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폰 수사→수사 장기화… 野의 속내는

드루킹이 활용한 것으로 알려진 휴대전화, 베트남 유심 장착한 대포폰 가능성 높아

드루킹 대포폰 사들인 이유, 네이버 아이디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대포폰 수사로 수사 장기화될 조짐

수사 장기화 내심 바라는 야당… 대포폰 수사에 보다 주목하나

수사당국이 드루킹 사건의 대포폰 수사에 착수하며, 수사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민주당원 드루킹의 불법 댓글조작 사건이 일파만파로 퍼지며, 향후 수사당국과 정치권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드루킹 측이 조작을 위해 활용한 휴대전화가 대포폰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수사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수사의 장기화를 내심 바라고 있는 야당은 향후 수사당국의 대포폰 수사에 보다 주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경찰이 파악한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아이디를 생성하기 위해 대포폰을 사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경찰이 지난달 21일 드루킹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하며 확보한 댓글조작에 사용된 170여대의 휴대전화 대부분이 대포폰으로 의심되는 구형 공기계들이었다.

거의 모든 기기들에 유심칩이 장착돼 있지 않았고, 당연히 이동통신사에 가입된 상태도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중 한 개의 박스에 담겨 있던 133개의 휴대전화를 지난 17일 검찰에 제출했지만, 다시 돌려받아 분석에 착수했다.

그런데 경찰은 해당 기기와 연동해 네이버 아이디를 생성하는데 사용된 전화번호가 베트남 국가번호가 다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파악했다.

때문에 드루킹 측이 직접 베트남 현지에 가서 휴대전화를 마련했거나, 국내에서 베트남인 명의의 대포폰을 구매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물론 경찰은 드루킹이 170여개의 휴대전화를 베트남 현지에서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어 전자의 경우는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드루킹이 조직한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의 회원이 최근 한 언론에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드루킹이 올해 초 경공모 회원들에 사용하지 않는 휴대전화 공기계를 자신의 경기도 파주 사무실에 보내달라고 공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서 파주 사무실은 댓글조작 활동이 이뤄진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느릅나무 출판사다.

드루킹 측이 내국인들이 사용했던 공기계를 받아 이를 대포폰으로 만들었다면, 베트남인 명의의 대포폰을 구매했을 가능성도 낮아진다.

드루킹 측 댓글조작 활동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파주의 느릅나무 출판사. (사진=연합)
본지의 취재 결과, 대포폰의 경우 주로 국내에서 거주하던 중국인들이 사용한 휴대전화를 구입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들이 쓰던 단말기와 번호 그대로가 대포폰으로 이용된다.

반면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은 한국을 떠나면서 자신이 사용하던 기기를 가지고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베트남인들은 국내 스마트폰에 장착된 ‘유심(USIM)’을 처분하고 가게 되며, 업자들은 이 유심을 받아 공기계에 연결해 대포폰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국내 대포폰 업자들은 휴대전화에서 유심칩을 분리한 뒤 단말기는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으로 밀수출하고, 유심만 대포폰 유통업자들에게 팔아넘기는 일이 수사기관에 적발된 사례가 있다.

정리해 보자면 드루킹 측이 사용한 대포폰은 국내에서 사용되던 스마트폰 공기계를 입수한 뒤, 여기에 베트남 전화번호가 등록된 유심을 끼워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대포폰 고집한 이유, ‘최적의 댓글조작 조건’ 만들기 위해

사실 이들이 대포폰을 개설한 이유는 향후 수사기관의 추적이 어렵다는 점에도 있지만, 바로 다량의 네이버 아이디를 생성하기 위함이었다는 주장에 의견이 모이고 있다.

드루킹 측은 지난해 1월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비판하는 취지의 기사에 공감수를 조작하기 위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했고, 매크로가 약 600여개의 네이버 아이디로 150초만에 추천수를 700개 이상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댓글에 대한 공감 표시는 네이버 아이디 하나당 한 번밖에 할 수 없다. 또 댓글조작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아이디로 조작된 댓글과 같은 취지의 글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드루킹 측은 많은 네이버 아이디가 필요했고, 여기에 대포폰이 활용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네이버 아이디는 한 명의 명의자가 3개의 계정을 만들 수 있다. 경찰이 의심하는 바대로 170여개의 휴대전화 중 133개가 대포폰이 맞다면, 최소 390여개의 네이버 아이디를 불법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만약 170여개 기기 전체가 대포폰이었다면, 무려 500개 이상의 불법 아이디가 생성 가능했다.

그런데 네이버 아이디는 구글의 지메일(Gmail) 계정과는 다르게, PC만으로는 계정을 만들 수 없다.

반드시 휴대전화번호를 등록해 이 기기를 통한 본인확인 절차를 거쳐야 계정이 생성 조건이 갖춰진다.

때문에 드루킹 측이 댓글조작을 위해 필요한 네이버 아이디를 위해 최대한 많은 대포폰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해당 대포폰을 PC와 연동해 댓글을 작성하면, IP 추적 역시 어려워진다.

일반적으로 PC는 고정 IP를 할당받지만, 스마트폰은 비행기 모드로 설정하더라도 와이파이(Wifi)를 통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고, 이럴 경우 유동 IP를 할당받기 때문이다.

대포폰과 다수의 네이버 불법 아이디 그리고 유동 IP와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해 댓글을 조작하기의 최적의 조건이 완성되는 셈이었다.

집중해 살펴볼 부분은 이렇게 되면 향후 수사 과정은 매우 복잡해지며,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드루킹 측이 대포폰을 사용한 이유는 추적이 쉽지 않게 하는 목적과 더불어 최대한 많은 네이버 아이디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사진=연합)
향후 압수한 대포폰의 전화번호는 몇번이었고, 통신사는 어떤 곳이었으며, 그 기기로 네이버에서 어떤 불법 아이디가 생성됐으며, 그 불법 아이디로 조작한 댓글과 추천수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 여부를 전부 알아내야 한다.

본지가 취재한 한 수사당국 관계자는 드루킹을 비롯한 댓글조작 연루자들이 모든 것을 사실대로 자백하지 않는 한, 이 부분 수사가 매우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수사기관만의 문제가 아닌, 각 통신사와 네이버 측의 수사협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신사 측은 대포폰에 할당된 번호의 명의자와 통신정보조회 등 자료를 마련해야 한다. 네이버는 각 불법 아이디의 생성 시기 및 IP 그리고 해당 아이디로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댓글을 단 내용을 전부 파악해야만 한다.

때문에 아무리 경찰청 사이버수사팀과 검찰 첨단수사부 모든 인력이 합동해 수사를 한다고 할지라도, 대포폰으로 생성한 500여개 이상의 네이버 불법아이디에 대한 조사를 완료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133개의 휴대폰을 검찰에 제출했다가 다시 돌려받아 뒤늦게 대포폰 관련 분석에 착수한 점에 대해 ‘뒷북 수사’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수사 장기화의 핵심은 ‘대포폰’… 野 집중 공략

현재 청와대는 드루킹 의혹에 대해 일축하며 사실상 침묵 모드로 들어갔고, 여당은 특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거센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이 떳떳하면 최순실 특검을 우리가 받아들였듯이 야당의 특검 주장에 직접 답해야 한다”라며 “경찰이 드루킹 사건을 은폐·조작하고 있고, 댓글 전문 윤석열 검찰이 이 사건 수사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과 관련해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 역시 같은 날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드루킹을 만난 사실이 없는가”라며 “특검법 논의조차 거부하는 민주당 지도부에 즉각 특검 수용을 명령하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 완화가 기대되는 만큼, 보수 야당에게 있어 오는 6·13 지방선거에 북풍몰이 카드는 큰 힘을 얻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때문에 보수 야당 측이 선거까지 드루킹 사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바른미래당 역시 안철수 위원장이 과거 드루킹 측 댓글조작으로 인해 큰 피해를 봤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막강한 서울시장 여당 후보들을 상대할 비책으로 드루킹 사건을 제대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사실 지방선거 전 특검이 수용돼 수사가 확대될지라도 이번 사건 수사는 장기화를 피할 수 없고, 수사가 지방선거를 훌쩍 넘긴 시기까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댓글조작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의 특검 수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에게 댓글조작게이트 진상규명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연합)
야당 입장에서는 이 사건 수사가 확대되는 것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활용할 수 있도록 장기화되길 내심 바라고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사건을 장기화시키는 핵심은 역시 드루킹 측이 만들었던 대포폰에 관한 수사다. 때문에 현재 야당 내부에서는 이 부분 수사에 보다 주목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굳이 특검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경·검찰의 대포폰 분석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장기간 동안 새롭고 충격적인 사실들이 지속적으로 밝혀지며,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향후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을 더욱 곤욕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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