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남자’ 이명박 전 대통령 “진실의 문 열린다.”

검찰 국정원 수사, 댓글부대 운영 다음 민간사찰 겨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전 정권의 치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시절 감춰졌던 비밀이 연이어 공개되면서 검찰은 관련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그동안 의혹만 제기됐던 국가정보원의 ‘댓글 여론조작’의 실체가 밝혀졌고 뒤이어 ‘문화계 블랙리스트’까지 사실로 드러나면서 사정기관과 정치권 주변에서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정원 부정활동 의혹과 관련해 귀를 의심케 하는 증언이 확보됐다. 전직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A씨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진보진영 인사들을 사찰하는 전담팀을 운영해 왔다고 폭로했다.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당시 야권 인사들을 사찰하는 전담팀을 운영해 왔으며 이 전담팀은 진보진영 핵심 정치인과 유력인사들이 부정축재와 일일동향 그리고 친인척 비리 등을 수집해왔다는 게 A씨의 증언이다.

A씨의 증언과 관련된 내용은 아직 검찰이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국정원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첩보를 입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단 검찰의 칼끝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는 분위기다. 사건의 뿌리부터 캐내겠다는 검찰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검찰은 지난 정부의 적폐 수사와 관련해 전담 수사팀을 꾸려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 주변에서는 댓글부대와 블랙리스트 수사를 두고 “검찰 수사가 국정원 활동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불어 최근 정치권에서 국정원 발 쓰나미가 정치권을 휩쓸 것이라는 우려 섞인 관측이 제기된다. 검찰이 국정원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내용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메가톤급 태풍이 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 비밀 TF팀의 실체

검찰이 국정원의 불법 활동에 대해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 등에서는 국정원의 불법 행위가 추가로 들춰질 경우 정치권을 뒤흔들 파장이 일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이와 관련해 <주간한국>은 최근 이명박 정부 당시 핵심 부서에서 근무했던 전직 국정원 A씨를 통해 여러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증언에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블랙리스트 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당시 민주당 등 야권진보진영 인사들에 대한 불법 사찰팀을 운영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A씨는 “원세훈씨가 국정원장이 된 이후 국정원 내 대대적인 인사 개편이 있었고 부서개편도 있었다”며 “인사개편은 사실상 인사 대청소 작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의 전문성과 보안성은 휘발유처럼 증발해버렸다”고 말했다.

또 A씨는 불법 사찰팀 운영과 관련해 “원세훈씨와 국정원 고위 간부 이모씨는 조직개편과 인사개편을 추진하면서 국정원을 마치 KGB처럼 사실상 이명박 친위 비밀경찰 부대로 바꿔버렸다”며 “당시 국정원의 활동은 국가안보와는 전혀 무관한 업무가 중심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증언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국정원은 인사개편을 추진하면서 철저하게 TK(대구ㆍ경북) 인사 중심으로 요직발탁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인사의 전문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오히려 비전문 인력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자리에 배치돼 조직은 그야말로 오합지졸들의 아마추어조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원 전 원장과 고위 간부 이모씨는 대북첩보활동 전문인력을 모두 국내부서로 몰아넣고 국내 동향을 파악하는 업무를 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요원들 사이에선 자조섞인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대북첩보 활동을 모두 중단하고 국내 활동 위주로 조직을 바꾼 이유는 중국을 통해 입국한 수십만명의 간첩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집안 단속을 먼저 하는 게 우선이라는 이유에서다.

주목을 끄는 부분은 원 전 원장과 이모씨의 주도로 국내 활동 부서가 신설된 것이다. 이 부서는 이른바 ‘대외협력국’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기업의 대관업무팀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한다.

A씨는 이 부서에 대해 “이 부서는 국정원의 인사권을 휘두른 이씨가 주도적으로 운영했다”며 “이 부서는 야권의 진보성향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업무를 주로 했다. 또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의 활동도 감시했고 시민단체 핵심인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일일보고 했다”고 말했다.

또 A씨는 “이 ‘대외협력국’이라 불린 TF팀은 야권인사들의 부정축재 정황, 친인척들의 비리, 그들이 접촉하는 사람들 등등 모든 것을 조사해 보고했다”며 “박원순 서울 시장의 경우 아내의 사업 내용과 정치자금 출처도 취합해 보고했고 안철수 대표에 대해서도 비슷한 내용을 조사해 이른바 ‘안철수 보고서’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안철수 보고서는 수백 페이지에 달한다”고 말했다.

검찰수사 향방 초미 관심

검찰 수사는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검찰은 ‘댓글 여론조작’사건과 관련해 지난 14일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 등 총 3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사건과 관련 피해자들을 상대로 조사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은 같은 날 “박원순 서울시장 및 좌파 등록금 문건 사건과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 관련 사건 등 국정원에서 제출한 수사의뢰서 2건을 송부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수사의뢰서와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은 곧바로 검토에 착수했다. 검찰에 따르면 국정원은 수사의뢰서에서 ‘2011년 11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종북 인물로 규정한 후 보수단체 규탄 집회와 비판 성명광고, 인터넷 글 게시 등 온ㆍ오프라인 활동을 하도록 지시했고, 2011년 5월엔 야권의 반값 등록금 주장을 비판하는 온ㆍ오프라인 활동을 지시했다’며 원 전 원장 등을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금지 위반으로 수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수사는 기존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을 수사하던 공안2부(부장 진재선)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성훈) 등이 맡는다.

자료 검토 후 추가적으로 인력을 보강해 수사팀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로 지목된 문화·연예계 인사 82명 가운데 실질적으로 피해를 당한 정황이 있는 주요 피해자들은 직접 불러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조사할 방침이다. 이 사건은 국정원 댓글부대 관련 수사를 벌이고 있는 공공형사수사부, 공안2부에서 맡아 수사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지난 11일 국정원 적폐청산TF로부터 이명박 정부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임 시절 문화·연예계 내 정부 비판세력 퇴출 활동과 박 시장 견제 활동 등에 대해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개혁위는 TF 조사 결과 일명 ‘박원순 문건’이라고 불리는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안’과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 등 2건의 문건을 국정원이 작성해 이와 관련한 심리전 활동도 수행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개혁위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이른바 ‘박원순 제압문건’과 ‘문화ㆍ연예계 내 정부 비판세력 퇴출활동’을 벌였다며 원 전 원장과 김주성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 등에 대해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금지 등 혐의로, 박 시장 견제에 대해선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금지 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할 것을 권고했다.

또 국정원이 2009년 9월과 2010년 9월에도 당시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비판활동을 수행하고 원 전 원장에게 보고한 사실도 확인했다.

개혁발전위는 “청와대(기획관리비서관, 홍보·민정수석)와 원 전 원장 지휘부는 문화ㆍ연예계 특정 인물 견제 관련 지시를 계속 하달했다”며 “담당부서는 온·오프라인에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오프라인에서는 유관부처 및 기관을 조정, 직접적인 조치를 통해 압박하고 온라인에서는 소위 ‘문화ㆍ연예계 종북세력’ 대상 심리전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법정 구속되면서 ‘윗선’으로 지목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아울러 국정원의 불법활동에 대해 대대적으로 조사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지난 달 21일 국정원 ‘민간인 댓글부대’를 겨냥해 시작된 검찰 수사가 한 달도 안 돼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적폐’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지난 18대 대선 당시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국정원 사이버 외곽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59)을 넘어 원 전 원장까지 향하는 가운데 MB의 친형 ‘이상득 라인’으로 국정원 기조실장에 올랐던 김주성 전 기조실장도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또 국정원은 2009년 7월 당시 김주성 기조실장 주도로 문화·연예계 대응을 위해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해 정부 비판 연예인의 특정 프로그램 배제ㆍ퇴출 및 소속사 대상 세무조사, 프로그램 편성 관계자의 인사조치 유도 등 전방위적으로 퇴출을 압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현재 국정원 사이버 외곽팀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는 국정원의 문화ㆍ연예계 대상 심리전 활동까지로 확대될 전망이다. 외곽팀 책임자로 민병주 전 단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가운데 원 전 원장은 사이버 외곽팀을 지시ㆍ운영 책임과 더불어 문화예술계에 심리전 활동을 지시한 정황까지 나오면서 추가 혐의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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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MB의 남자’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행의 리더십 증언 나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취임당시 “엄정하게 정치 중립을 지키는 균형적인 입장에서 원장의 직분에 충실할 것”이라며 “정보의 생명이 진실성과 비편향성에 있다는 점을 되새기겠다”고 말했다.

또 원 원장은 “물샐틈없는 국가안보의 확립이야말로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이자 국정원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원 원장은 당시 했던 다짐과 달리 철저히 반대로 정반대로 갔다. 그의 행보를 보면 일부러 그러려고 해도 힘들 정도로 엉뚱했다.

원 전 원장 주도의 국정원은 진보ㆍ좌파 인사와 야당 정치인 밀착감시 등에 주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극비리에 추진 중이던 사업내용이 외부로 새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때 북한의 임진강 댐 방류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지만 피해자들에 대해 파격적인 보상금을 지급함으로써 문제를 덮었다.

원세훈 주도의 국정원 파괴

원 전 원장의 국정원 개혁시도는 엽기 그 자체였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를 도모했지만 당시 상당수의 국정원 전ㆍ현직 직원들은 원 원장의 개혁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치권과 주요언론은 원 전 원장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원 원장이 MB정권의 숨은 실세라는 말까지 나왔다.

국가정보원이 원 원장 취임 이후 두 번째 인사를 전격 단행할 때였다. 3급 이상 부처장급 이상 인사를 시작으로 4급에서 7급 직원들을 재배치했다. 처음 인사를 단행한지 7개월여 만이다. 직원들이 업무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또 인사를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잦은 인사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 인사이동은 한 이들 가운데 수개월 전 이미 한번 이동한 직원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앞서 단행된 인사가 충분한 검토 없이 서투르게 단행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효율성과 전문성을 고려해 신중히 단행한 인사였다면 7개월만에 또 사람이 바뀌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서는 “원 원장의 조직개편은 결코 국정원의 효율성을 고려한 게 아니다”라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나왔었다. 국정원 인사가 너무 자주 이뤄져 분야별 전문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특정인맥 중용으로 조직 내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국정원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당시 “국가 안보에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전 정권 때나 지금이나 인적청산과 조직개편에 혈안이 돼 본연의 업무는 뒷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국정원의 정보수집인력은 지금 정치권 동향을 파악하는데 집중됐었다. 예나 지금이나 대외 정보력은 한국·러시아·중국·일본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탄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대북정보라인이 철저히 붕괴됐으나 전혀 복구가 되지 않고 있다. 국정원 소식통의 전언에 따르면 복구의 필요성도 제대로 못 느끼고 있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국정원의 대북정보력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A씨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의 고위급 간부들은 국가적인 중대사안보다 정치적인 문제를 파악하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며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인적청산이 선행돼야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뒤로 가는 국정원과 안보

<주간한국>이 파악한 원 전 원장 당시 국정원 인사 내용을 살펴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엉성하다.

국정원 직원 K씨는 국내파트에서만 일을 해왔다. 영어 등 외국어 특기를 가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전 유럽으로 파견됐다. B씨는 일본통으로 불릴 만큼 일본에 정통한 인사다. 그러나 그는 국내 외곽부서에서 파견근무를 해야 했고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르는 D씨가 일본으로 갔다.

이를 두고 내부에선 “B씨가 만든 일본 정보망이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이 예측은 그대로 현실화됐다. 갑작스런 인사이동으로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보 업무 특성상 지역텃새에 눌려 일본에서의 정보수집이 힘든 상태라고 한다.

대북관련 정보도 전문성을 고려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영남권에서 거두로 통하는 한 인사는 “국정원이 야당과 진보ㆍ좌파 인사들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대북전문요원들을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국정원이 주력하는 부분은 이들 인사의 부정축재내역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의 말대로라면 대북정보를 파악해야할 인력이 경찰의 대공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세훈 주도 국정원 개혁의 부작용은 안보에 그대로 노출됐다. 북한이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했을 때도 국정원의 대북라인은 ‘먹통’이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때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한 사건이 있었다. 소식이 알려진 당일 오후 국내 한 인터넷 매체의 보도로 이 사실이 빠른 속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일 저녁까지도 국정원 핵심 간부는 관련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랬다면 원 전 원장도 이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화폐개혁 당일 국회 정보위에 원 전 원장이 참석했으나 이에 대한 보고나 브리핑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의 대북정보라인구축 실패 원인을 놓고 원 원장의 조직·인사 개편이 실패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북정보수집과 해외경제정보수집에 정통한 전문 인력을 제대로 배치하지 못한 게 대북 정보 채널에 큰 구멍을 냈다는 것이다.



윤지환기자 mus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