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 ‘경제’로 북한에 영향력…트럼프 ‘군사옵션’ 대체할 新 해법

미국, 중국 제치고 직접 북한 상대 계획…北 반발로 현실화 어려워

국제기구, 해외동포 주체 적합… ‘경제’ 매개로 北 주민 힘 실어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가 북한 해법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옵션을 앞세워 강공책을 고수하는 반면, 의회는 ‘대화’를 강조하는 상황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적 압박과는 별도로 국외에서는 미국과 북한이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상황을 보면 트럼프 정부와 의회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거나 북한에 대해 ‘압박’과 ‘대화’라는 투트랙(two-track)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미국의 정보 관계자와 한반도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의 대북 정책이 ‘대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트럼프의 대북정책, 즉 군사옵션이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없고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어떠한 압박에도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고, 미국이 군사 행동에 나설 경우 극단의 행동으로 세계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하나는 북핵을 제거, 또는 무용지물화하는 데는 군사적 방법이 아닌 경제적 접근이 효과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김정은 정권이 ‘경제’라는 무기로 국민(인민)을 지배하는데 그 무기를 빼앗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이 ‘경제’를 앞세워 북한을 상대하려 한다.

미국이 북핵을 둘러싼 대북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함에 따라 한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남북관계 발전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주목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북 군사옵션 장전, 현실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군사옵션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8월 1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fire and fury(화염과 분노)’라는 거의 선전포고에 가까운 워딩과 함께 “북한이 현명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면 이제는 군사적인 해결책이 완전히 준비됐고 장전됐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9월 19일 유엔 총회에서 “미국은 엄청난 힘과 인내가 있지만, 미국이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고 폭탄발언을 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9월 3일)에 대한 직격탄이었다.

1주일 뒤인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와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선 “우리는 2차적인 옵션에 대해 완전히 준비돼 있다”며 군사옵션을 언급하고 “우리가 그 옵션을 취해야 한다면 그것은 북한의 파멸(devastating)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1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로켓맨을 잘 대해주는 것이 25년간 효과가 없었다”며 “북핵을 제압하기 위해선 단지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며 군사옵션을 재차 강조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대화는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최대의 제재와 압박과 함께 군사적인 옵션도 동시에 열어놓고 있다.

특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난 20~21일 열린 ‘국제 핵 비확산회의’ 를 계기로 기대됐던 북한과 미국 간 접촉이 불발되면서 한반도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한국과 중국을 방문할 때까지도 북핵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군사옵션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군사옵션 내용으로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요격 또는 미사일 발사 현장 타격 ▦북한의 핵·미사일 제조 및 저장시설 파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참수 등이 거론된다.

미 의회, 전문가들 “‘군사’ 아닌 ‘대화’가 해법”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옵션을 포함해 강도 높은 대북 압박에 나서는데 대해 미국 의회는 주저하는 모양새다. 트럼프식 북한 해법에 동의하지 않거나 강하게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미 상ㆍ하원 의원은 의희 승인 없이는 북한을 공격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해 트럼프 행정부의 독단적인 선제공격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 민주당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미시간)은 ‘의회의 법적 승인 없이 대통령이 북한에 군사행동을 할 수 없도록 해당 예산의 지출을 차단’하는 내용의 법안을 26일(현지시간) 하원에 제출했다. 이 법안에는 모두 62명의 여야 의원이 서명했고, 토머스 매시(공화·켄터키) 의원 등 일부 공화당 의원도 동참했다. 코니어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예방전쟁 관련 발언을 중단하고 미국 전문가와 한국 정부 양쪽에서 옹호하는 외교적 해결에 전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상원 외교위 아태소위 민주당 간사인 에드워드 마키 의원(매사추세츠)도 상원에서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 1월에는 민주당 테드 리우 하원의원(캘리포니아) 의원이 ‘의회의 승인 없이 다른 나라를 핵무기로 선제 타격할 수 없도록 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와 관련해 미 의회 관계자는 “여야 의원 60여명이 참여하고 상·하원에서 같은 입법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은 대북 군사옵션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독주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미 있는 기류”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하원의원 68명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북한과 대화채널 유지, 대북 경제압박 강화 등을 제안했다. 세스 몰튼, 스테파니 머피, 지미 파네타 등 민주당 국가안보위원회 공동의장 주도로 작성돼 68명의 민주당 하원의원이 서명한 편지에서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이 위험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면서 포괄적인 대북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미국의소리(VOA)방송이 18일 보도했다.

밥 코커(공화·테네시)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은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당분간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커 위원장은 9일에도 대북 강경 트윗을 날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나라를 3차 세계대전으로 끌고 가는 무모한 협박”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무용론’에 대해 “대통령이 상황을 악화시킨다”며 비판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의 애런 데이비드 밀러 부회장과 리처드 소콜스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수석연구원은 8월 31일 워싱턴포스트(WP)에 공동 기고문을 싣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무용론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외교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두 석학은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나 “우리 군이 장전됐다”와 같은 위협성 발언에 북한은 더 많은 미사일 시험을 자행했으며, 상황 오판으로 인한 전쟁 발발 가능성만 증대됐다고 비판했다.

세계정책연구소(WPI)의 조너선 크리스톨 연구원도 CNN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시험용’이 아닌 ‘시연용’이라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선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으로 김 위원장이 겁먹기는커녕 트럼프 대통령이 행동에는 나서지 못하는 ‘종이호랑이’인 점만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와 전문가들이 트럼프의 대북 강경책을 비판하는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은 현실화(행동화) 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북한을 제대로 알면 군사옵션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란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이 북한에 군사적 행동에 나서는 순간 한국과 일본의 미군(기지)을 향해 치명적인 보복 공격을 할 것이라고 한다. 또 김정은 위원장 참수작전을 실제 감행한다면, 동북아는 물론 전 세계가 위험해질 수 있는 사전 장치를 해놨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 한다면 러시아와 중국이 막을 것이라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러시아의 한반도 전문가는 “미국도 북한에 무력 공격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트럼프 정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강경책과 군사옵션을 운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전문가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현실성 없는 강경 발언으로 오히려 무기력한 모습만 드러냈다고 비판한다. 앤터니 J. 블링큰 전 국무부 부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주고받는 발언이 미국의 동맹은 물론 적국 사이에서도 미국의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비판했다. 블링큰 전 부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언급했으나 북한의 최근 미사일 실험에 아무런 대응을 못 하고 있다”며 “아무런 '백업' 없이 이런 엄포를 계속하면 적들이 그 어떤 말도 허풍으로 인식하는 순간에 이르게 되며, 결국은 실제 무력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국제 정보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무용론’과 ‘군사옵션’이 미국내는 물론, 전 세계로부터 비판을 받는 것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 등이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고, 무력행사를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내에서는 ‘무력’(군사옵션)이 아닌 다른 방식의 북한 해법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북한의 최대 현안인 ‘경제’다. 북한의 가장 시급한 과제인 ‘먹고 사는 문제’에 접근해 북핵 문제를 풀어간다는 전략이다.

미국 ‘경제’ 앞세워 중국 대신 북한에 영향력 행사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옵션을 앞세운 북핵 해결책은 미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트럼프식 군사적 해법으론 북핵 문제를 풀 수 없고, 오히려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강경파를 자극해 국제사회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북한을 압박하면 언젠가 김정은 위원장이 백기를 들고 나올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전혀 다르게 바라본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따른 고통은 대부분 북한 주민들에게 전가되고, 김 위원장을 비롯한 노동당은 끝까지 버티거나 무력도발로 위기를 모면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이 북한 해법의 일환이지만 북핵 위기를 활용해 자신에 대한 탄핵 추진을 저지하고, 한국 등에 무기도 판매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린 측면이 있다고 본다.

최근 미국은 북핵 해법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옵션을 우선하는 무력 방식 대신 ‘경제’를 앞세워 북한을 다루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즉, 북한 체제가 ‘경제’에 좌우되는 측면이 매우 크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정보 관계자는 “북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힘’을 분석한 결과 대북 경제 지원이 바탕이란 걸 파악했다”며 “중국이 해왔던 것을 미국이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로부터 북한에 들어가는 ‘돈줄’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중국 금융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중국이 북한에 전달할 돈 대신 경제 물품을 지원하는 것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가령 북한이 해외에 미사일 등 군수품을 판매한 뒤 자금이 중국은행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된다는 것을 미국이 파악하고 강력한 제재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은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중국이 ‘경제’로 북한을 지배해온 것을 약화시키고, 앞으로 미국이 그 역할을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 하원이 핵 개발과 미사일 실험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을 국제금융 시스템에서 퇴출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오토 웜비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웜비어법은 북한에 억류됐다가 식물인간 상태로 돌아와 사망한 버지니아주립대생 오토 웜비어의 이름을 딴 초강력 대북제재법안으로 북한 정권에 도움을 주는 거래를 방조하는 외국 정부에 대한 금융지원을 차단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동 국가들이 북한 정권과의 거래를 방조하거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라 세계은행 등의 차관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된다.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외국 기업도 미국의 금융제재 대상에 포함된다.

법안이 상원을 통과할 경우 국제사회의 눈을 피해 북한과 불법 거래를 하는 중국 은행이나 아프리카 국가 등에 대한 미국의 독자 제재에 힘이 실리게 된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원비어법이 북한을 압박하는 강력한 제재 수단이지만 실제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한다. 북한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이 중국은행과 연계됐다는 점에서 중국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보 관계자는 “미국은 중국에 대한 금융 압박을 통해 사실상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줄이고 미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미국이 ‘경제’를 무기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나간다는 전략이다.

이에 대해 북한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통은 “미국이 오판하는 게 있다”며 “ 북한에 ‘경제’를 앞세워 접근하는 전략은 맞지만 ‘미국’이 배후에 있는 것을 알면 북한은 단번에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지도부와 일반 주민들의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 얼마나 심한가를 미국은 잘 모른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즉 미국이 ‘경제’를 무기로 북한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은 실패할 것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는 “북핵 문제를 군사(무력)이 아닌 경제로 풀어갈 경우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나 국제적 민간단체가 주체가 되는 게 훨씬 효과적이고, 유일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해외동포재단 장백산 이사장은 “북한은 ‘민족’이 주체가 돼 남북관계나 경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뚜렷한 의식을 갖고 있다”며 “국내 민간이 할 경우 법적 규제와 한계가 있는 만큼 해외동포들이 중심이 되는 게 바람직하고 북한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이사장은 “북한과의 경제 교류(거래)도 금융이 개입되면 유엔 규정의 제재가 따르는 만큼 ‘물물교환’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장 이사장은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데 경제가 제 역할을 하려면 남북교류를 막고 있는5ㆍ24 조치를 조속하게 푸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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