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진전 따라 남북경협 가속도…유엔 제재, 5.24 조치 최대 걸림돌
삼성전자oLG전자 임가공, SKoGS 에너지 분야, 포스코o효성 철강 등 자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부터), 이재웅 쏘카 대표, 구광모 LG회장, 최태원 SK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 특별수행원들이 9월 20일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연합)
3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외견상 한반도엔 훈풍이 가득하다. 남북이 정치적으로 안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점차 ‘경제’에 비중이 실리고 있다. 이는 북한의 최대 현안이자 가장 바라는 분야여서 장차 남북 간 경제협력이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유엔 대북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남북경협은 사실상 추진되기 어렵다. 북핵에 대한 미국의 태도도 변수다. 비핵화 진전 정도에 따라 대북 제재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올해 초만 해도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약 반년 만에 한반도 정세는 완전히 바뀌었고, 미북관계도 급변했다. 4ㆍ27 첫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ㆍ12 미북정상회담이 가져온 결과다. 전례 없는 핵공포가 한반도를 감싸던 과거와 달리 ‘비핵화’를 중심으로 한 대화 국면이 펼쳐졌다.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본격적인 경주를 시작하면서 북미 관계 정상화를 전제로 남북경협도 자연스레 시동이 걸린 모양새다. 2년 6개월 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완전히 막혀있던 남북 경제협력이 재개된다는 기대감이 안팎으로 커지고 있다. 민감한 정치, 군사 분야보다 경제 분야는 남북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였다.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남북 간 경제협력의 판이 기대 이상으로 커질 수도 있다.

9월 19일 백화원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뒤 합의문을 교환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장면.(연합)
문재인 정부 ‘한반도 신경제지도’ 현실화 과제

현재 남북경협의 최대 걸림돌은 유엔 대북제재와 이명박 정부 시절 단행된 5ㆍ24 조치다. 이미 유엔 대북제재는 북한경제의 상당 부분을 옥죄고 있다. 미국의 독자제재는 물론 우리 정부의 5ㆍ24 조치 및 개성공단 전면폐쇄로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비핵화의 진전으로 남북경협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좀처럼 이뤄질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과는 별개로 남북경협 사업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교수는 “대북제재만 풀리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며 “여전한 리스크가 있지만 기업마다 기대수익을 따지고 북한 진출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대북제재로 북한 투자가 막혀있지만 기업들은 언제든 북한에 투자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반도 신(新)경제지도를 비롯한 남북 경제개발 전략의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신경제지도에 대해 직접 언급하면서 남북경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었다.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에 한국의 기업총수들을 초대한 것도 남북경협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남북경협이 대북제재로 막혀있지만, 비핵화 진전에 따라 막대한 경제적 보상이 뒤따를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지난 3차 남북정상회담(9월 18∼20일)의 결과물인 평양선언을 살펴보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의지와 도로와 철도를 비롯한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나온다. 2007년 10ㆍ4 공동선언 내용을 실제적으로 이행하겠다는 실천적 메시지가 담긴 것이다. 이는 지난 4월 발표한 판문점 선언의 ‘기존 10ㆍ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을 적극 추진한다’의 내용이 구체화된 것이다. 10ㆍ4 선언에는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조성 등 당시 기준으로만 14조 원대의 대규모 사업들이 포함돼 있다. 실제로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경의선의 문산-임진각 구간 전철화 등 접경지역의 인프라 사업도 속도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19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후 '9월 평양공동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 안에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한다고 밝혔다.(연합)
교통ㆍ에너지 인프라 전제돼야…북한 지역별 적합 사업들

남북경협의 첫 번째 단계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재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사업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져 사업을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원래 개성공단을 역외가공무역지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핵화 진전에 따라 개성공단이 역외가공무역지역으로 인정받게 되면 개성공단의 투자가치는 급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개성공단은 산업인프라가 이미 깔려 있고 즉시 가동할 수 있는 설비가 구비돼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업들도 초기투자비용을 아끼면서 적극적인 재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이다.

북한은 원산 일대의 동해구역을 국제적인 관광단지로 조성하고자 한다. 북한은 금강산을 중심으로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구’를 통해 카지노 사업도 구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각종 편의 시설을 종합적으로 갖춘 복합리조트단지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 분야에서는 현대아산의 경쟁력이 돋보인다. 현대아산은 지난 금강산관광부터 북한의 관광인프라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통해 금강산일대의 부지를 이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따냈다. 비록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개발권’의 의미가 퇴색되긴 했지만 여전히 금강산 일대의 관광지구 개발을 위한 자본을 보유하고 있고 시설 및 인프라를 상당부분 갖춰 놓은 상태다. 동해와 연결한 크루즈 관광, 일본을 연계한 국제관광도 유망한 남북경협 사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북한의 경제 개발 성공여부는 단연 교통과 에너지 인프라 확보에 달려 있다. 북한은 불안정한 에너지 수급으로 경제발전에 막대한 차질을 빚는 국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에너지 사업에 공개적으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에너지 분야는 SK나 GS 등 굴지의 에너지산업 기업들이 활로를 개척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다. 특히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한 가스관 연결사업은 북한의 불안정한 에너지 수급 문제를 해결하고 한국도 값싼 에너지를 이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은 아직 가스관 연결이나 에너지 인프라를 깔만한 기술과 자본이 부족하다. 적극적인 남북경협으로 에너지 분야의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너지 분야를 잡아야 도로든, 공단이든 각종 사업분야에서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평양을 제외한 곳은 교통 인프라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따라서 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은 북한 최대의 투자 분야다. 이번 평양선언에는 구체적인 철도 및 도로 연결사업 계획이 나왔다. 이와 관련한 예산도 책정됐고 국회의 동의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간접자본의 초기 투자비용은 매우 크다. 막대한 예산이 책정되고 준비돼야 차질 없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철도와 도로를 어느 수준에서 얼마나 확장할지에 따라 예산의 범위는 천차만별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북한에 고정적으로 설치되는 직접 투자 시설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떠안는 리스크도 변수다. 우선 북한에 안정적인 철도 인프라와 도로가 깔려야 시베리아 횡단철도, 중국횡단철도사업도 추진될 수 있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과 한반도가 관통되는 물류혁명이기 때문에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핵심으로 평가받는다.

평양 및 남포지역은 북한의 최대 소비 지역이자 노동집약적인 산업구조를 가진 지역이다. 실제로 북한의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기도 하다. 고급 노동인력이 밀집된 곳이어서 임가공형태의 사업도 추진될 수 있다. 실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000년대 초반 TV를 조립해 완성하는 임가공 형식의 위탁 제조를 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2000년부터 2010년 5월까지 연간 2~3만 대의 브라운관 TV를 임가공 생산했다. LG전자는 평양에서 컬러TV를 조립 생산했다.

이곳은 가전제품, 섬유, 전기, 전자 산업은 물론 자동차 산업이 진출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경공업의 중심지로서 노동집약형의 제조업체들도 진출하기에 용이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곳은 수도권과도 가까워서 접근성이 좋고 일부 인프라만 보강하면 훌륭한 입지를 지닌 산업단지로서의 잠재력이 풍부한 곳이다. 실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남북관계가 가장 좋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기아자동차에서 자동차를 위탁생산을 고려하기도 했다. 이곳은 북한 최대의 인구 지역으로 양질의 노동력이 있고 교통 여건도 좋아 원재료 조달 등이 용이하다. 당장 남북경협의 수혜를 볼 지역이다. 남포에는 북한의 대표적인 자동차 브랜드인 평화자동차의 종합공장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현대기아차가 진출하기에도 입지가 좋다.

나진선봉지구는 북한이 본래부터 집중 투자한 무역지구다. 이곳은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중국 및 러시아와 접경을 맞대고 있어 무역의 중심지로 불려왔다. 중국과 러시아의 에너지와 자원을 활용한 사업에는 SK와 한화케미칼이 투자할 수 있는 지역이다. 앞서 언급한 원산일대의 동부권 국제관광단지는 현대아산이 비교우위에 있다. 금강산과 원산 일대를 확대하면 설악산을 비롯한 DMZ 국제평화공원, 마식령 스키장 등이 한 번에 연결되는 환동해권 경제 개발의 거점이 된다. 이곳은 일본과의 무역을 위한 용이한 접근성도 갖추고 있다. 종합적인 산업 입지로서도 전망이 좋은 곳이다.

개성-해주 지역은 경공업을 비롯한 소규모 기업들이 진출하기 좋다. 이곳은 철광석과 석회석 매장량이 매우 풍부하다. 철강산업과 시멘트 산업이 발달하기에 좋은 곳이다. 따라서 포스코나 효성 등의 투자와 진출이 용이할 것으로 판단된다.

평안북도는 에너지 자원이 상대적으로 좋다. 수력을 이용할 수 있으며 석탄이 풍부하다. 철광석을 비롯한 비금속 광물도 상당하다. 또한 최대의 금은 생산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종합적인 석유화학단지로 조성되기에 좋다는 평가다. 평안도는 다른 지역보다 물적 인프라가 풍부한 편이다. 항만개발과 에너지, 통신, 도로 및 철도 개발 순으로 집중 투자하기 용이한 지역이다.

지난 6월 12일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공동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
비핵화 해결 시간 걸려…경협 위한 선행작업 필요

지난달 20일 DDP에 마련된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이와 관련한 브리핑에서 “경제협력 문제는 대북제재가 풀려야 한다”며 “정부는 비핵화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북과 긴밀히 협조했고 새로운 국면을 도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국면이란 남북경협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비핵화 문제가 진일보된 성과를 거두게 되면 본격적인 남북경협 사업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어 “이번에 경제계 주요 인사들이 갔는데, 당장의 경제 협력 성과를 내기 위한 것보다는 새롭게 전개될 한반도의 새로운 지형에 대비하여 올라간 것”이라며 “앞으로 여건이 조성되면 이 분들이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북경협 사업에서 기업총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하는 메시지다.

기자간담회에서는 백두산 관광 논의 여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윤 수석은 “우리 입장에서는 백두산이라는 상징이 크지만 아직 백두산 관광에 관련된 것에 대한 합의사항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 3차 정상회담 이후 나온 남북 간 합의사항에는 금강산, 개성공단 등이 언급돼 있고 백두산은 빠져있다. 아직 이 부분은 양측 간 긴밀한 협의까지는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교수는 남북경협에서 투자의 개념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북한에서 어떤 부가가치를 창출하느냐가 문제”라며 “공단형태든, 완전한 기업형태든, 기술이나 장비만 도입되는 형태든 여러 경우의 수가 있다. 제재가 풀리더라도 북한 경제시스템 자체가 외국과의 경제협력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체제이기 때문에 초기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역할과 결과물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북한이 새로운 경제협력 국면에 적응하고 성과를 내는 것이 확인된 후에야 대규모 투자 사업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도 “대북제재는 생각보다 일찍 풀리기 어려울 것”이라며 “트럼프가 비핵화문제를 시간싸움이 아니라 3-5년을 내다보는 중장기전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선은 지금의 대화기조만 유지되고 남북경협을 위한 물밑작업이 선행되면 제재 이후에 차질 없이 경협의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