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비핵화 강경 노선 선회…北 관망중, 대응 카드 주목…韓 ‘전략’ 가져야

미국- 북한 ‘핵 줄다리기’ 한국에 악영향, 최악 안보상태 대비해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취소 결정에 앞서 열린 핵심 참모들과의 북한 관련 회의를 하는 모습.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 센터장,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 폼페이오 국무장관,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 마이크 펜스 부통령.

지난달 24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 장관의 방북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의 전격적인 방북 취소로 ‘비핵화’ 협상 테이블이 복잡해졌다. 미국의 전격적인 태도전환이 비핵화 강경노선으로 이어질 것인지도 주목된다.

트럼프 정부 대북 강수…北 ‘통남봉미’ 맞불

북한은 1일 현재까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노동신문을 통해 판문점 선언 이행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한국 정부만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미 국무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할 준비가 되면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행동이 협상테이블 조건에 부합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했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이행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 분명해지면 미국도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김정은이 동의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는 전 세계의 목표이며 고대하는 바”라고 말했다. 원칙적이고 강경한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면서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 모멘텀은 여전히 가져간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핵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없이는 대화도 보상도 없다는 원칙이다. 이에 대해 박휘락 국민대 교수는 “과거 트럼프가 북한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는 발언을 했었다”면서 “폼페이오가 방북을 취소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강경노선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한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줬고 이번 일로 그 기회가 사라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도 대화국면에서 대결 및 제재국면으로 흐르는 양상이다.

북한은 지난 6월 북미회담 이후 여러 선전매체를 통해 미국과 제재국면을 두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며 협상테이블에서의 기싸움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대화 모멘텀을 깨지 않기 위한 적절한 수위조절도 이어갔다. 이번 폼페이오의 방북 취소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위협적인 서신 전달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 CNN은 김영철의 편지 내용에 대해 “비핵화 협상이 위기에 처했으며 무산될 수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와 관련한 사실에 대해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회의에서 “편지 내용은 언론 보도만 보고 확인할 수는 없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내놨다.

이에 대해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우리 정부만 압박하는 상황이다. 판문점 선언을 실제적으로 이행하라고 거듭 촉구하며 대남압박을 본격화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자 노동신문에서는 “북과 남은 외세가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며 “민족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가야 불신과 대결을 해소하고 북남관계 개선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역사와 현실을 통하여 확증되었다”고 주장했다. 핵문제만큼은 미국과의 독대를 통해 담판을 지으려 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흐름이다.

북한은 과거 핵협상 테이블에서 항상 한국 정부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미국과만 담판을 짓는다는 이른바 ‘통미봉남’ 전략은 1차 핵위기 때부터 이어져 온 북한의 협상 태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통남봉미’ 전략을 취하며 한국 정부와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한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와 관련한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도 ‘통남봉미’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대북관계 및 국제정세를 연구하는 통일연구원 정성윤 위원은 “한국정부의 전향적인 대화 및 평화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서는 우리 정부를 통해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구조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중재외교, 운전자론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미국을 대화 테이블로 유인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어 정 위원은 “앞으로도 문재인 정부가 대화의 기조를 크게 바꾸지 않는 한 통남봉미 혹은 통남통미 전략은 계속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보수정권에서는 대화 모멘텀이 약했지만, 현 정부의 대화 기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온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핵협상 전략과 한국의 대응

북한의 핵협상 전략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전격적인 태도전환’, ‘전사적 협상 태도’, ‘통미봉남’, ‘도발 후 협상을 통한 경제보상의 반복’, ‘강력한 중앙통제’ 등이다.

북한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통해 위기감을 극대화 시킨 뒤 전격적인 태도전환으로 대화와 평화 제스쳐를 취해 왔다. 대결과 대화의 극적인 대비는 북한이 핵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요소가 됐다. 긴장의 극대화로 협상테이블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심리를 이용하는 전략이다. 북한은 협상테이블을 하나의 전쟁판으로 인식한다. 협상테이블에서 북한은 협상에 대해 ‘혁명 달성을 위한 다른 형태의 투쟁’이라 묘사하며 힘의 논리로 상대한다. 일방적 이익과 양보를 강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불바다”, “미 본토 타격” 등의 폭언과 압박도 서슴지 않는다.

북한은 사소한 협상에서의 절차조차도 강력한 중앙의 통제를 받는다. 따라서 회담 전반에 대한 권한은 없으며 단지 최고지도자의 대리인으로 나올 뿐이다. 체제불안을 야기하는 어떠한 협상요소도 허락하지 않는 중앙의 강력한 통제가 작동한다. 지금까지 북한의 협상 전략은 실제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핵무기 전력을 완성했고 도발 후 협상을 통한 보상도 반복적으로 취해왔다. 이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 미국의 단호한 입장이다. 폼페이오의 전격적인 방북 취소도 이러한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의 핵 협상력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과거 북한은 완성된 핵전력을 갖지 못하고도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들의 최종목표였던 핵무기도 이제 완성됐다. 훨씬 더 강력한 협상력으로 비핵화 테이블의 판을 움직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성윤 연구위원은 “북한은 핵무기를 만능의 보검이라고 했다. 핵이 완성되면 그들의 전략적 지위가 바뀔 것이라고 공언해왔다”며 “핵능력을 갖추면 판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맹신과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핵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만큼 핵을 포기하는 대가도 높게 생각할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정 위원은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전력이 완성됐든 안 됐든 압도적인 핵능력 우위는 변함없다”며 “김정은이 자신의 핵능력에 대해 과도한 전략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따른 과도한 보상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북한의 ‘핵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동안 한국은 최악의 안보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박휘락 교수는 ‘한국 포기’라는 미국의 극단적 선택을 상정해야 한다며 “미국이 북한의 핵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한국과의 동맹을 포기한다면 보다 자유로운 북핵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어떻게든 한국을 보호하겠다는 안보 조약이 파기되는 것은 북한에게 최고의 결과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최악의 결과다. 박 교수는 “안보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라며 “만약 미국이 북한의 ICBM 완성만 막는 수준으로 핵 협상을 타협한다면 한국의 안보는 치명상을 입는다”고 말했다. 자국의 안보를 무조건적으로 미국에게만 의지할 수 있다는 낙관적 생각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정성윤 위원도 “ICBM 개발을 막는 선에서 협상이 마무리 된다면 그것은 한국에게는 최악이고 미국에게는 차선의 결과일 것”이라며 그럴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은 중국과의 패권 다툼에서 한국과 일본의 동맹체계를 핵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동아시아의 동맹체계를 흔드는 선택까지 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전략이 계속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어 그는 “아무리 미국이라도 어렵게 만든 핵 협상 테이블을 쉽게 걷어차지는 못할 것이며 북한도 마찬가지”라며 “북한도 협상을 이어가기 위한 선물보따리를 전략적으로 꺼낼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비핵화를 위한 초기 국면인 만큼 핵을 둘러싼 주변국의 정세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박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해 “북핵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고 생명이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따라서 주변국이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를 분석하기보다 우리가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정부가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국민과 국가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며 “대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는 생각과 미국이 언제까지나 우리의 안보를 책임질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국민에게 적극적인 안보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안보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국가안보실을 북핵대응실로 맞추고 정부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군사적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정성윤 위원은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입장과 원칙을 반복해서 북한에 전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성의 있는 비핵화 조치가 선제되지 않는 한 대북제제는 유효할 것이라는 원칙론을 상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문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말한 것처럼 북미관계가 제대로 증진되지 않으면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구축에는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북한에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면서 한미공조를 통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 내야한다는 뜻이다.

북ㆍ미 비핵화 ‘강대강’ 국면 가능성

지난달 28일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트럼프, 폼페이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함께 논의한 결과 지금은 폼페이오가 북한에 갈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히면서도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충분한 진전이 없을 뿐이지 진전은 이뤄지고 있다(still ongoing)”고 해명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관련한 도전과 어려움에 대해 매우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폼페이오도 북핵 협상에 대해 “쉽지 않을 것이고 긴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북핵 협상이 쉽지 않음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협상테이블에서 확실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협상에 나설 수 있음도 동시에 드러냈다. 핵 협상 테이블은 전적으로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행동에 달려 있다는 압박이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한미연합훈련을 더 이상 중단하지 않겠다”는 발언도 이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성의 있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촉구하는 것이다.

앞으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가능성에 대해 박 교수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 북한이 비핵화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가 방북 일정을 취소한 것이기에 북핵 협상에서 강경 노선으로의 전환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북 강경론자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방북 취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과의 비핵화 줄다리기에서 강경한 태도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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