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회자되었다. 그런데 작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보수가 분열되었다. 지난해 11월 23일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현 바른정당 고문)는 “박근혜 정부 출범에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새누리당의 직전 당 대표로서 지금의 국가적 혼란에 책임을 통감하고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부터 하겠다”며 자신의 대선 불출마와 함께 탄핵 추진에 앞장서겠고 선언했다.

탄핵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결국 새누리당을 탈당해 지금의 바른정당을 창당함으로써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보수 분열이 시작됐다. 한국당 나경원 의원은 분열된 보수 세력을 하나로 뭉치는 일로 바른정당과의 통합 추진을 언급하며 “우파 가치에 동참하는 모든 이들을 받아들여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보수 통합의 최소한의 전제 조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과 친박 청산이다. 나 의원은 보수 통합을 위해 “당내의 여러 가지 시각과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이제는 (구체제와의 단절을) 국민의 시각으로 속도감 있게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런 와중에 금품 수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7일 전격 사퇴했다. 그동안 ‘독자생존’ 노선(자강론)을 강조해온 이 대표가 물러남에 따라 향후 보수진영 및 야당 정계 개편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일부 보수 진영에선 이 대표의 사퇴로 보수 통합 시점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여하튼 바른정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느냐, 주호영 원내대표의 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하느냐, 전당대회를 열어 새 대표를 선출하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누가 바른 정당 수습의 중책을 맡을지에 따라 보수 통합의 방향과 시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창당 주역인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구원투수로 등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더욱이 유 의원의 등판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대선 당시 경쟁자였던 한국당 홍준표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이미 각 당의 대표로 나섰기 때문이다.

일단 김무성 의원은 “나는 뒤에서 돕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전면에 나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대신 당내 통합파로 분류되는 김용태 의원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무성 의원은 지난 달 16일 김영우, 김용태, 오신환, 유의동, 이종구, 이학재, 정운천, 홍철호, 황영철 등 바른정당 의원들과 만찬 회동을 가졌다. 보수 통합의 물꼬를 트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한편, 유 의원은 이 대표의 사퇴 직후 “(향후 당내 역할은)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당의 총의를 통해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유 의원은 최근 자강파로 분류되는 일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난 (자강이라는) 그 단어를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통합파든 자강파든 통합의 시기와 조건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겠지만 서둘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가 최근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박 전 대표는 지방선거 전 정계개편 가능성과 관련 6일 “정기국회 과정이나 정기 국회 끝나고 나면 조금 요동칠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정치는 타이밍과 가능성의 예술이다. 보수 세력들은 이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셋째,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고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고연령층의 지지를 받으면 언제가 보수는 승리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2017년 대통령 선거 투표율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대 투표율은 74.0%로 2012년 대선 당시(61.2%)보다 무려 12.8% 포인트나 올랐다. 30대 투표율도 5년 전 65.1%에 비해 6.4% 포인트 오른 71.4%를 기록했다. 19세 유권자 투표율 역시 65.2%에서 73.5%로 증가했다.

반면 40대 이상의 투표율은 감소했다. 특히 50대 투표율은 76.1%로 2012년 대선 당시 82.2%보다 5%포인트 이상 낮아졌다. 5년 전 80.2%를 기록했던 60대 이상도 77.0%에 그쳤다. 사전투표에서도 2030세대의 투표율이 돋보였다. 19세 43.5%, 20~24세 45.7%, 25~30세 37.9% 등으로 20%대를 기록한 40대 이상과 큰 대조를 보였다. 이런 투표율 분석이 주는 함의는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보수는 영원한 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3년 후인 2020년 총선에서 50대는 과거 386 세대로 채워진다. 1960년에서 1969년에 출생한 이들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세대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 보수 성향을 보이는 연령 효과보다는 공동의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든 세대 효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앞으로 2050 세대는 진보, 60대 이상은 보수를 지지하는 변형된 ‘세대 균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젊은 세대를 위한 길을 걷지 않으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한국 보수에 진정 필요한 것은 철학과 열정

보수 세력의 최대 실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뿐만 아니라 미래를 이끌어 갈 지도자를 키우지 못한 것이다. 바른 정당에서는 이혜훈 대표 사퇴 이후 3선의 김세연ㆍ김용태 의원을 필두로 한 ‘40대 기수론’도 나오고 있다. 이제 보수는 과감한 세대교체로 분위기를 일신해야 한다.

지난 2005년 영국 보수당은 만년 야당에서 벗어나기 위해 38세에 불과한 데이비드 캐머런을 당수로 선출했다. 제3의 길을 표방하면서 젊은 진보로 부상한 토니 블레어 수상을 상대로 경쟁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후 캐머런은 2010년 영국 총선거에서 보수당을 승리로 이끌면서, 43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직에 올랐다. 캐머런은 스스로 "현대적 따뜻한 보수주의"라고 말하고, 이를 새로운 정치관에 대한 요구라고 평가했다.

깨끗하고 서민적이며 따뜻한 보수로 가야 만 탈이념적이며 실용적인 젊은 세대의 지지를 이끌어 낼수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보수의 유언>이라는 책에서 보수의 본류로 “불역(不易)과 유행(流行)”을 강조했다. ”변하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으면서 때로는 발전과 전개(유행)를 해서 갱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보수는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는 에드먼드 버크의 정신과 일맥 상통한다.

몰락하고 있는 한국 보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 ‘선명 야당’이 아니라 철학과 열정이다. 보수에 대한 본질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보수란 무엇인가? 왜 한국 보수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가? 보수가 만나야 할 미래는 무엇인가? 등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사진 설명>

- ‘리얼미터’의 9월 첫 주 여론조사결과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안보 위기감이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69%로 집계됐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취임 이후 처음으로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가 70% 아래로 떨어졌다(리얼미터 홈페이지 캡처)

-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방송장악저지투쟁위원 연석회의에서 현 정부 안보정책을 평가하고 있다.(연합뉴스)

-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인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전체회의에서 대표직 사퇴 발표를 한 뒤 자리에 앉아 있다. 오른쪽은 주호영 원내대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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