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 관련한 미국 입장 확인… '북한판 마셜플랜' 중단에 위기감

미국의 대북 군사적ㆍ경제적 압박 우려…文정부의 북핵 관여에 대한 北 입장 전해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연합)

26일 이뤄진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오전 10시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 위원장이 그제(25일, 금요일) 오후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고, 저는 흔쾌히 수락했다”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제안에 따라 문 대통령은 전날(26일) 오후 3시부터 오후 5시까지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지난 4월 27일 첫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한달 만이다.

2차 남북정상회담을 김 위원장이 제안한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베이징의 정통한 북한 소식통과 미국 정보관계자 등에 따르면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북미정상회담과 관련된 것이다. 북한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여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북한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국가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완화하거나 풀려고 한다. 또한 북미정상회담에서 전 세계 관심사인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도 올해는 북한 정권 수립(1948년 9월 9일) 70주년이 되는 해이고 당 창건(1945년 10월 10일) 73주년이 되기 때문에 이를 위한 대대적으로 기념하겠다는 뜻을 신년초에 밝혔다. 김 위원장은 9월 9일이나 10월 10일 이전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고, 국가적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되면 김 위원장의 계획도 이루기 어렵고,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으로부터 강력한 군사적ㆍ경제적 압박을 받을 위험성이 높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한 것은 김 위원장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회담 취소 발표 약 9시간 만에 유화적 담화문을 발표하며 대화 제의를 한 것은 앞서의 배경들 때문이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은 김계관 제1부상의 담화 발표 후 하룻만에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고, 22일 한미정상회담을 한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확인하고 했다. 김 위원장이 먼저 2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오른쪽)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하기로 예정돼 있던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하고 있다.(연합)

김 위원장이 2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한 두 번째 배경으로 '북한판 마셜플랜'이라 할 수 있는 대규모 대북지원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북미정상회담과 연계된 것으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9일 두번째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미국의 경제지원, 국제사회의 체제보장 등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면서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거부할 경우 대북지원과 체제보장도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부상이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담화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북핵 해법으로 ‘리비아 모델’ 등을 언급한데 대해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하는 하면서 북미회담을 재고할 수 있다고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북한은 영속적인 평화와 큰 번영, 부유함을 위한 위대한 기회를 잃었다"고 밝혔다.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에 나오지 않을 경우 대북지원과 체제보장 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일종의 경고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수에 놀란 북한은 즉각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발표, 유연한 입장을 보이며 대화를 하자는 메시지를 전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회담 재개 가능성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는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배석했다.(연합)

김 위원장이 2차 정상회담을 제의한 것은 북미정상회담과 관련된 것이지만 한국이 북한(북핵)을 잘못 이해하고 이로인해 북미회담을 포함해 남ㆍ북한ㆍ미국 3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준 것을 지적하려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은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핵에 대한 입장을 문 대통령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북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풀어야 할 사안이기 때문에 한국이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핵에 관한 한 미국을 상대하려고 하는데 남한이 관여하는 것을 못마땅해왔다”며 “남한이 핵에 대해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미국편을 드는 것을 비판해왔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회담할 때도 한국 정부가 북핵에 관여하려는 것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고 한다.

또한 북한의 핵에 대한 입장을 한국 정부가 잘못 이해하고 이를 사실인 것처럼 대내외에 알리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내달 12일로 예정됐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핵에 대해 미국과 북한이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데 한국 정부가 북핵에 대해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을 문제삼았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2차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 한발 물러선 듯한 모습을 보였다. 즉,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하며 북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던 종래의 행보와는 적잖이 달랐다.

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를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북핵 문제를 북한과 미국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해법을 말해왔는데 그와 관련된 진전된 내용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실제 비핵화에 대해서 뜻이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실현해갈 것인가라는 로드맵은 양국간에 협의가 필요하고 그런 과정이 어려울 수 있다. 그 로드맵은 미북 간 협의할 문제기 때문에 제 생각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수용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북미 간 실무협상을 한다는 것은 미국에서 북한의 그런 의지를 확인한 것”이라며 “혹시라도 확인 과정에서 미흡한 게 있었다면 실무협상 과정에서 분명히 확인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북핵 문제와 한반도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한국이 북핵 문제에 관계국으로서 빠질순 없지만 실제 영향력 있는 힘을 미칠 수는 없다고 본다. 북핵 문제는 궁극적으로 북한과 미국이 풀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북핵 문제의 해법이 나오고 이를 실현해 가는데 한국의 일정한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베이징의 대북소식통은 “북한은 ‘민족끼리’ 현안들을 풀어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북핵 만큼은 남한이 개입하지 않길 바란다”며 “오로지 ‘경제’와 관련해 진지한 대화를 하고싶어 한다”고 전해왔다.

소식통은 “2차 정상회담 후 남북 간에는 ‘경제’ 관련 고위급회담이 많아질 것”이라며 “남한의 대응과 미국의 입장이 있지만 당분간 1차 정상회담 당시와 같이 순조로운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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