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중국과 손잡고 유엔에서 북핵 등 해결…미국 추락, 남북관계 ‘흔들’

신년사 ‘새로운 길’은 북ㆍ중 협업 의미…유엔 역할 증대, 미국 ‘위기’
북한, 절대 ‘보유핵’ 포기 안해… ‘비핵화=핵군축’ 오판 말아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연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통해 밝힌 대내외 입장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의 존재가 크게 자리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북한이 최대 현안인 경제난과 국제적 이슈인 북핵 문제를 중국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남북관계 변화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우리 정부가 자주적 결단을 하지 못해 진전이 어려울 경우 중국과 친선을 확대해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대미관계에서 미국과 대화를 하겠지만 일방적인 제재와 압박을 지속할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언급한 ‘새로운 길’은 중국과 손잡고 북핵 문제와 대북제재를 풀어가겠다는 의미다. 실제 현실화될 경우 우리 정부의 대북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미국의 국제적 위상은 추락이 불가피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중국 승부수’는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를 시험대에 올려놓은 양상이다.

북한 현안과 신년사의 중국 그림자

북한은 매년 12월 초 쯤 신년사를 준비한다. 신년사의 핵심은 새해 중점을 두고 추진해갈 ‘지표(指標)’를 정하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에 ‘핵ㆍ경제 병진’이 지표가 돼왔으나 2017년 6차 핵실험 이후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이후엔 ‘경제’가 북한의 최대 현안이 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지표가 됐다. 이는 북한이 경제 문제 해결의 최대 걸림돌인 대북 제재 해제에 전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하는 가장 큰 이유도 미국이 대북 제재 해제의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완전한 비핵화(CVID)-의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

북미 정상회담을 포함한 북미대화의 요체는 비핵화와 대북 제재 해제의 접점을 찾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나서면 대북 제재 해제는 물론, 대규모 지원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본지가 2017년 9월 6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핵에 대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혔듯, 북한은 현재 진행중이거나 미래핵은 양보할 수 있어도 기존의 보유핵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설령 미국이 대북 제재 해제와 지원을 하더라도 북한의 보유핵에 대한 입장은 불변이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6ㆍ12 북미정상회담에서, 그리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이 수차례 북한과 접촉해 북핵 문제를 논의했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최근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보유핵에 관한 북한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다.

미국 역시 북한이 핵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대북 제재를 지속하겠다는 종래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정은의 신년사는 이러한 국내외 상황에서 나왔다. 즉, 확실한 지표를 정하지 못한 채 신년사를 발표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신년사에서 내부 경제 문제는 ‘자력갱생’을 통해 해결하고 남한과는 자주적인 ‘경제협력’과 ‘교류’를, 미국과는 ‘대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세가지 모두 녹록지 않은 게 북한의 현실이다. 북한의 자력갱생은 외부의 지원 없이는 한계가 있고, 남한과의 경협과 교류는 5ㆍ24 조치와 유엔 제재의 벽이 있다. 미국은 비핵화가 돼야 대북 제재를 해제한다는 입장이어서 접점을 찾기 어렵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018년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고 28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서 악수하는 모습.(연합)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신년사에서 난제를 풀 해법으로 ‘중국 카드’를 제시했다. 최대 과제인 경제와 북핵 문제에서 중국과 협업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또한 북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국의 영향권에 끌어들이고, 미국과의 관세 전쟁에 북한을 앞세워 불리한 국면을 전환시키려 한다.

이처럼 북한과 중국이 이해를 맞추고, 이것이 신년사에 반영된 데는 중국 공산당 경제팀의 역할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북한 정권 수립일(9월 9일)과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을 전후해 대거 북한에 들어가 현재도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 경제에 직접 관여하면서 올해 북한의 지표를 전하는 신년사에도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중국 승부수’ 왜 꺼냈나?

올해 북한 신년사는 대내 경제 문제를 과도할 정도로 장황하게 언급하고, 후반부에 남북관계와 북미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이는 북한 경제난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란 것을 말하는 것이고, 실제 1월까지 식량이 지원되지 않으면 이후 아사자가 발생할 수 있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지난해 5월 김정은이 다롄에서 시진핑 주석과 2차 북중 정상회담을 갖고 쌀과 옥수수를 지원받았지만 1월이면 바닥이 날 상황”이라며 “신년사에서 경제를 그렇게 강조한 것은 심각한 현실 문제이기 때문이다”고 전해왔다. 소식통은 “북한 경제는 중국 경제팀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신년사에 중국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것도 그 때문이다”고 말했다.

북한 경제 문제는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미 간, 미중 간 국제관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북한 경제가 극도로 악화된 것은 2017년 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이후다. 당시 핵실험은 일반 핵실험과 다른 ‘수소 폭탄’ 실험으로 맹방이라는 중국과 러시아도 충격을 받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공식적 지원이 끊기면서 식량 등 경제난에 처한 북한은 2018년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전하면서 남한에 손을 내밀었다.

문재인 정부는 바로 북한의 손을 잡았고,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됐다. 지난해만 해도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고, 다양한 교류가 추진됐다.

그러나 북한에 현실적으로 필요한 식량 지원이나 경제협력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막혀 진행되질 못했다. 특히 유엔에 강한 입김을 넣고 있는 미국이 북핵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북한의 경제난은 더욱 악화됐다. 미국은 비핵화를 조건으로 대북제재 해제를 제시했지만 북한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미국을 통해 경제난을 해결해야 하는 북한은 신년사에서 미국에 대화를 제의하면서, 한편으론 미국이 제재와 압박을 지속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새로운 길’에 대해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미국의 대북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경우 중국과 함께 어려움을 풀어가겠다는 경고”라고 전해왔다. 소식통은 “미국이 압박책으로 일관하고 남한도 미국 눈치를 보며 아무 것도 못할 경우 북한이 의지할 곳은 중국밖에 없다”며 “중국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명목으로 북한에 개입할 경우 유엔도 제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남한도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중국은 식량 등 경제 지원을 빌미삼아 북한 전체를 좌우하려 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018년 5월 9일 게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방문 모습.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 다롄 해변을 거닐고 있다.(연합)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중국의 경제 식민지 상태로 전락할 경우 중국의 ‘제4성’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통일’은 멀어지고, 중국의 한국에 대한 영향력도 강화된다.

미국은 압박(고사) 전략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려 하지만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기에, 오히려 중국에 의존하게 된다.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이 도래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일방적인 강요와 제재, 압박으로 나간다면 어쩔 수 없이 부득불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새로운 길’ 발언에 대해 일부 보수 진영은 “핵 개발로 돌아가겠다는 협박’이라고 해석하지만 작년 4월 노동당 7기 대회에서 김 위원장은 “이제 핵은 더 이상 안 한다. 경제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했기 때문에 다시 핵 개발을 할 이유가 없다. 일각의‘핵ㆍ경제 병진’ 노선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은 중국과 함께 북한의 난관을 헤쳐가겠다는 의미이다. 이는 김 위원장이 한반도 평화정착의 방안으로 제시한 ‘다자 협상’과 연결된다.

북한, 중국 앞세워 현안들 유엔에서 해결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과 관련해 ‘다자 협상’이라는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 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과 한반도와 관련있는 미국ㆍ중국ㆍ러시아ㆍ 남북한이 다자 협상의 주체로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밝힌 ‘다자 협상’의 진의는 다른데 있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이 앞장서 유엔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북핵 해결의 주체가 미국이 아닌 유엔이 된다. 트럼프 정부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북핵 문제를 해결해 2020년 재선의 결정적 카드로 활용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도 수포가 될 수 있다.

또한 북핵 해결에 유엔이 나서도록 하는데 중국이 앞장서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은 미국과의 관세전쟁으로 국내 사정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당수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지방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주도할 ‘다자 협상’은 ‘북한 카드’를 통해 미국과 한판 승부를 하려는 고도의 전략이기도 하다. 미국은 북핵 해결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북한과의 대화가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 중국과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20일 삼지연초대소에서 오찬을 하고 있다.(연합)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요청했을 때 미국은 크게 당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교황의 방북은 세계평화의 일정이고, 그에 가장 위협적 요인인 북핵을 유엔에서 해결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유엔이 북핵 문제 해결에 본격 나서 미국이 주도권을 빼앗기면 국제관계에서 잃을 것이 많다.

문 대통령이 교황을 면담하고 난 직후 미국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부각해 교황의 방북에 딴지를 건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북핵 해결의 주도권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신년사의 ‘다자 협상’은 미국을 겨냥한 북한과 중국의 묵계로 해석될 수 있다.

우려되는 것은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이 김정은 신년사의 핵심 내용을 잘못 이해하거나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김 위원장이 말한 ‘완전한 비핵화’ 의지 부분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핵폐기’가 아니라 전 세계 핵유국이 핵을 제거할 경우 자신도 핵을 없앤다는 ‘핵군축’의 의미다.

그럼에도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비핵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말하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며 ‘핵폐기’로 해석했다. 이처럼 우리 정부가 북핵을 잘못 이해하면 향후 남북관계나, 남ㆍ북ㆍ미 관계 등에서 큰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이미 그에 따른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북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올바른 판단과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