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난의 행군 없을 것”... 文 정부 지원설, 中 막후설 등 나와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사절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5일 북한 평양노동당 본부 청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연합)

북한의 '경제 자강' 현실성 떨어져…'큰 선물' 실체 선전용, 실제설 갈려 대북 소식통 “‘선물’은 김정은 지배 수단 아닌, 배고픈 인민 위해 쓰여야”

북한이 확 달라졌다. 얼마 전만해도 최대 현안인 ‘경제’, 그중에서도 식량 문제로 ‘위기’를 토로하던 북한이 자신만만하고 당당해졌다.

북한은 정권수립 70주년(9ㆍ9절)을 앞두고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이 마련돼 다시는 과거 '고난의 행군'이나 '전쟁의 불구름'을 겪지 않게 됐다”고 자부했다.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국무윈회 등 당ㆍ국가 최고 권력기구들은 정권수립 70주년을 맞아 지난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공동축하문’을 채택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8일 보도했다.

신문에 게재된 축하문 전문에 따르면 이들 기구는 “최고 영도자(김정은) 동지께서 영웅적인 애국 헌신으로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마련해주심으로써 우리 후손들은 다시는 고난의 행군과 같은 처절한 고생을 겪지 않고 전쟁의 불구름을 영원히 모르게 되었다”고 자평했다.

북한이 9ㆍ9절을 맞아 발표한 축하문 가운데 특이하고, 의문스러운 것은 ‘경제’에 관한 부분이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과 같은 처절한 고생을 겪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을 북한은 '강력한 보검'을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동안 북한은 핵을 “체제를 수호하는 보검(寶劍)”이라고 말하며 고난의 행군시기 아사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핵개발에 매진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9ㆍ9절을 맞아 발표한 축하문의 '강력한 보검'은 '핵'이 아닌 '재원(財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북한 전문가의 분석이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9ㆍ9절 축하문의 전후 맥락을과 북한 사정을 살펴볼 때 고난의 행군을 끝낼 '강력한 보검'은 경제를 뒷받침할 재원이나 돈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북한에 가장 시급한 '먹고 사는' 문제를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식량이고, 이를 마련할 재원이 필요하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북한은 식량 문제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지난 4월까지 대규모 식량이 지원되지 않으면 6월부터 아사자가 속출할 형편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선언한 직접적인 계기도 ‘식량난 해결’을 위해서였다. 북한은 식량 위기를 넘기기 위해 김 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까지 남한에 보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미국 눈치를 보고 대북 지원에 머뭇거리자 김정은 위원장은 3월 25일 전격적으로 중국으로 달려가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 주석은 대규모 식량지원을 약속했고, 5월 7~8일 2차 북중 정상회담을 다롄(大連)에서 열어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한에 보낼 엄청난 쌀과 옥수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했다.

중국의 식량 지원과 북한 스스로 생산한 쌀과 옥수수 등으로 올해 식량 위기는 넘길 수 있다. 그러나 내년이 문제다. 북한은 아직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런 북한이 9ㆍ9절을 맞이해 “고난의 행군과 같은 처절한 고생을 겪지 않게 됐다”고 밝힌 것은 대외 선전용이라 하더라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한 스스로 식량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끝내려면 대규모 대북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여전하고, 미국은 비핵화 문제 해결 없이는 경제 제재가 계속될 것이라고 공표했다.

현실적으로 북한에 대규모 지원을 할 수 있는 곳은 중국과 한국 뿐이다. 그래서 북한이 9ㆍ9절에 밝힌 이례적인 ‘경제 자강’과 관련해 중국이 큰 도움을 줬거나(또는 예정), 한국이 대규모 지원을 한(예정)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국제관계 전문가들과 중국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중국이 지난 4월과 같이 식량 등 대규모 북한 지원을 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경제적 위기에 처해있고, 이것이 북핵 문제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북한을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반도 전문가들과 북한 소식통들은 오히려 한국 정부를 의심하는 경향이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이 방북한 뒤 곧바로 ‘고난의 행군을 끝낸다'는 발표가 났고, 전술한 바와 같이 중국이 북한을 돕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북한이 9ㆍ9절을 앞두고 ‘큰 선물’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이 다녀간 뒤 그 말이 돌아 한국 정부가 거론되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해왔다.

그는 ‘큰 선물’과 관련해 “김대중 정부 때 6ㆍ15 선언과 노무현 정부 때 10ㆍ4 선언에서 약속한 것을 문재인 정부가 이행하는 것이라는 소식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정보관계자들도 만일 ‘큰 선물’이 북한에 전달됐다면 중국보다 한국 정부가 더 의심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 정보 관계자는 “중국은 미국의 관세 압박으로 중소기업 등 하부 경제가 매우 심각하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이 무리하게 북한을 돕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9ㆍ9절을 맞아 실제 ‘큰 선물’을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어쩌면 북한이 ‘경제 자강’을 발표한 것은 ‘선전용’ 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큰 선물’이 김정은 위원장 측에 전달됐다면 ‘문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유엔 제재 위반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 측에서 북한 주민을 통제하는 ‘무기’를 쥐게 된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만일 ‘큰 선물’이 북한에 전해졌다면 김정은의 손에 들어가선 안 되고, 배고픈 인민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이 통일할 경우 실제 주체는 평양 간부들이 아니고 북한 주민, 즉 ‘민족’이어야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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