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협치와 통합의 국정 운영…정치권은 ‘국민 우선의 정치’ 펼쳐야

문 대통령 국민ㆍ정치ㆍ언론과의 소통 강화로 ‘민주주의 3.0 시대’ 활짝 열어야

극단ㆍ포퓰리즘ㆍ힘 의존 ‘3P 정치’에서 탈피해 타협ㆍ협조ㆍ합의 ‘3C 정치’로

정치권 정당정치 위기 극복하고 정당다워져야…여야 갈등 접고 정부 견제 기능 다해야

‘민주주의 3.0 시대’의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

2018년 무술년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올해는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힘찬 도약이 있길 기대한다.

대학 교수들은 작년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국정 농단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박근혜 정부를 촛불 시민 혁명으로 주저앉히고, 정권 교체로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에 나선 현실에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파사현정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이던 2012년에도 올해의 사자성어에 선정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작년에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탄핵했다. 탄핵 핵심 이유는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하고, 헌법 수호의 의지가 없으며,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촛불 시민 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파사현정이 정말 이뤄지고 있는가?. 정치는 정상화되고 있는가?. 대답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파사는 있었지만 현정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는 여전히 ‘3P 정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극단(Polarization)의 정치가 판을 치고,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현재의 인기만을 생각하는 포퓰리즘(Populism)이 기승을 부리며, 설득과 배려보다는 힘에만 의존하는(Power-based) 정치가 펼쳐지고 있다.

올해는 사악하고 그릇된 구태 정치를 부수고 정치를 바르게 하는 파사현정의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 이를 토대로 ‘민주주의 3.0 시대’를 열어 나가야 한다.

파사현정의 원년 토대로 ‘민주주의 3.0 시대’ 열어야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세 번의 수평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여야 모두 국정 경험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발전하기보다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 근본 원인으로 허약한 정당체제를 지적한다. “한국 정치에서 좌ㆍ우 또는 진보와 보수 대립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양극화되고 사생 결단적 투쟁으로 나타나면서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사회 갈등에 뿌린 내리지 못한 나쁜 정당들이 서로 투쟁만 하는 허약한 정당 체제로 인해 시민시회의 운동이 정당의 역할을 대행했기 때문이다”고 진단한다.

최 교수는 “현실에서 최선의 민주주의 형태는 대표로 하여금 집단 의사를 경합하게 해서 조정하는 대의민주주의이며, 이러한 민주주의에서는 정당이 중심이 되는 구조이고, 한국의 정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주체는 정당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정당과 정치 지도자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게 최선이다”고 강조한다.

한국정치에서 ‘민주주의 1.0 시대’는 YS와 DJ로 상징되는 ‘권위적인 민주주의 체제’이다.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군부 독재체제와 저항하는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행태를 유지했다. 정치적으로 권력이 대통령 개인에게 집중되고 집권 이후에도 민주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보다는 청와대가 모든 정치 과정을 주도하는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를 보였다. 즉, ‘제도화된 권력’(institutionalized power structure)보다는 여전히 ‘개인화된 권력 구조’(personalized power structure)가 지배적이었다.

‘민주주의 2.0 시대’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보여 준 ‘대립적 민주주의’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와 타협, 관용은 실종되었고,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주를 이뤘다.

이런 대결 정치 속에서 여당은 철저히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서 무력화됐고,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했다.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치중하면서 거리의 정치에 함몰됐다. 수권 정당의 모습보다는 대안 없는 투쟁에만 집중했다.

이제 한국 정치는 ‘3P 정치’에서 벗어나 타협(Compromise), 협조(Co-operation), 합의(Consensus)가 중심이 되는 3C 중심의 ‘민주주의 3.0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국정운영 최고 책임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주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나라다운 나라’가 만들어진다.

문 대통령 초기 국정 성공적…국민ㆍ정치ㆍ언론과 소통 강화해야

대중 소통의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일단 성공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7개월간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평균 70%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 1년차에 이렇게 높은 지지를 얻은 사람은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지난 6월 이후 한국갤럽이 실시한 28번의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로 ‘소통을 잘 한다’가 23번 1위를 차지했다. 문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적 소통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폐쇄적이고 초권위주의적 행보와 비교해 높은 점수를 받는 것 같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대중 소통에서는 합격점을 받고 있지만 정치와 언론과의 소통에서는 미흡한 점이 많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갖기 전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야당에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협치와 통합의 정치도 천명했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정부 여당은 적폐청산을 국정의 제일 과제로 선정해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야당은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하면서 극단과 대립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일상화되고 안보 위기가 고조화되고 있지만 야당과의 안보 협치는 전무하다.

무술년 새해에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있어서 제일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은 협치 절벽에서 벗어나 정치를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과감하게 야당 대표와 일대일 회동을 통해 개헌 문제를 포함해 꼬일 대로 꼬인 정국을 풀어야 한다. 야당 의원들과도 수시로 만나 개혁과 민생 입법에 대한 도움을 청해야 한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 8년(1981년-1989년) 동안 6년이 여소야대였다. 그런데 퇴임 직전의 지지도가 취임 직후보다 높았다. 그 비결은 자신의 직무 시간의 70%를 야당 의원들과 만나 협조를 구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권력이 아니라 설득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야당과의 관계를 청와대 정무수석에서만 맡기는 것은 권위주의에 입각한 올드 정치다.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야당 대표들과 야당 의원들을 수시로 만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누구 하나 예외도 없이 통치만 했지 진정한 정치를 펼치지 못했다. 그런데 정치의 시작은 소통이다. 소통 없는 정치는 권위주의적 통치로 빠지기 쉽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해외 언론과 많은 인터뷰를 했다. 사드 배치, 남북 협력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솔직한 의견들을 개진했다. 그런데 유독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시절 한 달에 평균 1.7회씩 언론과의 만남을 가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1년에 한번 연두 기자 회견의 형식으로 언론과 만났다. 이런 불통이 결국 국정 농단을 유발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부터 국내 언론과의 소통에 신경을 써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정직하게 언론과 소통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최근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아랍에미리트(UAE)에 대통령 특사로 방문한 후 정치권과 언론에서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 뿐 왜 특사로 방문하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특사 파견 이유에 대한 말이 여러 차례 바뀌고 있다. 청와대가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의혹이 해소되고 있지 않는 것이다.

하버드대 대 조셉 나이 교수는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라는 책에서 “국민은 정부의 성과보다는 일을 처리하는 태도를 보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나이 교수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범세계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정부가 국민의 불신 타개하려면 언론을 탓하는 자세부터 버려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사실을 은폐하고 호도하는 것은 정부를 죽이는 자해(自害) 정치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소통이다. 여하튼 정부는 국민, 정치, 언론과의 소통 강화가 ‘민주주의 3.0 시대’를 활짝 여는 기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 대오각성해 본연의 모습 갖춰야

올해는 정치권도 대오각성(大悟覺醒)하고 변해야 한다. 한국정치가 4류 정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전은 없고 정쟁만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지지 않고 특권만 누리기 때문이다.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에만 매몰되기 때문이다. 품격과 도덕은 없고 막말과 추태만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막장 막말 퍼레이드는 정치를 희화화시키고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최근 한국당에서 제명당한 류여해 전 최고위원은 “라이언 달려! 인형 들고 다니니까 유치하세요? 인형과 대화하는 모습 보여줄 수 있는 게 진정한 정치인이다”면서 “정치를 재미있게 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정치는 ‘보여 주기식 쇼’에 불과하다.

국민의당에서 통합을 추진하는 안철수 대표와 이를 반대하는 박지원 의원간의 혈액형 논란도 가관이다. 박 의원은 “혈액형이 다르면 수혈이 안된다”고 하자 안 대표는 “혈액형이 달라도 수혈이 가능한 혈액형도 있다”면서 “바른정당은 수혈이 가능한 혈액형이다”고 반박했다. 이런 혈액형 논쟁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우선하는 참정치인이 정말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허약하고 기형적인 정당이 바뀌지 않으면 정치는 정상화되지 않는다.

한국 정당정치 위기의 본질은 첫째, 이념적 정체성의 위기이다. 각 정당들이 추구하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둘째, 반응성의 위기이다. 한국 정당들은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부합하고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셋째, 정당일체감의 위기이다. 정당 일체감이란 오랜 기간 동안 특정 정당에 대해 갖고 있는 귀속의식 또는 당파적 태도. 국민들은 평소 가깝게 느끼면서 자기 지역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 넷째, 충원의 위기이다. 각종 공직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이 뒤틀리고 왜곡되어 있다. 다섯째, 대표성의 위기이다. 정당의 핵심 기능인 이익표출, 이익 집약, 국민과 정부의 연계 기능들이 실종되었다. 올해는 정당이 정당다워 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정치권은 제도를 바꾸면 과거의 잘못된 것이 저절로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개헌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의 5년 단임 대통령제가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뀐다고 대통령의 권한이 분산되고, 책임 정치가 이루어지며, 정치가 정상화되길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아 외치를 담당하고, 국회에서 추천 또는 선출된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이원집정부제(또는 분권형 대통령)로 개헌한다고 정치가 정상화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개헌이 된다고 정부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여당, 반대를 위한 반대에 매몰돼 있는 야당이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것이다. 개헌보다 여야가 갈등을 접고 품격을 유지하면서 함께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어야 건강한 정부가 만들어지고 대통령제가 성공한다.

올해 무술년에 대통령은 협치와 통합의 국정 운영 리더십을 펼치고 정치권은 3C 정치에 입각한 ‘국민 우선의 정치’를 펼치길 고대한다. 그래야만 위대한 ‘민주주의 3.0 시대’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아이오와대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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