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경제통 전종수 ‘키맨’… 향후 남북 대화에서도 핵심 역할 평창 전후 남북대화 이어가려면 ‘경제’가 중심 돼야

‘비핵화’ 남북관계 최대 걸림돌… “북핵 해결은 국제기구에”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해성 통일부 차관(오른쪽)과 북측 단장인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왼쪽)이 1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차관급 실무회담의 종결회의를 마친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 (통일부 제공=연합뉴스)
북한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지난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해빙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남북은 15일 평창동계올림픽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접촉을 가진데 이어 17일 평창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제반 사항을 논의할 차관급 실무회담을 열었다.

화제의 인물인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이 서울을 방문하고, 남북군사회담도 조만간 열릴 예정이어서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호기를 맞고 있다.

지난 2년여간 굳게 닫힌 남북의 문이 갑작스럽게 열리고, 그에 따른 훈풍도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일각에선 경계와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남북관계 변화의 진원지는 북한으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남한에 변화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했다. 이후 북한의 주요 인사들이 잇따라 우리측 대표들과 회담을 이어갔다. 그들 중엔 낯익은 이들도 있지만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인사도 있고, 구체적 임무와 역할은 대부분 베일에 싸여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전종수를 주목하라”고 말한다.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이 남북 회담의 핵심이며, 북한이 회담에 나온 이유와 전략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27개월만에 열린 남북 대화

지난 9일 27개월만에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 우리 정부와 북한은 각각 5명의 대표단을 구성했다.

정부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수석대표로 천해성 통일부 차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안문현 국무총리실 심의관, 김기홍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 기획사무차장 등을 내세웠다.

북한은 이선권 조평통 위원장이 수석대표를 맡았고, 전종수 조평통 부위원장, 원길우 체육성 부상, 황충성 조평통 부장, 이경식 민족올림픽조직위 위원이 참석했다.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이 예정되고 양측 대표단 명단이 공개된 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전종수 부위원장을 주목하라”고 전해왔다. 소식통은 남북 고위급회담의 핵심이 수석대표를 맡은 이선권 조평통 위원장이 아니라 전종수 조평통 부위원장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북한이 파격적으로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첫째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국민과 전 세계 언론을 향해 북한의 핵보유 정당성을 선전하는 것이다. 즉, 북핵이 공격용이 아니라 자위권 차원에서 보유하는 정당한 것으로 세계의 압박은 부당하다는 것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는 실질적인 이유로 남한을 통해 경제난을 돌파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2016년 1월 6일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을 위해 4차 핵실험(고폭실험)을 했을 때부터 유엔을 비롯해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까지 대북 제재에 나섰고, 2016년 9월 9일 소형 수폭실험인 5차 핵실험에 대북 압박이 강화되면서 북한 경제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7년 9월 3일 강행한 6차 핵실험은 수소폭탄 실험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주면서 대북 압박 수위를 한층 높여 북한 장마당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장마당을 중심으로 한 시장경제가 무너지면서 북한 곳곳에서 김정은 정권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신년에 열리던 ‘세포위원장 대회’를 작년 12월에 앞당겨 개최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열리는 남북 고위급회담에 북한 경제통인 전종수를 대표단에 포함시킨 것은 그들의 경제난을 반영한 것으로 향후 남북 회담에 계속 중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전종수 부위원장은 북한의 내외 금융을 총괄하며 ‘김정일 금고지기’로 알려진 전일춘 39호실장 아래서 금융일을 하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만큼 전 부위원장은 북한 금융에 정통한 경제통으로 현재 북한 경제 위기를 헤쳐가야 할 막중한 임무가 부여된 셈이다.

북한 소식통과 국내외 정보 관계자 등에 따르면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과 예술단 파견 실무 접촉, 차관급 실무회담 등에서 외부로 공동발표한 것 외에 ‘경제’에 관한 얘기를 상당히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주로 남북경협과 민간 교류에 관한 사안이었다고 한다.

北 전종수, 남북회담에서 중요 역할 담당할 듯

베이징 대북 소식통의 예언처럼 남북 차관급 실무회담에서 북측 대표는 전종수 부위원장이 나섰다.

전 부위원장은 17일 첫 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천해성 차관이 날씨 얘기를 꺼내자 “6ㆍ15 시대로 다시 돌아온 거 같은 느낌이 든다”고 화답했다. 6ㆍ15 시대는 2000년 6월 15일 공동성명을 채택한 남북 정상회담 시기를 의미한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전 부위원장의 6ㆍ15 언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해왔다. 북한은 남북대화를 할 때마다 일관되게 6ㆍ15 선언(2000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과 10ㆍ4 선언(2007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을 이행하라고 주장했는데 전 부위원장의 6ㆍ15 발언은 그러한 함의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열리는 남북대화에 주요 인사로 참석할 가능성이 높고 남북 군사회담에서도 모종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북한 소식통과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선 전 부위원장이 우리 정부에 일종의 ‘숙제’를 부과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즉, 6ㆍ15 선언과 10ㆍ4선언 이행에 관한 것과 남북 교역 중단을 가져온 5ㆍ24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주문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일 경우 문재인 정부가 6ㆍ15선언과 10ㆍ4선언을 이행하라는 숙제는 풀기가 쉽지 않다. 5ㆍ24조치 해제도 국내 여론과 전 세계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부분을 북한이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에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장백산 해외동포지원사업단 이사장은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남북이 민족 차원에서 자주적으로 ‘대화’(교류, 경협 등) 하자는 것으로, 비정치적인 ‘경제’를 중심으로 통크게 나서면 북한도 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미국도 북핵 문제를 풀지 못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명분 때문에 ‘비핵화’를 강조할 경우 가까스로 열린 남북대화가 파탄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장 이사장은 “북핵 문제는 유엔이나 6자회담 등 국제기구에 맡기고, 남북은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북핵 문제도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장 이사장은 “북한과 경협이나 교역이 금융과 연계되면 유엔 제재에 저촉될 수 있는 만큼 북한 주민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물물교환’ 방식을 취하면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호기를 맞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남북의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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