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총선ㆍ대선 좌우할 파워맨… ‘킹메이커’ 로 잠룡 운명 가를 수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지난달 25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후보가 차기 당대표로 당선됐다. 그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여유있게 당대표 자리를 차지했다. 이해찬 대표는 친노(親盧, 친노무현), 친문(親文, 친문재인)을 아우르는 거물급 정치인사로 확고한 당내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해찬 대표가 어떻게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을 막을 것이며,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도 관심사다.

이해찬 대표는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쥐고 있고, 대선 구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 유력 대권 주자들의 이해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이해찬 파워’의 배경

이해찬 대표는 친노와 친문의 폭넓은 지지로 당선됐다. 민주당 내에서도 친노, 친문 계열은 크게 한 축으로 볼 수 있지만 인적 구성이나 정치적 색깔은 조금씩 다르다. 이해찬 대표는 이런 차이점도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는 정치적 기반과 파워를 지녔다는 평가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겸 여론정치평론가는 “친노와 친문은 한 뿌리로 볼 수 있지만 인적 구성원이라든지 정치적 관계 등이 다르다. 그래서 이름도 나뉘어 불리는 것”이라며 “친노는 대체적으로 80년대 초반 학번, 친문은 80년대 후반 학번 이하 세대다. 민주화 운동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시니어그룹에 비해 친문은 진영 내에서도 결집력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진영 내의 강력한 주자가 나올지는 몰라도 대중적인 정치인사가 잘 나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도 이해찬 대표에 대한 인식차가 조금씩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해찬이 당대표로 당선됨에 따라 정치적 경륜이나 국정운영 경험, 대중을 움직일만한 거물급 정치인사가 있는 시니어 그룹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친문세력의 약점을 보완하는 긍정적인 요소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권력투쟁화로 비화되면 집권세력인 민주당의 분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이해찬 대표의 당선은 계파 논리보다 행정부를 적당히 견제하고 국정운영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결과”라고 말했다. 이해찬 대표 체제의 출범 이유는 국회와 행정부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무게를 뒀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김진표의 낙선도 청와대에 치우친 편향성이 당의 존재감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해찬 대표가 당의 지지율을 회복시키는 등의 강한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대권 행보를 하는 순간 당내 분란을 가져올 수 있고, 여론의 역풍을 불러올 수 있어 당대표로서의 임무에 집중할 것이라는 분석이 상당하다.

홍형식 소장은 “아직은 이해찬의 대권행보에 대해 판단하기 이르지만 당대표 기간 중 대권욕심을 드러내면 당차원에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당내 유력주자들이 많은 상황에서의 ‘대권 욕심’은 분열적 요소가 크고 친노 시니어그룹과의 갈등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민전 교수도 “대권 욕심이야 당연히 낼 수 있겠지만 이해찬 대표가 대중적인 인기를 받기엔 부족해 보인다”면서 “과거 참여정부 시절의 불명예 때문에라도 대권 행보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내 유력 대권주자들이 오히려 이해찬을 지지했던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 김 교수는 “이해찬 후보가당 대표가 되더라도 대권과 무관하기 때문에 오히려 유력한 대권주자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있다고 보고 그를 지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나 추미애 전 대표 등이 되레 이해찬 후보를 암묵적으로 지지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당대표 선거에서 2위로 마친 송영길 후보는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이전의 전당대회보다 뚜렷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당대표를 선출하는 최종단계에서 김진표를 제치고 2위를 기록하면서 당내 입지를 탄탄하게 다진 효과도 누릴 것이라는 예상이다. 386 그룹에서는 유일하게 대중적 정치인으로 성장할 잠재성도 커졌다. 송 후보는 차기 유력주자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최대의 성과다.

김민전 교수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김 교수는 “송 후보의 경우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잠재적 유력 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여권 잠룡으로 거론된 전해철 의원은 김진표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가 타격을 입게 됐다. 전 의원은 당권에 도전하는 대신 김 후보를 밀어 당선시킨 후 본격 대권행보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후보가 전당대회 본선에서 3위로 고배를 마시면서 당내 일부 친문 인사들이 등을 돌리면서 전 의원의 입지마저 곤란하게 됐다.

추미애 전 대표의 행보도 관심사다. 추미애 전 대표도 본격적인 대권주자 행보를 할 것으로 보인다. 당 안팎에선 추 전 대표가 이해찬 후보의 전대 출마에 상당한 힘을 실어준 것에 대해 대권 야망과 무관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추 전 대표에 대해 홍 소장은 “당대표 자리도 벗었으니 대권 행보를 시작할 것”이라면서도 “대권주자로서의 힘이 다소 약해 보인다”고 말했다. 당대표 재임 기간 중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고 추미애만의 계보와 세력을 형성한 것도 아닌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어 그는 “추미애 입장에서는 유력 주자들을 어떤 형태로든 견제하려 할 것인데 이해찬 대표와 협조적 관계를 원만하게 이뤄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향후 대권 주자로서의 경쟁관계가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추 전 대표가 암암리에 이해찬 대표를 지지한 이유에 대해 “당 대표가 청와대와 친화적인 인물로 선출되면,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여러 대권주자들의 공통된 우려였다는 지적이다. 이해찬 대표를 활용해 차기 유력 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 통용된 것이다.

이해찬 당 대표(오른쪽)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 대표, 어느 잠룡과 손을 잡을 것인가

이해찬 대표가 선출되면서 대권 잠룡으로 평가받는 이재명 경기지사나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당내 입지에 변화가 생겼다. 김 교수는 “이해찬이 대표로 선출되면서 이재명 지사가 가장 큰 이득을 봤다”며 “우선 김진표가 패배하면서 이재명의 출당을 요구하는 세력이 약해진 것이 이재명 지사에게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 지사가 이해찬 대표의 측근인 이화영 전 의원을 경기도 통일부지사에 임명한 것도 대권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홍 소장은 “이해찬 체제 출범과 김부겸과의 밀접한 역학관계는 상정하기 어렵지만 친문세력의 지지기반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이해찬 대표가 선출된 것이 이득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김부겸이 큰 반사이익을 누렸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나쁘지는 않은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며 “정책노선이 이해찬과 비슷하고 재야운동권 마인드도 있으며 대중관이나 정서도 이해찬 대표과 공통분모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노선이 이해찬과는 다르다”며 김부겸 장관에 비해 친노, 친문의 지지를 얻기 쉽지 않다고 풀이했다. 김부겸 장관은 무난한 정치기반으로 이해찬 대표와의 연대나 시니어 그룹의 지지를 받을 확률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소리다.

당 안팍에서도 이해찬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서 김부겸 장관이 향후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대중 정부 시절 PK(부산ㆍ경남) 출신 노무현 후보를 밀어 대통령에 당선 시킨 이른바 ‘노무현 효과’를 김 장관을 통해 재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장관은 여권의 최대 취약지역인 TK(대구ㆍ경북) 출신이다. 이해찬 대표가 대표 당선 후 첫 현장 최고위원회 회의를 고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에서 연 것은 TK 지지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동진정책’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장관이 차기 대선에서 여권의 경쟁력 있는 후보가 될 수 있는 배경이다

새로운 정치 인사가 보이지 않으면서 정치권의 올드보이 열풍은 식지 않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낙연 총리도 잠재적인 대권 잠룡으로 평가받는다. 홍 소장은 “여권 내에서 대중적 정치인으로 성장한 인물이 많지 않다”며 “굳이 거론한다면 이낙연 총리다. 그는 리더형 정치인은 아니지만 완전히 참모형 인물도 아니다.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현 정부의 국정 운영 성공여부에 따라 그 가능성이 유동적이라는 변수가 있다.

김 교수는 잠재적인 유력 주자에 대해 “당내에서는 송영길, 장관으로는 김부겸이 있고 추미애 전 대표도 있다”며 “이재명 지사는 갖은 구설수와 불안한 당내 입지 기반을 만회하기 위해 경제적 성과로 승부를 보려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외에 임종석 비서실장, 박원순 서울시장도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된다.

임종석 실장은 대북관계의 성과를 통해 대권 주자로서 입지를 다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관계가 국내외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점에서 임 실장의 대권 야망도 롤로코스터를 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해찬 대표와 임종석 실장이 손을 잡고 대권 창출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당을 이 대표가 책임지고 청와대는 임 실장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이 대표=킹메이커, 임 실장=대선 후보’ 구도를 꾀한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3기 연임으로 일찍이 대권 준비를 해왔다. 당내 친박 의원들을 지원하고 친문 인사를 서울시 요직에 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관을 지낸 친문 핵심 김경수 경남지사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해찬 대표와 각별한 관계다. 여권의 잠룡이기도 한 김 지사는 드루킹 댓글 사건 파문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향후 김 지사의 위상에 따라 대권 정국에서 이 대표와의 관계가 주목된다.

이해찬 대표의 가장 큰 핵심 과제는 단연 민주당의 지지율 회복이다. 열쇠는 경제 문제와 대북 문제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 소장은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 문제와 대북관계에서 인상적인 결과를 내야 할 것”이라며 “성과를 내는데 오랜 시간을 끌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내년 초반까지는 정책적인 성과를 내야한다고 분석했다. 한편 김 교수는 “이해찬 대표가 세부적인 정책 제안 중심으로 갈 것인지 큰 틀에서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면서 “여아간의 협치와 안정적인 당 운영으로 정치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2년차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의 새 수장이 된 이해찬 대표의 행보가 주목되는 까닭이다.

천현빈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