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이전투구’, 바른정당 ‘분당’넘어 ‘가치’지향의 재편돼야

단순 통합, ‘데코레이션 개편’은 실패… ‘참회’ 후 보수 가치 찾아야

성완종 녹취록 파장 ‘홍준표 사퇴론’ 역풍… ‘뉴 친박연대’ 가능성도

바른정당 탈당파 다수일 땐 영향력 커져…안철수-유승민 연대할 수도

보수 야당 재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재편의 열쇠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파가 쥐고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와 윤리위원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계 핵심인 서청원ㆍ최경환 의원의 자진 탈당을 권유했다. 친박 청산은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들에게 탈당의 명분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에 대해 친박들은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은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당ㆍ바른정당 ‘내홍’…앞길 ‘막막’

급기야 친박의 좌장격인 서청원 의원은 홍준표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면 일전을 불사하고 있다. 서 의원은 “홍 대표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의 최종심을 기다리는 처지로 그런 사람 자체가 야당 대표로는 결격사유"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지난 10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성완종 리스트’ 관련 검찰수사 과정에서 홍 대표가 제게 협조를 요청한 일이 있다”면서 “만약 홍 대표가 진실을 얘기하면 그냥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가 진실을 증명하겠다”면서 녹취록과 관련된 폭로전을 예고했다.

이에 대해 홍준표 대표는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관련, 서 의원에게 협조를 요청했다는 이른바 ‘녹취록’ 논란에 대해 “2015년 4월 18일 (서 의원에게) 전화한 것은 (금품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윤모씨가 서 의원 사람이니까 거짓으로 증언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말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술핵 재배치’ 요청을 위해 4박 5일간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홍 대표는 “정치를 더럽게 배운 서청원 의원과 같이 정치하기 어렵다”고 했고, 이용주 의원에 대해서는 “거짓 폭로를 하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놨다.

한국당 혁신위원회는 홍 대표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지난 10월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ㆍ최경환 의원의 자진 탈당 조치에 대한 당 일각의 반발을 ‘반(反)혁신’으로 규정했다. 또한 친박 청산을 골자로 한 혁신안에 반대하는 인사들에 대한 당직 배제 등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다.

류석춘 혁신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과 서ㆍ최 의원에 대한 혁신위의 자진탈당 권유는 ‘육참골단’(肉斬骨斷ㆍ자신의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의 심정으로 제시한 것으로, 이를 통해 보수 재통합과 국민 지지를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위는 나아가 “기회주의, 분열주의를 조장하고도 최소한의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역사의 죄인’들에게 단호하게 책임을 묻기를 재차 권고한다”며 친박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혁신위가 중대 조치를 취할 것임을 예고했다.

혁신위는 바른정당과의 소(小)통합을 시작으로, 시민사회와의 소통 및 연대 강화를 통한 중(中)통합, 나아가 중도보수 세력 전체를 포괄하는 대(大)통합으로 이어지는 ‘3단계 보수통합’을 제안했다.

한편, 바른정당은 자강파와 통합파간에 당의 진로를 둘러싸고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경필 지사는 1일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의 통합 전당대회를 공식 제안했다. 남 지사는 바른정당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11ㆍ13 전당대회 개최가 “통합이 아니라 분열과 이별로 이끈다면 전당대회 개최를 연기하는 가운데 개혁보수의 재창당을 위한 통합 전당대회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지사는 “자강과 통합 양쪽 모두의 공통점을 ‘원칙 있는 통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양쪽의 차이를 좁히는 방안으로, 보수 개혁을 위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통합 전당대회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자강파의 중심인 유승민 의원은 “지금 당장 통합 전대가 중요한 게 아니고 통합 전대는 통합조건이 아니다”고 밝혔다. 탈당을 막기 위해서 전당대회를 늦추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문제는 김세연 바른정당 정책위의장과 같은 대표적인 친유승민계 의원마저 보수통합에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 의원의 취약한 리더십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보수 재편 네가지 가능성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보수 재편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성공할 수 있을까?

향후 보수 지형 재편은 크게 네 가지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첫째, 성완종 녹취록 파장이다. 지난 10월 23일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서울고검 국정감사 때 “홍 대표가 ‘항소심 때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 증인인) 윤모씨의 진술을 번복하게 해달라’고 서청원 의원에게 통화한 객관적 자료를 저희 당이 확보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증폭됐었다. 만약, 녹취록이 공개되고 그것이 홍 대표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홍준표 사퇴론“이 급물살을 탈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왜 국민의당이 ‘홍준표 녹취록 공방’에 가세하고 있느냐이다. 정치적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홍준표 흔들기’는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의 탈당 행보에 제동을 걸고, 궁극적으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소통합이 와해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안철수ㆍ유승민 연대에 시동을 걸 수 있다. 둘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 승부수다. 한국당 내에선 홍 대표 주도의 박 전대통령 제명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최근 한국당 재선 의원 30명중 19명이 참석한 모임과, 초선의원 44명중 37명이 참석한 모임에서 박 전 대통령 출당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이런 상황을 의식해 박 전 대통령이 “친박이여! 단결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옥중 투쟁을 할 수 있다. 급기야 대구ㆍ경북에 연고를 두고 있는 한국당 친박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뉴 친박연대’를 만들 수도 있다.

홍 대표는 초선의원을 비롯해 재선 의원과 회동을 하는 등 당내 반발을 의식한 여론수렴에 나섰다. 홍 대표는 지난 2일 재선의원들과 만나 직후 “지금 하고 있는 일련의 과정이 새로운 보수우파 정당으로 거듭나는 과정이고 진통”이라고 말하는 등 박 전 대통령 출당 이유를 설득했다.

하지만 홍 대표는 유연한 전략적 선택을 할 지도 모른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의 예상처럼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은 성사시키고 의총에서 의원들의 2/3 찬성이 필요한 서청원ㆍ최경환 의원의 제명에 대해서는 제스처만 하고 실제로는 안 할지도 모른다. 홍 대표는 현실적 타협을 통해 당이 양분되는 것은 막자는 분위기에 편승할 수도 있다.

셋째, 홍준표-김무성 연대의 파괴력이다. 독일의 철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를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고 했다. 홍ㆍ김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떤 때는 적이 되고 어떤 때는 동지가 된다.

김무성 의원은 다목적 의도를 갖고 보수 통합에 나서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홍준표 대표와 서청원 의원이 이전투구를 하면서 사생결단을 벌일 경우 두 사람이 함께 치명상을 입고 사라질 수도 있다. 그 공백을 자신이 메울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만약 바른정당 탈당파가 최대 15명에 이를 경우, 한국당 의석수는 122석으로 더불어 민주당(121석)을 제치고 원내 제1당이 된다. 2020년 21대 총선 불추마 선언을 한 김무성 의원은 20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 직을 노릴 수도 있다. 더불어, 김 의원은 김성태 의원과 같이 자신의 최측근을 자유한국당 차기 원내대표로 만들어 당내 영향력을 강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질 수 있다. 문제는 홍준표 대표가 어느 수준에서 김 의원과 협력체제를 유지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여하튼 바른정당 의원총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가 보수 재편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다. 김무성의 정치력이 발위돼 바른정당의 통합파 의원 몇명이 탈당하지가 관건이다.

넷째, 안철수-유승민 연대 가능성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공화주의'를 제시하면서 유 의원에게 손짓하고 있다. 김태일 국민의당 제2창당위원장은 “국민의당이 중도라는 정치노선에서 벗어나 공화주의(共和主義)로 나아가야 한다”며 ‘군불’을 지폈다.

안 대표도 “국민의당은 공화주의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마음에 담고, 이제 중도개혁의 길로 나가는 게 저희들의 방향이라는 데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화주의는 원래 유 의원이 내걸었던 기조였다. 유 의원은 지난해 대학 강연에서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공화주의 실현이 필요하다”면서 “공화주의 철학에 기초한 보수혁명을 해야 희망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공화주의에 대해선 “공공선을 담보하는 법의 지배 안에서 시민들이 다른 시민에게 예속되지 않고 자유를 누리며 시민적 덕성을 실천하는 정치 질서”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안 대표가 ‘공화주의’를 기치로 바른정당 자강파와의 통합론을 재점화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이다. 안 대표와 유 의원이 모르는 것이 있다. 정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고,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다. 박지원 의원이 전당 대회전에 쪼개질 바른정당은 “통합이 아니라 영입의 대상이다”는 말 속에 안-유 연대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바른정당은 통합파가 탈당하면 원내 교섭단체 지위 상실로 국회 내 발언권이 급속히 약화되는 것이다. 국고보조금 감축, 국회 내 사무공간 축소 등 실제 당 살림살이에서도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바른정당은 교섭단체 지위를 잃을 경우 국고보조금이 매 분기 약 15억 원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다.

보수 정당, 참회하고 ‘가치’기반해 통합해야

최근 인연과 악연을 반복했던 안철수 전대표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만났다. 2일 ‘만화로 보는 김종인의 경제민주화’ 출판기념회에 안 전 대표가 찾아가 만남이 이뤄졌다. 지방선거 전 정계 개편 국면에 안 전대표가 김 전 대표와 함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표는 “나는 정치에는 이제 관여를 안 한다. 다시는 절대로 안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안 전 대표가 지방선거전에 유승민, 김종인 등 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보수 정치 지형에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 공간은 존재한다. 그런데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 않다. 현 시점에서 한국당과 바른정당 간에 ‘당 대 당 통합’은 바른정당 내 자강파들의 극렬한 반대로 현실 가능성이 적다.

결국 보수 재편은 바른정당의 분당 사태와 한국당의 전력 보강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보수 완전 통합은 물건너가고 ‘부분 통합’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당 재편성 이론에 따르면, 이슈, 정치 지도자, 정당 의 지역적 또는 사회 배경적 기반, 그리고 정치 체계의 구조 또는 규칙 등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때 정당의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 그런데 현재는 어느 조건도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다시말해 보수 정당들간의 재편으로 정치 지형이 획기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보수 정당들이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단순한 통합보다는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 보수는 자신의 이익만을 보수하려는 탐욕과 부패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았고 정권을 빼앗겼다. 따라서, 지금 보수 정당들에게 필요한 것은 판에 박힌 인기영합식의 ‘데코레이션 개편’이 아니라 참회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참회 없는 미래는 없다. 이런 기조 속에서 친박은 폐족 선언을 하고 물러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스스로 당적을 정리해야 한다. 분열된 보수는 적통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허황된 착각에서 벗어나 조건 없이 통합해야 한다. 그래야만 보수가 만나야 할 미래가 비로소 보일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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