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 포기 안해… ‘핵 보유국’ 지위 불변

‘판문점 선언’의 비핵화 의미 남북 견해차

南 “비핵화 의지”…北 “전 세계 비핵화 전제돼야 가능”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진전 있어도 핵폐기 어려워

"통일된 한반도에 핵이 자위 목적의 강력한 무기 될 수 있다" 주장도

지난 27일 열렸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3차 남북정상회담. (연합)

북한 핵을 둘러싼 ‘비핵화’ 논란이 뜨겁다. 4ㆍ27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공동선언문(판문점 선언)에 명기된 ‘비핵화’를 놓고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정부와 여권, 전문가들 중엔 ‘비핵화’를 공동선언문에 명시한 것을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평하는 반면, 보수 야당과 전문가 일부에선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없는 추상적인 문구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비핵화’ 문제가 남북정상회담애서 최대 관건이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논란은 향후 남북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에 대해 우리 정부는 물론, 국내 진보ㆍ보수 모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양상이어서 공동선언문의 이행이나 남북 대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려는 게 일관된 원칙이다. 이는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핵과 관련해 크게 양보를 하더라도 ‘핵동결’ 수준에 머물고, 비핵화(핵폐기)에 이르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의 실제 의미와 이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에 대해 짚어봤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7년 9월 3일 보도했다
4ㆍ27 남북정상회담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비핵화’ 가능성이다. 남북이 정상회담을 불과 며칠 앞두고도 최종 ‘의제’를 정하지 못한 것은 ‘비핵화’에 대한 입장차 때문이었다. 북한은 핵포기는 없다는 종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고, 우리 정부는 비핵화에 대한 의미있는 성과를 도출하려 했다.

결국 비핵화를 의제로 정하지 못한 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27일 판문점에서 열렸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오전 9시30분 판문점 군사분계선(MDL) 에서 첫 만남을 갖고 평화의 집으로 이동해 정상회담을 이어갔다.

남북 정상은 오후 4시30분께 정상회담을 재개해 6시 2분 전세계가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판문점 서명식을 가졌고, 건물 밖으로 나와 차례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판문점 선언은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명시했다. 또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공동선언문의 ‘비핵화’를 두고 격론이 이어지고 낙관론과 비관론이 맞섰다.

정부와 여권, 전문가들 중엔 ‘비핵화’를 명문화한 것에 대해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평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27일 SBS 뉴스에 출연해 “ ‘완전한 비핵화’라고 하는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되돌이킬 수 없는 핵무기 폐기(CVID)라고 이해해야 한다”며 “남과 북의 비핵화의 개념은 동일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연구실장은 “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은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북한에 요구해온 CVID의 약칭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공동의 선언문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것에 동의한 것은 그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기로 이미 결단을 내렸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보수 야당과 전문가 일부에선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없는 추상적인 미사여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의 핵폐기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 없이 대북투자와 남북경협을 포함한 10ㆍ4선언을 이행하겠다고 했다”며 “그것은 결국 대북제재의 급격한 와해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에게 시간만 주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 정부에 의해 초대 주한대사로 내정된 바 있던 빅터 차 미국 전략 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이번 선언에 나온 비핵화 합의는 어떤 새로운 진전을 보지 못했다”면서 “비핵화의 목표를 향해 협력해나간다는 약속은 2005년 6자회담 9ㆍ19 공동성명에 나오는 ‘모든 핵무기 포기’나 1992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문’(핵무기의 시험ㆍ제조ㆍ생산ㆍ접수ㆍ보유ㆍ저장ㆍ배비(配備)ㆍ사용 금지 등을 담음)에도 근접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비핵화’에 대한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북미정상회담에서 구체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관한 ‘의미있는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앞서의 주장들과 전혀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한마디로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서 ‘완전한 비핵화’가 그런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에서 ‘완전한’의 의미는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가 핵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북한도 그런 전제에서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인데 결국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에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무기뿐 아니라 미군 철수도 요구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북미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비핵화 원칙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고려해 핵동결에 서명하고 나아가 유엔의 핵사찰을 받겠다는 정도로 양보할 수 있지만 핵을 폐기(비핵화)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그런 정도의 성과를 거두려면 상당한 대가(북한 체제 보장, 대북 지원 등)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사정에 밝은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도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태 전 공사는 26일 CNN 인터뷰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개념은 국제사회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며 “(이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모든 핵무기가 철수하는 것뿐 아니라, 한반도나 그 주위에 그 어떤 임시적인 핵무기 전개도 금지된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한반도 비핵화’는 전 세계의 비핵화가 있을 때 시작될 수 있다”며 “핵보유국들이 비슷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반도 비핵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에 따르면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밝힌 ‘완전한 비핵화’는 전 세계가 비핵화 조치에 나설 때 시작될 수 있다는 것으로 사실상 ‘비핵화’가 요원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와 관련해 앞서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 체제 보장과 유엔의 역할을 강조했다. 소식통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북한 체제를 보장하고 경제 제재도 해제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유엔이 북핵을 관리한다면 북한도 ‘비핵화’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남북관계가 발전해 통일되거나 연방 국가 형태가 될 경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핵이 오히려 자위 수단의 최대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통일된 한반도에 핵이 자위 목적에 필요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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