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보유핵은 건드리지 마라” , 한ㆍ미 북핵 딜레마…남북ㆍ북미 회담 ‘갈림길’

남북 고위급회담 무산은 北의 문재인 정부와 미국의 비핵화 방식 대한 경고 미국 전략자산 문제로 남북 충돌… 북한 文 정부 의심, 우리 측 “예정된 훈련일뿐”

北, 비핵화해도 기존핵은 포기 안해…美 ‘완전한 핵폐기’입장, ‘접점’ 불가

볼턴식 북핵 해법에 北 강력 반발…미국 수위 낮춰 ‘트럼프식 해법’ 제시

한미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결과 따라 남북관계, 한반도 역학관계 달라져

북미정상회담 트럼프-김정은 '역사적 담판' (연합)

4ㆍ27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을 채택하면서 순항할 것 같던 남북관계가 북미 간 파열음이 불거지면서 출렁이고 있다.

북한은 최근 미국의 대북 태도에 불만을 나타내며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될 수 있다는 엄포를 놓는 한편, 우리 정부를 향해서도 고위급회담을 전격 취소하면서 다시 대화하는 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남북관계가 정상회담 20일 만에 난기류를 만나고,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이 위기를 맞으면서 한반도 상황이 예측불가한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판문점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고위급회담이 북한의 일방적 통보로 무산된 것은 불길한 징후였다. 북한은 한미 공군의 군사훈련을 문제삼아 회담을 무기한 연기한데 이어 우리 정부의 입장을 재반박하며 남북대화가 아예 열리지 않을 수 있다고 위협했다.

미국을 상대해서는 북핵에 대한 언급을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을 보이콧할 수 있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북한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를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북미회담이나 남북대화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일 뿐 회담은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지만 북한이 실제 행동으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든, 북미관계든 북한이 강경 입장을 보이면서 이전과 다르게 악화됐다는 점이다. 특히 최대 관건인 북핵에 관해 북한은 다른 것은 양보해도 기존의 보유핵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대화나 화해의 ‘접점’을 찾기 어렵다.

더욱이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긴급한 식량을 대량 지원받고, 든든한 배후까지 두게 돼 한국과 미국에 아쉬울 게 없는 상황이다.

이에따라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새로운 남북관계를 열어가려는 문재인 대통령이 곤혹스럽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유화 제스처를 취하며 한 발 물러섰으나 문재인 정부는 아직 적절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달 22일 한미정상회담이 내달 12일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의 사전회담 성격을 띠고 있고 북한핵 문제가 최대 의제가 될 전망이지만 문 대통령은 확실한 답안지를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북미 관계와 연계된 대북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심각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고, 순조로왔던 남북관계도 막을 내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모처럼의 훈풍이 돌던 한반도에 느닷없이 불어닥친 난기류에 직면한 문재인 정부가 위기를 어떻게 헤쳐갈지 주목된다.

지난 1월 남북 고위급회담 종료회의에서 공동보도문을 낭독하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연합)

남북 고위급회담 왜 무산됐나

남북 정상이 4ㆍ27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하 판문점 선언)에 합의하면서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탈 것이 예상됐다.

남북은 판문점 선언에서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만리마 속도전’을 남북의 통일 속도로 삼자고 말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를 돌아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라고 화답했다.

이에따라 남북 당국은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된 고위급회담을 조율하고 16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회담 당일 새벽, 북한은 갑작스럽게 ‘무기 연기’를 통보했다. 16일 새벽 0시30분께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단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회담을 무기한 연기한 것이다.

북한은 한미 공군의 연례적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를 문제삼았다. 특히 “미국 상전과 한 짝이 되어 역대 최대 규모의 연합공중전투 훈련을 벌려 놓고…”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맥스선더’ 훈련이 지난 11일 시작됐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를 문제 삼아 ‘회담 중지’를 통보한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통일부 당국자도 “북측이 회담 일정 협의 과정에서 연합훈련을 문제 삼는 분위기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통보한 직후 보다 구체적으로 거부 이유를 나타냈다.

북한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16일 오후 ‘미국은 핵 전략자산들을 조선반도(한반도)에 끌어들이는 놀음을 걷어치워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핵 전략자산 투입이 북미정상회담 전망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며 미국에 핵 전략자산 투입 중지를 요구했다.

중앙통신은 논평에서 “미국이 조미 수뇌회담이 다가오는 때에 B-52 전략핵폭격기와 F-22 랩터 스텔스 전투기를 포함한 핵전략자산들을 투입하여 역대 최대 규모의 훈련을 벌려 놓은 것은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 대화 분위기에 역행하는 극히 도발적이고 온당치 못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거부한 실질적 이유가 ‘맥스선더’ 훈련과 연계된 미국 전략자산에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전략자산이 적극적 전쟁의 의미가 있어 북한이 반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부 전문가는 전략자산이 대북 공격, 나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무기나 전술도 포함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산시킨 진짜이유는 미국의 전략자산 때문으로 안다”며 “그것은 북한과 김정은에 매우 위협적인 것으로 맥스선더 훈련에 전략자산이 관련된 것에 북한은 강한 불만을 갖고 있고, 남한 정부가 묵인한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고 전해왔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전략자산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사전 협의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에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의심한다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을 통해 화해와 협력을 하기로 해놓고 이와 배치되는 행보를 한 문재인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게 북한 입장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미국 전략자산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국내에 들어온 게 없다”며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한 것에 의문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해 베이징 소식통은 “북한은 미국 전략자산이 남한에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고 문재인 정부가 승인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고 의심하는 것”이라며 “남북 간 신뢰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남북 고위급회담이 무산된 것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 표명에 대해 북한이 재반박한 것은 그러한 배경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17일 ‘맥스선더’ 훈련을 강행한 것을 거론하면서 “북남관계 개선 흐름에 전면 역행하는 무모한 행위들이 도가 넘게 벌어지고 있다”며 “북남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식통은 문재인 정부가 미국 전략자산의 국내 입항(예정)에 대해 분명한 해명을 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북한 입장이라고 전해왔다.

남북 고위급회담 무산이 우리 정부를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고도의 전략을 편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북핵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수용할 수 없고, 상황에 따라 북미정상회담도 보이콧할 수 있다는 압박을 가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국내 다수 전문가들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하는 북핵에 대한 리비아식 해법에 대해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미국이 북한핵을 건드린 게 결정적으로 북한을 자극했다”면서 “보유핵을 없앤다거나 제거 후 미국으로 옮긴다는 것은 북한 입장에서 전혀 받아들일 수 없고 전쟁도 불사한다는 상황”이라고 전해왔다.

여기에 미국이 북핵 외에 생화학 무기 제거까지 언급하자 크게 반발하면서 북미정상회담 보이콧 의사를 내비쳤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결국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무산시키면서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미국이고,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4월9일 백악관의 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볼턴(오른쪽)이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연합)

강경파 볼턴 北 자극, 북미정상회담 발목잡아

남북 고위급회담이 무산된 것이나 북미정상회담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 북핵에 대한 미국의 강경 입장과 불신을 초래한 행보에 북한이 강경 대응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볼턴 보좌관의 ‘비핵화’ 방식과 생화학 무기 제거, 인권 문제까지 언급한 것이 결정적으로 북한을 뿔나게 했다는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인 4월 29일(현지시간), 취임 후 폭스뉴스, CBS방송, ABC 방송 등 미 언론과 잇따라 인터뷰를 갖고 '선 핵폐기, 후 보상'을 원칙으로 하는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북핵문제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여론몰이를 해왔다.

지난 13일에는 ABC방송에 출연해 “북한과의 협상에서 비핵화가 가장 우선이고 ‘타협불가’한 의제”라며 “단순히 핵무기만 뜻하는 게 아니라 북한이 과거 여러 차례 동의했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능력 포기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ㆍ탄도미사일 폐기뿐 아니라 남북이 1992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남과 북은 핵 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는 수준까지 가야한다는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2004년 리비아로부터 넘겨받은 핵개발 장비 등이 보관된 테네시주 오크리지를 거론하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핵무기를 해체해 오크리지로 가져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 담화에서 “미국에서 대화 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망발이 마구 튀어나오고 있다”며 볼턴 보좌관에게 “사이비 우국지사”란 비난을 퍼부었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다른 모든 것을 양보해도 기존의 보유핵은 어떤 경우도 포기하지 않는다”면서 “볼턴이 ‘미국의 힘’이면 북한을 다룰 수 있다고 보는데 대단한 오판이다”고 말했다. 북한은 앞으로 핵 실험이나 연구 등을 하지 않는 ‘핵동결’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미 갖고 있는 핵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북한 사정에 밝은 러시아의 정보 관계자도 “북한에 대해 볼턴이 착각을 하거나 무지한 것을 드러낸 것”이라며 “북한이 경제난 때문에 손을 들고 나왔지만 핵에 관한 원칙(보유액 고수)은 불변”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볼턴이 북핵뿐만 아니라 생화학 무기까지 제거할 것과 일본인 납치 등 인권 문제까지 거론하며 북한을 압박한데 대해 격노해있다”며 “폼페이오를 통해선 ‘잘해보자’고 해놓고 또 한쪽에선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고 전해왔다.

볼턴 보좌관은 북미정상회담 의제로 북한의 핵ㆍ탄도미사일 문제뿐 아니라 생물ㆍ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와 한국인과 일본인 납치 문제까지 범위를 넓혔다.

그는 13일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탄도미사일 의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면서 “생물ㆍ화학무기도 살펴봐야한다”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포괄적으로 다뤄야한다고 강조했다.

볼턴 보좌관은 13일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납치된 일본인들, 납치된 한국인 등 다른 문제들도 제기할 것”이라며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드러냈다.

베이징 소식통은 “북한은 볼턴의 발언이 개인 소신일 수 있지만 미국의 의지가 담긴 게 아니냐며 의심한다”며 “양국 정상이 순수하고 정직하게 만나야 하는데 미국은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어가려 한다”고 전해왔다.

미국이 ‘힘’으로 북한을 압박해 항복을 받아내려 한다는데 대해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모습을 보여야 북미정상회담도 가능할 것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지난 5월 10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하는 모습.(연합)

북미정상회담 ‘北 선택’에 달려

내달 12일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은 사실상 북한에 달려있다. 북한의 선택에 따라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북미 간 정상회담의 주도권을 북한이 쥐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그러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안전 장치도 마련했다. 박태성 노동당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친선참관단'을 14일 중국에 파견해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냄으로써 미국이 경제 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을 무력화시켰다. 중국이 배후에서 북한을 밀어주는 것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푸젠팅(福建廳)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방중한 북한 노동당 ‘친선 참관단’과 만나 “중국은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대화 추진, 한반도 비핵화 실현, 북한의 경제발전과 민생 개선에 대해 지지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라면 북미정상회담이 불발되더라도 북한(김정은)은 크게 잃을 게 없다. 반면,도널드 드럼프 미국 대통령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북미정상회담을 트럼프 대통령이 공표한 상황이라 불발되면 비난은 그에게 쏟아지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볼턴 보좌관의 비핵화 방식에 북한이 반발하자 한발 물러선 것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를 통해 미국 정부가 일방적인 핵포기를 강요하면 내달 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을 재고하겠다고 밝혔다.

김계관 제1부상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관계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조미수뇌회담에 나오는 경우,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 것”이라며 미국 정부의 태도 전환을 촉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백악관은 16일(현지시간) 북한이 이른바 ‘리비아식 비핵화’에 강력히 반발한 것과 관련, 미국은 북핵 협상에서 리비아식 모델이 아니라 ‘트럼프식 모델’을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샌더스 대변인은 “리비아 모델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우리가 따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북핵 협상에서) 짜인 틀(cookie cutter)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따르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릴 ‘비핵화 로드맵’의 밑그림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정황이다. 큰 틀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하고 신속·과감하게 핵 폐기 절차를 이행하면 북한이 기대하는 이상의 ‘엄청난 보상’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3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는데 동의한다면 대북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트럼프식 로드맵에 ‘비핵화’와 관련해 기존 보유핵까지 폐기한다는 것과 북한 측에 핵탄두와 핵물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상당 부분을 조기에 국외로, 그것도 미국으로 반출토록 요구한다는 내용이 담긴다면 북미정상회담은 소득없이 끝날 수 있다.

일각에서 미국이 원칙에만 얽매일 경우 북미 협상이 한 발짝도 못 나아가는 교착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미ㆍ북 양쪽 모두 원칙적 태도만을 끝까지 고수할 경우 북미정상회담은 평행선을 달린 끝에 파국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은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핵입장(보유핵 고수)을 확인했으나 트럼프 정부 내 볼턴 보좌관 같은 강경 매파 들과 갈등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행정부가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의 비핵화 해법 중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2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뉴욕 롯데 팰리스 호텔에서 '한-미 정상회담' 하는 모습(연합)

문재인 대통령 ‘중재자’ 역할 통할까

북한의 일방적인 연기 통보로 16일 열릴 예정이던 남북고위급회담의 개최가 무산되자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중재역할’에 나섰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한미·남북 간에 여러 채널로 긴밀히 입장을 조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정부나 문 대통령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며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우리가 파악하는 북한의 입장과 태도를 충분히 전달한 다음 북한에도 미국의 입장과 견해를 충분히 전달해 접점을 넓혀 나가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조치들은 북한과 미국에 온전히 이 상황을 맡겨두었다가는 여태까지 끌어온 남북관계와 비핵화 진전 국면이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22일 한미정상회담은 중요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이번 한미 간 정상회담은 사실상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전초적 성격을 띠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

미국은 비핵화에 관해 단호한 북한을 우리 정부가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해달라는 것인데 문 대통령 측에서 어떤 해법을 갖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본래 16일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은 북한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으나 무산되면서 물거품이 됐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빈손’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나온다.

본지는 대북 전문가의 견해를 토대로 북한이 핵에 대해 불변의 원칙(보유핵 고수)을 고수하는 한 기존의 핵을 폐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려봤다.

또한 북한은 그들의 정치ㆍ군사적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서 ‘비핵화’를 진행하는 것은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무장지대(DMZ) 활용이 최적이라고 보도했다. 즉 북핵을 비무장지대(DMZ)에 보관하고 유엔군, 미군, 남북한 군이 통합적으로 관리해 사실상의 ‘비핵화(핵폐기)’효과를 거두는 방식이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은 남한이 ‘민족’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이어가길 바라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 동조하거나 특히 비핵화에 대해 미국 입장을 두둔한다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문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한미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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