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ㆍ이석수 1년만에 ‘뒤바뀐 운명’…’이석수 역할론’ 부상

추명호 구속으로 우병우 옥죄는 검찰…사익 위해 공권력 동원 혐의

쫓기는 떠났던 이석수 전 감찰관, 1년 만에 우병우 쫓나

재수사 과정에서 검찰 내부 고의 부실정황 드러나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수사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우 전 수석에게 ‘비선보고’를 한 혐의 등으로 추명호 전 국가정보원 국장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앞서 추 전 국장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자 검찰은 이석수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 등 특정 인사들의 동향을 비선보고한 혐의를 추가했다. 이후 영장 재청구 끝에 검찰은 추 전 국장의 신병을 확보했다.

‘법꾸라지’라고 불릴 정도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간 우 전 수석에게 추 전 국장 구속은 재판 중인 혐의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자신을 조사하는 특별감찰관을 국정원 직원을 시켜 뒷조사를 했다는 사찰 의혹은 사익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한 중대 범죄이기 때문이다.

추 전 국장을 구속한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검사)은 이제 ‘윗선’으로 지목된 우 전 수석과 최 전 차장의 소환을 검토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 일정은 잡지 않았다”면서도 “(소환을) 검토는 하고 있다. 아울러 관계자 조사도 진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검찰에서 2번, 특검에서 1번 조사를 받은 우 전 수석의 4번째 조사가 임박했다.

여기에 서울고검이 우 전 수석 처가와 넥슨과의 땅 거래에 대해 재수사를 결정하면서 우 전 수석의 숨통은 더욱 조여지게 됐다. 확실한 재수사를 위해 검찰에서는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조력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수 전 감찰관, 우병우 재수사에서 조력자 역할?

추명호 전 국가정보원 국장의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사찰과는 별개로 검찰은 우병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 의혹에 대해 재수사에 나섰다. 서울고검은 지난 6일 우 전 수석 처가와 넥슨코리아의 서울 강남 땅 특혜 매매 의혹에 대해 재기수사를 명령했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7월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나섰지만 지난 4월 ▦가족회사 '정강' 횡령 ▦처가 화성땅 차명보유 ▦처가와 넥슨 땅 거래 등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가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불복해 항고하자 서울고검이 이를 받아들였다.

고검은 지검에서 무혐의나 기소유예 처분한 사건에 항고장이 접수될 경우 이를 검토해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하면 해당 지검에 재기수사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서울고검은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보내지 않고 직접 수사한다. 이 같은 결정을 놓고 법조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고검 관계자는 “재기 사유는 ‘수사 미진’”이라면서도 “고검 재기수사가 반드시 기소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신중한 입장이다.

검찰은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과 1기 특별수사본부 등 8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지난 4월 우 전 수석을 직권남용·직무유기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의 처가와 넥슨과의 토지 거래 의혹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특히 윤갑근 수사팀은 수사 착수 2달이 지난 작년 11월에서야 우 전 수석을 소환했고, 이 과정에서 우 전 수석이 팔짱을 낀 채 후배검사를 대하는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황제 소환’ 비판이 거셌다. 불기소처분 이후 넥슨이 이른바 '우병우 문건'으로 사전에 토지 주인을 알고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검찰은 상부 보고가 없었다며 이를 반박했다.

이번 재수사 결정은 기존 수사결과에 검찰 스스로 의문점을 갖고 있다는 뜻이며, 제기된 의혹에 대해 완전히 털고 가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된다. 이를 위해 검찰 내부에서는 이석수 전 감찰관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감찰관만큼 우 전 수석의 해당 의혹의 초기 상황을 알고 있는 인물은 드물며, 우 전 수석의 다른 비리 의혹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상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전 감찰관이 단순 참고인이 아닌 우 전 수석 재수사의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한 재수사 과정에서 기존 수사팀이 고의로 부실수사한 정황이 포착될 경우 어떤 처분이 내려질 지도 관심사다. 숨겨진 우병우 라인이 드러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권불십년 ‘우병우 사단’ 공중분해

지난해 11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국회 긴급 현안질문에서 “검찰과 국정원에 우병우 사단이 포진해 있다”며 12명의 명단을 폭로했다. 약 1년이 지난 지금 당시 언급된 우병우 사단은 현재 초라한 신세가 됐다.

우병우 사단이라고 지목됐던 인물 중 상당수는 사실상 좌천된 후 스스로 관직을 떠났다. 지난 6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이 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과 김진모 전 서울남부지검장, 정점식 전 대검 공안부장, 전현준 전 대구지검장은 바로 사의를 표명했다.

윤 전 고검장은 우 전 수석을 126일간 수사하고도 아무도 기소하지 않아 논란을 자초한 바 있다. 김 전 검사장은 2014년 세월호 사건 수사 당시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내며 우 전 수석과의 교감 아래 세월호 수사팀에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정 전 부장과 전 전 지검장은 모두 우 전 수석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정점식 전 부장검사다. 최근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방해 혐의로 수사받던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변 검사가 사망 직전 마지막으로 법률 상담을 위해 찾아간 곳이 정 전 부장이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이었다. 정 전 부장은 우 전 수석과 대학동기로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꼽힌다.

유상범 전 광주고검 차장검사의 경우 지난 6월 창원지검장에서 광주고검으로 옮긴 지 한 달 만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 조치됐다. 이에 유 전 차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2014년 ‘정윤회 문건’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수사팀장을 맡은 바 있다.

검찰총장 직속으로 반부패 수사를 맡았던 김기동 전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은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이동열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두 수사 지휘 보직에서 제외됐다.

이밖에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은 ‘돈통부 만찬’ 논란으로 면직처리됐다. 이들은 지난 9월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한 면직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우병우 사단으로 지목된 정수봉 전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은 서울고검 검사로 전보됐고 이동열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수사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에 임명돼 요직에서 제외됐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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